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3화(13/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3화
혹시 또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난동을 피우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카시스는 그러지 않았다.
단지 그는 무섭도록 시린 눈빛으로 나를 조용히 꿰뚫어 보기만 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카시스는 오늘 내가 이곳에 방문하기 전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출처는 역시 샬럿인가.
지하 감옥에 쳐들어와 카시스를 공격할 때 그녀가 무어라 입을 놀렸을 가능성이 컸다.
뭐, 그녀가 할 만한 말은 보나마나 뻔했다.
내 입으로 설명하는 건 좀 별로지만 ‘록사나 언니에게 널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망가뜨려 버리겠어!’ 같은 말을 지껄였겠지.
음, 이렇게 말하니까 꼭 치정 같아서 구리네. 어쩌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장난감이란 단어를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카시스가 아직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치료를 목적으로 내가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 건, 좀 더 가까이에서 내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카시스가 아그리체에서의 내 위치를 확인했다.
“란트 아그리체와의 관계는?”
“내 생물학적 아버지야.”
그럼 아까 그가 한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을까.
빨리 내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데 내가 오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없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고 말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난 카시스가 조금은 내 도움을 바라며 빈자리를 아쉬워하기를 기대했는데, 역시 아직은 일렀던 모양이다.
하긴,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를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면, 페델리안의 이름이 울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카시스에게 내 정체를 숨길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에게 내 이름을 알려 주지도 않았을 테고, 주술이 풀려 카시스의 시력이 되돌아오도록 놔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카시스는 ‘록사나 아그리체’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난 대가 없이 그를 도우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정체를 숨기고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야.”
“정체를 밝히지 않은 건 당신이 지금처럼 나를 더 경계할 게 뻔하니까 그런 거고, 당신한테 접근한 이유는…… 말했잖아. 당신이 이곳에서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내 말에 카시스가 싸늘하게 실소했다.
“그래서 죽이는 대신 나를 장난감으로 삼겠다고?”
아, 역시 샬럿이 거기까지 다 불었구나.
하지만 그건 다 이유가 있는데…….
어차피 이제부터 카시스의 취급이 변할 예정이었고, 거기에 대해 알려 줘야 할 필요도 있었으니 딱히 그가 장난감에 대한 걸 알게 된다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음, 그래도 막상 지금 당장 설명하려니 좀 난감하네.
“고문당해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아?”
그래도 지금 이 말은 너무 직설적이었나.
“당신이 지하에서 벗어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아그리체에서 무사히 나가고 싶으면 그냥 내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해.”
“나보고 란트 아그리체의 딸을 믿으라는 건가.”
카시스는 잠깐 말없이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했다.
그의 생각을 읽고 싶었지만 벽이 견고해 도무지 속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난 너를 믿지 않아.”
잠시 후 카시스가 한 점의 동요도 깃들지 않은 고요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네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으니 이상한 일이지.”
그렇게 말하는 카시스는 여전히 속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시스 페델리안.”
그 순간의 그와 나는 명백하게 서로를 재고 있었다.
“내가 지켜 줄게.”
그 순간 카시스의 표정이 아주 이상해졌다.
나는 몹시 기이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카시스를 향해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날 때까지, 내가 지켜 줄게.”
그렇게 해서 이 지독한 운명의 끝이 변할 수만 있다면.
카시스 페델리안과 록사나 아그리체.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는 두 사람의 이름이 지금 막 같은 페이지에 적혀 내려갔다.
그와 내 이야기의 첫 장은 지금 막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4. 개와 주인
당연한 말이지만, 존경하는 내 아버지 란트 아그리체가 카시스를 마냥 곱게 지하 감옥에서 내보내 준 건 아니었다.
카시스는 란트의 수하들에게 끌려 나와 바닥에 굴욕적으로 무릎 꿇려졌다.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그 앞으로 란트 아그리체가 다가와 섰다.
나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카시스가 이곳에 온 첫날처럼 그는 사지가 포박된 상태로 입에는 재갈까지 물려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카시스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강제로 굴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주한 사람을 직시하는 그의 눈빛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 누가 지금의 카시스를 보고 포로라 생각할 것인가.
