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9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96화(9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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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이후, 비행정 안의 인공조명들은 일제히 조도를 낮추었다.
‘화이란은 조종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아버님은 3층의 응접실에 가셨고!’
황제 폐하가 복병이지만 설마 유리의 침실 앞에 계실까.
나는 유리에게 줄 선물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문을 달칵 열고 나왔다. 그리고 어두운 복도를 두리번거리다 살금살금 발을 뗐다.
유리의 침실은 내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뛰어가면 금방 도착한단 말씀!
“그리 멍청히 굴다간 한입에 잡아먹힌다.”
“끼앗!”
그런데 몇 걸음 내딛지도 않아서 나는 목덜미를 잡혀 달랑 들어 올려졌다.
당황해서 발을 버둥거리던 난 눈앞에 보이는 성스러운 용안에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게다가 얼굴에 약하기까지.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로구나.”
“……칭찬 아니시죠? 폐하.”
툭.
황제 폐하가 나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대로 던져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젠틀한 반응에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안 들리게 귀에다 입술을 눌러 붙인들 안 들리겠느냐.”
“아……. 음. 그러네요.”
황제 폐하의 말씀은 아까 식사 때를 일컫는 것이다. 나름 어른들이 못 듣게 하려고 노력해 봤는데 역시 별 소용없구나.
‘그래도 아버님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집무실로 가주셨는데.’
난 샐쭉한 표정으로 황제를 보다가 무엄함을 깨닫고 얼른 표정을 감췄다.
“하아. 순진해빠져서는…….”
그런 나를 보던 황제 폐하가 별안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깊은 한숨이어서 민망해진 나는 뺨을 긁적였다.
“저 그렇게 안 순진한데요…….”
소심하게 반항해 봤지만 돌아오는 건 ‘네가?’라는 뜻이 담긴 눈빛이다.
사람을 상당히 울컥하게 만드는 시선이었지만 어쩌겠어. 상대는 무려 황제신데. 내가 눈 깔아야지.
“…….”
“…….”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자리하게 되었다.
나는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고 황제 폐하는 그저 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계실 뿐이었다.
“상어족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이윽고 무거운 적막 속에 툭 던져진 질문은 꽤 이상했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입을 열었다.
“위대한 대양의 지배자인 헬리코프리온은 황제 폐하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황족일수록 강합니다. 이들은 인간화한 상태로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으며 태어났을 때 상어의 그것과 같은 빗금무늬 아가미가 목에 있습니다. 손이 귀하기에 많은 숫자의 황족이 태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교과서적인 답이군. 그건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것이고. 상어 일족에 관한 건.”
“외람되오나 배운 적이 없습니다.”
원작의 기억을 헤집어 봤지만 거기서도 뭐 딱히 나온 건 없었는데. 그냥 유리가 화나면 아주 무서워진다는 것 정도?
‘하지만 적에게 친절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지 않나?’
원작에서 라흰에게 집착이 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단테가 덜한 것도 아니었다.
‘19금 피폐 역하렘에서 뭘 바라. 다 비슷비슷하게 돌아 있는 거지.’
그러니 집착이 심한 게 딱히 상어족만의 특징이진 않을 것이다.
“집안에서 가르친 게 하나도 없구나.”
“……!”
아, 이건 진짜 발끈할 뻔했다.
나는 뒤틀리려는 입매를 억지로 가라앉힌 뒤, 생긋 웃었다.
“부디 가르침을 주세요, 폐하.”
황제한테 덤비지 말자.
황제한테 덤비지 말자.
내가 아무리 성깔 더러운 담비라도 눈에 뵈는 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되뇌며 억지 미소를 유지했다.
“알아두거라. 상어에게는 ‘상어의 첫 애착’이라 불리는 정신병이 있다.”
엥?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시지?
나는 황제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진짜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찾아와서 알려준다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겠지.
“상어는 각인된 상대를 평생 쫓는다.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한 사람만을 마음에 품는 것이다.”
“그게 왜 병……이에요?”
“그 상대가 없으면 살아갈 이유도, 이 세상이 존재할 이유도 없으니까.”
“???”
아뇨, 세상은 그냥 거기에 있으니까 있는 건데요…….
너무 큰 의미 부여가 아닌가 싶었는데 동시에 황제가 말한 ‘정신병’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약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도 없는데 하필 태어나기를 강하게 나는 바람에 죽여줄 이도 없지.”
유리의 것과 닮았지만 권태로움이 가득한 보랏빛 눈동자에 지겨워 죽겠다는 기색이 스몄다.
항시 황제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무료함과 느슨한 분위기를 떠올리던 나는 문득 어떤 사실 하나와 이 증상을 결부시킬 수 있었다.
“혹시……. 폐하께서는 아리아드네 님께 각인하셨어요?”
“…….”
황제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진짜? 그래서 아리아드네 님이 황제를 받아준 건가???’
그러잖아도 궁금했었던 부분이다.
