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6)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26화(126/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26화
제레미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응시했다.
뭐랄까.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나니 오히려 못 미더운 마음이 들었다.
잠깐 예리한 눈으로 샬럿의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가늠하던 제레미가 이윽고 자리에서 발길을 뗐다.
그의 걸음이 향한 곳은 샬럿이 있는 곳이었다.
홰액!
샬럿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느끼고 휙 몸을 돌렸다.
그 직후 그녀는 곧바로 자신에게 쏘아지는 공격에 급히 몸을 피했다.
퍼억!
긴 붉은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리고, 제레미의 손은 목표물 대신 벽을 파고들었다.
“아, 왜 갑자기 공격하고 난리야!”
반사적으로 채찍을 빼 들며 버럭 소리 지르는 샬럿에게 칼날 같은 시선이 닿았다.
“네 뒤통수를 보니까, 왠지 다른 놈들한테 헛소리 지껄이고 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니거든?”
이번에야말로 샬럿은 얼굴을 구기며 신경질을 냈다.
“예전부터 짜증나. 어울리지도 않게 자기가 무슨 병아리 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록사나 언니 뒤만 졸졸졸. 진짜 토 나와.”
제레미가 지금 그녀에게 이렇게 날을 세우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했다.
하여간에 예전부터 록사나, 록사나.
샬럿은 어릴 때부터 징글맞을 정도로 록사나의 뒤만 따라다니던 제레미를 떠올리며 짜증을 표출했다.
“네 이해 따위 필요 없어.”
제레미는 그런 샬럿에게 코웃음을 친 뒤 다시금 그녀를 공격했다.
샬럿은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채찍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드는 제레미의 손을 묶었다.
그 후 샬럿이 빈정거렸다.
“뭐야, 내가 한 말이 틀리다고 하더니. 오빠가 이러니까 괜히 찔려서 예민하게 구는 것 같잖아.”
“아닌데? 그냥 오늘따라 네 얼굴이 짜증나서 그런 건데.”
제레미는 같잖다는 듯이 비웃으며 손을 휘감은 채찍을 과격하게 잡아당겼다.
검은 가죽에 박힌 날카로운 심이 그의 손바닥을 찢었다.
그러나 마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제레미의 움직임에는 한 점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샬럿은 그런 그를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힘과 체중의 차이에 의해 샬럿은 어쩔 수 없이 제레미에게 끌려갔다.
그녀는 오히려 관성을 이용해 제레미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가로막혔다.
“아씨, 진짜 이상한 말 안 한다고!”
제레미가 그녀를 후려치기 직전, 샬럿이 정말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로 그냥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니까! 나도 예전에나 록사나 언니한테 멋모르고 덤볐지, 이제는 안 그러는 거 알잖아!”
그 순간 제레미가 팔의 속도를 늦추었다.
“내가 어릴 때 그 여자한테 된통 당하고 나서 얼마나 얌전하게 지냈는데!”
샬럿의 억울함 가득한 외침은 일견 처절하기까지 했다.
가만히 들어 보니 맞는 말이라, 제레미는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
물론 샬럿의 성깔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부터 록사나에게만큼은 함부로 덤벼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곧잘 그녀에게 기어 올라서 옆에서 지켜보는 제레미를 빡치게 하더니.
그래서 제레미는 그가 목격하지 못했을 때 샬럿이 록사나에게 한 번 크게 데었구나 하고 짐작했다.
하여간에 별것도 아닌 게 겁 없이 깝치더니만. 그러게 누나가 봐줄 때 진작 얌전히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지금도 제레미의 생각은 같았다.
그래, 역시 사람은 마냥 잘해 주면 기어오르는 법이다.
조금 전 그가 손봐 주고 온 겁대가리 없는 놈들처럼.
역시 지금 그들을 발라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뿌듯해졌다.
그런데 문득 샬럿의 말본새가 영 거슬리게 느껴졌다.
“야. 누나한테 호칭이 ‘그 여자’가 뭐야, 시건방지게.”
“악!”
결국 제레미에게 얻어맞은 샬럿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도 아까 초주검을 만들어 놓고 온 다른 형제들을 대할 때와 달리 나름대로 사정을 봐준 약한 손속이었다.
“록사나 언니 오면 다 말할 거야!”
샬럿이 독기 어린 눈을 치뜨며 바득 이를 갈았다.
이럴 때 보면 독개구리 같은 성격은 나이를 먹어도 예전과 똑같았다.
