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4화(1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4화
* * *
“록사나 아가씨, 장난감의 조치는 어떻게 할까요?”
란트 아그리체가 자리를 떠난 뒤 카시스의 운반을 맡은 수하들이 내게 물었다.
“내 소유의 빈방에 데려다 놔.”
카시스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가뜩이나 성치 않은 몸인데 방금 전 란트 아그리체가 퍼붓는 무자비한 폭력을 또 한 번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란트 아그리체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의식의 끈을 놓은 것을 보면, 카시스의 의지력은 인정해 줘야 했다.
“영 못 봐 줄 꼴이네.”
나는 피떡이 된 카시스를 힐끔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지고 놀 마음이 들지 않겠어. 아무래도 그 전에 치료 정도는 해 줘야 할 것 같으니 알아서 처리해.”
“예, 알겠습니다.”
카시스는 수하 두 명에게 양팔을 붙들려 질질 끌려갔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선명한 혈흔이 남았다. 당연히 그 피의 원천인 카시스의 몸은 완전히 못 봐 줄 정도였다.
나는 아그리체에서 내내 구르기만 하는 카시스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나는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피투성이가 된 카시스를 바라보는 동안 어떤 의문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멀어지는 카시스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
그러다 이내 나중에 다시 그를 만났을 때 이 의문을 확인해 보기로 하고 자리에서 발길을 돌렸다.
* * *
“사나 누나, 이제 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나는 층계참에 앉아 있는 제레미를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제레미, 왜 그러고 앉아 있어?”
그는 계단에 앉아 다리에 팔을 올리고, 또 그 팔에 턱을 괸 상태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집이 넓은 만큼 계단도 넓었기 때문에, 거기에 혼자 동그마니 앉아 있는 제레미의 모양새가 더욱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나를 기다린 것 같은데…….
방문 앞도 아니고, 왜 하필 계단 위에서 이렇게 나를 맞아 주는 것인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누나가 그 개새…… 장난감 보러 갔다고 그래서 나도 한번 와 봤지.”
그렇게 말하는 제레미의 목소리가 조금 싸늘했다.
얼굴에서도 불만이 묻어나는 것을 보니 오늘로 카시스가 완전히 내 장난감이 된 사실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또 혼자 기분이 좋아져서 샬럿이 벌을 다 받고 나온 뒤에도 카시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주겠다고 나서더니.
제레미 이 녀석도 참,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기분이 엄청 쉽게 오락가락하는 놈이었다.
“그럼 1층으로 오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
역시 성가신 녀석. 장단 맞춰 주기 귀찮네.
마음 같아서는 이마를 한 대 찰싹 때려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 대신 부드러운 손길로 녀석의 앞머리를 쓸어 주었다.
“아버지가 누나 장난감을 쥐어 패고 있기에 그냥 좀 구경하다 올라왔어.”
제레미는 여전히 말투가 조금 삐뚜름했지만 그래도 내가 만져 주자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아니면 카시스가 맞는 모습을 떠올려서 기분이 좋아진 것이든가.
“누나 장난감, 나중에 내가 따로 보러 가도 돼?”
제레미가 턱에서 손을 뗀 뒤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였다.
이건 꿍꿍이가 있는 눈빛인데.
그래도 나는 오래 끌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지금은 말고 나중에.”
“왜?”
“아까 아버지가 때리는 거 너도 봤다며. 지금은 상태가 영 별로라서. 나도 갖고 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서 일단 빈방에 데려다 놨어.”
무심함을 입혀 내뱉은 내 목소리를 듣고 제레미가 엉덩이를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럼 꼬락서니가 좀 나아지면 보러 갈게.”
어차피 한 번은 제레미가 카시스를 보러 오겠거니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한순간이나마 멈칫하게 만든 것은 그 후에 제레미가 지나가듯이 덧붙인 말이었다.
“참, 나 방금 누나네 어머니 봤는데.”
하지만 나는 곧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그래? 어디서?”
