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1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17화(11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17화
촤르륵.
말간 찻물이 하얀 천 위를 적셨다. 하지만 찻잔에서 쏟아진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축축한 테이블보 위에 흩어진 무언가를 보고 닉스는 얼굴을 굳혔다.
설탕이나 소금의 입자만 한 검은 덩어리.
조금 전 록사나가 집어넣은 각설탕과 화학 반응을 일으킨 독이 고체 상태가 되어 뭉쳐 있었다.
닉스가 오늘 준비한 독은 어제까지와 다른 것이었다.
어제 후원의 인간에게 직접 효능을 확인한 후, 어째서인지 록사나에게만 독이 들지 않는 것을 알고 종류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록사나가 독과 함께한 세월은 한두 해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의 독은 어제의 독보다 록사나에게 더욱 익숙한 것이라 냄새만으로도 그 종류가 무엇인지 판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닉스는 입수한 독의 성능에만 관심이 있었던 듯,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흔적을 보고 눈매를 딱딱하게 경직시켰다.
“너는 인형 주제에 거짓말을 참 능숙하게 잘해. 과연 세상에 둘도 없는 특이한 인형다워.”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가 가차 없이 닉스를 저격했다.
“아니, 특이한 인형이라는 말보다는 실패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까?”
그 순간 닉스의 눈빛이 변했다.
록사나의 말이 조금 전에 찌르고 들어왔던 부분에 다시금 박혔다.
“……실패작이라고? 내가?”
“그래. 너 자신은 네가 특별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지.”
벌어진 구멍에서 진득한 독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쎄. 내가 봤을 때 넌 노엘 베르티움의 실수로 태어난 돌연변이, 혹은 변종에 불과해.”
그것은 서서히 퍼져 나가 종국에는 닉스를 뒤덮었다.
“하하.”
마침내 닉스의 입에서 날카로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껏 내 앞에서 겁 없이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고도 멀쩡했던 인간은 아무도 없었는데.”
록사나를 마주한 그의 얼굴 역시 조금 전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졌다.
조밀하게 들어찬 한기가 송곳처럼 예리하게 록사나에게 날아들었다.
“내가 독을 준비한 건 언제부터 알았어?”
본색을 드러낸 닉스의 얼굴은 조금도 기억 속의 아실과 닮아 보이지 않았다.
록사나는 비로소 만족스러워졌다.
“처음부터.”
물론 배후에 노엘이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불명확했다.
다른 인형이라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닉스는 그들과 달랐으니까. 그래서 록사나를 이곳에 잡아 놓을 심산으로 혼자서 방법을 강구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만약 독을 준비시킨 것이 닉스의 주인이라면, 노엘 베르티움은 록사나의 생각보다 훨씬 비열한 인간이었다.
록사나의 앞에서는 그녀를 존중하는 척, 무해한 척하며 방긋방긋 웃어 놓고 뒤에서 이따위 수작질을 부렸다는 의미니까.
어쩌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모든 책임을 닉스에게 떠넘기고 모르쇠로 일관할 작정이었는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내가 묻지. 이건 네 주인의 명령인가, 아니면 네 독단적인 선택인가?”
“직접 맞혀 보시든가. 조금 전에 잘난 척 떠들어 대던 것처럼.”
그러나 닉스는 록사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입 안 가득 한기를 베어 물었다.
“그래, 날 죽일지 말지 결정을 내리셨다고?”
아무래도 조금 전 록사나가 한 말이 그를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었다.
“오만한 것은 너희 인간들의 종특인가? 네까짓 게 날 죽이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다니 기가 차는군.”
닉스는 네가 그럴 수 있겠냐는 듯이 빈정거리며 날카롭게 웃었다.
“게다가 설령 날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한들 네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록사나는 한결같이 여유로운 태도였다.
뒤이어 고막을 파고든 조소 어린 목소리를 듣고, 닉스는 더 참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데?”
아아, 그래.
눈앞에 있는 이 건방진 인간의 콧대를 지금 당장 납작하게 눌러 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닉스는 스산하게 웃음 지었다.
“설마 그깟 귀걸이 하나 믿고 까부는 거야?”
닉스의 손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졌다.
푹!
테이블 위에 있던 나이프가 순식간에 록사나의 귀를 베고 지나가 벽에 박혔다.
깨진 귀걸이와 붉은 핏방울이 그녀의 어깨 위로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록사나의 얼굴은 시종일관 고요했고, 닉스를 응시하는 시선은 서늘했다.
닉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혹시 독이 통하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인가?”
닉스는 록사나의 귀걸이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 봤자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천지 분간 못 하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란.”
