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9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92화(92/173)
“…….”
뚝.
선혈이 떨어져 고여 있던 투명한 물에 섞였다.
방금까지 산 사람의 혈관을 돌던 새빨간 피와 식도가 뽑혀 나가기라도 하는 듯 끔찍한 비명. 그리고……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진 시녀장.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세 가지를 하나로 엮지를 못한 채 당황하여 얼어붙고 말았다.
황자가 움직였나? 시녀장은 왜 저렇게 됐지?
이게, 무슨 일이지.
“으어, 으어어……!”
부들부들 떨며 찢어진 뺨을 움켜쥔 시녀장을 보던 사람들이 아주, 아주 느리게 현실을 깨달을 때 즈음.
한발 먼저 이성을 되찾은 하녀 하나가 치맛자락을 붙잡고 허겁지겁 문을 향해 뛰었다.
쾅!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은 하녀의 코앞에서 닫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상황을 깨달은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몰려가 문을 두드려 댔지만 바깥에 선 호위병들은 듣지 못한 척 아예 문을 잠가버리기까지 했다.
철그럭.
자물쇠가 밖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던 하녀가 극도의 공포에 소리를 바락 내질렀다.
“저, 저리 가! 괴물!”
“괴물…….”
하녀의 의미 없는 발악을 되새기던 유리는 이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천진하게 웃었다.
“내가 괴물이면 같은 톱니 상어인 황제도 괴물인데?”
“히, 히이익!”
“어쩔 수 없이 황족 모독죄로 즉결 처분해야겠네.”
“저리 가! 가! 아아악!!!”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난무했다.
유리는 끝이 날카롭게 변한 손가락을 날름 핥으며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다.
“끄아아악!”
“문, 문 열어! 문 열…… 끄르륵!”
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전쟁터를 누비는 황제를 직접 보았더라면 감히 그 피를 이은 황자를 함부로 대할 생각 따위 하지 못했을 텐데.
톱니 상어 족은 전투 병기나 다름없는 종족이다.
한 번 전투 상황임을 인식하면 손가락 사이는 물론이고 팔과 다리 전체에 톱니가 달린 물갈퀴가 튀어나온다. 뾰족해진 손끝과 톱니로 단단한 외피를 뚫고 가죽을 찢는 도살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성정은 잔혹하고 태생적으로 자비로움을 모른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귀찮으면 죽여 버릴 수 있을 만큼 냉정하며 감정이 없는 자들이기도 했다.
하물며 일부러 그가 전시된 수조 앞에 와서 조롱하던 자들은 어떻겠는가.
“좀 더 놀자.”
유리가 선량한 미소를 짓자 보조개가 쏙 팼다. 혼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얼굴 곳곳에 피가 튄 상태인지라 기괴하기도 했다.
“너희도 나를 보면서 놀았잖아. 음, 그래. 이건 어때. 이번엔 너희가 전시되는 거야.”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응? 네가 무슨 쓸모가 있어서?”
크게 치뜬 보랏빛 눈동자에 광기가 어렸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더 잔혹하게 죽일 뿐.
그걸 깨달은 자들의 얼굴에서 희망의 빛이 점점 꺼져갔다.
“참, 그거 알아? 난 네 가족도 찾아내서 죽일 거야.”
“아, 아…….”
“그다음엔 네 친구도. 네 연인도. 너희가 그 알량한 혀를 놀려 수족관에 전시된 황자에 대해 떠들었을 모든 이들을 찾아내서 죽일 테니 너무 외로워하지 마.”
외로운 건 싫잖아. 그렇지?
나직하게 중얼거리던 유리가 벌벌 떠는 하인의 목을 꺾었다.
그자는 보름에 한 번씩은 수조에 찾아와 별의별 욕설을 내뱉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쓰레기였다.
“고대종들은 모두 각자 특성을 지니고 있어.”
진주 같은 눈동자가 스륵 굴러가더니 커튼 뒤에 숨으려던 하녀를 기어코 발견해 냈다.
“용암 와이번인 로이바이엄은 자존심이 강하고, 검치호 족인 드리블랴네는 합리주의적이며 융통성이 있지.”
“아아악!”
망설이지 않고 다음 표적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유리는 하녀의 발목을 잡고 확 끌어냈다. 그런 뒤 뒤에서 목을 그어 오랫동안 괴로움에 발버둥 치다 죽게 만들었다.
그 하녀는 그에게 음식이 아닌 사료를 가져다주던 자였다.
“정령사슴 족은 오직 과일과 곡식만을 섭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종교 집단이고 거대 독뱀 족인 바실리스크는 이전 가주를 죽이고 삼켜야만 그 자리를 계승할 수 있대.”
복수는 느릴수록 좋다. 남은 자들이 더 큰 공포를 느낄 테니까.
뺨에 튄 피를 대충 닦아낸 유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유일하게 남은 자를 훑었다. 그건 바로, 제일 먼저 당했으나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황후궁의 시녀장이었다.
“또한 뿔고래 족인 서테시아는 모계 사회로 오직 딸만이 황위를 잇는다고 해.”
“미쳤……어. 미…….”
“그럼 헬리코프리온은 어떨 것 같아?”
아아악!
마지막 단말마를 끝으로 사위가 고요해졌다.
방의 중앙에 우뚝 선 유리는 시녀장의 시체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죽어버렸네. 설명하기 전이었는데……. 아쉬워라.”
그를 조롱하던 자들. 그가 보는 앞에서 더러운 애정 행각을 벌이던 치들. 어차피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거라며 떠들어대던 것들이 모두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었다.
