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6화(8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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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행사에 참석해 귀빈 축사를 끝낸 나는 멍하니 앉은 채로 부채를 살랑이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도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뒤죽박죽인 내면과는 달리 난 제법 새침한 얼굴로 기품 있는 척을 해내고 있었다. 이어지는 행사의 또 다른 귀빈 축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그런데 돈이 그렇게 많으면 단테 선물은 최상급 에메랄드로 사도 되는 것 아닌가?’
단테가 준 돈으로 단테의 선물을 사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거나 단테는 기뻐할 거다. 내가 준 거라면 뭐든지.
누더기를 기워 만든 헝겊을 줘도 좋다고 손수건처럼 재킷에 꽂고 다닐 것 같거든………….
‘그래, 단테 선물은 질 좋은 에메랄드를 사자. 그게 좋겠어.’
내가 그렇게 결정을 내릴 즈음 해서 비로소 길고 지루했던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어휴. 어른들은 축사를 왜 이렇게 길게 한담?
“데이트하자!”
모두 슬슬 자리에서 일어서자 저편에 앉아 있던 단테가 한달음에 내게 달려왔다.
실룩거리는 입꼬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데이트 약속을 한 적이 있었나?
멈칫한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내가 데이트를 하자고 했어?”
“아니, 내가. 그리고 플로린은 어제 응이라고 대답했어. 잠들기 전에.”
“그랬어?”
“응!”
여우가 누군지, 원.
그래도 단테의 예쁜 짓을 본 참이라 나는 그냥 데이트에 응해주기로 했다. 단테가 직접 자기가 쓸 선물을 고르게도 해주고 싶고 말이야.
“좋아, 가자. 어디 갈 거야?”
“우선 축제를 구경하자. 원석 거리부터! 볼 게 엄청 많대. 살 건 별로 없겠지만.”
아닌데, 살 거 많은데.
린다를 비롯한 모두에게 줄 선물을 원석 거리에서 다 사야 하니까.
“어머니, 저 단테랑 놀러 가려는데 둘이서만 가도 돼요?”
“음……. 그건 좀 어렵겠지만 둘이서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호위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고 지시할게요. 그건 어떤가요, 따님.”
일단 양어머니께 가서 살짝 여쭤본 나는 ‘된다’와 ‘안 된다’ 사이에 놓인 대답에 단테를 흘긋 돌아보았다.
뭐…… 상관없겠지. 표정을 보니 아무튼 빨리 가고 싶어 보이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와요. 소매치기도 조심하고요.”
하긴, 이 세계는 지갑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냥 주머니에다 동전을 넣어 다니지.
‘화폐로 바꾸면 편할 텐데. 더 가볍고.’
주머니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형식이었는데 오늘 그 안엔 은화가 잔뜩 들어 있었다.
고급 상점에서야 은행에 가서 대금을 받으라고 하면 되지만 노점은 전부 현금이거든.
“아유, 어여쁜 아가씨네. 여기 이것 좀 보셔요. 마노로 만든 브로치랍니다.”
“이 핀은 어떠세요? 진주 핀이에요!”
“거기 도련님! 이건 어떠십니까!”
따르티에의 상인들은 귀족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신분에 굴하지 않고 호객 행위를 했다.
그 바람에 귀 얇은 나는 노점마다 멈춰 서면서 놓여 있는 장신구들을 구경하게 됐는데,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다 예쁘기만 했다.
“이거 린다한테 잘 어울리겠지?”
“그러네.”
“이건 유모 줘야겠다.”
나는 핀이며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 같은 걸 산 다음 남성용 장신구를 파는 노점에서 주방 식구들에게 줄 것도 잔뜩 샀다.
언제나 나를 챙겨주고 부탁도 많이 들어주는데 이 정도는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단테는 아무것도 안 사?”
“난 여기 말고.”
내가 구경하는 동안 딴청을 피우던 단테는 씩 웃으며 엄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머리 위에 깃발이며 각종 플래그가 달려 있는 이 거리와는 달리 저쪽은 분위기가 영 남달랐다.
입구에 경호원이 서 있는 데다 안쪽도 깔끔하기 그지없는 걸 보니…….
‘저기가 앙드레가 말한 귀족만 입장 가능한 곳이구나.’
어째 축제 분위기는 별로 안 나는데.
그래도 좋은 물건을 사려면 고급품을 취급하는 상점에 가야 하니 나는 잘 포장된 물건이 담긴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종종걸음을 쳤다.
“이리 줘. 내가 들게.”
“아냐. 내가 줄 선물인데 내가 들어야지.”
“너 앞은 보여?”
“…………!”
내가 흘겨보자 단테는 코웃음을 치고는 내 품에 있던 종이봉투를 빼앗으며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가보고 싶었던 가게 있어?”
“없어. 그냥 하나하나 둘러보자.”
“으응, 그러지 뭐.”
축제 둘째 날임에도 이쪽 거리는 한산했다.
나는 제일 가까이 있는 웅장한 상점을 골랐는데 여기는 종류에 상관없이 오직 붉은색 보석과 장신구만 취급하는 곳이었다.
“아, 이거 예쁘네. 이건 루비야?”
“아닙니다. 루비와 같은 보석을 보고자 하시면 안쪽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앞에 있는 것들은 원석이지요.”
