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1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10화(11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10화
* * *
“시간 낭비였군.”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리셸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옆에 있던 카시스도 거기에 동의했다.
이번 회의는 5가문 간의 결속을 다시금 돈독히 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려 마련한 자리였다.
그러나 긴 시간을 소요한 끝에 도출된 결과는 참으로 변변찮았다.
제레미 아그리체도 한껏 떫은 표정을 지으며 회의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자.”
리셸이 쯧 혀를 차며 카시스에게 말했다.
바로 그때, 복도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카시스의 눈에 띄었다.
카시스는 그가 베르티움의 사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노엘 베르티움은 가문들의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는 대신 중요한 회의 때마다 이렇게 수하를 보내 회의 결과를 전달받곤 했다.
꾸벅 묵례한 뒤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에게 일순간 카시스의 시선이 닿았다.
잠시 후 카시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전 들를 곳이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그의 말에 리셸도 멈추어 서서 카시스를 돌아보았다.
속까지 꿰뚫는 듯한 눈길이 카시스의 얼굴에 얼마간 머물렀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후 마침내 리셸이 카시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뒤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무 늦지 않게 오거라.”
“예.”
리셸은 카시스에게 가타부타 다른 설명을 요하지 않고 다만 그렇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아들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시스도 멈춰 있던 발길을 돌렸다. 이시도르가 그런 카시스의 뒤를 따랐다.
* * *
잠시 후 베르티움의 사자가 다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회랑을 걸으며 인장을 찍어 봉인한 봉투를 품에 갈무리 하고 있었다.
카시스는 남자가 막 회랑을 나와 잔디를 밟는 순간, 기둥 뒤에서 나타나 그의 급소를 가격했다.
오르카 때와 마찬가지로 불시에 공격당한 남자가 ‘억’ 하고 단말마의 소리를 내지른 뒤 풀썩 쓰러졌다
카시스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남자의 몸을 붙잡았다.
“요즘은 길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자주 보는 것 같군.”
물론 오르카도 그렇고 지금 눈앞에 있는 베르티움의 사자도 모두 카시스가 기절시킨 것이었다.
“심신 미약 상태인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 염려할 만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카시스는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자약하게 읊조렸다.
“심신 미약…… 입니까.”
카시스의 뻔뻔한 말에 이시도르가 떨떠름하게 반문했다.
그래도 카시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베르티움의 사자가 먼 길을 달려온 탓에 지친 모양이다. 이렇게 기력을 다해 의식을 잃을 정도라면 좀 쉬게 해 주는 편이 좋겠지.”
이시도르도 카시스의 의중을 눈치챈 뒤였기 때문에 그냥 체념하고 맞장구를 쳤다.
“예,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위그드라실에서 있었던 중차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베르티움에 한시라도 빨리 전달하는 편이 좋지 않을지요.”
“그럼 어쩔 수 없군.”
카시스는 이시도르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의식을 잃은 남자의 품을 뒤적여 봉인된 서신을 꺼내 들었다.
그런 후 카시스는 더 이상 남자에게 볼일이 없다는 듯이 그를 이시도르에게 떠넘겼다.
이시도르는 군말 없이 남자를 들쳐 업었다.
“우리가 대신 베르티움으로 간다.”
그렇게 말한 뒤 카시스가 앞장 섰다.
이시도르는 걷는 동안 마주친 위그드라실의 시종들에게 베르티움의 사자를 넘겨 주었다.
그들은 다른 가문의 수장들을 배웅하고 오다가 갑작스럽게 맞이한 상황에 퍽 놀라고 당황한 눈치였다.
카시스와 이시도르는 허둥지둥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로 곧장 위그드라실을 떠났다.
물론 목적지는 베르티움이었다.
* * *
다음 날, 록사나와의 만남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던 노엘은 결국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일어나십시오, 노엘 님. 벌써 해가 중천에 떴습니다.”
“우으응.”
“노엘 님이 그토록 만남을 고대하던 록사나 양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드르렁…….”
노엘은 단테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록사나가 베르티움에 온다고 잔뜩 들떠서 며칠 동안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여파였다.
닉스의 설득으로 어제는 그래도 웬일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나 싶더니만.
