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9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94화(94/173)
“그쯤 해두어라. 소란스럽군.”
이제 행사가 시작하는데도 우리가 떠드는 걸 멈추지 않으니 황제가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그에 모두 다 같이 입을 합 다물었다.
‘그나저나 단테, 어쩌면 좋지.’
요즈음 단테는 폭주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공국 여행을 계획한 거였는데 오늘 모습을 보니 영 불안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 해바라기 씨앗을 가져오길 잘했지.’
아무래도 출발하기 전에 단테를 위해 마차 안에 꽃을 한가득 피워둬야 할 것 같았다.
아버님이 안 계시는 동안 만에 하나 단테가 폭주하면 할아버님이 나서주기로 하셨지만……. 그래도 곧장 진정하는 게 단테를 위해서도 나은 일이니까.
“누나, 엄청 기대돼요. 비행정 안에 가본 적 있어요?”
황제 폐하가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유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눈을 반짝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어 내게 소곤대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입은 열지 않은 채 고개만 내저었다. 아버님은 내게도 끝까지 비밀을 고수하셨거든.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황자 전하,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비행정에 최초로 오르시지요.”
다행히 짜증을 내는 황제에 의해 취항식은 금세 끝이 났다. 이제 아르칼리크 공국에 가는 인원들이 비행정에 탈 때였다.
“그럼 이따 저 안에서 만나요.”
유리는 정말 방긋방긋 잘 웃는구나.
웃을 때마다 자기가 귀여워 보인다는 걸 알고 저러는 걸까?
나는 유리의 보조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단테에게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 감지하고 겨우 눈길을 옮겼다.
“단테에……. 삐졌어?”
“아니. 안 삐졌는데.”
“엄청 삐졌네. 나 봐봐. 이제 가야 하는데 배웅 안 해줄 거야?”
단테가 돌멩이를 걷어찼다.
쉽게 기분을 풀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일단 이안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애기야.”
“으응.”
그런데 이안의 분위기도…… 상당히 위험한데.
나는 이안의 이마에 돋은 힘줄과 핏대가 선 목을 보고 주춤 물러섰다.
이안이 저렇게 감정 조절 못하는 거 처음 봐…….
“황자 새끼가 한 번만 더 너한테 그런 짓을 하면.”
“뽀뽀……?”
나는 무심코 ‘그 단어’를 뱉었다가 실시간으로 땅이 꺼져 들어가는 걸 목격하고 말았다.
아니, 진짜로. 이안이 서 있던 곳에서 땅이 몇 센티 정도 콰드득하는 소리를 내면서 꺼져 들어갔어.
“이거 줄게. 찔러.”
잠시 숨을 고르며 진정하는 듯하던 이안이 이내 제 바짓단을 걷고 거기서 단검을…… 잠깐만.
“단검이 왜 거기서 나와?!”
“당연한 거야. 자, 내가 쓰던 거라 예쁘지 않지만 그래도 가져가자.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걸로 찌르는 거야.”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무서운 말 하지 말아 줘…….
“애기야. 어딜 찔러야 하는지도 알려줄까?”
이안, 화났다.
그냥 화난 게 아니라 진짜 화났다.
단테가 저러는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이안이 눈이 뒤집힌 건……. 내가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유리의 편을 들면서 뭘 모르는 어린애라서 그렇다고 하면 큰일 나겠지?’
어쩌면 유리에게 찾아가는 밤손님 중에 이안과 단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파멸적인 미래를 상상하던 나는 오싹해져선 부르르 떨었다.
“안 가져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황자는 그냥 어린애인걸.”
“우리 플로린. 이렇게 순수하고 착해서 어쩌면 좋아.”
“으음.”
“황자를 믿지 마. 절대로.”
내가 강경하게 거부하자 이안이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과 함께 단검을 거두어들였다.
‘그렇지만 유리의 편을 들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유리는 여태 수조에 갇혀있느라 예법 같은 것도 거의 못 배웠을 텐데.’
그래서 보통 사람들과 달리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가 약한 듯했다.
모두 내 추측이긴 하지만-
‘가르치면 영특해서 잘 알아들을 것 같아.’
물론 원작에서 표현된 유리와 지금 내 눈앞의 유리가 꽤나 다르기는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원작에선 이미 다 큰 어른이었고 지금은 아기잖아. 나보다 한 살이나 어려!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무도하고 막무가내인 애가 될 수도 있고 얌전하고 성숙하고 차분한 애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누나아! 빨리 와!”
그때, 비행정과 지상을 잇는 다리에 유리가 폴짝 나타나더니 손을 붕붕 흔들었다. 아버님도 턱을 까딱이시는 걸 보니 진짜로 가야 할 때다.
“나 그럼 다녀올게! 단테, 사고 치지 말고 잘 있어야 해! 이안도!”
그렇게 외치고 달려가는 내 등 뒤에서 단테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음 뽀뽀는 내 거야! 잊지 마!”
“!”
“그리고 절대 황자한테 뽀뽀해주지 마!”
