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9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90화(90/173)
지난 생에 플로린은 꽃 연성술을 아주 늦게야 발현했다. 이번에 일찍 발현하게 된 건 역시 이안을 구하려 했던 게 크겠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은 처음부터 그가 플로린을 감싸고 모든 지원을 해주었기에, 플로린이 소심하게 눈치를 보며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꽃 연성술을 일찍이 발현하여 이렇듯 친부가 보낸 사람이 찾아오게 된 건 결국 키락서스, 자신의 행동이 바뀌었다는 게 근본적인 이유다.
심지어 그냥 거물도 아니고, 여태 비밀에 휩싸여 있던 아르칼리크의 왕이라니.
그렇다면 플로린이 한 나라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 보내줘야 옳다.
‘정말 그곳에서 어떠한 눈총도 받지 않고, 친부의 지극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게다가 이자가 제 왕을 떠받드는 것처럼 그곳의 모두가 플로린을 떠받들 게 확실하다면.
‘그날, 유성이 떨어진 건 이런 의미였나.’
희미한 불안감이 점점 윤곽을 갖추었다.
“그쪽도 알 텐데. 공주님이 지금까지 어린아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명석하거나 냉철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
키락서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이란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봐. 나도 황궁 연회에 있었다고? 게다가 재수 없게 황제한테 딱 걸리는 바람에 끌려가서 이것저것을 보고 들었거든.”
“그런데.”
“만약 공주님이 너희가 말하는 우성 페로몬을 갖춘 알파라면 대단히 똑똑한 게 이상할 리 없겠지. 하지만 아니잖아?”
“헌데.”
“아, 모르는 척 좀 그만해. 네 품 안에 싸고돌 때야 상관없겠지만 공주님이 본격적으로 사교 활동 같은 걸 하시면? 아이답지 않은 부분을 여기저기서 걸고넘어지면?”
“쓸모없는 혀로군.”
키락서스가 딱 잘라 외면하자 화이란은 가슴을 쿵쿵 쳤다.
“너희는 알비노를 천시하잖아. 알비노가 자기보다 영리하고 성숙한 걸 다 마냥 예쁘게만 받아들일 것 같아?”
그러니 본래 계셔야 할 곳으로 보내라.
결국 화이란이 하는 말은 그런 것이었다.
‘허나 공주가 아니면? 친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들떠서 갔는데 아니라면. 그 상처는 어찌할 텐가.’
만약 플로린이 시무룩해진다면 그는 아르칼리크를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악신과 계약한 덕에 그에게는 힘이 넘쳤다. 모신 가이아노스의 나라를 박살 내겠다고 하면 악신도 좋아서 날뛸 텐데 못할 게 무엇이랴.
“하지만 공주님께서 그렇게 남들보다 뛰어난 건 우리 아르칼리크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왕의 유일한 혈육이시니까.”
“그 말은 결국 플로린을 데려갔다가 너희 입맛에 맞을 만큼 영리하지 못하면 실망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 꼬아 듣지 좀 말고!”
화이란이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이 삐딱하고 거만하고 재수 없는 사내에게 아르칼리크에 대해 어디까지 설명을 해도 될까.
당장 왕께 여쭐 수 없으니 결국 화이란은 자신의 권한으로 이 일을 마무리를 지어야만했다. 그리고 반드시 공주님을 모시고 가야 한다.
끙끙거리던 화이란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르칼리크에서 왕은 절대신이다. 왕의 혈육 또한 그러해.”
“……계속하지.”
“공주님의 기분을 풀어드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칠 자들도 있을 만큼, 모두가 왕을 경배한다. 공주님이 맞다면, 세상을 손에 넣으실 수 있어. 누구도 감히 공주님을 평가하지 않을 거다. 그저 떠받들겠지.”
“미친 광신도 같은 소리나 지껄이는군.”
“으아악! 네놈 성격, 진짜 재수 없어! 황제만큼 재수 없네!”
화이란이 욕을 해댔지만 키락서스는 그저 눈썹을 까딱일 뿐이었다. 그 황제보다야 자신이 낫다는 생각이나 하며 그는 입매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황제가 원한 건 뭐지?”
“네 누이가 아르칼리크에 있는 것 아니냐던데. 없다고 했는데도 믿지 못하더군.”
“아아.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가…….”
누이는 누이가 살고 싶은 세상에서 알아서 잘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아리아드네는 제멋대로에 성격 나쁘고 막무가내인데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능력이 워낙 뛰어나니 손대는 일마다 잘되었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사람이기는 했다.
‘아예 다른 차원에 갔으리라고는 황제도 상상하지 못했나 보군.’
뭐, 덕분에 플로린의 말대로 유리를 꺼내올 핑계가 생기긴 했다.
키락서스는 턱을 문지르다 결정을 내렸다. 플로린에게 다시 한번 묻고, 플로린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친부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그의 욕심일 뿐이다. 만약 플로린이 원한다면 제 진짜 가족에게 돌아가야 옳다.
“기다려라.”
“밥은? 물은 주는 거지?”
“글쎄…….”
“악랄해! 죄수라도 밥은 주겠다!”
“곰팡이 핀 빵이라도 상관없다면야.”
키락서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살려주겠다고 한 거지 플로린의 동의 없이 납치한 걸 용서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 그런데…….”
냉정하게 몸을 돌리던 키락서스는 우뚝 멈추어 섰다.
“너희 중에 영생을 사는 자가 있나?”
“영생? 그게 무슨 말이래?”
“그렇군.”
그걸 끝으로 키락서스는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흐아아아.”
그리고 남겨진 화이란은 털썩 주저앉아선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나도 영생이라면 영생을 살고 있긴 한데.’
