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25화(12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25화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리아였다.
그녀는 아그리체 안에 있을 때처럼 우아하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양산까지 펼쳐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저러다 높은 구두 굽이 부러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데온이 있는 쪽을 향해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풍성한 치맛자락이 그 격한 움직임을 따라 꽃잎처럼 펼쳐졌다.
“정말 너구나!”
가까이에서 데온을 확인한 마리아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너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니?”
반면 데온의 얼굴은 여전히 무감하기 짝이 없었다.
생사조차 서로 확인되지 않던 모자의 재회라고 하기에는 심히 무덤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런 데온이 익숙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녀의 눈길이 눈앞에 있는 아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데온은 역시 탈 난 곳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마리아의 얼굴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혹시 사나랑 같이 있어?”
마리아는 그렇게 물으며 데온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건조한 얼굴에서 해답을 알아냈다.
“아니구나.”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이 잇따랐다.
“그럼 혹시 시에라는 봤니?”
그녀가 데온을 보고 반가워했던 이유가 사실 이것을 묻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질문이 이어진 속도는 빨랐다.
“내 생각에는 그날 저택이 어수선해서 시에라가 다칠까 봐 사나가 밖으로 내보낸 것 같은데 말이야. 도통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
마리아는 일 분도 낭비할 수 없다는 듯이 줄줄줄 말을 이었다.
“그날 네가 사나랑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지 않니? 어디로 보냈다고 얘기 안 해?”
데온은 잠깐 말없이 마리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시에라를 떠올리다가 이내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동쪽으로.”
데온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마리아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동쪽? 여기에서 동쪽 말이지?”
마리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린 뒤 마찬가지로 데온을 등져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짧은 재회가 끝났다.
마리아와 데온은 차라리 제레미와의 사이에서보다 대화가 더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도, 하물며 조금이나마 그런 사실에 마음 쓰지도 않았다.
데온은 숲으로 들어가 또 얼마간 이동했다.
그러다 마침내 숲이 끝나는 부분에서 그의 발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이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소라면…….
“베르티움?”
나직한 음성이 숲 속에 스민 빛 사이를 가로질렀다.
조금 전 마리아가 찾던 사람의 눈동자처럼 하늘이 끝도 없이 푸르렀다.
지금부터 가게 될 길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일지, 이때의 데온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
* * *
베르티움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지점에서 마차는 멈추어 섰다.
카시스와 동행한 심복은 이시도르가 유일했지만 그 밖에도 마차를 관리하는 수행인이 둘 있었다. 그들은 휴식 시간 동안 알아서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카시스와 록사나도 마차에서 내려섰다.
푸드득.
어느새 날아든 매가 카시스의 팔 위로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그는 페델리안으로 전서구를 날리려는 것 같았다.
록사나도 나비를 불러 어디론가 날려 보냈다. 목적지는 그리젤다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베르티움에서의 그 폭발은 그리젤다의 소행인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시기적절하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걸까?
단순히 우연이 겹친 것뿐인가?
베르티움을 빠져나올 때까지도 계속 폭발음이 들리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것은 미리 그려 둔 주술진을 발동시킨 것일 테다.
그러니 그리젤다도 무사히 베르티움을 빠져나갔으리라 생각되었다.
“아가씨.”
록사나가 그렇게 잠깐 다른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이시도르가 옆으로 다가왔다.
“윈스턴 경.”
“그, 베르티움에서…….”
그는 록사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시도르는 별안간 말을 잇지 않고 눈매를 찡그리며 잠시 무언가를 고뇌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짐칸에 있는 인형의 상태를 확인하실 것이라면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러나 너무 노골적인 말 돌리기여서, 록사나는 이유를 묻기 위해 입술을 벌렸다.
“볼일을 끝마쳤으니 내가 같이 가면 된다.”
그때 카시스가 다가왔다.
그는 함께 있던 매를 날려 보내고 온 모양이었다.
이시도르는 록사나에게 베르티움에서 그리젤다를 만난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다가 말을 멈춘 참이었다.