“언니가 없는 사이에 오빠가 얼마나 개지랄을 떨면서 횡포를 부려 댔는지 낱낱이 다 말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을 할 정도로 록사나와 다정한 사이도 아니었으면서 샬럿은 공연히 제레미를 도발했다.
그가 록사나에게는 꼼짝을 못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제레미는 샬럿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멈칫했다.
샬럿의 말은 록사나가 다시 아그리체에 올 거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어투였다.
물론 그녀는 자세한 상황을 모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래, 일러. 사나 누나가 오면.”
제레미를 둘러싼 공기가 갑자기 조금 느슨해졌다.
샬럿은 한 대 더 맞을 것을 각오했다가, 생각과 다른 그의 반응에 오히려 긴장했다.
그러나 제레미는 샬럿을 응징할 생각이 없는지 그녀에게서 손을 뗐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진 얼굴로 뒤돌아섰다.
처음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으나 제레미는 정말 샬럿을 뒤로한 채로 걷기 시작했다.
‘뭐야. 이러고 그냥 가는 거야? 진짜?’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샬럿은 멀어지는 제레미를 의구심과 수상함이 뒤섞인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휘페리온의 공기는 우중충했다.
그 이유는 바로 오르카 때문이었다.
판도라에 이어 휘페리온에 귀환한 오르카는 벌써 일주일이 넘게 어두운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망했어……. 이번 생은 망했어…….”
그는 오늘도 창가에 앉아 아련히 창밖을 바라보며 음산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아래로 힘없이 축 늘어진 어깨에는 세상의 모든 고뇌와 상심이 내려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품에는 술병까지 고이 안겨 있었다.
“적당히 좀 해.”
판도라는 그 모습을 보고 쯧 혀를 찼다.
이렇게 오르카의 뒤통수만 보아도 그의 허탈함과 좌절감이 여실히 전해져 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 거야?”
불편한 마음으로 읊조린 판도라의 말에 오르카가 휙 그녀를 돌아보았다.
“누이, 너무한 거 아니야?”
그의 표정이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배신감마저 느끼는 표정이라 판도라는 일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누이도 마수사니까 내가 지금 얼마나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니야!”
그건 그랬다.
판도라도 오르카가 이렇게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지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저도 모르게 오르카의 시선을 슬쩍 피할 뻔했다.
하지만 판도라에게는 수장에게 일임받은 나름의 사명이 있었다.
“그래, 나라고 네 마음을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다고 해서 없어진 마물들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잖아.”
오르카가 이렇게 혼을 빼놓은 사람처럼 구는 이유는 하루아침에 보유하고 있던 마물들을 대거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휘페리온으로 강제 송치된 판도라보다 한발 늦게 페델리안을 빠져나왔다.
그 소식은 당연히 휘페리온에도 전해졌다. 그런데 그 후 오르카에게서는 어찌 된 일인지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오르카가 또 어디에선가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수장을 비롯한 휘페리온의 사람들은 저마다 불길함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휘페리온의 수장은 오르카를 보지 못하고 위그드라실의 회의를 위해 떠났다.
그러던 무렵에 연락이 끊겼던 오르카가 휘페리온에 돌아왔다.
그런데 페델리안의 마차에 태워져 귀환한 오르카는 어째서인지 잔뜩 넋이 나가 있었다.
페델리안의 사자는 위그드라실로 이동하던 중에 허허벌판에 쓰러져 있는 오르카를 발견해 여기까지 보호해 데려왔노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으나 오르카에게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정신도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오르카는 이제까지 중에 가장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답지 않게 수수한 차림을 하고 있기도 했다.
판도라는 의문을 느끼고 네 장신구들은 전부 어디에 팔아 치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오르카가 허탈감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믿을 수 없게도 오르카는 몸에 소지하고 있던 장신구, 즉 마물들을 모조리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판도라는 기함해 입을 벌렸다.
그래,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왔으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당연했구나!
그제야 판도라는 납득했다.
물론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장신구들 외에도 마물과의 각인을 새긴 보석들은 휘페리온 안에 좀 더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항상 몸에 소지하고 다닐 정도로 아끼던 마물들을 한꺼번에 몽땅 잃은 것이니 이만저만 타격이 큰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르카는 저렇게 깊은 실의에 빠져 사방팔방으로 암울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렇게 볼품없는 꼴로 있을 거야?”
판도라는 오르카를 다독였다.
“곧 위그드라실에 가야 한다고 했잖아. 남은 시간 동안 새로운 마수라도 잡아 길들이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