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37화(13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37화
* * *
닉스는 어딘가 꺼림칙하고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록사나의 말처럼 정말 그는 지하 감옥에서 꺼내져 어딘가로 이동되는 중이었다.
행렬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중립 구역으로 향하는 것 같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대로 중립 구역을 지나쳐 일직선으로 쭉 움직이면 베르티움의 영역이 나오는 위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닉스는 혼란스러웠다.
지하 감옥에서 록사나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 이대로 그를 다시 베르티움에 돌려보내 줄 생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여전히 의심이 되었기 때문에, 닉스는 호시탐탐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모두들 단 1분 1초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아서, 닉스는 한 시라도 혼자일 때가 없었다.
심지어 모두가 잠든 밤이 되어서도 닉스가 있는 마차 밖을 지키고 선 사람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닉스는 지하 감옥에서 벗어났을 때부터 제멋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줄곧 포박된 상태였다.
당연히 그는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무도한 인간들은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닉스가 별다른 신진대사가 없는 인형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그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무리에는 록사나가 보이지 않아서, 닉스는 그 점도 신경이 쓰였다.
지난번에 지하 감옥에서 만났던 페델리안의 공주도 이용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어째서인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닉스가 이곳에서 본 낯익은 얼굴은 오직 카시스 페델리안뿐이었다.
닉스는 사지가 묶여 운신의 자유를 빼앗긴 채로 마차 안에서 불편하게 몸을 뒤척였다.
깊은 밤.
깨어 있는 것이 세상에 오직 그 혼자뿐인 것처럼 몹시도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이었다.
스르륵.
소리 없이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작은 소음 하나 없이 어찌나 매끄럽게 문이 열리던지, 닉스는 하얀 달빛이 시야에 녹아 흘러내릴 때까지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눈앞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닉스의 입에서 의문 어린 음성이 새어 나왔다.
이 시간에 그를 찾아올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마침내 별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등진 채 ‘그 사람’이 나타났다.
시야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거대한 암흑.
눈앞에 우뚝 선 존재를 인식한 그 찰나의 순간 닉스는 그렇게 느꼈다.
‘그’는 저절로 등골을 쭈뼛거리게 만드는 강렬한 기운을 가진 남자였다.
어떤 빛조차 모조리 흡수시켜 버릴 것 같은 새까만 머리칼이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허공에서 잘게 흩날렸다.
그 사이로 섬뜩할 정도로 시리고 무자비한 붉은 눈이 그대로 닉스를 꿰뚫었다.
“……!”
어둠 속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둘 다 동시에 숨을 멈추었다.
쏴아아…….
멀리서 몸을 부대끼며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가 빗소리처럼 아득하게 귓가에 울렸다.
데온은 시야에 비친 소년을 보고 일순간 지금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는가 싶었다.
그는 아까부터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페델리안의 행렬을 주시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얼핏 눈에 익은 금발이 이곳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밤늦은 시간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몸을 움직였는 데…….
문을 열자 그의 눈을 파고든 것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두 번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여기지 않았던 얼어붙은 푸른 눈동자를 눈앞에 두고 데온은 생각했다.
이것은 한밤의 헛된 환영인가, 아니면 그를 찾아온 유령인가?
마지막으로 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지극히 오래된 과거의 일이었는데도, 마치 불과 하루 전에 만나기라도 한 사람처럼 오늘날까지도 기이할 만큼 선명히 데온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꼭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얼룩으로 망막에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왜냐하면 그는 데온이 죽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니까.
“……아실.”
바닥을 긁는 것 같은 지독히도 낮은 부름이 데온의 성대를 울리며 달빛에 박혀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닉스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거대한 공포가 속수무책으로 그를 집어삼키는 것을 느꼈다.
발밑에서부터 파리를 틀고 끈적하게 몸을 기어오른 차가운 뱀이 기어이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혀가 굳어 그러지 못했다.
부릅뜬 눈도, 멍청히 벌어진 입술도 형편없을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온몸이 차게 얼어붙어 그대로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아 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납득 불가능한 강렬한 감정의 폭풍이었다.
그렇게 부서진 시간의 파편 속에서 데온과 닉스는 같은 시곗바늘에 꿰인 채 아연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데온이었다.
