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47화(14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47화
* * *
깊은 밤, 방으로 돌아온 카시스는 갑갑한 공기를 느끼며 창문을 열었다.
낮과 다른 선선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쳐 방 안으로까지 밀려 들어왔다.
록사나가 먼저 연회장을 빠져나가고 난 뒤부터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흘러갔다. 결국 카시스도 연회가 파하기 전 실비아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카시스는 록사나가 먼저 연회장을 빠져나간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는 두통이 있어 일찍 방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고 말했지만 카시스는 그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록사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카시스는 줄곧 그 이유를 혼자 추측해 보고 있었다.
혹시 몰라 방금 전 닉스가 있던 방에도 들렀다 왔다.
그러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보초는 각 가문에서 돌아가면서 서기로 이야기되어 있었고, 오늘은 휘페리온의 차례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문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아주 희미하기는 했지만 잠금 장치에는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 남아있 기까지 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려던 찰나, 자리를 비웠던 휘페리온의 수하가 나타났다.
그래서 카시스는 문고리로 향했던 손을 내렸다.
혹시 이 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록사나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문 너머로 느껴지는 기운은 한 사람의 것뿐이었고, 전해지는 파동 또한 잔잔한 것을 보니 닉스에게 별다른 문제는 없는 듯 했다.
카시스는 면구해 하는 휘페리온의 수하에게 주의를 준 뒤 문 앞을 떠났다.
차라리 이참에 페델리안에서 닉스의 감시를 도맡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날아든 찌를 듯한 시선이 살갗을 파고 들었다.
카시스의 눈빛이 창밖의 어둠을 싸늘히 스쳤다.
새까만 밤에 완전히 파묻혀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지금 카시스의 눈길이 멎은 곳에 시선의 주인이 있었다.
잠시 후, 아리도록 강렬하던 눈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카시스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차게 얼어붙은 눈이 조금 전 인기척을 느꼈던 곳에 못 박혔다.
이런 시선은 불과 며칠 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위그드라실에 들어서기 전 발을 걸쳤던 중립 구역에서.
“그리웠던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만나 보았습니다.”
불현듯 연회장 안에서 들었던 록사나의 말이 떠올랐다.
온도 낮은 금색 눈동자가 한결 깊이 잠겨 들었다.
록사나와 데온 아그리체가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카시스도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녀의 입으로 직접 확인한 뒤부터 기분이 저도 모르게 가라앉고 말았다. 그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카시스의 눈이 한 차례 길게 감았다 떠졌다.
그런 뒤, 마침내 카시스가 창가에서 막 발길을 떼었을 때.
살랑.
그의 방에 붉은 나비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그것은 분명 록사나의 독나비였다.
붉은 나비를 시야에 담은 순간, 카시스의 시린 금색 눈동자에 고여 있던 한기가 걷혔다.
“록사나가 보낸 건가.”
날개를 팔랑이며 다가온 나비가 카시스의 주변을 맴돌다가, 그가 내민 손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설령 어떤 결례를 저지르셨다 해도 제가 당신을 책하는 일은 없을 테지요.”
입 안에 씁쓸함와 달콤함이 동시에 고였다.
모순된 감정 사이에서 카시스는 지금 바로 록사나를 찾아가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세게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데온 아그리체와 닉스가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말에 동요하던 록사나의 모습도 덩달아 떠올라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카시스는 눈앞의 나비가 록사나라도 되는 것처럼, 붉은 날개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위그드라실에서의 밤이 다른 때보다 유독 길게 느껴졌다.
* * *
위그드라실의 장미 화원에는 어제와 다른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어제의 저녁 연회 때 이후로 분위기가 풀어진 다섯 가문의 사람들 중 일부가 밖으로 나와 함께 다과 시간을 가지며 대화의 장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페델리안 양.”
“또 뵙네요, 흑의 수장님.”
제레미와 실비아도 거기에 속한 한 명이었다.
제레미가 먼저 예의를 차려 인사를 건네자, 실비아도 웃으며 거기에 화답했다.
반짝이는 긴 은발을 곱게 늘어뜨리고, 페델리안을 상징하는 푸른 드레스와 머리 장식으로 치장한 실비아는 위그드라실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지금 화원에서 열린 다과 모임에는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젊은 세대만이 자리한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 실비아에게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비아의 곁에는 그녀의 오빠인 카시스 페델리안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카시스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주위에 머물던 사람들도 때마침 떠났을 때, 누군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것이 바로 제레미였다.
어제도 연회 시간을 함께 보내서 그런지 두 사람 사이에는 비교적 어색함이 덜했다.
미소 짓는 실비아를 보며 제레미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다소 불손했다.
‘역시 청의 개새끼랑 존나 닮았네.’
그래서인지 이렇게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어도 절로 빈정이 상했다.
하지만 제레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속마음을 가감 없이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한심한 짓거리를 벌이지는 않았다.
