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11)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11화(111/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11화
“록사나.”
그때, 다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록사나는 조용히 눈앞의 얼굴을 주시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 보니까 왜인지 기분이 좀 이상하네.”
정말 그 말처럼 닉스는 어딘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 역시 인형의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생동감 있었다.
록사나의 눈이 약간 낮게 가라앉았다.
그녀 역시 기분이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아실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나마 딱 한 번, 열다섯 살의 월례 평가 때 아실의 환영을 본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의 그는 이렇게 멀쩡한 모습이 아니었고, 그나마도 실재하고 있는 존재가 아닌 허상이었다.
아실의 모습을 한 인형이 록사나를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응, 그래. 꼭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야.”
그 순간, 록사나의 입술 사이로 얕은 웃음소리가 뱉어졌다.
“인형 주제에 사람의 감정을 아는 것처럼 말하다니…….”
닉스와 닮은 그녀의 얼굴에 선명한 조롱의 미소가 피어났다.
“이것 참 우습기도 하지.”
록사나는 싸늘한 비소를 지은 상태로 의자에 조금 더 깊이 몸을 기댔다.
“설마 그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아실의 것이라 주장하기라도 할 셈이야?”
설령 닉스가 어떤 달콤한 말로 꾀어낼지라도 록사나는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허튼소리를 늘어 놓을 작정이라면, 그것을 듣고 비웃어 줄 생각은 있었다.
닉스는 잠깐 아무 말 없이 록사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맑은 빛을 띤 푸른 눈동자가 싸늘한 냉기를 드리우고 있는 록사나의 얼굴을 그 안에 담아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곧이어 닉스가 엷은 곤혹감을 드러내며 입술을 달싹였다.
“네 오빠인 척 행동해서 어떻게든 너를 베르티움에 오래 붙잡아 놓으라고 노엘에게 명령을 받긴 했는데 말이야.”
과연 예상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지.
노엘의 얄팍한 수에 절로 냉소가 배어 나왔다.
어떤 감언이설을 늘어놔도 록사나가 믿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닉스는 의외로 솔직하게 노엘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말했다시피 내 기억은 내가 이 몸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시작돼. 그래서 아무리 날더러 네 오빠인 척 행동하라고 해 봤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단 말이지.”
“그렇겠지. 넌 아실이 아니니까.”
“사실 나는 인형술이니 뭐니하는 건 너무 복잡해서 들어 봤자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지도 못해.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는 속 시원히 대답하고 싶어도 딱히 설명해 줄 말이 없어.”
록사나는 덧붙여진 닉스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널 보는 순간 무척 반가운 기분이 들었어. 이상한 이야기지만, 정말이야.”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는 닉스의 눈은 정말 진실해 보였다.
지금 그가 말한 내용도 거짓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널 만나고 싶었다고 어제 연회장에서 말한 것도 진짜야.”
록사나는 닉스의 말을 도중에 끊어 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온 것도 노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너를 따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고.”
서리 낀 눈이 거짓을 가려내려는 듯이 마주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노엘에게 네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들었거든.”
“호기심?”
그리고 이어서 귓가를 파고든 음성에 록사나의 눈매가 움찔 작게 미동했다.
“그래, 인형에게 호기심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닉스는 록사나의 그런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평온히 미소 지었다.
“하지만 정말이야. 난 이 몸으로 눈을 떴을 때부터 줄곧 궁금했어. 다시 되살아나기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록사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 삶은 이 육신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래서 네 입장에서는 가당찮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난 이 몸을 온전한 내 것이라고 느껴.”
닉스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수면 위에 얇게 낀 살얼음처럼 설핏 굳어 있었다.
“이 육체는 내가 눈을 뜬 8년 전의 모습 그대로 조금도 성장하지 않고 있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건 분명 내가 노엘이 만든 인형이라는 증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그의 말처럼 지금 록사나의 눈앞에 있는 사람, 아니 인형은 죽기 전의 아실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역시 노엘에게 들어야겠지만, 그것은 닉스의 말대로 그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아무리 닉스의 그릇이 진짜 사람의 신체라 해도, 노엘의 인형술에 의해 다시 눈을 뜬 이상 그 육신은 더 이상 완전한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인형과 달리 감정을 느끼고, 또 내 안에는 분명 노엘이 복구한 진짜 심장이 뛰고 있어.”
