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0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00화(10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00화
눈앞에 있는 청년의 고운 얼굴에 배꽃 같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오르카의 눈동자에는 몹시도 위험해 보이는 선득한 이채가 어려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광기로도 보였다.
올린도 그것을 봤는지 일순간 흠칫했다.
그러나 뒤이어 올린이 몸에서 경계심을 피어 올리며 내게 한 걸음 다가섰을 때, 오르카의 얼굴에 떠올랐던 위험한 빛이 씻은 듯이 사그라졌다.
“록사나 양, 혹시 오해하실까 봐 첨언하는데 이번에 판도라가 저지른 일은 저와 아무런 관계도 없답니다.”
어느새 다시 실없이 웃는 얼굴로 돌아간 오르카가 날아갈 듯이 가벼운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누이가 록사나 양에게 설마 이렇게 큰 결례를 저지를 줄 알았다면 제가 앞장서서 진작 가문으로 돌려보냈을 거예요. 앗, 안 믿으시는 건가요? 이런, 전 진심인데요.”
내가 눈을 슬쩍 가늘게 접고 보자 오르카가 너스레를 떨었다.
결국 판도라는 휘페리온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마물을 이용해 성문을 넘은 일의 주범 역시 판도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곧바로 백의 수장의 부름을 받아 휘페리온에 돌아가게 되었다.
다만 오르카는 판도라와 함께 휘페리온으로 동행하지 않고 감시를 당하면서까지 페델리안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마물들까지 스스로 반납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오르카는 지난번 정원에서 만났을 때와 달리 장신구를 하나도 하고 있지 않았다.
모든 마수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휘페리온은 가문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주술을 보석에 새겨 각인의 매개로 이용하고 있었다.
마물과의 각인 시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것들을 모조리 몸에서 떼어 내면서까지 페델리안에 남다니.
“판도라가 록사나 양에게 저지른 실수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그러고 싶어서 페델리안에 남은 거니까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
아마 그가 지금도 페델리안에 남아 있는 진짜 이유는 독나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록사나 양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오르카는 거기에서 잠시 말을 멈춘 뒤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뒤이어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명백히 나를 유혹하는 듯한 은밀한 미소였다.
어찌나 노골적인지, 나와 카시스의 관계를 공공연히 알고 있는 이시도르와 올린이 슬쩍 얼굴을 구겼을 정도였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판도라와 달리 저는 신사랍니다.”
오르카는 자신의 무해함을 한껏 내 앞에서 주장했다.
꼭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숨기고 양을 꾀어내는 늑대의 모습 같았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듯한데.”
나는 그런 오르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일과는 별개로 나는 당신과 친분을 도모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백의 마수사.”
내 입에서 흘러나온 단조로운 음성에 오르카가 움찔했다.
아마 지금 그를 응시하고 있는 내 눈도 목소리 못지않게 무감정하게 메말라 있을 것이 분명했다.
“왜죠? 제가 록사나 양에게 따로 밉보일 짓이라도 했던가요? 아, 혹시 제가 그때 록사나 양에게 마물이니 뭐니 헛소리를 했던 것을 아직 마음에 담아 두고 계신 거라면.”
“그건 괘념치 않는다고 말했어요.”
“그럼 어째서?”
나는 의문을 표하는 오르카를 지그시 응시하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이유는 간단해요.”
그리고 입술 끝을 슬쩍 끌어 올려 웃었다.
“당신이란 사람 자체에 전혀 흥미가 동하지 않으니까요.”
그 순간 오르카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의 눈가가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시야에 박혔다.
“아쉽게도 저는 당신과의 만남에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네요. 그런데 당신이 내게 관심을 표한다는 이유로 마음에도 없이 거기에 응답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겠어요?”
이시도르와 올린도 조금 놀란 듯했다.
그들은 내가 이런 식으로 도도하다 못해 거만하게 느껴지는 어투로 말하는 것도, 또 이렇게 겸손함의 미덕 따위 없는 조소 섞인 미소를 짓는 것도 처음 볼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제게 향한 필요 이상의 관심은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군요. 피차 시간 낭비 하지 말도록 해요, 백의 마수사.”
오르카는 내심 당황한 것 같았다.