록사나는 그에게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또 록사나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 싶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욕심이기도 했다.
어제 저녁 연회 때 실비아 페델리안과 어울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지금 또 장미 화원에 나와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페델리안과 이렇게 거리를 좁히는 것이 록사나의 의지라면, 제레미 역시 아무리 비위가 상해도 꾹 참고 그녀의 뜻에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젯밤에는 편안한 시간 보내셨는지요.”
“덕분에 기분 좋은 밤이었어요.”
가문을 상징하는 검은 색상의 예복을 날렵한 몸에 걸치고 의자에 느슨히 기대앉은 제레미는 한 마리의 흑표범 같았다.
록사나의 앞에서는 그야말로 순해 빠지다 못해 흐물흐물 녹아난 얼굴을 하는 그였지만, 다른 사람의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칠흑같이 새까만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짙은 눈매나 이따금씩 입가에 그리는 비스듬한 미소가 특히 매력적이라, 제레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실비아와 제레미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더군다나 제레미의 의상은 그의 눈동자 색과 맞춰 푸른색으로 장식이 되어 있어 청의 가문인 실비아와 더욱 그림같이 잘 어울려 보였다.
“그런데…… 록사나 님은 같이 오지 않으셨네요? 오늘 다과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으시나요?”
“네. 누님은 오늘 방에서 쉬겠다고 하셨습니다.”
제레미의 말에 실비아는 무척이나 아쉬운 낯빛을 해 보였다.
그것을 눈에 담고 제레미는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아쉬운 것은 제레미도 마찬가지였지만 왜 실비아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제저녁 연회 때도 실비아는 은근히 록사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뭐, 사나 누나에게 반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 없으니 당연하긴 하지.’
마침내 제레미는 혼자 그렇게 납득한 뒤 입매를 느슨히 했다.
중증의 누나 사랑을 자랑하는 제레미는 록사나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을 느꼈다.
“흑의 수장님은 록사나 님과 가장 가까운 형제시죠?”
그러다 다음 순간 귓가를 간질인 실비아의 물음에 제레미는 일순간 멈칫했다.
물음이라고는 하지만, 실비아의 어투는 그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갑자기 짜증스럽던 실비아 페델리안이 나름대로 괜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레미는 위로 치솟는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아, 역시 티가 나나 보군요. 맞습니다. 누님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끼는 동생이 바로 저지요.”
자부심이 넘치다 못해 어딘가 거들먹거리는 것처럼도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특히 ‘유일하게’ 부분에는 강세까지 두었다.
당연히 제레미는 자신이 록사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사방팔방으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특히 이번에 재회했을 때 록사나가 그의 손을 붙잡고 말해 주었던 내용은 몇 번을 되새겨 떠올려도 늘 새롭게 가슴을 벅차 오르게 했다.
아마 그 달콤한 순간을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만 아니었다면, 지나가다 마주친 사람마다 전부 붙잡고 그의 이 감동적인 마음을 만천하에 전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실비아는 제레미의 심정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리고 말았다.
어, 뭐지……? 왠지 지금 좀 약이 오르는 기분이 드는 것 같은데.
게다가 알게 모르게 질투도 좀 나는 것 같았다.
나이가 같기도 하고, 또 록사나와 사이가 좋은 동생인 듯해서 실비아도 이번 친목회 때 제레미 아그리체와 좀 친해져 볼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어제저녁 연회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제레미는 말 상대로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는 실비아가 떡밥을 던지는 족족 그것을 날름 물어 록사나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해 주었다.
실비아의 처음 생각대로 제레미는 록사나를 굉장히 많이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록사나의 이름만 나와도 표정이 그렇게 밝아질 리 없을 테니까.
그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귀엽게 보이기도 해서 호감이 좀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마음이 절반 정도 사그라졌다.
‘나도…… 나도 록사나 언니가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오히려 ‘록사나가 유일하게 아끼는 동생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며 배부른 표정을 짓는 제레미에게 까닭 모를 반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실비아는 위그드라실에 온 이후로 아직까지 록사나와 따로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아쉬운 마당에 제레미가 이렇게 자랑까지 해 대니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애써 그런 마음을 감추고 호호 웃었다.
“어제 연회장에서 두 분이 함께 손을 붙잡고 들어올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요.”
제레미는 언제 실비아를 보며 비위가 상했었냐는 듯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 여자, 이제 보니 눈치가 꽤 있잖아? 다시 보니까 카시스 페델리안하고 그렇게 많이 닮지도 않은 것 않은데.
제레미는 실비아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수직 곡선을 그리던 호감도는 순식간에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수장님은 아무리 봐도 록사나 님과 별로 닮지는 않으셨네요.”
실비아가 전혀 악의 없어 보이는 얼굴로 호호 웃으며 말했다.
“그냥 보면 남매인 줄도 모르겠어요. 그런 소리 많이 들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