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9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93화(93/173)
“이만 모시겠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하지?”
이윽고 시종이 찾아와 나갈 시간임을 알렸다. 아까 그가 눈여겨봤던 바로 그 시종이었다.
“화, 황송합니다. 아름다우십니다.”
“반할 것 같나?”
“어찌 그런 말씀을 여쭈시는지 모르겠사오나 뭇 영애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실 외양이십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다. 수조 밖으로 나온 뒤, 처음으로 생긴 그나마 눈에 차는 것이었다.
“너, 말을 꽤 하는군.”
“황송합니다.”
“아까 너만 토하지 않던데.”
“제 여동생이…… 사냥을 잘합니다. 겨울 내내 여동생이 잡아온 것을 제가 도축하여 먹고 살았습니다. 피는 제게 익숙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됐네. 앞으로 피 볼 일 많을 테니.
“널 측근 시종으로 임명할 테니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궁 관리를 똑바로 해놔.”
“황송합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주근깨가 가득한 제임스는 2급 시종이었으며 올해로 열일곱 살이었다.
지방의 다 무너져가는 자작가 출신으로 검술을 잘하는 여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시종이 되었다.
선하고 성실한 성격인 그는 황궁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황자궁에 배속을 받았는데, 다들 황자가 곧 죽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황후가 황자를 기어코 죽일 거라고.
‘하지만 저렇게 강한 분이라면, 죽지 않을 수 있어.’
제임스는 능력 있는 여동생을 꼭 기사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여동생의 어깨에 기사의 망토가 걸리는 순간을 위해서라면 더러운 일 따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순간, 제임스는 황자에게 제 인생을 걸기로 했다.
“가지.”
보통 충심이라는 건 별것 아닌 일로부터 시작한다.
유리는 <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익혔다. 사소한 것을 알아봐주고, 기억하고,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며 이름을 부른다.
유리는 외워두었던 것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진행한 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지.
‘플로린 앞에선 보통 사람처럼 보여야 하니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유리는 황제가 기다리고 있는 마차에 올랐다. 황자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 * *
취항식은 거창하게 치러졌다.
한쪽엔 천막을 치고 파티 음식을 가득 놓았으며 열두 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와서 연신 신나는 곡을 연주해 댔다.
초대를 받은 손님들은 귀족뿐만 아니었는데, 평민이더라도 여러 업계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다 부른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이안, 단테와 함께 귀빈석에 앉아서 초조하게 입술을 물었다가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유리는 언제 오지? 황제는?’
기다리는 입장이 되는 건 괴롭구나.
유리는 수조에서 나온 이상 목숨의 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수조 밖의 세상에 적응하는 동안 절대적으로 안전한 아르칼리크 공국에 있는 게 목숨을 지킬 길이었다.
유리를 암살하려는 사람은 다섯 명 중에 아무도 없으니까.
게다가 신성제국과 전혀 관계없을 아르칼리크 공국에서 유리에게 손을 댈 리도 없었다.
‘가기만 하면 괜찮은데…….’
설마 벌써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플로린, 괜찮아? 불안해 보여.”
그때, 이안이 내게 몸을 살짝 숙이더니 귓속말을 했다.
그렇게 불안한 게 티가 났나 싶어 민망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이안에게 소곤거렸다.
“황족이 왜 이렇게 안 오지? 빨리 와야 행사가 시작할 텐데.”
“그러게. 벌써 왔어야 하는데 늦네.”
가까이 있던 단테도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칫’ 하며 혀를 찼다.
“오다 자빠졌나 보지. 그럼 취항식도 미뤄지고 플로린도 안 가도 될 텐데.”
“단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하지만 네가 가면 누가 나한테 꽃을 줘?”
단테가 투덜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나도 안 간다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걸 어쩌겠어. 이건 거래니까.
유리가 여기에 멀쩡하게 나타난다면 나는 황제와 함께 아르칼리크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편에서 마차 한 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긴장한 채로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자니 마차가 멈춰 섰다. 대기하고 있던 하인이 부리나케 마차의 문을 열자 거기서 제일 먼저 황제가 내렸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황제의 그 휘황찬란한 미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관심은 오직 그다음에 내릴 소년에게 꽂혀 있었으니까.
숨마저 참은 나는 붉은 카펫에 발을 디디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나보다 조금 키가 작고, 정말 예쁘게 차려입은…… 유리. 한 송이 라일락 같은 유리가 내 앞에 있었다.
