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8화(88/173)
“허락하신다면 옛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까악까악.
어디선가 까마귀인지 까치인지 모를 새가 크게 울었다.
까마귀면 흉조고 까치면 길조인데.
황당함이 반, 설마 진짜로 내 가족이 있는 건가 싶은 기대감이 반이다. 그래서 나는 차마 헛소리라고 대꾸하지를 못했다.
“우선 왕께서는 10년 정도 전, 왕비님과 태내의 아기님을 모두 잃으셨습니다. 하지만 시신이 남은 왕비님과는 달리 아기님은 아르칼리크의 어디를 뒤져도 찾을 수 없었지요.”
“……응.”
“틀림없이 돌아가셨다고 여겼지만 얼마 전. 지상에서 연성술의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세 개의 섬을 뒤흔들 정도로 강대한 파장에 혹시 아기님이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얼마 전의 연성술이라면 혹시 내가 단테를 위해 처음 피웠던 꽃을 말하는 걸까.
망설이던 난 바닥의 돌멩이를 집어 들어 그걸 꽃으로 바꾸었다.
파아앗-
환한 빛이 일다가 사라진 곳엔 튤립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꽃 연성술이로군요. 이리 아름다운 꽃은 처음 봅니다.”
내가 만든 튤립을 바라보던 화이란은 목이 멘 듯했다.
“왕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신하 된 자들이 감히 배신하여 왕비님을 잃었기에 그 이후로 왕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헌데 이리 따님이 살아 계신 줄 아시면 지극히 기뻐하실 겁니다.”
“내가 정말 왕비님이란 분과 닮았어?”
“예. 아주 똑같이 생기셨습니다.”
“……머리 색도 눈 색도 알비노는 다 똑같잖아. 그런데 어떻게 확신해?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아무리 그럴싸한 감동적인 이야기라도 그걸 덜컥 믿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너무 잘 만들어진 이야기잖아. 내 귀에 듣기 좋게 포장한 것 같아.
“제 연성술을 보여드리면 제가 화 섬의 주인임은 믿어주시겠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나는 화 섬이 뭔지도 몰라. 아르칼리크에 대한 건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잖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단테가 나를 찾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나는 어둑어둑해진 골목길 사이를 흘긋거렸다.
“아……!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군요. 아르칼리크는 왕께서 머무시는 태양 섬을 중심 섬으로 하여 모두 일곱 개의 천공섬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월 섬, 화 섬, 수 섬, 목 섬, 금 섬, 토 섬의 주인들이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대신이지요.”
“그러니까…… 높은 사람이다?”
“그렇습니다요!”
그런 것 치곤 너무 경박한데.
나는 화이란을 샐쭉하게 노려보았다.
“어둡기도 하니 연성을 하겠습니다.”
“……어디 한번 해봐.”
이렇게 말한 이유는 궁금했기 때문이다.
화이란이 말한 대로라면, 아르칼리크는 알비노들만 사는 곳인가?
그럼 거기서 알비노는 아주 평범한 거잖아. 여기서는 배척당하고, 천대받는데.
게다가 연성술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보면 화이란은 분명 연성술사였다.
‘하지만 할아버님은 모든 알비노가 연성술사인 건 아니라고 했어.’
나는 볼 안쪽 살을 지그시 깨물고 화이란이 바닥의 자갈을 줍는 걸 지켜보았다.
“예쁜 걸 보여드립죠.”
휘익!
화이란이 휘파람을 불며 허공에 자갈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날아오른 자갈은…… 그대로 반짝이는 빛이 되어 폭죽처럼 팡팡 터져 나갔다.
“저는 기본적으로 화염을 연성합니다. 거기에 수반되는 폭발과 빛 또한 제 영역이고요.”
“하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냐?”
“예. 공주님께서는 꽃을 피워내시는 걸 보니 식물의 생장에 관여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
내 힘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다. 비단 하나의 물질을 꽃으로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식물을 키워낼 수도 있다고.
그러면…… 그러면 그 힘은.
‘지금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거잖아!’
“만약 제게 적의나 살의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공주님의 몸에 손을 댄 순간 타죽었을 겁니다. 공주님께는 아주 강력한 보호 마법이 걸려 있거든요.”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네.”
“공주님의 현 보호자가 공주님을 많이 아끼는 겁니다. 그 외에도 공주님의 의지에 반하여 몸에 손을 대면 마찬가지로 타 죽습니다만은…… 저는 멀쩡하지요.”
“그러네. 왜 멀쩡해? 난 진심으로 나를 놓으라고 했는데.”
내가 흘겨보자 화이란이 아야야 하는 같잖은 소리를 내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화이란, 아픕니다. 아파요. 아무튼 타 죽지 않은 게 제가 화 섬의 주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불로도 저를 죽일 수 없거든요.”
“!”
“연성술의 극의에 달한다는 건 그런 겁니다. 공주님께서도 본래 계셔야 할 곳에서 최고의 스승에게 수학하시면 금세 극의에 달하실 겁니다.”
“그러니 같이 가자?”
“예. 그래 주시면 감사…….”
“안 가.”
들을 건 다 들었다.
나는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하곤 뒷걸음질을 쳤다.