본래도 수면 부족에 취약했던 노엘은 입맛까지 쩝쩝 다시며 쿨쿨 잠들어 있었다.
“노엘 님. 노엘 님?”
단테가 아무리 깨우려 애를 써도 노엘의 눈은 뜨일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단테의 이마에 빠직 핏대가 섰다.
“그만 일어나라고, 인간아!”
“음냐…….”
* * *
“그렇게 돼서 내가 오게 되었어.”
그리하여 결국 록사나가 있는 응접실에 들어선 것은 닉스였다.
록사나는 빙긋이 웃어 보이는 닉스를 온도 낮은 눈으로 응시했다.
물론 단테는 몹시도 마뜩잖아 했지만 닉스가 먼저 자신이 직접 록사나를 접대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노엘에게 어느 정도 미리 지시받은 사항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그에 단테는 어쩔 수 없이 닉스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물론 닉스의 말뿐이라면 미심찍어서라도 그의 뜻을 따라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테도 이번 일에 닉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은 이미 노엘에게 들어서 주지하고 있었다.
“헛걸음했군. 너와는 할 말이 없는데.”
물론 록사나는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 그녀의 발목을 붙든 것은 잇따른 닉스의 음성이었다.
“그래? 난 오히려 노엘이 없기 때문에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리 없이 미끄러진 붉은 눈이 다시금 닉스의 얼굴에 닿았다. 하지만 닉스는 시종일관 의연한 표정이었다.
“그 말은, 네가 노엘 베르티움보다 솔직할 거란 의미인가?”
이윽고 작게 벌어진 록사나의 입술에서 나직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어쩌면 ‘나’이기 때문에 답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닉스가 록사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록사나는 의자에 앉아 그런 그를 말 없이 주시했다.
여전히 시린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닉스를 내치지는 않았다.
닉스는 록사나의 침묵을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취향이 어떤지 몰라서 베르티움에 있는 가장 좋은 차로 준비했어.”
닉스는 록사나의 옆에서 직접 차 시중을 들었다.
움직임이 퍽 자연스러운 것을 보니 이런 일이 익숙한 것 같았다.
하지만 베르티움에서의 그의 역할을 노예나 하인으로 여기기에는 시야에 비친 모습이 지나치게 우아하고 품위 있었다.
닉스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고, 그의 태도에는 굴종하는 느낌이 없었다.
록사나의 눈길이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 닉스의 오른손에 잠깐 머물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닉스의 손등에 있는 흉터였다.
“혹시 단 거 좋아해? 그랬으면 좋겠는데.”
찻잔에 이어 트레이 위에 있던 각종 티 푸드들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달콤해 보이는 케이크 종류가 특히 많았다.
“먹어 봐. 내가 직접 만든 건데, 맛은 보장해.”
록사나는 닉스가 먹어 보라 권한 것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이걸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응. 베르티움에 있는 동안 어쩌다 보니 익히게 되어서.”
그런 후 닉스가 록사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원래는 이 자리에 노엘이 있어야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하듯이 닉스가 웃었다.
그의 미소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록사나가 보았던 베르티움의 다른 인형들과 달리 닉스의 웃는 얼굴은 마치 진짜 사람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고 무의식중에 기억을 되짚어 아실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록사나는 눈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올려 그 안에 있는 액체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그 후 그녀가 가차 없이 평했다.
“설탕 덩어리 차에 설탕 덩어리 케이크라니. 취향이 형편없어.”
닉스는 록사나의 말이 예상 밖인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미안해. 왠지 네가 단 걸 좋아할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
“어디에서 나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터무니 없군.”
“그러게.”
닉스의 말에 록사나는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확실히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녀의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도 그와 이러고 있으려니 문득 어릴 때의 기억이 났다.
어릴 때부터 아그리체의 아이들은 가풍에 따라 내성을 기르기 위해 독을 섭취해야 했다.
어머니와 아실은 어린 그녀를 위해 이것처럼 달콤한 케이크나 꿀을 넣은 음료 등에 독을 조금씩 섞어서 주곤 했다.
지금 닉스를 보고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얕은 그리움이 차올랐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아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