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40화(14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40화
먼저 안으로 들어선 휘페리온의 행렬이 한발 일찍 짐을 풀었다.
“어휴,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네.”
오르카는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자신의 방을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지 않은 마차 여행이 답답하기로는 판도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쉬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막 마차에서 내려서는 제레미를 발견했다.
그 직후 판도라는 흠칫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지난겨울 아그리체가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쓸 만한 마물이 있나 싶어 기웃거렸을 때 하필 그곳에서 맞닥뜨렸던 사람이 바로 제레미였던 것이다.
이번에 위그드라실에 오면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어쩌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저 남자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위그드라실에서는 마물과의 교감도 희미해졌기 때문에 그때 타고 도망쳤던 튜로베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릴 가능성은 좀 더 낮아졌다.
물론 휘페리온 특유의 푸른 머리카락을 보였던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한데…….
그냥 그때 아그리체를 털려고 시도했던 것이 판도라라는 사실만 모르면 일단은 괜찮았다.
판도라는 혹시 제레미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까 싶어 얼른 건물 안으로 향했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렇게 어수선해?”
한편 제레미는 마차에서 내려서자마자 산만한 공기를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위그드라실에는 가스토르 가문이 가장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각자의 방에 있지 않고 바깥에 나와 화원 쪽을 힐끔거리며 얼쩡거리고 있었다.
왜 저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들처럼 굴지?
그 모습이 어딘가 기묘해서 제레미도 덩달아 시선을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사람들이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흘러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소란스러운 틈에서도 ‘그 이름’은 너무나 선명하게 제레미의 귀에 아로새겨졌다.
잠깐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굳어 있던 제레미의 다리가 마침내 떼어졌다.
그는 어째서인지 차마 화원에 가까이 다가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그저 주위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는 사람들을 헤쳐 지나갔다.
위그드라실 안에는 벌써 장미가 피어 있었다.
화원의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힐 정도로 그윽한 향기가 폐부 깊숙이까지 들어찼다.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장미 향에 점차 숨이 가빠졌다.
아니, 아니다.
지금 제레미의 호흡이 점점 흐트러지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심장은 사정 없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고, 느리게 이어지던 그의 걸음은 이제 거의 뛰는 것처럼 빨라져 있었다.
시야에 선명한 붉은빛과 초록빛이 뒤섞여 어지럽게 이지러졌다.
그러다 마침내 두 눈을 찔러든 광경에 제레미가 훅 숨을 들이켰다.
쏴아아.
낮게 불어온 바람에 만개한 장미가 잘게 흔들렸다.
그 여인은, 꽃들의 한가운데에 놓인 의자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금색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빛 무리를 그리며 환하게 반짝였다.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미끄러지는 눈동자는 옆에서 피어난 장미처럼 붉었다.
한순간 숨을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제레미에게는 그저 그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찔할 만큼 황홀한 장면이었다.
굳게 다물린 제레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혹시 꿈은 아닐까?
제레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사나 누나…….”
사박.
그러나 곧 제레미는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무의식중에 앞으로 뻗어지려던 그의 손은 어느덧 피가 맺힐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
……안 된다.
어쩌면 록사나는 여기에 그를 보러 온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 이상 그가 알은척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
혹시 지금 섣불리 다가갔다가, 또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제레미.”
하지만 제레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니던 두려움과 불안 섞인 생각은 다음 순간 흔적도 없이 증발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제레미의 눈앞에 있던 사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 한순간의 일이었다.
제레미는 우두커니 서서 시야에 비치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분명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록사나의 얼굴에 그동안 제레미가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부드러운 미소가 어리는 순간 그것이 멍청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늦었구나. 기다렸는데.”
귓가에 고이는 음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큼했다.
록사나가 여전히 굳어 있는 제레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 가까이 와, 내 동생.”
제레미의 눈가가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누나…….”
그는 미처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꼭 망망대해에서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부표를 발견한 사람처럼, 제레미의 몸짓에는 그런 절박함과 맹목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눈앞에 환영처럼 존재하던 사람과 손이 맞닿았을 때.
“사나 누나. 누나…….”
제레미는 어찌할 수 없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아그리체에서 그랬던 것처럼 록사나의 앞에 주저 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치맛자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레미, 보고 싶었어.”
다정한 손길이 그의 머리와 뺨을 쓸었다.
귓가에 번지는 속삭임도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제레미…….”
이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영 시간이 멈추어 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울지 마.”
록사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에서야 제레미는 자신이 볼썽사납게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밑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을 가느다란 손가락이 훔쳐 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또 오랜만에 만나는 록사나의 앞에서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시야를 가리며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제레미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더 록사나의 치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를 위로하듯이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이대로 영원히 벗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다정했다.
* * *
설마 제레미가 울기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제레미는 환각을 보았던 열다섯 살의 마지막 월례 평가 때에도 내게 위로받고 눈시울을 발갛게 붉혔을지언정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방울만 떨구고 있었다.
제레미에게 있어 내가 작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이렇게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우는 것을 보니…….
나는 제레미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그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 화원의 입구에 발을 들였다.
힐끔 시선을 움직여 얼굴을 확인하니 오랜만에 보는 류자크 가스토르였다.
만개한 장미처럼 붉은 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잘게 흩날렸다.
그는 제레미와 나를 발견한 뒤 일순간 멈칫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제레미는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 누군가 화원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다행히 내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린 류자크가 기척을 죽이고 소리 없이 뒷걸음질 쳐 화원을 빠져나갔다.
그 후로 다시 내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마침내 제레미의 울음도 멈추었다.
“누나, 내가…… 지금 운 게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울지 않았다고 잡아떼기에는 너무 많이 늦은 감이 있었다.
제레미가 얼굴을 묻고 있던 내 치맛자락은 이미 축축이 젖은 상태였다.
제레미는 나한테 엉망이 된 모습을 보이기 민망한지, 고개를 돌리고 뒤늦게 얼굴을 수습했다.
“제레미. 잠깐만 여기 있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 상태로 화원을 벗어난다면 밖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제레미가 울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도 남았다.
그래서 나는 위그드라실에 있는 사용인에게 눈의 부기를 가라앉힐 만한 것을 준비시킬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그런데 제레미가 흠칫하며 곧바로 내 손목을 붙들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제레미의 얼굴에는 아직도 조금 전까지 울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 그것을 내게 감추었던 사실조차 잊은 듯이 고개를 들고 불안히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런 제레미를 내려다보다가 그에게 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화원 입구까지만 잠깐 나갔다 올 거야. 사용인에게 차가운 물수건이라도 가져오게 하려고 그래.”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제레미가 칼같이 말했다. 어떻게든 나를 보내고 싶지 않아 그러는 게 여실히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다고 말해도, 정말 이대로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선다면 제레미는 틀림없이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5분이면 돼. 금방 올게.”
나는 그를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자 제레미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다시 올 거지……?”
“당연하지.”
나는 그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주저 없이 대답해 주었다.
내 확답을 듣고서도 제레미는 나를 붙잡은 손을 풀지 않고 미적거렸다.
그래도 곧 그는 입술을 깨물며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나는 제레미를 일으켜 내가 앉았던 의자에 앉힌 뒤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