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6)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36화(136/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36화
* * *
“실비아, 혹시 이동 중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
저녁 무렵, 페델리안은 이동을 멈추고 행렬을 재정비하며 야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카시스가 상황을 살필 겸, 실비아에게 다가왔다.
“응, 고마워.”
실비아가 이렇게 장기간 페델리안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지난겨울에 위그드라실에서 열린 화합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이번 일정이 실비아에게 고되지는 않을지 염려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들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생생했다.
“록사나 언니도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실비아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카시스가 대답했다.
“곧 볼 수 있어.”
얼핏 단조롭게 느껴지는 차분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 안에 어렴풋이 깃든 감정을 느끼고 힐끗 오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시야에 담긴 카시스의 얼굴에는 저물어 가는 해가 짙게 번져 들어 있었다.
그는 실비아가 아니라 어딘가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록사나는 떠나기 전에 실비아에게도 미리 인사해 주었다. 다른 볼일이 있어 따로 이동할 테니 나중에 위그드라실에서 보자면서, 그녀는 실비아를 향해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카시스를 바라보던 실비아의 눈이 언뜻 닉스가 갇힌 마차로 향했다.
그는 페델리안의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었다.
“……누구야, 넌?”
문득 지하 감옥에서 닉스를 만났을 때의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녀를 발견한 인형이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때 실비아는 은근히 놀랐다.
게다가 말끔해진 인형의 모습이 생각보다 록사나와 닮아 있어서 두 번째로 놀랐고, 그녀에게 건네진 목소리가 첫날 보았던 것과 달리 굉장히 나긋나긋하고 여려서 세 번째로 놀랐다.
“그러는 너는…….”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그러는 너는 누구냐’고 반문하려다가, 곧 그의 정체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음을 깨닫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지하 감옥 앞을 지키고 있다가 실비아와 함께 동행한 수하도 뜻밖의 상황을 경계하며 실비아를 만류했다.
“실비아 아가씨,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나는 닉스.”
그 순간, 감미로운 미성이 다시금 실비아의 귀에 녹아들었다. 귓가에 고이는 목소리가 마치 노래하듯이 유려하고 고왔다.
나이는 10대 중반이나 그보다 약간 더 많을까?
죽은 시점에서 성장이 멈춘 육체이기 때문인지 그는 여동생인 록사나보다 오히려 어려 보이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닉스의 아름다운 얼굴은 티 한 점 없이 맑고 선량해 보였다.
그 얼굴만 보면 누구나 갖고 있던 경계심을 절로 사그라뜨리고 말 것 같았다.
“네 이름은 실비아구나.”
닉스의 입에서 실비아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수하가 흠칫했다.
그는 조금 전 자신이 저도 모르게 닉스의 앞에서 실비아의 이름을 부른 것을 깨닫고 실수를 자책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눈치채고 실비아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오래 머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제 됐으니까 그만 돌아가자.”
그래서 그녀는 닉스에게 더 이상 현혹되지 않고 다시 그를 등지고 돌아섰다.
“잠깐만, 실비아. 가지 마.”
철컹.
그때, 사슬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애간장이 녹을 정도로 애처로운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를 그냥 무시하고 돌아서자니 마치 그녀가 아주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찝찝해졌다.
“미안, 난 이제 가야 돼.”
“왜?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그건 곤란해.”
“여긴 너무 좁고 답답해. 그리고 외로워.”
닉스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억울한 편견을 갖고 매몰차게 굴었는지를 설명하며 실비아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이곳을 찾아왔던 사람들 중에 내게 적대적이지 않았던 건 너뿐이야. 그러니 나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눠 줘.”
그런 닉스의 모습은 정말 더 없이 무해하고 가련해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실비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 중에 그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건 실비아뿐이었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그녀는 한순간 저 인형에게 마음이 흔들려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질책해야 했다.
닉스를 방문했던 페델리안의 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에게 싸늘했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테니까.
그리고 지금 본 닉스의 행동으로 실비아는 이 인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 역할이 아니라서. 그럼 난 갈게.”
그렇게 말하는 실비아의 얼굴은 여전히 온화했다.
하지만 다시금 뒤돌아서는 그녀의 행동에는 조금 전과 달리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실비아의 등 뒤에서 닉스는 멈추지 않고 속삭였다.
“실비아, 다음에 또 날 만나러 와 줘. 부탁이야.”
그때의 일을 상기하며 실비아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어쩐지 맨 처음 보았던 카시스와 록사나, 그리고 닉스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더라니.
