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8)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28화(128/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28화
리셸은 새삼스러운 듯이 닉스를 살폈다.
그래 봤자 시야에 드러난 것은 닉스의 뒤통수와 등뿐이었지만, 리셸의 눈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과연 전에 봤던 다른 인형들과는 느낌이 다르군.”
마침내 리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묵직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안으로 들어오거라. 긴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구나.”
그 후 닉스를 감옥에 데려다 놓은 뒤, 이번에는 실내에서 카시스의 가족들과 다시 얼굴을 맞댔다.
우리는 베르티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 확실히 이건 그냥 넘겨도 될 일이 아니로군.”
리셸이 턱을 쓸며 읊조렸다. 그 역시 이번 일을 쉬이 보아 넘길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닉스와 베르티움에 대한 더 긴한 이야기는 내일 다시 나누기로 했다.
카시스의 가족들은 시간이 늦은 데다 먼 길을 다녀와 피곤할 테니 일단 푹 쉬라며 카시스와 나를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별관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올린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아 주었다.
카시스와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그녀는 별관의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올린은 그동안 내 걱정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물론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나를 향한 눈빛이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격양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이야, 올린.”
나도 그녀에게 마주 인사해 주었다. 그 순간 올린의 얼굴이 약간 펴졌다가 곧 다시 굳어졌다.
“다치셨습니까?”
아까 실비아의 시선이 스쳤던 곳에 이번에는 올린의 눈길이 닿았다.
“아니. 괜찮아. 그냥 옷만 찢어진 거야.”
“하지만…….”
카시스가 내 어깨를 감싸며 올린에게 말했다.
“나중에. 지금 그녀에게는 휴식이 필요해.”
그의 말에 올린이 곧장 물러났다. 카시스가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나는 올린을 스쳐 지나가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올린이 아까처럼 딱딱한 얼굴을 살짝 이완시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침내 카시스와 나는 별관의 건물 안으로 완전히 들어섰다.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사용인들이 관리를 잘 했는지, 별관은 그동안 비어 있던 티가 나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질 시간인지라, 복도의 창문에서는 붉은 기가 도는 노란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방문 앞에서 멈추어 선 카시스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부드럽게 뺨을 쓸어내리는 카시스의 손에 비스듬히 얼굴을 기대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우선 씻고 나와. 사용인들이 미리 준비해 뒀을 테니까.”
사실 카시스가 꾸준히 정화 능력을 사용해 줘서 청결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는 했다.
“그래. 조금 이따 봐.”
하지만 기분상의 문제도 있는 데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터라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잠깐 헤어졌다.
* * *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동안, 지금 페델리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닉스에게 또다시 생각이 옮겨 갔다.
감옥 앞을 지키고 있는 카시스의 심복이 닉스가 깨어나면 바로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태를 보아 하니 적어도 내일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는 깨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베르티움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자 머리에 은은한 열이 몰렸다.
조만간 위그드라실에서 5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모일 예정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얼마 전에 보았던 노엘 베르티움도 올 것이었다.
베르티움을 떠나 페델리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독나비에게 전달 받았던 그리젤다의 소식도 문득 생각났다.
역시 그녀는 베르티움에서 무사히 벗어난 뒤였다.
그리젤다는 내게 짧은 전언을 남겼다.
[위그드라실에서 만나.]그리젤다도 이번 모임에 대해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나도 ‘록사나 아그리체’이름으로, 지난겨울 발을 들였던 위그드라실에 다시 방문할 생각이었다.
분명 제레미를 대표로 한 아그리체의 사람들도 그 자리에 참석할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실로 오랜만에 제레미와 다시 얼굴을 마주 할 수 있으리라.
베르티움과 닉스의 일이 없었어도 제레미에게는 조만간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내가 아는 그 아이라면, 기약이 없더라도 언제까지고 나를 기다릴 것이 분명했다.
“만약 내가…… 내가 아그리체를 누나가 웃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만들면 다시 돌아올 거야?”
끝끝내 대답해 주지 않던 나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그 말대로 이렇게 혼자 아그리체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를 찾아갈 차례였다.
촤아악.
