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0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07화(10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07화
카시스의 눈이 얕게 가라앉았다.
그는 베르티움이 페델리안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보고로 전해 들은 바 있었다.
얼마 전 록사나가 황의 수장에게 서신을 받은 것도, 또 그 직후에 중립 구역에 독나비를 날려 보낸 것도 모르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카시스가 없는 사이에 베르티움에 찾아갈 생각인 것이다.
카시스는 록사나가 겉보기만큼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록사나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의 품 안에서 언제까지나 안전하게 보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록사나는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시스가 아는 그녀라면, 설령 그가 막아선다 해도 어떻게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말리라.
잠시 후 카시스는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을 끊어내고 자리에서 발길을 뗐다.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서두르는 편이 좋겠군.”
“예.”
카시스 역시 나름의 방법으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조치를 취해 두었다. 그러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시스는 최대한 빨리 위그드라실에서의 일을 끝마쳐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 * *
“……‘내 동생’이라고?”
록사나는 작게 입술을 달싹여 속삭였다.
나지막하게 소리 내 반문한 말이 어지럽게 웅성거리는 귀에 메아리쳤다.
록사나가 입술을 떼자마자 주변이 기이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연회장 안에 있는 모두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말은, 네가 진짜 아실이라는 건가?”
눈앞에 있는 소년은 열여섯 살에 죽은 아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결치는 듯한 화려한 금색 머리칼. 반듯한 하얀 이마. 아치형을 그리고 있는 눈썹과 그 밑에 자리한 맑은 푸른 눈동자.
갸름한 얼굴에 박힌 섬세한 이목구비나 그 위에 드리워진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도 기억 속의 아실과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흡사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이가 인형인지 사람인지 분간하기가 어려 웠다.
마치 그 혼자서만 멈추어진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록사나의 물음에 아실의 얼굴을 한 소년이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내 죽은 육신을 노엘이 되살렸지.”
그것은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지만, 핵심적인 본질에서는 어긋나 있는 설명이었다.
“안타깝게도 나한테 죽음 이전까지의 기억은 없지만.”
소년은 록사나가 물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오묘하게 돌려 말했다.
하지만 록사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아실이되 아실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이름이 아실이 아닌 ‘닉스’인 것처럼.
그럼에도 그는 록사나 스스로조차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서 동요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한동안 마주한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록사나의 입술이 마침내 다시금 벌어졌다.
“죽은 육신을 되살리다니, 그건 인형술사가 아닌 사령술사의 영역일 텐데.”
“아, 그건 아니야. 인형술과 사령술은 원리 자체가 다르니까. 궁금하면 내가 자세히 설명해 줄게, 루나.”
록사나와 닉스의 만남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던 노엘이 끼어 들었다.
“그런데 닉스의 예전 이름이 아실인가 보지? 그런 우중충한 이름보다는 역시 닉스라는 이름이 어울려.”
그는 남매의 오랜 조우에 뿌듯함이라도 느끼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더없이 천진하고 해맑게 빛났다.
“그나저나 그렇게 같이 서 있는 걸 보니까 내 생각보다 둘이 훨씬 많이 닮은 것 같네. 정말 멋져. 너무 완벽한 그림이야!”
노엘의 들뜬 음성이 노랫소리처럼 연회장 안에 퍼져 나갔다.
조금 전까지 홀 안을 누비며 춤을 추다가 양쪽으로 갈라선 사람들도 짜 맞춘 것처럼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크나큰 감명이라도 받은 듯이 하나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소음이 사정없이 고막을 찔러 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무대 위의 연극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 같았다.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은 촌극이었다.
록사나는 미소 띤 아실의 얼굴을 시야에서 가리듯이 눈을 감았다.
“노엘 베르티움.”
그 후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까지 남아있던 감정의 잔해가 깨끗이 거두어져 있었다.
노엘을 응시하는 시선은 빙해처럼 더없이 차디찼다.
그것을 정면에서 마주한 노엘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던 손을 어정쩡하게 멈추었다.
“으, 응?”
“오늘의 연회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것은 권유나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였다.
“지금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 다시 나누기로 하지요.”
