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9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91화(91/173)
* * *
식물이 싹을 틔우는 봄을 지나 여름이 왔다.
그 여름 내내 복잡한 평화 협정 건을 마무리 지은 신성제국과 마도제국은 모두 황폐해진 국내를 보살피는 데 전력을 집중했다.
군복을 벗은 이들 중 일부는 농민이 되고 또 일부는 과수원으로 갔으며 또 몇은 바다로 나가 생선을 잡아 올렸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전쟁이 없는 삶에 익숙해졌고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결실을 보니 또다시 봄이 왔다.
이번에는 어찌 된 게 겨울이 사라졌지만 그게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울은 이미 너무 길었지 않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긴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탑은 무기 생산을 멈추었다.
아주 그만두겠다는 건 아니되 마탑의 모든 공학자가 한 가지 비밀 안건에만 매달려야 하니 당장 무기 생산은 불가능하다는 게 마탑의 공식 입장이었다.
물론 그 비밀 안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가 11살이 된 시점. 또다시 가을. 푸르던 나무들이 울긋불긋 물들고 노란 은행 알이 통통 굴러다니던 그 때에-
마탑이 공식 발표를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규 교통수단인 ‘비행정’을 개발했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 말은 곧, 이제 때가 됐다는 거야.’
린다가 떨리는 손으로 내게 옷을 입혀주었다. 유모는 연신 눈물을 찍어내며 내게 구두를 신겨주었고.
둘 다 나를 아주 못 볼 것처럼 대하기에 나도 눈물이 왈칵 솟을 뻔했다.
“친부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럼 여행이나 좀 즐기다가 여기로 돌아올 거야.”
“흑……. 작은 마니이이임.”
“눈 퉁퉁 부었어, 린다.”
“흐어엉!”
아르칼리크 공국에 대한 건은 처음엔 비밀이었다.
화이란은 나를 어쨌든 빨리 데려가고 싶어 했고, 아버님은 비행정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안 된다고 했다.
황제야 아르칼리크에 당장 가고 싶은 게 속내였으나 몰래 훌쩍 갔다 올 수 있는 그런 거리가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안 가면 황제도 못 가는 거였다.
나는 아버님이 반대하는데 굳이 억지로 말씀을 무시하고 가고 싶지 않았고……. 그러니까 비행정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엔 없었다.
화이란의 말을 들어 보니 아르칼리크에서도 공주로 추정되는 나만 오는 게 아니라, 갑자기 마도제국 황제도 온다고 하고 마탑에서 비행정도 개발한다고 하니 반대 의견으로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고 한다.
그럼 그냥 그쪽 왕이 내려와서 나와 피를 섞어보는 건 어떠냐고 하니까 그건 또 신성 모독이라 안 된대.
‘황당했지. 하지만 각 나라마다 문화와 전통이라는 게 다르니까.’
나도 유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빨리 해결을 보고 싶었는데 기다려야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 유리는 메시지로 괜찮다고, 자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착해서는 어쩌면 좋아. 어휴…….’
어떻게든 빨리 해달라고 조를 법도 한데 유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몇 배로 더 안쓰러워졌달까.
‘그래도 이제 몇 시간 뒤면 유리를 만날 수 있어.’
오늘은 비행정이 처음으로 취항식을 여는 날이다.
황궁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부지를 사들인 마탑은 그곳에 비행정이 이착륙을 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수리까지 진행할 수 있는 센터를 지었다.
취항식은 당연히 그 센터에서 진행되고, 나는 행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비행정에 오를 예정이었다.
이미 시범적으로 여러 번 운행하여 높은 고도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건 확인이 되었다고 한다.
“조심히 잘 다녀오십시오, 작은 마님.”
“안전하셔야 합니다.”
이윽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주방 식구들은 물론이고 정원사며 하녀, 하인들까지. 수많은 고용인이 나를 배웅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앞으로 몇 달간 ‘친가족을 찾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는 알고 있었다.
고용인들 중에 내가 아르칼리크에 가는 것을 아는 건 린다와 유모, 니나랑 존 정도?
“제가 함께 가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저도요!”
뜰에는 존과 빅토르를 비롯해 기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찬가지로 인사를 돌려줬다.
“다녀올게!”
얼마나 걸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간 거, 친부가 아니더라도 아르칼리크를 관광하긴 할 테니까 정말 몇 달은 걸리겠지.
‘그리고 만약…… 만약 내가 진짜 왕의 딸이 맞다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그래! 비행정이 있으니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거야.’
비행정을 한 번 움직이는 데 보통 마법사 열 사람분의 마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아버님은 혼자서도 거뜬했다.
‘그리고 아버님도 나, 보고 싶으실걸?’
반년을 주기로 아르칼리크와 드리블랴네를 오가면서 살면 안 될까?
아직 만나본 적도 없는 아빠보다야 당연히 아버님과 드리블랴네의 모두가 더 소중했다.
이 사람들을 못 보고 살면 너무너무 가슴이 아플 거야.
“……쳇.”
“하아.”
내가 탄 마차에는 이안과 단테 역시 함께 있었다.
그동안 키가 쑥쑥 자란 둘은 이제 나보다 앉은키도 훨씬 컸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 딱 좋을 만큼 말이지.
“이안, 나 기댄다?”
“응? 아, 물론이지. 얼마든지 기대도 돼.”
