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34화(13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34화
* * *
닉스의 기대와는 달리, 그 후 실비아는 다시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닉스는 그 사실이 조금 아쉬웠고, 혹시 록사나와 카시스가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 것은 아닐까 싶어져서 약간 불길해졌다.
“안녕, 닉스.”
하지만 다시 만난 록사나에게서는 아무런 낌새도 엿보이지 않았다.
“지난번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네.”
여느 때처럼 고아한, 그러나 닉스의 눈에는 사악해 보일 뿐인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지하 감옥이 체질에 잘 맞나 봐.”
오늘도 록사나는 그야말로 귀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잘도 그의 속을 긁는 말들을 지껄여 댔다.
그녀는 철창 앞에 미리 마련된 의자에 우아하게 자리 잡았다.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치맛자락 사이로, 지하 감옥에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하얀 발목과 깨끗한 구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록사나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닉스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물어볼 게 없는 거야?”
청아한 목소리가 귀에 휘감겼다.
“지금이라면 대답해 줄 용의도 있었는데.”
닉스는 그런 록사나의 모습을 예기가 스민 눈으로 응시했다.
“네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제 그게 뭐든 필요 없어.”
보아하니 록사나는 지금 당장 그를 죽일 마음이 없어 보였다.
“생각해 보니 네 목적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더라고.”
만약 그렇다면 더러워진 몸을 씻기는 등의 편의를 봐주고, 또 지금까지 이렇게 아무런 물리적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너희들이 뭘 원해서 날 납치했든, 베르티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닉스는 반쯤은 진심, 또 반쯤은 허세인 말을 내뱉었다.
“납치라니,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
그 말에 록사나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은 거야?”
명백한 비웃음에 닉스의 눈빛이 칼을 품은 것처럼 한결 더 예리해졌다.
하지만 록사나의 앞에서 감정적인 동요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싸늘하게 마주한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널 구하러 올 사람은 없어, 닉스.”
그러나 잇따른 그녀의 말에는 무반응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난 그저 베르티움에서 폐기물 취급 받고 처분당하기 직전이던 널 구해서 데려온 것뿐이야.”
“헛소리 마. 내가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을 것 같아?”
“왜 말이 안 되지?”
닉스가 날카롭게 반응하는데도 록사나는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였다.
그에 오히려 닉스는 마음속에 자그마한 불안이 번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넌 베르티움에 정식으로 초대 받아 방문한 나를 죽이려 하고, 더군다나 그 장면을 다른 가문의 사람에게 들키기까지 했는데.”
그 순간 닉스의 몸이 움찔 미동했다.
“그래, 하필이면 그때 페델리안의 청의 귀공자가 베르티움에 올 줄 누가 알았겠어?”
닉스 역시 이 지하 감옥에서 눈을 뜬 이후로 몇 번이고 반복해 되새겼던 기억이었다.
그가 기절하기 직전의 일.
갑자기 나타난 은발의 남자는 분명 청의 귀공자인 카시스 페델리안이었다.
예전에 록사나를 찾으러 페델리안에 갔다가 마안으로 성문 안쪽을 엿볼 때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나타난 단테도 분명 그를 카시스 페델리안이라 불렀다.
혹시 그것 또한 록사나의 계략이 아닐까 싶었으나, 그때 언뜻 본 록사나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묻어 있었던 것을 보면 그건 아닌 듯했다.
“단테가 마지막에 네게 뭐라고 말했는지 떠올려 봐.”
그렇지 않아도 나지막하던 록사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한 층 더 작아졌다.
닉스는 저도 모르게 숨조차 죽이며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록사나의 목소리에는 무의식중에 주의를 집중하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닉스, 당신이 정말 록사나 양을 공격했습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구제불능이군요.”
귓가에 서늘히 울리던 목소리와 온정 없는 눈길.
그것이 닉스가 기절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이었다.
그런 단테의 모습은 닉스의 마지막 기억이기도 했기 때문에, 록사나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닉스는 이미 그것을 수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끝에서 닉스는 정말 혹시 하는 생각이지만…….
“그는 베르티움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너 혼자 제멋대로 벌인 것이라고 변명하더군.”
어쩌면 그가 베르티움에게서 버림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자그마한 의심이 마음속에 싹을 틔우는 것을 느껴야 했다.
“네가 내게 독을 먹인 것도, 또 네가 날 공격한 것도 말이야. 거기에 베르티움의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던데.”