“오셨습니까, 폐하.”
“인사치레는 됐네. 행사를 시작하지.”
아버님과 황제 폐하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귀빈석에 사람이 많으니까 나를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누나!”
그런데 그때,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유리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떻게 날 바로 찾았는지 몰라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예쁜 보랏빛 눈동자가 확 커졌다. 그러더니 심지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게 아닌가.
“보고 싶었어!”
“황자님. 어서 오세요.”
나도 너무너무 반가워서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여긴 공식적인 자리니까 그럼 안 되지.
내게 다가온 유리를 보던 나는 일단 대외적인 호칭으로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유리가 그 귀여운 얼굴로 울상을 지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싫어요. 이름으로 불러. 플로린은 그래도 돼.”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무엄하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야 나도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만…….
나는 황제 폐하와 아버님을 흘끔 보았다.
아버님이야 그러라는 듯한 표정이시고, 황제 폐하는 뭔가 삐딱……한 것이 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이신데.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딱 그 짝이군.”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아버지. 언제 아버지가 저를 키웠다고.”
“고얀 것. 벌써부터 제 아비를 존경할 줄 모르는구나.”
“플로린은 플로린이 부르고 싶은 대로 저를 부를 겁니다. 알아두세요.”
유리는 어느새 나를 꼭 껴안더니 놓아주지 않았다.
당연히 이안과 단테가 옆에서 엄청나게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유리는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 천진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니, 얘 진짜 바보는 아니겠지?’
페로몬은 강한데…….
‘태어나자마자 수조에 갇히는 바람에 무척 순진한 게 틀림없어. 걱정이네. 이래서야 누가 식사에 독을 넣으면 바로 골로 가는 거 아냐?’
심란해진 나는 일단 유리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이러다가 유리가 이안이랑 단테한테 한 대 맞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의외로 힘이 셌다.
“참, 만나자마자 누나한테 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응?”
“이거!”
그때였다.
보조개가 쏙 패도록 환하게 웃던 유리가 까치발을 들어 내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한 것은.
“?!”
코가 꾹 눌릴 정도로 얼굴을 갖다 박은 수준이라 사실 이걸 뽀뽀라고 불러야 할지 돌진이라 불러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뽀뽀는 뽀뽀다.
볼에 입술이 닿았으니까!
“있지, 누나. 나 구해줘서 고마워요.”
놀란 눈으로 보고만 있자 유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볼을 사과처럼 붉혔다.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휘며 눈웃음을 치는데 솔직히 유리에게 홀딱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을 듯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황자를 처음 본 이들조차 다 입을 헤 벌리고 있잖아.
그러지 않는 이들은 몇 명 되지 않았는데 그중에 단테와 이안이 있었다.
“놔! 놓으라고!”
“그만둬, 단테. 황자시다.”
“크르르르륵.”
찰나, 단테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귀가 솟았다. 더불어 뺨에서도 수염이 튀어나왔고 어금니가 점점 길어지기까지!
폭주 전조 증상을 발견한 나는 즉시 준비해 왔던 해바라기 씨를 꺼내 허공에 확 뿌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연성을 하자 하늘에서 해바라기 꽃이 살랑살랑 내려왔다.
그중 떨어진 보드라운 꽃잎 한 장이 단테의 콧잔등에 안착하자 단테는 크게 재채기를 했다.
“에츄우!”
그와 동시에 삐죽 솟았던 귀가 사라졌기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하마터면 황제 폐하 앞에서 못 볼 꼴 보일 뻔했네.
그때, 유리가 내 소매깃을 살짝 잡아당기더니 조금 의기소침해진 낯으로 물었다.
“플로린 누나. 저 애들은 나, 싫어해요?”
아, 어쩜 좋아.
유리는 분명 상어 족인데! 상어인데!
‘왜 토끼가 보이는 거지?’
나보다도 작고 연약한 아기 토끼 같아서 솔직히 충격이었다.
‘수조에 갇혀 있던 걸 목격했을 땐 꼭 바다의 정령 같았어. 아까 황제 폐하에게 뭐라 할 때는 또 알파다웠고. 그런데 지금은 엄청 연약해서 꼭 지켜줘야 하는 초식과 수인 같아.’
역시 유리가 세상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거겠지?
나를 믿으니까, 믿는 사람 앞에선 무장 해제 되어버리는 걸 수도 있고.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와는 이미지가 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에이, 몰라. 어쨌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게 유리잖아. 그럼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