베르티움에 온 뒤로 내내 같은 귀걸이만 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녀의 시중을 들었던 인형들이 연회장에서 한 말을 들었을 때부터 수상함을 느끼고 관찰한 탓에 쉽게 알 수 있었다.
“네가 가진 거라곤 고작 그 별 볼일 없는 귀걸이랑 나비 떼밖에 없잖아?”
유일하게 가진 무력이라고는 그까짓 마물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감히 건방지게 누구를 죽이네 마네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밖에 유일하게 몸을 보호할 수단으로 보이던 저 귀걸이까지 치워 버렸으니 더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노엘이 네 육체가 상하는 건 싫다고 해서 과격한 방법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야.”
닉스의 눈이 잔인하게 번뜩였다. 그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생각해 보니 네 시체만 안겨 주더라도 노엘은 아쉬운 대로 만족할 것 같아.”
닉스는 록사나가 독나비를 불러내기 전에 마안을 발동시켰다.
화앗!
자홍색 눈동자 안에 주술진이 떠올랐다.
“컥……!”
하지만 다음 순간 피를 토하며 허리를 꺾은 것은 록사나가 아닌 닉스였다.
투두둑!
붉은 핏물이 하얀 테이블보와 옷을 적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는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부릅떴다.
록사나가 앞에 놓인 테이블을 걷어찬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앙! 와장창!
닉스는 불에 타는 듯한 배를 움켜쥐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곧바로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록사나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었다.
“어쩐지…….”
또각.
작은 구둣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밟고 유유히 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모습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도 우아했다.
얕은 파도처럼 부드럽게 물결치던 치맛자락이 마침내 가느다란 발목을 덮고 내려앉았다.
벽을 등지고 선 채로 몸을 긴장시키고 있는 닉스를 향해 고아한 목소리가 꽂혀 들었다.
“방 안에 아무런 장치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변수였나. 그 눈 자체가 매개체였군.”
닉스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입 안에 고인 피를 바닥에 퉤 뱉어 냈다.
이것은 주술이 실패했을 때의 반작용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저런, 놀란 표정이네.”
반면 믿을 수 없게도 록사나는 멀쩡히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닉스가 나이프를 날려 보냈을 때 머리카락이 일부 잘리고 귀가 베이긴 했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야말로 이깟 귀걸이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 쉽게 방심했어?”
이윽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선연한 비웃음이 걸렸다.
“애초에 네가 똑똑해서 이걸 발견한 줄 알았어?”
그 순간 핏발 선 닉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천만에.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정도는 당연히 알아차려야지. 그러라고 일부러 버젓이 눈에 띄는 곳에 하고 온 건데.”
록사나는 그 모습을 너른 마음으로 기꺼이 감상해 주었다.
속삭이는 어투는 상냥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 네 공격을 막은 진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거든. 그런데 넌 내가 보여 준 것만 철석같이 믿고 다른 게 더 있으리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지. 어쩜 멍청하기도 해라.”
록사나가 그리젤다에게서 얻은 것은 주술의 영향을 감소시키는 귀걸이만이 아니었다.
주술의 영향을 역으로 반사시키는 물품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은밀히 숨겨져 있었다.
환영 연회 때 일부러 사용인이 귀걸이를 갈아 끼우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아마 그 점을 수상히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인형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일까지 숨김 없이 노엘의 귀에 들어가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닉스 또한 그녀의 귀걸이를 없앤 것만으로 경계를 늦추었을 터다.
물론 그런 것을 지금 닉스에게 번거롭게 구구절절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너…… 이 계집…….”
닉스는 그제야 록사나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독이 오른 눈으로 언뜻 자애롭게 느껴질 정도로 평온한 빛을 띠고 있는 록사나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이쯤 되면 넌 궁금할 거야. 왜 이 소란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지.”
그리고 이어진 속삭임에 닉스는 불현듯 이상함을 감지했다.
“아까부터 묘하게 바깥이 시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아아, 내 말에 흥분해서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건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과연 록사나의 말대로였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기울이자 기이하게도 밖이 어수선한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노골적인 소음인데도 여태껏 눈치채지 못했다니.
닉스는 이 또한 그녀의 수에 말려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를 악물었다.
바로 그때, 록사나의 옆에 붉은 나비가 나타났다. 닉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곧추세웠다.
“저런, 겁먹지 마. 너한테 사용할 건 아니니까.”
록사나는 작게 손을 휘저어 그녀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온 나비를 돌려보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었지? 독나비가 없으면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거라고 했었던가?”
록사나는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접으며 곱게 웃었다.
“우스워라. 역시 넌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나.”
그러나 닉스에게 꽂혀 든 그녀의 눈빛은 맹금류의 것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