란트 아그리체를 정면에서 쏘아보는 카시스의 눈동자에는 강렬한 살기가 넘쳐흘렀다.
저렇게 무릎을 꿇은 자세로도 위압감을 조성할 수 있다니. 나는 저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란트 아그리체도 그에 못지않은 눈빛으로 카시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파지직 전기가 튀는 환영을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란트 아그리체의 얼굴에 비린 미소가 걸렸다.
퍼억!
뒤이어 그의 발이 카시스의 가슴팍에 날아가 꽂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탄식했다.
그래, 오늘도 내 아버지는 차곡차곡 데드 플래그를 축적하는 중이구나.
퍽!
아앗, 저긴 샬럿이 찢어진 걸레짝처럼 만들어 놓은 옆구리잖아.
카시스를 완전히 양도받은 후에 치료해 주려고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었는데 일부러 거기를 구둣발로 쑤시다니. 역시 내 아버지라고 해야 할지.
퍼억!
“큭……!”
이번에는 카시스의 얼굴이 란트의 발에 걷어차였다.
나는 조금 전 지하 감옥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슬쩍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카시스의 처참한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지켜 주겠다고 하자마자 이렇게 되어서 어쩐지 조금 무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나는 완전히 카시스를 양도받은 것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지금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란트 아그리체였다.
“리셸 페델리안의 피를 이어서 그런지 눈빛이 시건방진 것까지 꼭 빼닮았군.”
란트 아그리체는 기어이 새로운 피로 카시스를 칠갑해 준 뒤에야 그를 걷어차는 것을 멈추었다.
카시스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옆구리와 이마, 그리고 재갈을 문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란트 아그리체를 향한 눈빛만은 여전히 무섭도록 번뜩이고 있어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그 빌어먹을 개새끼한테 자식이 둘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그중 어느 걸 고를지 조금 고민했었지.”
그때, 란트 아그리체가 전 세계 악당들의 뺨을 골백번 후려치고도 남을 만큼 악독한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계집보다는 오래 버틸 것 같아 일부러 네놈을 골라 온 것인데, 아무렴 이렇게 나와야지.”
친애하는 내 아버지는 기어이 지뢰를 밟아야만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가족 사랑 동생 사랑이 넘쳐흐르는 카시스한테 여동생인 실비아를 걸고넘어지다니.
지금 여주인공 오빠 씨 눈 좀 봐요. 아주 그냥 눈빛만으로 사람 한둘쯤은 가뿐히 찢어 죽이고도 남을 것 같지 않아요?
“록사나.”
“네, 아버지.”
물론 란트 아그리체에게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그는 카시스의 머리를 지그시 짓밟으며 나를 불렀다. 아까부터 그의 뒤쪽에 가만히 서 있던 나는 그의 부름에 조용히 대답했다.
카시스의 뜨거운 눈길도 덩달아 나를 향해 미끄러졌다.
음, 그런데 여주인공 오빠 씨. 설마 지금 나까지 싸잡아서 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내가 지금 겉으로 보이는 포지션이 이렇다고 해서 진짜 내 아버지 편인 건 아닌데. 그런데 이렇게 흉흉한 눈빛은 좀…….
우리 아까 이야기 잘 끝난 거 아니었어?
아니, 그래. 뭐……. 지금 상황에서는 이럴 만도 하지.
내가 카시스 페델리안이었어도 란트 아그리체와 내가 똑같은 악당 부녀로 보였을 것이다.
왜인지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마침 네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네, 기억해 주시다니 기뻐요.”
“이 개새끼는 네게 선물로 주마. 어디 한번 질릴 때까지 가지고 놀아 보거라.”
이 사람도 참. 그냥 주면 될 걸, 뭘 또 괜히 있어 보이려고 생일을 들먹이고 있어? 지금까지 자식들 생일 한번 따로 챙겨 본 적 없는 인간이.
“감사합니다, 아버지.”
나는 냉소적인 속마음을 감추고 란트 아그리체를 향해 웃었다.
“실망하시지 않도록 제가 잘 교육시킬게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 소유의 개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