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2)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32화(132/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32화
록사나는 나비와의 연결을 끊어 냈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휘감아 만지고 있는 카시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햇볕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오는 창가의 소파에 함께 앉아 있었다.
록사나는 독나비를 꺼내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있었고, 카시스는 바깥에 보냈던 심복이 그가 명령했던 것을 조사한 뒤 보고해 온 내용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록사나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린 카시스가 손을 움직인 것이었다.
다행히 깊이 마음 쓸 만한 일은 아니었는지, 록사나의 표정은 금방 펴졌다.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더없이 고요했다.
대화가 없어도 편안한 시간이었다.
록사나는 나비를 몇 마리 불러 무언가를 명령한 뒤 밖으로 날려 보냈다.
카시스는 느른한 손길로 긴 금색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록사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창문에서 새어 드는 햇빛이 록사나의 몸을 하얗게 덧칠하고 있었다. 흰 윤곽을 그리는 몸이 마치 홀로 빛을 내는 것 같았다.
카시스의 얼굴은 지금 방에 고인 공기만큼이나 잔잔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좀 더 면밀히 그 심층을 살펴보면, 소리 없이 첨예하게 침잠해 있는 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카시스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보았던 종이 위의 활자가 어지럽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록사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아그리체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시스가 살피고 있는 것은 록사나의 주변인들이었다.
베르티움에서 이시도르를 그리젤다 아그리체에게 보내 접선하게 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카시스는 록사나의 어머니인 시에라와 심복인 에밀리의 소재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제레미 아그리체를 살펴보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데온 아그리체.
그 이름을 떠올리는 카시스의 눈빛이 섬뜩하게 가라앉았다.
카시스가 보낸 심복 중 하나가 베르티움으로 향하는 데온 아그리체의 행적을 발견했다.
이 시점에 하필 베르티움이라니.
그가 지금 누구를 쫓고 있는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이전에 아그리체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데온 아그리체의 모습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래, 역시 살아 있었던가.
물론 고작 그런 식으로 죽을 남자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 해?”
그때, 나긋한 음성이 카시스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표정이 차가워졌어.”
이번에는 록사나의 손이 얕게 팬 카시스의 미간에 닿았다.
조금 전과는 반대로, 카시스의 기운이 날카로워졌음을 느낀 록사나가 움직인 것이었다.
시선을 들어 올리자 그를 응시하고 있는 록사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이 지금 창가에 번지고 있는 하얀 햇살 그 자체 같았다.
문득, 얼마 전 록사나가 그에게 속삭였던 말이 떠올랐다.
“나, 다시 록사나 아그리체가 될 거야.”
그때, 카시스는 록사나를 독점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인내심이 많아진 건지, 없어진 건지 모르겠어.”
가라앉은 속삭임이 혼잣말처럼 읊조려졌다.
카시스의 손이 록사나의 머리칼에 좀 더 밀접하게 엉겨 붙었다. 손가락 사이에 금색 실타래가 휘감겼다.
카시스는 손을 움직여 거기에 입술을 묻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자 달콤한 향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찼다.
그것이 지독하게 만족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짙은 갈증이 일었다.
예전에 록사나가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그를 돌아보았을 때 느꼈던 음습한 욕망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아무도 록사나를 보지 못하게, 오로지 그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에 그녀를 가두고 싶었다.
록사나의 시야가 미치는 곳에 다른 그 누구도 두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이 오직 그만을 담고, 그녀의 손길이 오직 그에게만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향기로운 입술에 깊이 키스하고, 온몸에 그의 흔적이 새겨질 정도로 엉망으로 몰아붙여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록사나가 이 세상에 오로지 카시스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붉어진 눈으로 그를 보며 절박하게 매달려 올 때면 환희와도 같은 희열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더없이 절제된 삶을 살았던 과거에 비해 형편없을 정도로 인내심이 없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욕망을 꾹꾹 눌러 참아 내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인내심을 지녔다는 증거 같기도 했다.
“재미있는 고민을 하고 있네.”
머리 위에서 록사나가 후우, 야트막하게 웃었다.
보드라운 손이 카시스의 얼굴을 느리게 훑고 지나갔다.
“내 생각에 당신은 지금보다 인내심을 좀 더 줄여도 될 것 같은데.”