“누나 방 앞에서. 아마 지금은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을걸.”
머무는 건물도, 행동반경도 다른 두 사람이 어디에서 마주쳤을까 했더니 내 방 앞이었나.
얼마 전 대만찬 날에도 만났던 어머니가 왜 또 이렇게 금방 나를 찾아왔을까 조금 궁금해졌다.
“누나한테 장난감이 생겼단 소식을 들은 것 같던데?”
잇따른 제레미의 설명에 나는 납득했다.
아, 그런 거였군.
“어머니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해?”
“아니, 누나 방 앞에서 에밀리랑 둘이 잠깐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그 후 제레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누나 어머니 표정 존나 웃기더라.”
그의 발이 계단 난간을 툭 걷어찼다.
나는 제레미의 기분이 저조해 보였던 이유가 카시스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나 어머니나 내 어머니나. 시발, 자기들이 무슨 괴물 새끼라도 낳은 줄 아나. 왜 벌벌 떨고 지랄이야.”
그 말투도 내용도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어쩐지 왜 내 방 앞이 아닌 이런 층계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나 했더니만. 오늘 본 내 어머니의 모습이 유독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나는 제레미가 내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과연 피폐 소설의 대가답게 악역인 제레미에게도 어두운 과거를 안겨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레미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 제레미가 점점 더 아그리체의 아이다워질수록 그녀의 증상은 더욱 심해져 갔다.
급기야 제레미가 대만찬에 처음 초대된 후부터는 그를 보기만 해도 기절할 듯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럴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 어떻게 란트 아그리체와 결혼을 한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런 제레미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죽었다.
그날도 제레미의 어머니는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들을 피해 도망갔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못 본 척 하고 지나갔을 제레미도 그날따라 그런 어머니에게 울컥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제레미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으레 그렇듯이 애정 결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다가 결국은 한 순간에 폭발해 버렸다.
그들의 술래잡기는 금방 끝났다.
제레미의 어머니는 자신의 방에 도착해 문을 걸어 잠갔으나 크게 화가 난 제레미는 기어이 방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숨을 곳을 잃은 그의 어머니가 선택한 것은 테라스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제레미가 놀라서 달려갔을 때, 다행히 그녀는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제레미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뻗은 손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는 끝까지 아들을 거부하며 차라리 추락을 선택했다.
그들이 있던 곳은 3층이었으니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제레미의 어머니는 그대로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다.
“그래도 누나 어머니는 좀 다른 줄 알았는데, 그깟 장난감 하나 들였다고 놀라서 달려온 꼴 하고는.”
제레미가 내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보고 이러는 것인지 나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어머니는 나름대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동시에 내게 거리감을 느끼는 듯한 눈빛을 보이곤 했다.
가끔은 자신의 딸이 아닌 다른 미지의 무언가를 대하는 듯이 내게 은근한 두려움을 표할 때도 있었다.
아마 어머니는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르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자식들이란 부모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 아니던가?
“방에 가자.”
나는 앞에 있는 제레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아직도 계단 난간을 한쪽 발로 툭툭 걷어차고 있었다.
“누나 방에 지금 어머니 와 있다니까. 난 안 가.”
“아니, 내 방 말고 네 방에.”
그 순간 제레미가 난간을 걷어차는 것을 멈추었다.
“어머니 보러 안 가? 지금 누나 기다리는데?”
원래 제레미와 내 키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밟고 선 계단의 높이가 달라서 그런지 내가 그를 올려다봐야만 했다.
나는 제레미의 손을 잡고 계단을 하나 더 밟고 내려갔다. 이번에는 제레미도 순순히 내게 끌려왔다.
“응, 나도 지금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제레미에게서 동질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한 거짓말인지, 아니면 정말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은 내 온전한 진심인지 나조차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전자인 것으로 치자.
슬그머니 내 손을 맞잡아 오는 제레미의 손이 따뜻했다.
나는 그 온기를 느끼지 않으려고 조금 노력하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