맙소사. 낯 뜨겁게 무슨 저런 말을 큰 소리로 하는 거야?!
모여 있던 어른들이 단테의 외침을 듣고 귀엽다는 듯 깔깔 웃었다.
나는 창피함이 만연한 얼굴로 비행정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섰다.
“그대의 며느리는 인기가 많군. 남편감을 고르는데 애를 먹겠어.”
“다들 선택받기 위해 노력을 할 뿐이지요.”
심지어는 황제 폐하와 아버님도 방금 상황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누시지 뭐야.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창가로 가서 이안과 단테에게 손을 흔들어주려던 계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누나, 저기. 우리 저기 가 봐요.”
“응?”
“바닷물을 담아둔 수영장이 있어요.”
“수영장이 여기에?”
결국 내가 그 계획을 떠올린 건 비행정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땅이 손톱보다 작게 보일 즈음이었다.
더는 인사를 할 수 없을 고도였기에 나는 유리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따라가며 비행정 안을 요리조리 구경했다.
그러다 좁은 복도의 벽면에 비행정의 내부 구조가 그림으로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와, 이 비행정이 3층 크기나 돼?”
“응. 1층에 수영장과 식당이 있어요. 2층에 객실과 응접실. 3층에는 집무실을 비롯해 어른들의 공간.”
“초호화 크루즈 같다…….”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 말고는 크루즈와 크게 차이점은 없나?
나는 뺨을 긁적이다 이걸 만드느라 영혼을 갈아야 했을 마탑의 연구원들을 떠올리고 숙연해졌다.
아버님이 드디어 비행정에 올랐으니 지금쯤 마탑은 파티 분위기일지도 몰라. 해방 파티 말이야.
“수영장 궁금하다. 예뻐?”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물에 들어가면 어차피 나밖에 안 보일 거니까 장식은 상관없지.”
“……?”
방금 너무 자연스럽게 나르시시즘 같은 대사가 지나갔는데 그걸 반박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유리는 그냥 있어도 찬란한 외양이고 물에 들어가면 아주 정령 같으니까 말이야.
“자, 여기가 수영장이에요.”
“이거 만드느라 마법사 서넛은 죽었을 것 같아…….”
이윽고 나는 바닥이 새하얀 석영 타일로 이뤄진 수영장에 도착했다.
성인 남성이 수영을 해도 될 만큼 크고 깊은 수영장은 솔직히 내가 발을 들이밀기엔 아득하니 무서웠다.
지금 이 비행정 안에 탑승한 사람 중 –비록 화이란은 무슨 종족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페가수스라고 치면- 동물화를 했을 때 제일 크기가 작은 게 나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난 여기 빠지면 그대로 꼬로록이야.
“아, 혹시 물이 무서워요?”
“으응.”
“그렇구나. 그러면 여기 앉아서 발만 살짝 담가요. 그럼 어때요?”
유리에게는 지상이 더 낯설겠지. 그런데 유리도 지상에 이렇듯 발붙이고 서 있으니까 나도 유리의 영역인 물에 한번 발을 담가주고 싶었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일단 값비싼 구두와 실크 양말을 벗어 저 멀리 치워두었다.
그러는 사이 유리는 벌써 물속에 풍덩 빠지면서 내게 물을 잔뜩 튀겼다.
“유리!”
차가운 물방울이 뺨에 와닿자 나는 빽 소리를 지르며 얼른 물을 한 움큼 떠서 유리에게 뿌려버렸다. 그러자 유리도 맞서서 내게 물을 뿌려대는 바람에 우린 둘 다 온통 젖었다.
잠시 후, 나는 어느덧 내가 꺄르르 웃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내게 유리가 가까이 다가와 코를 톡 건드렸다.
“누나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우는 건 그만하고.”
“아, 맞아. 넌 내가 우는 걸 싫어했잖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오히려 더 울리고 싶지. 그래도 내가 아닌 이유로 우는 건 싫으니까요.”
물에 흠뻑 젖은 유리의 머리칼이 어느새 곱슬머리가 되었다.
그걸 빤히 보던 나는 유리의 마지막 말은 흘려듣고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해서 아기 양 같아!”
“양이요?”
“헉!”
속마음이 튀어나왔네!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유리가 혹시 기분 상한 건 아닌지 살폈다.
하지만 유리는 그저 씩 웃더니 내 양옆을 짚곤 몸을 쑥 올리기만 했다.
“양은 코로 뽀뽀한다던데!”
“……거짓말.”
“진짜예요.”
뽀뽀면 뽀뽀지 코 뽀뽀는 또 뭐야.
그런 표정으로 묻자 다시 물속으로 퐁 빠진 유리가 시범을 보이려는 듯 내 손바닥을 가져가더니 그 안에 코를 톡 댔다. 고개를 살짝 꺾어 나를 향해 야살스러운 눈웃음을 치면서.
“뱌아앙.”
그리고 유리가 마침내 분홍색 입술을 열어 아기 양의 울음을 애교스레 흉내 내자-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귀,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