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45화(14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45화
그리웠던 가족.
제레미를 지칭하는 것일까?
아니면…….
록사나는 잠시 말을 고르며 맞은편에 앉은 카시스의 눈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그리웠던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만나 보았습니다.”
진주를 깎아 만든 것 같은 하얀 손가락이 유리잔을 느리게 훑었다.
“그중 한 명은 페델리안과 먼저 우연히 마주쳤던 듯하던데……. 혹시 그가 결례를 범하지는 않았을지 염려되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데온과 카시스가 만났던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데온은 얼마 전까지 록사나와 카시스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여나 그가 카시스를 비롯한 페델리안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특히 어제 보았던 데온의 태도를 생각하면, 최소한 카시스와는 직접 맞붙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 카시스에게 이렇다 할 외상은 없어 보이 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의 치유력으로 이미 회복된 것일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물론 카시스가 쉽게 당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그리체의 특성상 데온은 암습에 능했다.
그런 상황에서 더군다나 카시스는 제 손으로 지켜 내야 할 사람들까지 있었으니, 상처 하나 없이 데온을 쫓아 보내는 것이 녹록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록사나는 그런 우려를 품고 카시스를 보았다.
카시스 역시 그녀의 그런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글쎄요…….”
다음 순간 카시스가 기묘한 미소를 입가에 베어 물었다.
이윽고 카시스의 단정한 입술에서, 그 반듯함과 어딘가 거리가 먼 느낌을 풍기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지금 말씀하신 의미의 결례라면, 오히려 제가 끼친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뜻밖의 말에, 유리잔 위를 배회하던 록사나의 손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카시스에게 못 박힌 그녀의 붉은 눈은 깜짝 놀란 것처럼 조금 크게 떠져 있었다.
그 안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당혹감이 어렴풋이 깃들어 있는 상태였다.
……지금, 뭐라고?
상대에게 결례를 끼친 게 오히려 자신일 거라고?
조금 전에 카시스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럼 설마 카시스가 데온을 공격해 피해를 입혔다는 의미인가?
게다가 어쩐지 카시스가 보인 지금의 반응은 좀 낯설었다.
“그러신가요……?”
“예.”
어쩐지 얼떨떨한 마음에 반문했지만 이번에도 카시스는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그런 뒤 그가 록사나의 눈을 물끄러미 주시하며 물었다.
“혹, 저를 책하시겠습니까?”
록사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카시스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샹들리에의 불빛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다른 때보다 한결 청아하게 빛나고 있었다.
록사나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카시스 역시 예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근사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너무 천연한 표정으로 물으며 그녀를 보고 있어서, 차마 거기에 대고 무어라 자그마한 군소리라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쩐지 카시스의 의외의 일면을 엿본 느낌이었다.
“그럴 리가요.”
왠지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 록사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는 척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설령 어떤 결례를 저지르셨다 해도 제가 당신을 책하는 일은 없을 테지요.”
상황에 맞춰 한 대답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록사나의 진심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카시스의 입가에 마침내 여트막한 미소가 떠올랐다.
“기쁘군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록사나를 응시하는 눈빛 역시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불어오는 산들거리는 온풍이 록사나의 가슴에도 번지는 것 같았다.
아니, 지금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은데…….
물론 보는 그녀야 간질간질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누가 보기 전에 눈빛을 좀 숨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록사나가 곤혹감을 느끼기 전에 카시스가 다시금 표정을 변화시켰다.
언제 말랑말랑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너무 감쪽같이 무심한 낯빛이라 오히려 록사나가 조금 서운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시금 카시스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에…….
“그러고 보니 동행했던 일행 중에 뜻밖의 불청객을 보고 놀란 이가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록사나의 손이 멈칫했다.
동행했던 일행.
만약 페델리안 소속의 사람이라면 카시스가 지금처럼 지칭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한 명뿐이었다.
“동행했던 일행이라 하시면?”
시선이 마주친 순간, 카시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지금 생각하시는 자가 맞습니다.”
록사나의 머릿속에 경고의 의미를 담은 붉은 불이 켜졌다.
데온과 닉스가 만났다.
어제 데온에게서 그런 낌새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는데.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덧붙여진 카시스의 말보다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에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는지 둘 다 서로를 알아보고 동요하더군요.”
순간 주위의 소음이 일시에 잦아들었다.
지금 막 들은 나지막한 음성이 잘게 조각나 귓가에 어지럽게 웅성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 의미를 똑바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그 뜻을 인식하고 난 이후에는 홍수처럼 불어난 의문이 록사나를 뒤덮었다.
“아그리체 양.”
그러다 문득 앞에서 들려온 단단한 음성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비껴 있던 시선을 다시 똑바로 움직이자, 흔들림 없이 곧은 금색 눈동자가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카시스가 조심스럽게 록사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카시스가 시야에 들어온 뒤로, 잠깐 어수선하던 록사나의 마음도 서서히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워낙 뜻밖의 일인지라 조금 놀랐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입술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평소의 평정심을 완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록사나는 카시스를 향해 작게 미소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을 보고 카시스도 안심했다.
“흥미롭네요.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았다니.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고 싶군요.”
“제가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짧은 시선을 교환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주위에는 두런두런한 말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연회도 점차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 * *
“…….”
그 시각, 데온은 묶여 있는 ‘아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인 란트의 명을 받아 그의 손으로 직접 심장을 파괴해 죽였던 이복형제.
출입구에는 몇 겹이나 중첩된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그것을 해제하는 것은 데온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주술을 이용한 장치였다면 까다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비무장 지대인 위그드라실 안에서는 누구도 주술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다.
아래에서는 이미 연회가 한창일 터였다.
하지만 데온은 거기에 참석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정적만이 감도는 방 안에 서 있었다.
얼마 전 페델리안의 무리 속에서 한 번 마주쳤던 ‘아실’은 현재 위그드라실의 구석진 방에 갇혀 있었다.
지금은 의식이 없는 상태인지 들려오는 호흡이 아주 깊고 느렸다.
지금 데온이 보고 있는 그는 베르티움이 만든 인형이었다.
확실히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이 특이한 기운도 그렇고, 카시스 페델리안 역시 그를 베르티움의 인형이라 추정한 데온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카시스 페델리안은, 이 인형이 ‘진짜 아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데온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는 말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이 인형을 비밀리에 데려와 이렇게 남들의 눈을 피해 위그드라실에 가두어 놓은 것을 보면, 이와 연관된 일은 그리 가볍지 않은 사안일 것이 분명했다.
카시스 페델리안.
아실을 떠올리게 하는 인형.
그 연결고리인 베르티움.
그리고 그곳에 족적을 남긴 록사나.
하면 그녀 역시 지금 데온의 눈앞에 있는 이것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아실을 죽일 때 어떤 생각을 했니?”
문득 일전에 들었던 시에라의 목소리가 빗물처럼 귓가에 번졌다.
“란트를 죽이려 했을 때는 어떤 감정을 느꼈지?”
“만약 네 눈앞에서 마리아 님이 죽는다면 어떨까?”
그 당시에 조금의 감흥도 이끌어 내지 못했던 말이 이제 와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넌 란트가 만들어 낸 괴물이야.”
온기 한 점 없는 차가운 붉은 눈동자 안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이 비쳐 들었다.
“나는 그런 너를 끔찍이 증오하고 경멸해.”
갉작갉작.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데온의 발끝에서부터 불쾌한 감각을 남기며 기어올랐다.
마침내 묵직하게 늘어뜨려져 있던 그의 손이 눈앞에 있는 소년을 향해 뻗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