“피만 받아 가서 내가 진짜 공주인지 아닌지 확인하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니까 갓 흘린 피여야 한다든지 그런 조건이 있나 봐?”
“그……, 그렇습니다. 몸에서 낸 지 3초가 지나지 않은 깨끗한 피여야 합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은 기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착, 착, 착.
팅!
계산 완료.
“안 가, 안 가. 안 가!”
나는 온 힘을 다해 뻗대며 소리쳤다.
“안 가! 꺄아아악! 이 납치범!!!”
그에 화이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 거래하지 않았습니까요. 제 초대에 무조건 응해주신다고요.”
“아니지! 잘 생각해 봐. 내가 약속을 한 건 평민 곡예사였어. 아르칼리크 공국의 화 어쩌구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까 사기는 그쪽이 친 거예요. 아시겠어요?”
나는 언제 어느 때고 내 목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결하고 싶은 건, 유리를 수조에서 빼내는 거야.’
그 유리를 가둔 건 황후. 황후를 이길 수 있는 건 황제. 황제와 협상하려면 원하는 걸 줘야 하고, 그 황제가 원하는 게-
‘방금 분명히 황제가 죽은 연인이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공국에 있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말했댔어.’
여기서 황제가 찾고자 하는 죽은 연인이라면 딱 한 명뿐이었다. 아리아드네 님.
‘황제는 아리아드네 님이 아르칼리크 공국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황제는 화이란을 알고 있고, 협상을 시도했다.
왜? 직접 아르칼리크에 가고 싶어서.
‘그런데 화이란은 나를 공주라고 칭했어. 내 아빠가 왕이고, 왕이 나를 엄청 보고 싶어한대.’
그럼 답은 나온 것 아닌가?
자물쇠를 열 열쇠를 나는 드디어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초대에, 어른을 데려가도 된다고 했지?”
“예에.”
“그럼 난 황제를 데려갈 거야. 그게 아니면 안 가.”
황제는 아르칼리크에 가고 싶으면 당장 유리를 수조에서 꺼내고 신분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정치 구도에 무슨 일이 생기든지 어린이인 나는 알 바 아니었다.
‘완벽해! 황제는 이 제안을 결코 거부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이 사람들도 나를 데려가고 싶거든 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지.’
외교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이 일이 앞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런 건 마찬가지로 어린이인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난 유리만 구출하면 돼.
‘이럴 때 좋은 핑계가 있거든.’
나는 아버님이 내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만에 하나 네가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뒷감당은 내게 맡기고 너는 네가 옳다고 믿는 걸 하려무나.”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대로. 뒷감당은 아버님이 다 해주실 테니까.
‘이러면 만약 내가 공주가 아니더라도 전혀 상관없단 말씀! 내 목표인 유리 구출하기는 달성하는 거잖아!’
나는 손해 볼 게 아무것도 없다.
“크르르르르.”
때마침 머리 위에서 눈이 돌아버린 맹수의 울음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내 앞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흑범은 눈 깜짝할 사이 화이란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
그에 화이란이 벽면을 차고 위로 치솟았지만 안타깝게도 단테는 갯과가 아니라 고양잇과거든요.
“작은 마님!!!”
“저희 불찰입니다. 벌해주십시오!”
“무사하십니까아아악!”
뒤이어 호위기사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느긋하게 단테와 화이란의 몸싸움을 지켜보았다.
‘저 정도로 흥분했으니 말려도 안 들릴 거야.’
내버려 둬야지. 흥.
나는 뒷짐을 진 채 화이란을 향해 소리 질렀다.
“단테한테 상처 하나만 입혀 봐! 그럼 평생 왕이고 아빠고 얼굴 안 볼 테니까!”
“으아악! 저 죽습니다! 죽어요!”
“힘내! 이 나쁜 아동 납치범!”
크어어엉!
단테가 분에 찬 울음을 뱉으며 화이란을 향해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진짜 두개골이 퍽 깨지는 소리 같은 게 나면서 화이란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으악!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다 들어드릴 테니 제발 멈춰주십시오. 어흐흑.”
“응, 안 돼. 더 혼나야 두 번 다시 같은 짓을 안 하지. 내가 공주가 아니라서 다른 애를 또 찾더라도 이렇게 납치를 하고 그럼 안 되는 거예요.”
“끄아아악!”
그로부터 30분 뒤.
뒤늦게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타난 양어머니께서 북풍이 휘몰아치는 기세로 검을 뽑아 화이란에게 달려들었다.
“문답무용.”
“악! 악! 악!”
뭐, 그래도 양어머니와 단테를 상대로 안 죽고 버티는 걸 보니 꽤나 용하긴 했다. 신비의 나라인 아르칼리크에서 높은 지위라는 게 그제야 좀 믿겼달까.
‘퍼즐은 모두 모였어.’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유리.
네가 있을 곳은 비좁은 수조 따위가 아니야.
‘곧 만나자.’
나는 그렇게 빌며 두 손을 가만히 모았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의 아주 깊숙한 곳.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꽁꽁 감춰둔 그곳에는…… 막 싹을 틔운 희망 하나가 있었다.
친아빠를 만나보고 싶다는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