어쩐지 아르칼리크 사람들은 기본 수명이 200살을 넘는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단 말이지.
‘게다가 묻는 태도가 어째…… 왕에 대해 묻는 것 같았는데.’
아르칼리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건 왕이시니까.
물론 그는 키락서스라는 저 사내를 조금도 믿고 있지 않기에 아르칼리크에 대한 걸 더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일단 두고 볼까.’
한 일주일 정도만 여기서 노닥거려야겠다.
만약 그때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화이란은 여기를 폭발시키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겹겹이 둘러친 마법으로 탈옥을 막고 있지만 꽤나 오래 살아와 연성술의 극의에 달한 그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아까 그 사내가 직접 막지 않는 이상에야 이런 돌벽 따위, 손만 까딱해도 다 부숴버릴 수 있었다.
화 섬의 주인, 륀 화이란.
412살인 그의 별명은 미친 화룡새끼였다.
* * *
‘나는 게이트를 연 자의 얼굴을 본 적 있다.’
지하 감옥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며 키락서스는 고요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자는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은발에 날카로운 생김새의 사내였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악신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만큼 강했다. 그리고…… 분명 붉은 눈을 지녔지.
‘내가 한 번 죽였다. 그럼에도 놈은 되살아났다.’
영생을 지녀 죽을 수 없다던가. 죽일 수 없을 거라 했었나.
이후로 놈을 죽이는 걸 깔끔하게 포기한 키락서스는 천신의 도움을 얻어 시간 역행 마법을 완성하는 데 모든 것을 투자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멸망했고 그가 참전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모조리 무시했다. 어차피 시간을 돌리면 모든 게 없던 일이 될 테니까.
그리하여 키락서스는 시간을 돌린 뒤 곧바로 악신과 계약했다. 악신이 더는 ‘그자’와 계약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자’가 미치기 전에 찾아내 바다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는 게 좋겠지.’
화이란이란 자의 말을 듣자 하니 아르칼리크는 은발과 붉은 눈을 지닌 자들만 사는 곳인 듯했다.
그렇다면 그가 찾는 ‘그자’ 역시도 아르칼리크에 있지 않겠는가?
‘가볼 가치가 있겠어.’
플로린의 방문 앞에 도착한 키락서스는 정중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곧바로 아공간에서 향수를 꺼내 목덜미와 손목에 뿌렸다. 더러운 곳에 있다 왔으니 혹 그 냄새가 배었을까 염려한 행동이었다.
“누구지? 아버님인가?”
방문 안에서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려 키락서스는 입매를 슬그머니 올렸다.
“엥, 진짜 아버님이네. 매번 갑자기 뿅 나타나시더니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정중하게 노크를 하세요?”
“밤이지 않니. 자고 있을까 봐.”
“우와! 아버님이 그런 것도 신경 쓰실 줄 아는 분이셨구나!”
플로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미트볼처럼 생겨서는. 귀엽게 굴지.
키락서스는 피식 웃고는 플로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그런 뒤, 그는 상처를 받을 준비를 했다.
‘내가 상처를 받는다니. 참으로 진귀한 경험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플로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평소와 다름없는 낯을 만들었다.
“그래, 플로린. 물어볼 게 있어 왔단다.”
“뭐예요?”
“네 친부일지도 모르는 이가 아르칼리크에 있다고 하지 않니.”
“어어……. 네에.”
“그러면 혹, 친부를 찾으면 그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으냐.”
이 아이가 드리블랴네를 떠난다. 그가 시간을 돌려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아이가…….
“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일단 제 친부일 리는 없을 것 같아요. 아시잖아요. 저는…….”
플로린이 쪼르르 달려왔다.
키락서스는 기꺼이 아이를 위해 허리를 숙여 키를 맞춰주었다.
그러자 플로린은 두 손을 나팔처럼 만들어 키락서스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첩자잖아요. 신성제국에서 넣은 첩자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아르칼리크 왕의 딸이겠어요?”
아아. 내가 눈치가 조금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키락서스는 그렇게 한탄했다.
플로린은 감정을 잘 숨기는 편이 아니었다. 언제나 솔직했지.
‘그런데 지금은 네가 지금은 희망과 기대감을 꾹 누르고 있구나.’
너무 큰 기대일 경우,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부정부터 하게 된다. 그래야 기대가 무너졌을 때 흉이 덜 지니까.
차라리 플로린이 기대가 된다고 말했으면 나았으리라. 그렇게 솔직하게 내뱉는 욕망이라면 ‘보석이 갖고 싶어요’나 ‘맛있는 게 먹고 싶어요’와 큰 차이가 없는 기대였을 테니.
하지만 저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는 건 결국 친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증명이었다.
“……그래. 하지만 혹 네가 정말 친부를 찾을 수도 있으니 비행정을 개발해야겠구나.”
“비행정이 뭐예요?”
“지상에서 하늘을 잇는 교통수단. 하늘까지 텔레포트를 할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한 키락서스는 주먹을 꾹 움켜쥐며 바로 섰다.
‘이렇게 두 눈 뜨고 빼앗길 줄 아느냐.’
플로린이 잘 지내고 있는지 일주일에 한 번은 확인할 것이다.
저 애가 커가는 모습을 놓칠 것 같나. 이제 와서 친부라고 나서기는!
키락서스는 빠드득 이를 갈며 마탑으로 곧바로 텔레포트했다.
“헉, 마탑주님? 오늘은 안 오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
“전원 소집.”
“!”
“죽기 싫으면 전원 소집해라. 당장 개발에 착수해야 할 게 있으니.”
그를 보고 놀란 마법사들이 후다닥 통신구를 켜서 탑 외부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알렸다.
이후, ‘마탑의 3대 재앙’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비행정 개발 사건>의 시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