물론 여기서 그런 속마음을 내색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록사나의 앞에서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결백하다는 증거로, 그 자리에서 당장 널 부숴 버리겠다고 먼저 권하지 뭐야.”
하지만 지금 들은 말은 그런 닉스의 의심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마치 그의 생각이 합당하다고 두둔이라도 해 주듯이, 록사나가 닉스를 향해 낙인찍었다.
“베르티움에서는 널 버렸어.”
“웃기지 마.”
좀 더 명확한 증거와 논리로 록사나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막상 입에서 나오는 것은 이런 감정적인 목소리뿐이었다.
록사나가 오늘 그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하기 전부터 이미 닉스도 똑같은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한번 가슴속에 파리를 틀고 자리 잡은 불길한 예감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네가 왜 이곳에 있겠어? 이미 너도 알고 있겠지만 여긴 베르티움이 아니야.”
“그때는 내부가 소란스러웠으니까, 그 틈을 타서…….”
“설령 그렇다 해도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너까지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해? 마지막 기억을 잘 되새겨 봐. 단테뿐 아니라 노엘 베르티움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그녀의 말대로였다.
“게다가 네 말대로라면, 그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있을까?”
더군다나 정말 그 자리에는 노엘과 단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록사나와 카시스가 닉스를 몰래 데리고 빠져나와 베르티움에서 아직 배후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록사나는 혼란스러워하는 닉스를 향해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한번 잘 생각해 봐. 넌 정해진 명령만 수행하는 다른 인형들과 달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잖아.”
닉스의 본능은 록사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속이는 데 능숙한 부류였다.
하지만 벌써 마음에 박혀 버린 의심 한 조각이 닉스의 눈과 마음을 흐리게 만들었다.
또, 노엘이라면 몰라도 단테라면 충분히 록사나의 말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소에도 닉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닉스를 기절시키기 전에도 록사나에게 했던 일의 모든 혐의를 그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만큼은 닉스가 제 두 귀로 직접 들은 사실이었다.
닉스가 아는 단테라면 얼마든지 베르티움을 위해 그를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노엘은…… 물론 닉스를 몹시 아끼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테가 옆에서 열심히 구슬렸다면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노엘의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그의 손에서 부서져 나가던 인형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따위 말을 믿으라고 하다니,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여기에서 록사나의 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닉스는 냉소를 지으며 빈정거렸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베르티움에서 버림받은 내가 왜 그 자리에서 죽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널 죽이는 대신 데려가겠다고 내가 요구했으니까.”
“네가 왜? 너야말로 날 죽이고 싶어 했잖아.”
록사나의 눈빛이 미동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주 작은 흔들림이었지만, 닉스는 록사나에게 온 감각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무의식중에 내비친 것 같은 그 작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글쎄…….”
지금까지와 같이 담담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느릿한 음성이 닉스의 귀에 파고들었다.
“어쩌면 그날, 네 앞에서 마지막 순간 주저하고 만 것과 동일한 이유일지도 모르지.”
닉스의 입이 다물렸다.
그날 베르티움에서 있었던 기억이 다시금 그의 머릿속에 부상했다.
록사나의 말처럼 그때 결국 그녀는 닉스를 죽이기 직전에 머뭇거렸었다.
그 반응만큼은 어떤 가식으로도 숨길 수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에 닉스는 뒤엉키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던 록사나가 다시금 입을 연 것은 잠시 후였다.
“그래도 옛 주인이 정 그립거든, 그가 있는 곳으로 다시 데려다줄게.”
“뭐?”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말에 닉스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설마하니 다시 그를 베르티움에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알겠지만, 사실 난 너란 존재가 달갑지 않아. 네가 내게 한 짓은 지금 생각해 봐도 불쾌하고.”
록사나의 눈빛과 음성에는 정말 닉스를 향한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솔직히 널 여기에 데려온 건 충동적인 이유에서였어. 그 자리에서 널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것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을 보니, 오히려 록사나에게 그를 사탕발림으로 속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네가 굳이 널 죽이려 했던 옛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말리지 않을게. 날 믿어 달라고 애써 설득까지 하면서 널 살려야 할 이유는 내게도 없으니까.”
그것을 끝으로, 닉스의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온기 없이 건조하고 서늘했다.
‘……정말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게 아닌가?’
록사나의 뒷모습을 보는 닉스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배어 나온 어지러운 감정이 번져 있었다.
마침내 시야에서 흔들리던 금빛 머리칼과 하얀 옷자락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닉스의 혼란과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