그렇게 싸늘히 말한 뒤 록사나는 뒤돌아섰다.
또각또각.
구두의 굽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쳐 내는 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하얀 치맛자락과 길게 늘어뜨려진 금색 머리카락이 그림자처럼 잔상을 남겼다.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어?”
노엘은 그런 록사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멍청히 입을 벌리고 말았다.
* * *
“단테.”
록사나를 위한 환영 연회는 생각보다 일찍 파했다.
“예, 노엘 님.”
흥겨운 음악도 멈추고, 연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관객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노엘은 적적함이 느껴질 정도로 텅 비어있는 연회장의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드디어 루나를 만난다고 노래를 불러 대며 공들여 단장한 것이 어쩐지 무색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
노엘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힐끔 본 그의 얼굴도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단테는 슬쩍 닉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는 연회장 한구석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혼자 여유롭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발 밑에는 아까 쓰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앵무새 모양 가면이 받침대처럼 깔려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닉스가 단테를 향해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그것을 보고 단테는 눈살을 찌푸리며 작게 혀를 찼다.
늘 그래 왔지만 닉스는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말씀하셔 봤자, 저는 줄곧 밖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모릅니다만.”
평소라면 좀 더 깐족거렸겠지만 지금은 노엘의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자제했다.
단테는 그저 연회장 안에 들어 갔던 록사나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막 눈앞을 스쳐 지나쳐 가는 그녀에게서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도.
그런 후 연회장 안을 채우고 있던 인형들이 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단테는 그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노엘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루나가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그러고 방으로 돌아갔어.”
그 심각한 얼굴을 보고 단테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여독이 덜 풀려서 피곤했나 보네요.”
“그게 아니야! 아무래도 화가 난 것 같았다고.”
지금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단테의 반응에 노엘이 결국 언성을 높였다.
그의 얼굴에 서서히 불안감이 차올랐다.
“나를, 엄청나게 차가운 눈으로 쳐다봤어.”
“저런.”
“난 그냥 닉스를 소개해 준 것밖에 없는데 갑자기 한기를 풀풀 날리면서, 꼭 달의 여신이 아니라 겨울이나 서리의 여신인 것처럼…….”
노엘이 안절부절 못하며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듣고 단테는 눈매를 찡그렸다.
아니, 원래대로라면 연회가 끝날 때쯤에나 닉스를 보여 줄 계획이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단테는 연회장의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록사나가 자리를 떠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노엘은 불안하게 입술을 짓씹다가 돌연 단테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네가 루나한테 무슨 실수라도 저지른 거 아니야?”
“예? 왜 애꿎은 저한테 불똥이 됩니까?”
“페델리안에서부터 내내 네가 옆에 있었잖아. 게다가 넌 가만히 있어도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데 일가견이 있으니까.”
“무슨 그런 억울한 말씀을…….”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줄 테니까 그냥 지금 숨김없이 불어.”
“록사나 양이라면, 제가 페델리안에 도착해 인사하기 전부터 기분이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페델리안이 원인인가? 감히 루나의 심기를 거스르다니, 가만두지 않겠…….”
“하지만 록사나 양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당연히 노엘 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단테의 말에 노엘이 흠칫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루나를 위해 선물도 준비하고, 환영 연회까지 열었는데?
단테는 그런 노엘을 불쌍한 중생 보듯이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일단 노엘 님이 보낸 서신부터 불쾌하고도 남지.”
“내가 보낸 서신이 왜?”
“아무리 포장을 해 봤자 결국은 협박 편지 아닙니까. 그런 걸 받고 좋아할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혀, 협박이라니, 나, 난 그럴 의도는…….”
노엘은 말문이 막히는지 더듬거렸다.
속을 훤히 비쳐 내고 있는 맑은 수면처럼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단테는 측은함과 성가심이 담긴 눈으로 그런 노엘을 쳐다보았다.
옆에서 그렇게 극구 말릴 때에는 제대로 듣지도 않더니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꼴이라니.
그런데 별안간 노엘이 단테를 향해 다시 한 번 사납게 눈을 치떴다.
“거봐, 역시 너 때문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