이안이야 사고 혹은 실수로 생긴 것이고 단테는 정식으로 결혼한 뒤에 낳은 아이잖아.
‘하지만 유리는……?’
이해가 조금 안 되긴 했었다.
물론 아리아드네 님이 원해서 황제의 아이를 가졌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었을까? 갑자기 늦게 사랑에 빠지기라도 하셨던 걸까.
잠깐 추측하다가 남의 사생활인지라 그냥 관심을 껐었는데.
그러나 황제는 아리아드네 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진 않았다. 대신 내게 폭탄을 던졌다. 그것도 내가 껴안아야만 하는 폭탄을.
“황자는 네게 각인했다.”
“네?”
“몰랐느냐? 그리 빤히 보이는 것을.”
황제가 혀를 끌끌 차더니 등 뒤를 흘긋 넘겨보았다. 마치 그곳에 유리가 있는 것처럼.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나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다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저어, 그럼 폐하. 유리가 평생 저를…….”
좋아한단 건가? 벌써 그런 게 정해져?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데.
“사랑이라고 딱 자르기도 어렵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갈망한다는 표현밖에 옳은 게 없지. 너는 아직 그게 무엇인지 모를 테지만.”
갈망.
나는 황제의 표현에 귀를 기울였다. 어쩐지, 몸에 소름이 돋았다.
“네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 그리될 것이요, 네가 폭군이 되기를 바라면 저 아이는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네가 정복 황제를 원한다면 신성 제국과 다시금 전쟁을 하겠지.”
“그건……. 그건 너무 책임이 큰 것 같아요.”
“한 마디만 해도 상관없다. 그 이후로 버리고 돌아서도 단 한 마디에 매달려 평생을 그리 살아갈 테니.”
짐이 그러했듯이.
황제가 입 모양으로만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런 황제의 얼굴이 죽도록 쓸쓸해 보여서 나는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문득, 깨달았다.
‘방금, 황제 자리는 유리에게 준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거지?’
그게 아리아드네 님과의 약속이었나?
“너는 아리아드네와 많이 닮았단다.”
“제가요……?”
“정확히는 상황이 닮았지. 아리아드네에게도 한평생 세 명의 남자가 있었고, 네게도 그럴 테니.”
“음……. 그렇지만 저는 한 명만 선택할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이랑 평생 사랑하며 살 거예요.”
아리아드네 님의 첫 남자는 적국 사람이고, 잠깐의 인연일 뿐이었다.
황제 역시 각인을 했다손 치더라도 이미 아리아드네 님께는 남편이 있었으니 대놓고 집착하거나 나설 수 없었겠지.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이안이나 단테, 유리 혹은 그 외의 후계자들이 모두 공평한 위치였다.
그들은 앞으로 살아가며 가문 일로 평생 얼굴을 봐야 할 텐데……. 내게 세 명의 남자가 있다는 말은 결국 그들이 나를 놓고 싸운다는 소리가 되잖아.
‘그, 그건 좀…….’
라흰이 한 거랑 뭐가 달라.
‘어, 그런데 잠깐만.’
원작대로 간다면 단테는 라흰에게 집착하게 될 것이다. 이안은 원작의 인물이 아니니까 제외.
‘유리는 나한테 각인했다고 하고…….’
그러면 원작처럼 라흰을 두고 치정 싸움을 벌이다가 가문이 폭삭 망하는 미래는 이미 피한 것 아닌가?!
‘유리가 라흰에게 각인을 다시 할 리가 없으니까. 그럼 원작을 비튼 거 맞네!’
어쩌다 유리가 내게 각인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신비로웠던 첫 만남의 순간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
나중에 물어봐야지.
“네 바람대로 되면 좋겠구나.”
“아직 어린이잖아요. 어른이 되면 다들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글쎄……. 뭐,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니. 고통마저 네가 주는 것이면 달콤한 것이 갈망 아니겠느냐.”
황제 폐하는 알쏭달쏭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툭 두드리고 어디론가 가셨다.
황제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선물 상자가 찌그러진 걸 발견했다.
‘으악. 긴장했었나 봐!’
오팔 귀걸이야 멀쩡하겠지만 제일 예쁜 상자로 선물하고 싶었는데…….
“유리, 잠들었어?”
이윽고 나는 유리의 방문을 살짝 노크했다.
“누나!”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거기서 유리가 쏟아져 나와 나를 꼭 껴안지 뭐야.
나는 내게 닿아오는 따스한 체온에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었다.
“황제랑 무슨 이야기 했어? 언제 오나 엄청 기다렸어요.”
“아, 폐하랑…….”
응? 문을 닫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어?”
“잠깐 문 열어서 누나가 언제 오나 하고 봤거든. 그런데 황제가 잡고 있어서 유리는 시무룩해졌어요.”
유리는 입을 비죽이더니 다시 환하게 웃으며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누나. 나 재워주러 온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