닉스의 말은 뜻밖이었고, 그런 만큼 상당히 놀라웠다.
분명 인형들은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록사나가 겪어 본 베르티움의 다른 인형들도 그저 사람의 감정을 흉내 낼 뿐인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미소는 분명 아름다우나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고, 그들의 행동은 묘하게 경직되어 딱딱한 느낌을 풍겼다.
“단테는 이런 나를 불량품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분명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닉스는 그들과 달라 보였다.
“네가 봤을 때 나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아, 인형에 가까운 것 같아?”
“…….”
“그리고 이 육신의 주인인 아실을 내 원류라 한다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 중 아실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몇 할 정도라 할 수 있을까?”
닉스는 록사나를 정면에서 직시하며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너는 어때? 여기에 대답할 수 있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인형이라니.
확실히 전대미문이었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던 록사나는 침묵을 지키며 닉스의 눈을 마주했다.
방 안에 정적이 깔렸다.
록사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닉스를 응시했다.
마침내 닉스가 그런 록사나를 보며 여트막하게 웃어 보였다.
“며칠 더 이곳에 머무르면서 나를 관찰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조금 전처럼 강한 호소력이 담긴 목소리 대신, 봄바람이 살랑이는 것처럼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노엘의 초대에 수락했다는 건, 너도 나에 대해 좀 더 알아 볼 마음이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라고 덧붙이며 닉스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어차피 노엘에게 듣고 싶은 설명도 있을 테고.”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일말의 속임수나 꿍꿍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악한 마음 같은 것은 그의 손끝에 닿기만 해도 모조리 새하얗게 화해 버릴 것만 같은 순수한 선량함이 그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록사나는 여전히 감정을 내비치지 않은 눈으로 그런 닉스를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흥미로운 주제이긴 했지만…….”
달그락.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일부러 시간을 내 들을 정도로 유익한 이야기는 아니었어.”
그런 뒤 록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도록 하지.”
닉스를 혼자 남겨 둔 채로 록사나는 문을 향해 걸었다.
그녀의 등에서는 어떤 미련도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나서기 직전, 록사나는 닉스를 향해 지나가듯이 말했다.
“내일은 다른 차를 내와. 지금처럼 혀가 아리도록 단 건 내 취향이 아니야.”
사실상 닉스의 권유에 대한 간접적인 수락이었다.
* * *
“수확은 좀 있었습니까?”
록사나가 응접실을 나간 후, 단테가 안으로 들어와 물었다.
닉스는 여전히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느른히 손에 턱을 괴고 앉아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느긋이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뭐, 예상대로. 좀 더 머물다 가기로 했어.”
“노엘 님이 기뻐하시겠군요.”
“그렇겠지?”
그러다 문득 닉스가 킥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인간들은 정말 멍청해.”
논란의 소지가 가득한 그 말을 듣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인간인 단테가 미간을 좁혔다.
“실컷 관심 없는 척, 냉랭한 척하더니, 결국은 꾸며낸 말 몇 마디와 행동에 금세 흔들리는 꼴이란. 이까짓 껍데기, 이까짓 육신 따위가 뭐라고 거기에 연연하는 거지?”
응접실의 테이블과 의자 둘레에는 방음의 효과가 있는 주술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설령 록사나의 독나비가 온다 해도 지금 닉스가 하는 말은 들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술진 밖에 서 있는 단테의 말은 그녀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단테는 불필요한 말을 아꼈다.
물론 비어 있는 닉스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 대화하기 좀 더 용이해지겠지만 그러기 싫어서 고집을 부리는 것이 단테다웠다.
“역시 이 몸의 본래 주인과 저 여자는 살아생전 남매간의 우애가 굉장히 돈독했나 봐. 덕분에 내가 파고들 틈도 생기고. 생각보다 일이 쉬워지겠어.”
닉스는 그렇게 말하며 전부 다 비운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조금 전 그가 록사나에게 보인 모습은 의도적으로 아실을 흉내 낸 것이었다.
물론 닉스는 아실의 실제 모습이 어땠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들은 바가 있어 이 몸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막연하게나마 머릿속으로 그려 낼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노엘의 명으로 록사나를 찾으러 베르티움 밖으로 나갔을 때, 다른 아그리체의 일원과 만난 적이 있었다.
록사나의 흔적을 쫓기 위해 가장 먼저 아그리체의 땅을 밟았을 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