수심에 잠겨 있던 이안이 내 부름에 자상하게 대답을 주었다.
나는 그런 이안에게 푹 기대고는 발끝으로 맞은편에 앉은 단테의 정강이를 톡 건드렸다.
“단테, 정말 내 얼굴 안 볼 거야?”
“몰라.”
“아주 가는 거 아니라니까?”
“그래도. 내가 못 따라가잖아. 근데 유리인지 오리인지는 왜 가?”
“그건……. 유리가 황자니까.”
그랬다. 이 둘은 모든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었고, 당연히 아버님께 가서 아르칼리크에 갈 때 자기도 데려가라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제 막 개발된 비행정에는 인원 제한이 있었다. 차후에 더 나은 타입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딱 다섯 명만 탈 수 있다.
화이란, 나, 황제, 아버님. 이렇게 네 명은 당연한 거고…….
거기에 한 명을 더 끼워야 하는데, 그건 아아아아주 긴 논의 끝에 유리로 결정이 났다.
아마 ‘최초로 아르칼리크 공국에 가게 된 황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황태자 위에 오르기 쉽도록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단테는 입이 댓 발 튀어나왔고 이안은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는 듯했다. 요즘 눈 밑이 퀭하거든.
“플로린. 거기서는……. 편지도 못 보내겠지? 하늘 위에 있는 나라니까.”
이안이 몹시 서글픈 목소리로 속삭이며 내 뺨을 엄지로 문질렀다.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영 안 좋았다.
“만약 내가 공주가 맞아서 거기에서 지내게 된다 하더라도 아주 살진 않을 거야. 아마도.”
“응. 하지만……. 못 보는 기간이 생기는 거잖아.”
이안의 눈시울이 결국 붉어졌다.
단테는 코를 킁킁거리며 고집스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둘 다 내가 보석 축제에 가서 사 왔던 첫 선물을 착용하고 나왔다는 게 감동이었다.
“둘 다, 손 줘봐.”
“손?”
“응. 단테도 어서.”
단테가 입을 비죽이며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둘의 손을 한데 모은 다음, 꼭 움켜쥐었다.
“우린 이미 가족이야. 알지? 내가 어디에 있든. 이안이랑 단테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어. 마음이 이어진 가족이야.”
어느덧 나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드디어 나를 본 단테는 이미 엉엉 울고 있었고.
그렇게 우느라 마차가 행사장에 도착했을 즈음엔 셋 다 딸기코가 된 채였다.
* * *
그 시각, 황궁은 때 아닌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황후에 의해 내내 갇혀 있던 황자가 오늘 새벽, 수조에서 풀려난 것이다.
애초에 수조가 있는 방 근처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지만 황제의 직속 근위대가 몰려오니 누구도 막지 못하고 길을 비켰다.
“…….”
뚝, 뚝.
전신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바닥을 적신다. 마치 포말에서 갓 태어난 바다의 정령과도 같은 소년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황제의 씨임을 부정할 수 없는 백금발이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에서 반짝였다. 비슷한 색의 긴 속눈썹과 모양새 좋은 분홍색 입술 역시 황제의 것이었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황제에게는 보조개가 없지만 유리에게는 있다는 것인데, 웃고 있지 않으므로 드러나지 않았다.
“어휴, 하늘도 무심하시지. 결국 저 사생아가 황자로 나서네. 우리 황후 폐하 불쌍하게!”
“그런데 황제 폐하는 지금껏 잘만 내버려 두다가 웬 심경의 변화래?”
“난들 아나.”
황자의 시중을 들도록 지목당한 하녀들은 모두 황후궁 소속이었다.
그건 유리 예레반 헬리코프리온 드리블랴네를 황자로 인정하고 그리 대우할 것이니 앞으로는 고개를 숙여야 할 거라는 황제의 친절한 경고였으나 그걸 알아듣는 자는 별로 없었다.
늘 ‘전시’되어 있던 수조 안의 황자만을 봐왔던 이들은 그가 이제 바깥에 나와 서 있어도 마찬가지로 대우했다.
“아, 이건 손수건이라는 겁니다. 손, 수, 건이요. 어디에 쓰는지 모르실 테니 그냥 갖고만 계십시오.”
사실 그건 윗사람의 태도를 보고 따라 하는 게 가장 컸다.
상급자인 황후궁의 시녀장이 세 살짜리에게 말을 가르치듯 구니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비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유리는 가만히 선 채로 그런 시녀장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감정도 없는 눈빛에 시녀장이 움찔하며 바닥에 손수건을 던졌다.
새하얀 손수건이 바닥에 흥건한 물에 젖어들었다.
시녀장은 그걸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주우세요, 황자님. 자기 물건은 자기가 간수해야죠?”
감히 황족에게 이러는 것은 엄청난 모욕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황족 모독죄로 즉시 처형되어도 누구도 할 말이 없는 그런 무례인 것이다.
감히 황족에게 제 앞에서 허리를 굽히라고 하다니?
일개 시녀장 주제에 과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유리가 시녀장을 꾸짖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저런, 말씀을 못하시나요? 역시 백치가 되어버린 건가? 뭐, 그러면 황후 폐하를 위해 잘된 일이지…… 꺄아아악!”
찌이이익.
그것은 예고조차 없었다.
사람의 피부, 혹은 거죽.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억지로 잡아 찢는 소리가 다 함께 비웃던 이들의 고막을 할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