물론 카시스는 그 일을 비밀로 하라고 따로 명령하지 않았지만 이런 것을 제 마음대로 발설해도 되는 것인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물러나 있겠습니다. 혹시 하명할 일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그래서 이시도르는 카시스가 나타나자 괜히 찔끔하여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퍽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카시스와 록사나의 동물적인 육감을 비껴 나가기에는 부족했다.
두 사람 모두 이시도르의 모습에서 수상함을 느꼈다.
게다가 어쩐지 록사나에게 마지막으로 짧게 머문 이시도르의 시선이…….
록사나는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러고 보면 이시도르는 전부터 가끔씩 그녀를 지금과 같은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저 눈빛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굳이 묘사를 하자면, 꼭 사기꾼에게 속아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음, 물론 완전히 같은 느낌은 아니었고, 또 이런 묘사는 과장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쎄한 느낌이 좀 비슷했다.
지금도 이시도르는 그녀에게 말 못 할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이시도르에게 할 말이라도 있어?”
록사나의 시선이 이시도르에게
머무는 것을 눈치챈 카시스가 물었다.
그의 시선이 록사나를 따라 이시도르에게 향했다.
어쩐지 이시도르가 슬쩍 카시스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냥 세심히 신경 써 주는 게 고마워서.”
록사나는 아무것도 아닌 양 그렇게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 후 그녀는 닉스가 있는 곳으로 태연히 카시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이시도르가 보였던 부자연스러움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래도 나중에 이시도르에게 따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 * *
소음이 잦아든 아그리체의 저택 안에는 묵직한 정적이 들어 찼다.
바닥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벽에도 붉게 튄 핏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었다.
“머저리들.”
긴장된 공기가 잔해처럼 가라앉은 조용한 로비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장미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이복형제들을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깔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피로 얼룩진 발자국을 따라가자 금방 익숙한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기척을 느낀 제레미가 뒤돌아보았다.
“뭐야, 너도 저놈들처럼 되고 싶어서 쫓아왔어?”
새파랗게 빛나는 안광이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럼 덤벼.”
만약 그녀가 앞으로 한 발짝이라도 더 걸음을 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은 사나운 기류였다.
일 대 다수의 싸움으로 제레미 역시 자잘한 상처를 입은 뒤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호승심과 혈기가 넘치는 것 같았
“됐어. 괜히 나서서 물어뜯기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샬럿은 흉흉한 기운을 드러내기 시작한 제레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왜 기어 나와서 치근거려? 하던 대로 발 닦고 엎어져 잠이나 잘 것이지.”
샬럿의 말에도 제레미는 여전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조금 전 다른 형제들과의 일도 있고, 제레미의 저조한 기분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샬럿은 발끈하지 않았다.
다만 저렇게 심기 불편한 모습을 보니,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다른 형제들 사이에 껴 있었다가는 그녀 역시 더러운 꼴을 모면하지 못할 뻔했다.
“록사나 언니, 어디에 있어?”
다음 순간 귓가에 흘러든 샬럿의 물음에 제레미가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던 손끝을 움칫했다.
“오빠는 알지?”
샬럿은 제레미가 록사나의 행방을 알 것이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사실과 달랐지만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제레미는 티 내지 않고 덤덤하게 반응했다.
“알면 뭐.”
“그냥 궁금해서.”
샬럿은 그런 제레미를 보고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그리체를 이렇게 만들고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아그리체를 이렇게 만든 게 왜 사나 누나야?”
제레미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는 샬럿의 말에 부정했다.
물론 그것은 거짓말이었지만, 이 시점에 굳이 진실을 밝혀 록사나에게 화살이 향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샬럿, 이 영악한 계집애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페델리안에서 쳐들어오기 전에 란트를 수장에서 끌어내렸을 때에도 대외적으로 이름이 오른 것은 데온이었고, 록사나는 표면에 나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샬럿은 그 모든 일의 배후에 록사나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샬럿이 은근한 어투로 되물었다.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제레미는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래? 그럼 말고.”
좀 더 물고 늘어질 줄 알았는 데 예상외로 담백한 반응이었다.
샬럿은 제레미의 말에 그저 알겠다는 듯이 수긍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한 거야. 말해 줄 생각 없으면 됐어.”
그렇게 말한 뒤 샬럿은 뒤돌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