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2)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42화(142/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42화
제레미는 이렇게 중간에 다른 누군가가 그와 나 사이에 끼어 들려고 할 때마다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게 차단했다.
“누나. 애들이 자꾸 힐끔거려서 신경 쓰이지? 다 눈 깔라고 할까?”
하지만 또 나를 대할 때는 홀랑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입 안의 혀처럼 어찌나 곰살맞게 구는지 몰랐다.
우리 테이블에 있던 아그리체의 사람들은 이제 거의 체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누구 한 사람 제레미에게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나는 이 흥미로운 구도를 보고 눈을 슬쩍 가늘게 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식기를 들고 있던 내 손이 움찔 잘게 떨렸다.
위그드라실에 도착해 미리 풀어 두었던 독나비가 무언가를 감지하고 내게 알려 왔다.
“누나, 왜 그래?”
그 작은 반응조차 기민하게 포착한 제레미가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연회장의 입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자 제레미도 나를 따라 눈길을 돌렸다.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내 시야에 어둠보다 검은 형체가 비쳐 들었다.
달그락.
옆에 있던 제레미도 나와 같은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별안간 그의 손에 들린 식기와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가 고막을 찔러 들었다.
“앗, 데온?”
덩달아 고개를 돌린 내 옆자리의 이복형제에게서 새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는 어느덧 폭우가 내리는 모양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온 듯, 시야에 비치는 사람의 옷은 온통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그의 옷자락에서 떨어진 물기가 눈부신 대리석 바닥을 점점이 물들였다.
연회장의 입구에 돌연 나타난 남자는 이 반짝이는 공간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와 분위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향긋한 꽃과 감미로운 음악이 어울리는 이곳에서 그는 꼭 홀로 도드라진 새까만 얼룩처럼 느껴졌다.
이제 아그리체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연회장의 입구를 주시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주변에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 앉았다.
웅성.
반면, 다른 가문의 테이블에는 이제까지와 확연히 다른 소음이 고여 귓전을 때렸다.
아그리체의 동요를 알아차린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문을 품은 시선을 움직였다.
그들은 연회장의 입구에 서 있는 이질적인 존재를 알아차리고 입술을 벙긋거렸다.
분명 데온이 있는 곳과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지금껏 언제나 그래 왔듯이.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먼발치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어머니의 입에서 낯익다 못해 내 두 귀에 낙인처럼 아로새겨진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줄곧.
아니, 사실은 아그리체를 벗어났을 때부터 단 한시도 이 순간을 예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데온 아그리체 역시 시선 끝에서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도,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고.
더없이 건조하고 시린 음성이 뱀처럼 기어 와 내 귀를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이지…… 여전히 지겹고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데온 아그리체와 나를 둘러싼 이야기는.
드륵.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옆에서 제레미가 나를 붙잡았다.
그는 더없이 날카롭게 갈린 눈으로 데온을 보고 있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마치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본래도 제레미는 데온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독 그에게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연회장의 입구에 서 있는 데온은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나였다. 데온은 내가 직접 이 두 다리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데온이 직접 이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건 내게도 꽤나 성가신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데온을 만나야 했다.
“괜찮아. 다녀올게.”
“그럼 나도 같이 가.”
“아니.”
나는 동행을 요구하는 제레미를 두고 혼자 자리에서 발길을 뗐다.
“지금 가는 건 나 혼자야.”
자세한 정황은 몰라도 무언가 자신들이 끼어들 상황은 아니라고 느꼈는지, 아그리체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나와 제레미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온화한 목소리로 속삭여 인사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만찬 시간 보내기를.”
입구에 서 있던 사람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나는 바닥에 길게 깔린 붉은 융단을 밟고, 그의 빈자리에 길 게 녹아 붙은 그림자를 향해 걸었다.
쏴아아…….
연회장의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 대신 어렴풋한 빗소리가 귓가에 잘게 울렸다.
나는 그 아득한 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 * *
또각.
바닥에 남겨진 젖은 발자국을 따라 걷자 금방 데온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연회장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인적 없는 회랑에 서 있었다.
창살처럼 쏟아지는 빗줄기가 하얀 소음을 만들었다.
나는 잠깐 멈추어 서서 수채화처럼 녹아든 밤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선 데온을 바라보았다.