핏빛으로 물든 바닥에 홀로 선 채로 유리는 자신의 첫 복수를 자축했다.
“끝나셨습니까, 전하.”
더는 비명이 들리지 않자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근위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내부의 상황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취했다.
그의 친애해 마지않는 부친께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임을 미리 경고라도 해둔 모양이었다.
“치워라.”
이내 무표정하게 바뀐 유리는 건조하게 툭 내뱉고 근위기사를 스쳐 지났다.
복수 목록에 없을 뿐 근위기사 역시 마음에 드는 자들은 아니다. 어차피 부친의 것이 아닌가. 제 것이 아닌데 조금이라도 아껴줄 이유가 없다.
“우욱!”
“웩!”
복도에 서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자니 근위기사의 지시에 몇몇 시종들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대부분 처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토악질부터 했으나 개중 묵묵하게 걸레를 들고 실내의 귀한 장식품부터 닦는 이가 있었다.
‘저건 쓸 만하군.’
그렇게 판단한 유리는 시종의 얼굴을 기억해 두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딱 세 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는 방금 자신이 죽인 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이미 끝난 복수인데 머릿속에 더 담아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복수를 했다는 걸 알면 네가 싫어할까?’
악신이 창조한 종족답게 헬리코프리온은 감정 없이 태어난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자극적이고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 정도일까.
단, 그렇기에 그들은 한 번이라도 감정을 깨닫게 되면 그 존재에게 맹목적이 되었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가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여기듯 톱니 상어 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상어의 첫 애착’이라 한다.
유리가 플로린에게 느끼는 것 역시 바로 그 첫 애착이었다.
상어는 첫 애착을 느낀 상대를 일평생 좇는다. 그 존재 외의 것은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온 세상이 그의 적이더라도 애착 상대만 사랑해 준다면 아무 상관 없었다. 그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현군이 될 수도, 폭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쌍방이어야 하지. 혼자만 하는 사랑은 너무 외로우니까.’
그리고 외로움은 상어를 죽인다.
외로움을 알지 못하던 마음에 고독이 깃들면 병이 들고 말았다.
“안녕. 아버지.”
“화려하게 했구나.”
“아. 너무 건방지기에 다 죽여 버렸어. 하나쯤은 남겨서 황후에게 보낼걸 그랬나?”
병이 든 상어는 별 볼 일 없어지고 만다.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제 부친이 그러했다.
초라하고, 쓸모없지.
맹목적으로 좇던 상대가 죽어버렸다고 했나?
장례식까지 치러놓고 아르칼리크에 살아 있을 거라고 믿는 꼴이 우스웠다. 하지만-
‘만약 플로린이 죽는다면 나도 똑같이 머저리처럼 굴겠지.’
이건 설명이 되는 현상이 아니었다.
종족의 근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며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정신병인지라 고칠 수 없었다. 약을 먹는다고 한들 나을까. 신성력을 퍼붓는다 해서 없어질 증상일까.
무엇도 소용없었다. 악신이 그리 창조한 것을 어찌 바꿀까.
“환복을 돕겠습니다. 곧 취항식 행사가 시작됩니다.”
복도로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황자궁’의 일원들이 나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황제가 황후에게 알리지 않고 따로 마련한 사람들이었다.
당장은 뒤가 깨끗한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회유되어 그의 음식에 독을 탈지는 모르겠지만.
유리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믿는다는 건 애초에 애정을 전제로 하는 행위 아니던가.
첫 애착을 가진 상대 외의 누구도 그에게 의미가 없는데 믿을 리 만무하다.
“곧 갈게, 누나.”
이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유리는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짓는 연습을 다시 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있는 곳에 찾아와 이런저런 짓거리를 하는 자들을 보며 행태를 연구하고 표정을 배워나갔다. 대부분 기분 나쁜 듯한 표정뿐이었으나 이따금 연인들이 남몰래 올 때면 웃는 얼굴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유리는 수조의 유리벽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미소를 연습했다.
좀 더 예쁘게.
좀 더 사랑스럽게.
플로린이 그를 보자마자 반할 수 있도록.
‘나는 네가 월귤나무였던 것도, 소금쟁이였던 것도, 애완 해파리로 살았던 것도 알아.’
나는 네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네가 준 것이나 다름없어.
‘나는 네 이름이 플로린이 아니던 시절부터 <책>을 통해 네 일상을 보아왔지.’
너의 빙의와 죽음과 또다시 빙의와 또 찾아오는 죽음을. 그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인생들을 빠짐없이 읽었다.
‘너는 의연해. 나라면 지루해서 미쳐버렸을 텐데 그 모든 삶을 결국 꿋꿋이 견뎌냈어.’
세 번째 삶 즈음이었나? 네 번째였나?
플로린은 절망했다. 좌절하고, 우울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살하지는 않았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겸허히 살아냈지.
그건 유리에게 어떤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 존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살아낼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안에서 눈을 떴다.
‘그런데 이번 삶은…… 대단히 경이로웠지.’
나는 네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좋아지더라. 네 모든 것을 아는 내가 어떻게 너의 짝이 아니겠어.
‘일전에 플로린을 만났을 때 반응이 괜찮았던 걸 보면 표정을 연습한 게 허사는 아니었던 모양인데.’
유리는 제 몸에 걸쳐진 라일락 색 재킷을 슥 둘러본 뒤, 괜히 앞머리의 방향을 이쪽저쪽으로 고쳐보았다. 어느 쪽으로 넘기는 게 더 예뻐 보이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