“이런 가게에서 원석도 팔아?”
“평소에는 취급하지 않지만 지금은 축제 기간이지 않습니까. 손님들이 원하실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물건을 들여놓는 것이! 바로 축제 기간에 손님을 맞이하는 상점의 참된 자세입니다!”
와, 열정적이네.
내게 설명을 해주는 토끼 족 점원은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인 듯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하나를 짚었다.
“이걸로 줘.”
“가넷 귀걸이를 고르셨군요! 가넷이기는 하지만 저쪽 거리 노점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몇 등급이나 높은 물건입니다. 게다가 모두 저희 상점과 오랫동안 거래해 온 20년 차 경력의 장인이 제작한 것이지요. 잘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나는 노점에서 파는 원석과 여기에 있는 원석의 차이점을 모르겠지만……. 점원이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잠깐. 근데 나 호구인가?’
상술에 속아 넘어간 건 아니겠지? 가격이 다섯 배는 비싼데…….
나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그래도 가게의 로고가 박힌 상자에 포장된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쓸 게 아니라 선물이니까. 게다가 오랜 경력의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잖아.’
하지만 그건 너무 물질주의적 생각인 것 같은데. 그냥 물건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
‘으아아. 어려워!’
양어머니와 함께 왔다면 여쭤볼 수 있었을 텐데!
어른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이건 나중에 여쭤봐야지.
“크흠.”
“……왜?”
“아니, 뭐. 누구 줄 건가 해서.”
그때, 단테가 헛기침을 해서 내 주의를 돌렸다.
귓불이 은은하게 붉어져 있는 걸로 봐선 자기 것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것 같은데-
“단테. 있잖아.”
“응?”
“앞으로도 빨간색 보석은 안 어울리니까 가급적 착용하면 안 돼. 넌 검은색, 흰색, 초록색, 푸른색 계열이 잘 어울려.”
나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물론 넌 잘생겼고 앞으로도 엄청 잘 생기게 자랄 테니까 얼굴이 개연성이라 웨딩드레스를 입어도 괜찮겠지만…….”
“웨딩드레스 안 입을 거거든?”
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든 예시에 얼굴이 발긋해진 단테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잠깐 드레스를 입은 단테를 상상해 보다가 이내 인정하고 말았다.
음, 그건 너무 갔네.
‘이안도 좀……. 조르면 입어는 주겠지만 엄청 어색해하겠지. 그런데 유리라면 드레스도 엄청나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심지어 위화감 없이 입고 다닐지도?’
세 사람의 성격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나는 혼자 쿡쿡 웃다가 씩씩대고 있는 단테에게 다가가 꼭 껴안았다.
“네 선물도 있어. 지금 말고 나중에 살 거야.”
“진짜?”
“응. 당연하지. 그런데 네 건 제일 좋은 걸 살 거라서 마지막에 고를까 했어.”
아이, 착하다. 아이, 착하다.
나는 단테의 고운 흑발을 쓰다듬어주며 포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 가게에서 연보랏빛이 도는 오팔 귀걸이를 발견한 나는 그것도 획득한 다음 곧바로 에메랄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점으로 향했다.
단테는 이제 내가 가는 대로 졸졸 따라왔는데 그 모습이 강아지 같아서 좀 귀여웠다.
흑표범은 고양잇과일 텐데 단테는 왜 이리 강아지 같은지 몰라.
“마음에 드는 거 고르면 그걸로 사줄게.”
“내가 뭘 고를 줄 알고?”
“뭘 고르든 상관없어. 엄청 비싼 것도 괜찮아. 고마워서 사주는 거니까. 대신 오래 간직해 주기야?”
우리 대화를 듣던 직원이 잽싸게 남성용 에메랄드 제품을 착착 꺼내놓았다.
단테는 신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물건을 구경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고마워?”
“나한테 계좌를 줬더라? 어제 처음 알았어.”
“아, 그거! 맞다.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심지어 잊었어?!”
“응. 그러고 나서 바로 훈련 강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완전 잊고 있었네……!”
얘, 앞으로 괜찮은 거 맞겠지?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나랑 결혼하지 않는다면 아주 야무진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이안은 알아서 잘 할 것 같지만 단테는 영 불안했다. 그런 거액을 덜컥 줘놓고 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난 이걸로 할래. 브로치.”
“멋지게 생겼네. 예복에 달면 좋을 것 같아.”
“잘 어울려?”
“응. 엄청 잘 어울려.”
에메랄드 브로치를 들어 단테의 가슴팍에 대자 갑자기 먼 미래가 연상되었다.
키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어깨가 벌어진 단테가 넓은 가슴에 이걸 달고 있는 모습이-
‘응, 좋아.’
어른이 되어도 어색하지 않겠네.
얼마든지 사치를 해도 좋을 공작가의 자제라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낭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좋은 물건인데…….
어른이 되면 구석 어딘가 박혀서 먼지 묻은 장신구로 전락하면 슬프잖아.
“지금 달고 갈래!”
“그럼 그렇게 하자.”
“고마워, 플로린! 소중히 간직할게.”
단테가 헤벌쭉 웃으며 브로치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어찌나 들떠서 좋아하던지, 나까지 그 영향을 받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