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35화(13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35화
* * *
닉스를 등진 록사나의 얼굴은 무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다.
등 뒤에서 침묵을 타고 닉스의 혼란이 전해져 왔다.
그는 록사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지간히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이미 불신의 씨앗은 심어 두었다.
사람의 믿음이란 생각보다 얄팍해서 위기의 순간에는 특히나 흔들리기 쉬웠다. 이미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이제 곧 위그드라실로 이동해야 하기도 했다.
그러니 노엘이 있는 곳에 닉스를 데려다주겠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인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정말 그를 베르티움에 돌려보내 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페델리안과 록사나는 위그드라실로 향하는 길에 베르티움에서 그들을 습격해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베르티움의 입장에서는 실제 사람의 육신을 인형술에 사용한 증거인 닉스가 다른 5가문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베르티움에 머무는 동안 지켜본 결과, 그곳의 두뇌는 단테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가 최우선으로 선택할 것은 위그드라실에 들어가기 전에 닉스의 육신을 완전히 손상시켜 없애는 쪽일 것이다.
물론 페델리안에서는 절대 닉스를 빼앗기지 않을 테니, 베르티움의 행동 방향은 다소 과격한 쪽으로 흘러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닉스의 혼란도 정점을 찍을 것이 분명했다.
지하 감옥을 완전히 나서기 전, 록사나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거의 입구에 다다른 상태였기에 당연히 닉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침정한 붉은 눈동자가 잠깐 고요히 멈추어 있다가 이윽고 소리 없이 거두어졌다.
록사나는 눈앞의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 *
“록사나.”
문밖에서 카시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 감옥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수하가 록사나를 보고 묵례했다.
그는 실비아를 감옥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던 당사자였다.
아그리체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번에 경을 치며 처벌을 내렸을 일이었으나, 페델리안에서는 일의 경위를 엄중히 따져 책임 여하를 결정지었다.
사실상 위에서 실비아의 출입금지 명령을 내린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처우는 그저 두 사람에게 엄중히 주의를 주는 선에서 그쳤다.
록사나는 카시스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실비아는 어때?”
조금 전 록사나가 닉스를 만나는 동안 카시스는 실비아를 찾아갔었다.
록사나의 물음에 카시스가 답했다.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래, 다행이다.”
내심 염려하고 있던 참이라 카시스의 확답에 마음이 놓였다.
실비아와 닉스가 지하 감옥에서 만난 일로 줄곧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독나비를 통해 본 광경에서는 크게 문제 될 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실비아가 닉스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해 경계심이 들었다.
닉스가 베르티움에서 록사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실비아의 앞에서 내숭을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카시스가 직접 나서서 실비아에게 닉스에 대해 당부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실비아는 카시스의 말을 곧바로 이해한 듯이 닉스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곧 닉스와 함께 위그드라실까지 이동해야 하니 한동안은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그보다 정말 혼자 갈 건가.”
이번에는 카시스가 록사나에게 물을 차례였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실비아를 생각했을 때와 비슷한 우려의 빛이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록사나는 야트막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당신도 인정했잖아.”
그에 카시스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지만, 록사나의 말에 달리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위그드라실로 향하는 행렬이 페델리안에서 출발했다.
거기에 록사나는 속해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한발 앞서 중립 지역으로 향했다.
록사나에게는 위그드라실로 가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그 후 그녀는 페델리안과 합류하지 않고 따로 위그드라실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물론 카시스는 처음에 록사나의 계획을 반기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이쪽이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납득했다.
그런 뒤에는 오히려 카시스가 록사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었다.
비록 베르티움에서 습격할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을 막아 내는 것은 페델리안의 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록사나가 굳이 닉스의 일로 발목이 잡힐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록사나도 페델리안을 믿고 따로 움직일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카시스는 록사나에게 있을 혹시 모를 위험이 걱정되는지, 올린이나 다른 심복들을 그녀에게 붙여 주고 싶어 했다.
물론 웬만해서는 록사나가 위험에 처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록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되도록 카시스의 뜻대로 해 주고 싶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리했다.
록사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신속히 움직이기를 원했다.
게다가 아그리체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록사나 역시 단신일 때 가장 최대의 효율을 내는 개인 능력에 특화되어 있었다.
카시스는 그녀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래서 그들은 위그드라실까지 각자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
록사나는 곧장 중립 구역으로 향했다.
그녀의 목적지는 위그드라실이 있는 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사람들이 밀집한 시가지는 활기가 넘쳤다.
본래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중립 지역이다 보니, 모두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옷자락으로 가리고 있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록사나는 그런 시가지를 지나 조금 더 걸었다.
마침내 그녀의 발길이 눈앞에 나타난 문을 보고 우뚝 멈추어졌다.
* * *
문득 시야가 어둡게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황혼 녘이었다.
시에라는 주황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하늘을 잠깐 지켜보다가 베스를 불렀다.
“방이 어두우니 불을 켜야겠다.”
“네, 마님.”
베스는 다른 말 없이 곧바로 움직였다.
다른 때라면 베스가 먼저 눈치껏 나서 방의 불을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시에라가 한참 사색에 잠긴 듯해 그저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던 것이었다.
데온이 떠나고 난 뒤부터 시에라는 지금처럼 혼자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혹시 그를 그렇게 보낸 일을 후회하는 것일까?
아그리체의 사용인이었던 베스 역시 시에라의 아들인 아실을 죽인 것이 데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베스는 마음속에 스미는 생각에 시에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염려와는 달리 시에라에게서 상념의 흔적은 발견되었을지언정, 번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소리 없이 움직인 베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초에 불을 밝혔다.
그러는 동안 에밀리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쳤다.
촤르륵…….
그러던 중, 어째서인지 에밀리의 손이 갑작스럽게 멈추어졌다.
“…….”
그녀의 눈길 또한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어느새 안으로 들어와 창틀에 내려앉아 있는 붉은 나비 한 마리.
“에밀리?”
시에라와 베스가 불현듯 움직임을 멈춘 에밀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이윽고 에밀리의 손이 창가에 드리워져 있던 커튼에서 떼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진 그녀의 걸음은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문가로 향하고 있었다.
똑똑.
때맞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실내가 조용해졌다.
에밀리는 방문한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문의 잠금장치를 풀기 시작했다.
그때쯤에는 시에라도 무언가를 감지하고 숨을 죽였다.
달칵. 끼이익.
마침내 열린 문 사이로 한결 짙어진 낙조가 새어 들어왔다.
온통 짙붉은 색으로 일렁이는 풍경이 시야에 번졌다.
에밀리는 그 속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은 사람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머리 위에 눌러쓰고 있던 겉옷의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금빛 폭포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 밑으로 흘러내렸다.
다음 순간 귓가에 울린 것은 시에라의 꿈에서조차 어른거렸던 목소리였다.
“오랜만이야, 에밀리.”
덜컹.
시에라가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나고 만 것은 당연했다.
그 소리를 듣고 에밀리가 고개를 숙이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시에라는 앞을 가로막는 것 하나 없이 그녀를 찾아온 사람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시에라는 저도 모르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사나야.”
록사나는 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어머니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그리체에 있을 때에도 늘 거리를 두고 멀리했던 어머니였기 때문에 이렇게 눈을 맞대고 서 있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아그리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또 이제는 더 이상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어머니를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록사나는 입술을 벌려 지금 마주한 사람에게 하고 싶은 솔직한 말을 속삭였다.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