불빛과 어둠이 반씩 고인 밤의 경계에서, 나를 강렬히 응시하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선득하리만치 뚜렷하게 보였다.
또각.
나는 잠깐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뗐다.
데온은 내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서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꼴이 이게 뭐야.”
하지만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좀 더 좁혀지고, 불시에 뻗은 내 손이 그의 뺨에 닿은 순간.
“이렇게 흠뻑 젖어서는.”
데온의 표면에도 미처 숨기지 못한 동요가 드러났다.
제레미만큼이나 오랜만에 보는 데온이었지만 그는 지난겨울 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쩌면 단순히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인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거나, 그래서 계절이 한 번 순환할 동안의 공백이 그와 나 사이에 아예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데온의 반듯한 턱 선을 타고 빗물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나는 그의 눈을 정면에서 마주 보았다.
“가여운 데온.”
그러면서 여전히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얼굴을 쓸며 덧붙여 속삭였다.
“누가 당신을 반겨 준다고 이렇게 급히 달려온 거야? 어쩜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까지 미련하고 멍청하지?”
독을 바른 가시를 품고 싸늘히 웃어 보이자 데온의 눈이 일순간 크게 일렁였다. 거대한 불길이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넘실거렸다.
데온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이내 그의 손이 내 손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강하게 틀어잡았다.
“너.”
곧이어 악물린 그의 입술에서 씹어 뱉는 것 같은 음성이 새어 나왔다.
“지금껏 카시스 페델리안과 함께 있었다지?”
“그런데?”
나는 담담히 반문했다.
그러자 데온이 입매를 비틀어 조소했다.
“부정도 안 하는군.”
“당신이 뭐라고 내가 그걸 숨겨야 해.”
맞닿은 사람에게서 전해져 오는 불길이 한결 더 거세어졌다.
그래, 데온과 나는 차라리 이런 게 익숙했다.
어쩐지 그와 내 행동과 대화에서조차 그동안의 시간적 공백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함께 있을 때, 데온과 나는 언젠가 반드시 높아서 썩을 것이 예정된, 악취를 풍기는 고인 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그와 내 관계가 변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지금처럼 서로에게 맞닿은 부분부터 부패해 삭아 없어지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저런, 데온.”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그를 향해 시리게 미소 지었다.
“네가 늦은 걸 가지고 누구를 탓해?”
게다가 지금 분노 중인 것은 데온만이 아니었다.
“설마 내가 당신을 반겨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고. 심지어 그날 란트 아그리체를 죽인 것도 다른 사람이라고 하던데.”
결국은 이런 것이다.
나는 내 삶의 목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 사람을 상처 입히고, 그에게 나로 인한 흉터가 새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웃을 것이다.
“정말 쓸모가 없네, 당신.”
카시스는 내게 말했다.
그날, 아그리체에서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노라고.
그 결과 데온 아그리체는 지금 이렇게 내 앞에서 내 눈을 마주하고 서 있다.
만약 내가 정말 이 사람이 살아 있기를 바란 것이라면, 그건 분명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입에서 데온의 이름을 들은 이후로 내 안에는 걷잡을 수 없이 자글거리는 열이 끓어올랐다.
그가 란트 아그리체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마찬가지로 크게 다쳐 한동안 사경을 헤맸다 이야기를 들었다.
데온이 충분히 그럴 수 있음에도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던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그에게 고마워하기라도 하란 말인가? 아니면 그에게 동정심을 품기라도 하라고?
웃기는 소리.
무엇보다도, 아실의 몸을 가진 그 인형.
그 끔찍한 것이 태어나는 데 일조한 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자 당장에 그의 심장을 잡아 뜯어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카시스 페델리안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두 귀에 그 이름이 스며든 순간, 속에서 거칠게 난동을 피우던 살의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니.”
그제야 뜨겁게 끓던 가슴이 차게 식어 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카시스가 고작 당신 따위의 대신일 리가 없잖아.”
손목을 옥죈 힘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나는 이쯤 하고 데온을 눈앞에서 치워 버릴 생각으로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내가 그의 손을 뿌리치기 직전, 데온이 입가에 선득한 미소를 걸치며 읊조렸다.
“알고 있나? 네 몸에서 얼마 전에 만났던 그 자식의 불쾌한 냄새가 진동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