그 순간 카시스의 다물린 입술에서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 그런 말 못 할 텐데.”
“생각만으로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거 아닌가.”
록사나가 덧붙인 말에 카시스는 얕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군.”
부스러지는 듯한 웃음이 록사나의 목덜미에 흩뿌려졌다.
카시스가 시선을 들어 올려 눈을 맞댔다.
“그럼 사양 않고.”
카시스의 눈매가 완만한 굴곡을 그리며 느른히 휘어졌다.
뒤이어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비틀었다.
햇빛을 받은 은색 머리칼이 수은 같은 유려한 광채를 내며 사르르 흐트러졌다. 아래로 내리깔린 속눈썹도 반짝이는 은색이었다.
록사나는 희미한 미소를 띤 카시스의 입술이 작게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좀 더 가까이 다가온 카시스가 록사나의 앞섶을 여미고 있는 리본의 끝을 입으로 물어 당겼다.
그러면서 내리깐 시선을 슬쩍 들어 그녀를 강렬히 직시해 오는 모습이…….
“……그렇다고 내 옷을 벗겨도 좋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몸에 열이 올랐다.
사실은 카시스가 선수가 아닌지 갑자기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곧이어 목덜미에 묻어 오는 입술에 말꼬리가 잘렸다. 날카로운 콧날이 살갗을 스치고, 간지러운 숨결이 번져 들었다.
“앞으로는 덜 참아도 된다면서?”
이런 의미의 인내심을 말하는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손목을 감싸 쥐고 있던 뜨거운 체온이 느리게 기어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그런 말은 다시 쏙 삼켜졌다.
살갗을 문지르는 움직임을 따라 체내에 점차 열이 고였다.
평온했던 분위기가 어느새 팽팽히 고조되었다.
은은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 공기의 밀도가 아까보다 확연히 짙어져 있었다.
“으음, 취소하면 안 되려나.”
“안 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록사나의 손은 카시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훑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지하 감옥에 보내 두었던 독나비가 신호를 보내왔다.
“잠깐…….”
카시스의 셔츠를 끌어 내리며 너른 어깨로 미끄러지던 록사나의 손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시야에 닉스가 있는 지하 감옥의 모습이 비쳐 들었다.
다음 순간 록사나가 나비를 통해 본 것은 닉스와 실비아가 만나고 있는 장면이었다.
* * *
쟌느와 헤어진 실비아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하지 않고 다음 행선지를 갈등했다.
록사나와 오빠가 있는 별관에 놀러 가고 싶었으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눈치 있는 동생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실비아에게 있어 카시스와 록사나가 머무는 별관은 거의 그들의 신혼집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젠가부터 먼저 기별 없이 별관에 찾아가지 않고 있었다.
아마 페델리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시끄러우니까 닥쳐. 아니, 그냥 내가 허락할 때까지 얌전히 기절해 있어.”
그러다 문득 어제 보았던 록사나의 새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얼굴에 얼음 가시처럼 박히던 싸늘한 한기.
귓가에 꽂혀 들던 무자비한 음성.
그리고 그 직후 이어진, 나비처럼 사뿐히 날아서 벌처럼 쏘아지던 절도 있는 팔의 움직임까지.
지극히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었지만 실비아의 마음을 훔쳐 가기에는 충분했다
공주님인 줄 알았던 새언니는 사실 여왕님이었다.
실비아는 벌써 몇 번이나 그 장면을 곱씹어 떠올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연쇄작용으로, 록사나의 손에 의해 기절했던 소년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 베르티움의 인형이라고 했지.
게다가 그 육체는 록사나의 오빠의 것이라고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카시스와 록사나가 데려온 인형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외관이 워낙에 피투성이였던 데다, 정신을 차린 직후에는 몸을 마구 뒤틀며 난동을 부려 대기까지 했으니 당연했다.
록사나의 친오빠의 몸이라면, 얼굴도 닮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호기심이 배가되었다.
으음. 궁금한데 잠깐만 보고 와도 될까?
아마 부모님과 오빠는 말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실비아는 미간을 좁힌 채 잠깐 고민했다.
갈등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멀리서 살짝 얼굴만 보고 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그래, 잠깐만 몰래 다녀오자.
고민을 끝낸 실비아는 가벼운 걸음으로 지하 감옥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