카시스는 ‘그 인형은 교활하니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태도를 보이건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녀를 따로 찾아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카시스의 말을 듣고, 실비아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지하 감옥에서 본 닉스의 인상이 아무리 좋았다 한들, 곁에 있는 믿을 만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베르티움에서부터 그들 사이에는 실비아가 모르는 다른 여러 일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고, 카시스와 록사나가 이유 없이 닉스를 싸늘히 대할 리도 없었다.
그녀는 어린애가 아니니 너무 염려할 것 없다고도 덧붙이고 싶었지만 오빠에게는 소용없을 것 같아 그냥 말았다.
실비아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페델리안을 벗어난 적이 없어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실비아 스스로도 그녀가 아직 다른 사람들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그들이 그녀를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실비아가 닉스가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떼었을 무렵, 카시스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붉은 해가 떨어지는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곧 밤이 찾아올 것이다.
위그드라실에 완전히 들어서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이틀.
그 안에 찾아오리라 카시스가 예상 중인 방문객은 베르티움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시스가 일말의 망설임을 남기고 록사나를 먼저 페델리안에서 떠나보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오빠, 이제 저녁 먹을 건가 봐. 저쪽에서 부르는데?”
“우리도 가자, 실비아.”
“응.”
카시스와 실비아는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나란히 걸어갔다.
등 뒤로 펼쳐진 너른 하늘에 짙은 남색 물감이 서서히 번져 가고 있었다.
* * *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이런 식으로 딸과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시에라의 푸른 눈이 더듬듯이 마주한 얼굴을 살폈다. 그 직후 그녀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록사나의 얼굴이 전보다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어머니도 전보다 편안해 보이세요.”
시에라와 마찬가지로 록사나 역시 눈앞에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지내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어요?”
“아니. 네가 미리 세심하게 준비해 준 덕분에 편하게 지냈단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여상한 인사말이 몇 번 오고 갔다.
“너는?”
“저도 잘 지냈어요.”
둘 다 아그리체에서의 마지막 날이나 란트의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모녀지간인데도 두 사람의 대화에는 친밀감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시에라와 록사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순간 두 사람 모두 확연히 이완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곁에 있는 에밀리와 베스가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에라와 록사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시에라는 록사나의 얼굴을 잠깐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난겨울, 그런 식으로 아그리체를 떠났을 때부터 단 하루도 록사나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를 찾으러 가지 않았던 것은, 역시 딸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잠시 후 다시금 작게 벌어진 시에라의 입술에서 자그마한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나는, 사나 네가…….”
영영 나를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 그래서 어쩌면, 이대로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시에라는 뒤따라 나오려던 말을 삼켜 냈다.
그렇지 않아도 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어미였다. 지금 심중에 있는 말을 가감 없이 입 밖으로 토해 내는 것은 자격 없는 투정밖에 되지 않았다.
어미가 되어서 딸을 품어 주지는 못할망정 그런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결국 록사나는 지금 이렇게 그녀를 만나러 와 주지 않았는가?
“나는, 사나 네가 무사하면 다른 건 다 상관없단다.”
결국 시에라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아그리체에 있을 때부터 줄곧 품고 있던 진심이었다.
시에라의 말에 록사나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이런 순간이 낯설었다.
그것은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또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어딘가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록사나는 시에라의 눈빛이 전보다 한결 단단해진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가느다란 실바람에도 금방 가냘프게 휘청거릴 것 같았다면, 지금은 어떤 강한 바람이 불어닥쳐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저도…….”
이윽고 록사나도 입을 열어 속삭였다.
“어머니가 다치시는 걸 바라지 않아요.”
시에라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록사나가 아주 예전부터 속에 담고 있던 마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아 보니, 지금 두 사람이 각자 내뱉은 진심은 퍽 닮아 있었다.
시에라는 딸이 아들처럼 죽지 않기를 바라 아그리체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를 종용했고, 록사나는 어머니를 다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모진 말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결국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각자가 원하는 방식을 고집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 다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똑똑.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문을 열고 베스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다과를 얹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다가온 베스가 작은 테이블 위에 들고 온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록사나와 시에라의 대화도 끊겼다.
“그런데 어머니.”
그러는 동안 록사나의 내리깐 시선이 한 차례 느리게 주위를 훑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녀는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던 부분에 대한 답을 시에라에게 구했다.
“제가 오기 전에, 이곳에 누가 머물다 갔나요?”
달그락…….
그 순간 찻잔을 내려놓던 베스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하지만 시에라는 그런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여전히 차분한 얼굴을 한 채로 눈앞에 있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곧 굳게 다물려 있던 시에라의 입술이 작게 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