그는 설마 여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저는 록사나 양과 제가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르카는 쉬이 말을 고르지 못하고 조금 더듬거렸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먼저 관심을 표한 상대에게 이런 식으로 직설적인 거부의 말을 들은 것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이시도르와 올린이 어쩐지 고소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오르카가 묘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
미미한 불쾌감과 당혹감, 그리고 혼란과 지난번 정원에서 얼핏 보았던 기묘한 열이 뒤섞인 복잡한 눈빛이었다.
잠시 후 오르카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침묵을 깨트렸다.
“그러고 보니 록사나 양에게 돌려 드릴 것이 있었는데.”
그래도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오르카는 더 이상 내게 껄떡대지 않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지난번에 테라스에서 날아갔던 실비아의 리본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오르카가 내민 것을 받았다.
잠시 살펴보았지만 리본에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판국에 페델리안에 오래 신세를 지는 것도 실례일 테니 저도 그만 휘페리온으로 돌아가야겠네요.”
오르카가 입매를 작게 비틀어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러시군요. 짧은 만남이지만 반가웠습니다.”
나도 그에게 무던한 태도로 아예 작별 인사를 했다.
좀 더 끈질기게 굴 줄 알았던 오르카는 생각보다 깔끔히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조금 더 수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에는 페델리안 밖에서 만나 뵙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록사나 양.”
오르카는 다시 아까처럼 해사한 얼굴로 돌아와 웃었다.
하지만 그가 건넨 여상한 인사말은 기분 탓인지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어머, 두 분 모두 안녕하세요?”
그때, 실비아가 나타났다.
어디에서 오르카와 내 소식을 듣고 온 건지, 아니면 그냥 이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친 건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녀린 몸에서 은근히 흘러나오는 기백이 사뭇 전투적인 것을 보면, 아마도 전자인 것 같았다.
“좋은 오후네요, 록사나. 그리고 백의 마수사님.”
“안녕하십니까, 페델리안 양.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우시네요.”
오르카가 평소와 같은 가벼운 태도로 실실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때처럼 매끄러운 혀를 놀려 치근덕대는 대신 그만 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알렸다.
“이대로 페델리안 양과 좀 더 긴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전 이제 휘페리온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해서요.”
“아, 이제 백의 가문으로 돌아가시나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저는 청의 수장님께 들러야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오르카는 그렇게 인사를 남긴 뒤 정말 자리를 떠났다.
이시도르도 나와 실비아에게 한 번 작게 묵례해 보인 뒤 오르카의 뒤를 따라갔다.
“웬일이지?”
오르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실비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는 다소 맥이 빠진 듯했다.
기껏 전투 만반의 자세로 왔는데 상대방이 너무 금방 사라져 버려서 조금 허탈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좀 전에 록사나 아가씨께 마음을 거절당한 일로 심적인 충격을 크게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옆에서 조용히 있던 올린이 말했다.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에 귀찮은 날벌레를 떨쳐 낸 듯한 후련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거절당했다니?”
실비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는 그녀를 보고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여상히 웃어 보였다.
실비아는 몹시 궁금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른 것을 먼저 물었다.
“참, 록사나. 이제 몸은 완전히 쾌차했나요?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아요.”
나는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실비아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그 후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만 것은 거의 충동적인 일이었다.
“실비아.”
실비아의 뺨이 순식간에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때 네가 준 리본, 내가 가져도 될까?”
오르카가 돌려준 리본에는 별 다른 이상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괜스레 찜찜해서 실비아에게 이것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리본을 이대로 내가 가져가서 처리할 요량이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실비아는 기쁜 듯이 말갛게 웃었다.
그런 그녀는 소설의 여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또 카시스의 여동생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 자체로 사랑스럽고 예뻤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실비아를 볼 때마다 제레미가 떠올랐다.
두 사람에게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지난번 리셸의 집무실에 다녀 온 이후로는 그 횟수가 더 빈번해졌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제레미는 아그리체에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대로 아그리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문의 대표가 되어 아그리체를 복권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내가 아그리체를 누나가 웃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만들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때 했던 말이 정말 진심이었던가.
분명 나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레미는 내가 망가뜨린 그 폐허에 남아서 혼자 무언가를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분명 그날 내가 가진 걸 다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여전히 나한테 묶여 있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것이 내 발목을 조이고 있는 수많은 가시덩굴 중 하나로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제레미의 말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아직 시일을 가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마, 그렇게 머지않은 때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어스름하게 웃었다.
어쩐지 지금 이 순간, 실비아가 아닌 제레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