스스로조차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그는 눈앞에 있는 ‘아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떤 목적의식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저 무의식의 일환일 뿐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유령이나 환영이 아니라 진짜 실체를 가진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몸짓이기도 했다.
닉스는 구석에 몰려 뱀의 아가리 앞에 머리를 내민 쥐처럼 옴짝달싹 못 했다.
그렇게 데온의 손이 닉스에게 막 닿으려던 찰나.
사악!
예기를 품은 공기의 파동이 데온에게 파도처럼 달려들었다.
그것을 눈치채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1초만 늦었더라도 잘려나가는 것은 옷자락이 아닌 팔이었을 것이다.
“역시 너로군, 데온 아그리체.”
달빛이 뒤섞인 새하얀 광채가 날카로운 칼날에 반사되어 시야에서 부서져 내렸다.
섬뜩한 안광이 스민 붉은 눈동자와 깨진 달 조각 같은 시린 금색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산산이 조각나 깨진 시선이 눈앞에 선 상대의 폐부까지 들쑤실 듯이 날카롭게 박혀 들었다.
순식간에 주위에 흐르는 공기가 팽팽해졌다.
데온은 뒤로 물러나 몸을 긴장시킨 채 잠시 주위를 살폈다.
그는 베르티움에서 소식을 듣고 곧장 페델리안으로 향했다.
그러다 중립 구역에 들어서는 페델리안의 행렬을 발견하고 밤을 기다린 것이었다.
그런데 록사나는 없고 어째서인지 죽은 아실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미끼였군.”
조금 전에도 일부러 사람을 물려 틈을 만든 것이었나. 어쩐지 주변에 록사나의 독나비가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끼라고 할 것도 없지.”
그러나 카시스는 데온의 말에 긍정하지 않았다.
“이쪽에서는 초대할 생각도 없었는데 혼자 제멋대로 기어들어 온 것 아닌가.”
삭막하고도 스산한 미소가 카시스의 입가에 피어올랐다.
데온이 베르티움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혹시 그가 록사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두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페델리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베르티움이었다.
곧바로 신호를 보내 대기 중인 수하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었지만 카시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데온은 베르티움에서 들었던 정보들을 연결시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베르티움의 인형.”
찌를 듯한 시선이 마차의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닉스에게 틀어박혔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아실과 닮은 외양이라니.
심지어 죽기 전 부상을 입었던 왼쪽 눈조차 기억과 동일하지 않은가?
게다가, 어째서 저것이 페델리안의 수중에 있지?
“진짜 아실이기도 하다.”
데온은 덧붙여진 카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데온이 알아내야 할 것은 저런 인형 따위가 아니었다.
“록사나는?”
마침내 데온의 입에서 내뱉어진 이름에 카시스의 몸에 닿은 공기의 온도가 변했다.
데온 역시 온몸에서 거칠고 날선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카시스 페델리안에게 록사나의 행방을 묻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네게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검은 밤바람 속에 송곳 같은 한기가 영글었다.
마치 지금이 봄이 아니라 북풍이 기승인 한겨울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불과 한 계절 전, 두 사람이 아그리체에서 조우했을 때처럼.
두 개의 거대한 기류가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압사시켜버릴 듯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데온 아그리체. 착각하지 마라. 질문은 네 몫이 아니다.”
두 남자는 어찌할 수 없는 강렬한 살의를 품고 서로를 마주했다.
“나야말로 묻지. 록사나를 만나려 하는 이유가 뭐지?”
그러나 그들은 인내했다.
지금 이 순간 카시스와 데온, 두 사람에게는 동일한 제어 장치가 목줄처럼 걸려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속에서 드글거리는 거센 충동이 이성을 짓눌렀다.
“우습군.”
이내 느리게 벌어진 데온의 입술에서 조롱 어린 싸늘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나야말로 그깟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없다.”
밤의 광기를 품은 달이 머리 위에서 아득하리만치 희게 빛났다.
“그래.”
뒤이어 겨울 빙벽을 닮은 미소가 카시스의 얼굴에서 부서졌다.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강제로라도 말하게 만들어주지.”
다음 순간 두 사람이 격돌했다.
눈부신 섬광이 시야를 마비시킬 것처럼 한 차례 첨예하게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