나는 어느덧 미지근하게 식은 물 속에서 빠져나왔다.
* * *
이제 하늘은 보랏빛이었다.
어느덧 창밖의 해가 거의 진 것을 보고 내가 생각보다 욕실에 오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기야 욕조에 있던 물이 그렇게 식었을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이쪽으로 와.”
나보다 먼저 씻고 나온 카시스가 내 방에 와 있었다.
방에 들어선 나를 보고 카시스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뭐라도 먹어.”
그의 말처럼 테이블 위에는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베르티움에서 페델리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역시 간단하게 요깃거리를 먹긴 했지만 그건 제 대로 된 식사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어? 나 꽤 늦게 나온 것 같은데.”
“아니, 나도 방금 왔어.”
왠지 아닌 것 같았지만 카시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일단 카시스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역시 식욕이 없어서 많이는 먹지 못했다. 카시스는 그런 나를 묵묵히 보기만 할 뿐, 억지로 다른 무언가를 더 먹이지는 않았다.
“머리가 아직 젖었어.”
사용인들을 불러 테이블을 정리시킨 뒤 카시스가 그들 중 한 명에게 수건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 후 그가 나를 소파의 옆자리에 비스듬히 앉히고 직접 수건으로 내 머리를 말려 주었다.
나는 카시스의 말을 듣고 팔을 들어 그의 머리에 손을 댔다.
결 좋은 머리칼이 내 손가락 사이에 감겼다. 예상대로 아주 뽀송한 감촉이었다.
“그러는 당신은 다 말랐네. 역시 오래 기다린 거 맞지?”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 카시스와 눈을 마주했다. 그는 설핏 눈가를 찡그리며 변명했다.
“내 머리카락이 더 짧으니까 먼저 마르는 게 당연하지.”
하얀 수건이 다시 내 시야를 가렸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카시스의 손길에 절로 눈이 감겼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정신적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시스.”
그러다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내 몸에 난 상처가 따로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던데?”
이제 와서는 굉장히 새삼스러운 지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베르티움에서의 다른 일들에 신경이 쏠려서 왜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그냥 넘어가 버렸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카시스가 재차 내 몸 상태에 대해 확인해서 나도 거듭 괜찮다고 말해 주긴 했다.
하지만 카시스도 그 밖에는 다른 말이 없었고, 나도 닉스에게 정신이 팔려 미처 이 일에 대해 의문을 느낄 겨를도, 그에게 이 일에 대해 물을 새도 없었다.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카시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카시스가 잠깐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수건을 옆에 내려놓고 내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니, 내가 지금 만져 달라고 고개를 돌린 게 아니라, 대답을 하라니까…….
그런데 어쩐지 지금 카시스와 내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굉장히 녹녹하고 간질간질해서 나도 분위기를 깨트리기가 망설여졌다.
……혹시 난 이런 분위기에 약한가?
왜인지 카시스 앞에서 이런 식으로 입을 다물게 되었던 게 지금이 처음은 아닌 것 같은데.
스륵.
내가 그런 심심한 의문에 빠져 있을 때, 카시스의 손이 미끄러져 내 귀를 간질였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귓바퀴를 천천히 어루만지고, 다른 손가락들은 귀의 동그란 모양을 덧그리듯이 움직였다.
카시스의 손이 흐르는 길을 따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야살스러운 감각이 고였다.
그러다 마침내 그가 내 귓불을 매만졌다. 본래 귀걸이를 하고 있다가 닉스에 의해 베였던 바로 그 부위였다.
나를 어루만지는 카시스의 손길도, 나를 응시하는 그의 눈길도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이어서 나지막하게 읊조려진 카시스의 말은 그렇지 않았다.
“베르티움에서 내가 널 처음 발견했을 때, 만약 네가 그 인형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짓지만 않았다면 난 그를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 버렸을 거야.”
그의 말처럼, 그 당시 닉스를 마주한 카시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엄청났다. 한순간 나까지 거기에 질식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그만큼 카시스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록사나.”
이윽고 카시스가 내 눈을 정면에서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 인형은 널 상처 입힐 수 없어.”
더없이 곧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동요 없이 확고하고, 또 그만큼 단호한 음성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