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0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04화(10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04화
* * *
베르티움까지 가는 길은 조용했다.
백의 마수사 오르카가 페델리안에서 떠나기 직전에 남긴 말 때문에 은근히 찜찜했는데 괜한 기우였나 싶었다.
페델리안의 성문을 넘어 페델리안의 땅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베르티움의 행렬에는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상념에 젖을 수 있었다.
오르카가 나한테 관심을 가진 건 독나비 때문이었다고 쳐도, 도대체 노엘은 뭘까?
화합회 날 나를 보고 코피를 쏟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 후에도 심복을 시켜 꽃다발을 선물하지를 않나.
그러고 나서도 그는 나를 베르티움에 초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든 나를 만나고 싶어 애가 달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그런 부분이 이상하다는 거였다.
〈나락의 꽃〉에서 록사나 아그리체는 란트의 명으로 실비아의 남자들을 유혹하려다가 장렬히 실패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내가 아무 짓을 안 해도 이렇게 알아서 꼬여 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소설의 인물들과 현실의 인물들 사이의 동일성은 입증된 바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귀찮기도 해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제 막 페델리안을 벗어났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카시스가 보고 싶었다.
아마 베르티움에 가려는 내 목적을 그가 알았다면 절대 나를 혼자 보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와 아그리체의 일이었다. 그러니 그를 여기에 끼어들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베르티움에서의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야지.
카시스가 위그드라실에서 오기 전에.
나는 흔들리는 커튼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카시스가 있는 페델리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 *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베르티움에 당도했다.
마차의 문을 연 순간, 코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향기가 가장 먼저 오감을 자극했다.
그 다음으로, 하얀 꽃잎이 열린 문틈으로 날아들어왔다.
문을 좀 더 활짝 밀치자, 시야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이 허공에서 눈처럼 흩날리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사방이 온통 지상낙원 같은 꽃 천지였다. 아득해질 정도로 짙은 향기가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흘러들었다.
나는 바닥에 얇은 융단처럼 깔린 꽃잎을 밟고 내려섰다.
역시 가문마다 이런 외관에도 큰 차이가 있구나 싶었다.
아그리체가 어딘가 음습하고 폐쇄적인 느낌이었다면 페델리안은 고즈넉하고 단정한 분위기였다.
반면 베르티움은 아그리체나 페델리안과는 또 다른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르티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록사나 양.”
“방문을 환영합니다.”
단테가 먼저 내게 말하자 어느덧 다가온 베르티움의 사용인들이 줄지어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람들의 분위기도 베르티움의 경관에 걸맞게 따스하고 활기찼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슬쩍 눈매를 찌푸리고 말았다.
“짧지 않은 여정으로 피곤하실 텐데 일단은 푹 쉬십시오.”
“황의 수장님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싶은데.”
“저녁에 록사나 양을 위한 환영 연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수장님께서는 그때 정식으로 인사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단테가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또 서신에 적힌 내용에 대해서도 그때 이야기하자고 전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일단 지금은 물러나기로 했다.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단테가 옆에 있던 사용인들에게 눈짓했다.
“저희 하녀들이 방까지 안내해 드릴 겁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가씨.”
“그럼 부디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단테는 뒤로 물러났고, 대신 세 명의 여인들이 내게 다가왔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들 역시 다정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또 하나같이 미묘한 위화감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따라 걸었다.
* * *
그들이 안내해 준 곳은 한눈에 봐도 ‘굉장히 공들여 꾸몄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방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화려함이 과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으니 방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용인들이 물러간 뒤 나는 나비를 불러들였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엘 베르티움은 내가 아그리체를 떠나 페델리안에 있다는 사실을 상당히 빠른 시일 내에 알아 냈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독나비의 주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걸이가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니 방에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왼쪽 귀에 주술의 영향을 일정량 감소시키는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베르티움에 갈 것이라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그리젤다가 보내 준 것이었다.
그녀는 아그리체에 있을 때에도 내게 조력자 역할을 해 준 사람이었다.
그리젤다의 성격은 특이하다면 특이했고, 괴상하다면 괴상했다.
그녀가 아그리체를 몰락시키는 데 일조한 것도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번에도 그리젤다는 베르티움과의 일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눈치였다.
아마 지금쯤 그녀 역시 나를 따라 베르티움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되었건, 나로서는 편리한 일이었다.
나는 독나비들을 베르티움 곳곳에 아주 은밀히 날려 보냈다.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안달하더니, 저녁 연회 때나 얼굴을 비치겠다고?
그동안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또, 그가 나를 이곳에 불러들이는 데 이용한 미끼에 대해서도.
베르티움에서 내 독나비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물론 양쪽 다 염두에 두고 주의할 생각이었다.
나는 광택이 흐르는 보라색 커튼을 좀 더 활짝 걷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밖은 무릉도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기분은 여전히 싸늘할 뿐이었다.
* * *
노엘 베르티움은 자신의 방에서 한껏 단장을 하고 있었다.
옷을 거의 수백 벌이나 꺼내 입었다 벗었다 하며, 이제 막 베르티움에 돌아온 단테와 사용인들을 닦달하여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복장을 골라내라고 그야말로 성화를 부리는 중이었다.
독나비를 통해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아 버린 나는 얼굴을 구기고 말았다.
그 후 다른 곳에 주의를 집중했다.
연회장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아까 단테가 말한 대로 환영 연회가 한창 준비 중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
다른 곳을 살피고 온 나비들도 같은 광경을 내게 보여 주었다.
노엘 베르티움의 방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는 입매를 비틀어 웃고 말았다.
그래, 쉽게 알아 갈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건가.
이쯤 하면 충분한 것 같아서 나비를 거두어들였다.
똑똑.
때맞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실례합니다. 연회를 위한 단장을 도와 드리러 왔습니다.”
“들어와.”
곧 문이 열리고, 하녀들이 방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그녀들의 손에는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 그리고 구두 따위가 잔뜩 들려 있었다.
인형 놀이라도 할 셈인가.
나는 내심 비소하며 그녀들의 손에 몸을 맡겼다.
그들이 들고 온 옷의 개수만 해도 아까 노엘 베르티움의 방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수준 같았다. 장신구의 수는 더 엄청났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전부 몸에 걸쳐 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가장 처음에 입어 보았던 하얀 드레스가 곧바로 낙찰되었다.
사용인들은 못내 아쉬움이 남은 눈치였지만 내 냉담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은 장신구에라도 심혈을 기울이는 기색이었다.
“그럼 귀걸이도 목걸이와 짝인 것으로 갈아 끼우겠습니다.”
“그래.”
나는 장신구의 착용을 담당한 사용인의 말에 단조로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곧이어 그녀의 손이 내 왼쪽 귀에 닿았다.
그 순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