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5화(1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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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트 아그리체는 여자를 취할 때 다양한 요건을 고려했다.
그 말은 즉, 마음이 동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만 품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도 내 어머니들은 공통 분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여인들이었다.
미모도 내 어머니처럼 눈이 번쩍 뜨이도록 아름다운 여자에서부터 박색 수준의 여자까지 다양했다.
성격 역시 암사자처럼 대범하고 호탕한 여인에서부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얌전하고 소극적인 여인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이 사람, 취향 한번 종잡을 수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란트 아그리체가 온갖 방면에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마치 다양한 유전적 실험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개중에 내 어머니가 그의 눈에 띈 이유는 단언컨대 ‘미모’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말은 딸로서 할 도리가 아니었지만, 내 어머니의 장점은 정말이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녀의 온화한 성정과 다정한 마음씨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 집안에서 그것은 결코 장점이 될 수 없었다.
아마 란트 아그리체 역시 그런 점을 매력적으로 느끼지는 않는다는 데 제레미의 머리카락을 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덟 살 때 란트 아그리체의 앞에서 나를 살린 것은 결국 그녀를 닮은 이 뛰어난 미색이었으니, 어떤 의미로 나는 어머니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그런 내가 어머니를 이런 식으로 피하는 것은 어쩌면 명백한 불효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해서 지금 바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달칵.
나는 제레미를 방으로 데려다 준 뒤 카시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른 때 같으면 제레미를 좀 더 어르고 달래 주다가 왔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곧바로 어머니에게 향하지 않고 그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이번에는 충분했다. 나는 그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진짜 최소한의 치료만 했네.”
나는 카시스의 상태를 살피고는 미간을 좁혔다.
카시스는 아까 봤던 대로 대마물용 구속구와 재갈을 차고 있었다. 그래도 큰 상처들은 치료가 잘 되어 있어 다행이었지만 자잘한 부분은 아직 그대로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카시스의 손목과 발목을 살폈다.
구속구에 쓸린 피부가 심하게 벗겨져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의 손목을 살짝 들어 올리자 기둥과 연결된 사슬에서 듣기 싫은 쇳소리가 났다. 발목에도 같은 사슬이 이어져 있었다.
방 안의 모습은 꽤 살풍경했다. 그래서인지 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몸을 누이고 있는 카시스가 더 처량해 보였다.
그나마 지하 감옥에서처럼 팔이 벽에 붙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 그때보다는 편해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일단 카시스의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겨 주었다.
구속구까지 풀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따로 챙겨 온 약을 손목과 발목에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몸에 난 다른 상처도 꼼꼼히 살피고 치료가 덜 된 부분은 내가 직접 손을 댔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집안의 장난감 취급은 정말 너무했다.
하기야, 장난감만 그렇던가. 이 아그리체에서 뭔들 안 심하고 뭔들 안 너무할까.
치료를 끝마친 뒤 나는 곧바로 카시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눈앞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의식을 잃고 있는 카시스는 역시나 굉장히 온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착하고 맑은 인상을 가진 남자애를 이런 꼴로 만든 아그리체가 굉장히 몹쓸 존재로 느껴졌다.
아니, 물론 아그리체는 사라져야 마땅한 이 세계의 명백한 악이 맞긴 하지.
나는 한숨을 내쉰 뒤 털썩 주저앉아 벽에 몸을 기댔다.
요즘 다른 때에 비해 머리를 하도 많이 굴려서 그런지 조금 피곤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카시스의 일로 계속 신경 쓰고 긴장하고 있던 터라 뒤늦게 피로가 밀려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힐끔 옆에 있는 카시스를 쳐다보았다.
상처투성이인 상태로 맨바닥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카시스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그런 후 그의 머리를 내 다리 위에 얹었다. 얇은 천 조각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바닥에 그냥 누워 있는 것보다는 내 다리라도 베고 있는 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겠지.
비록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 아까 전에 란트 아그리체에게 맞는 카시스를 외면했던 것이 괜히 미안해져서 이러는 게…… 사실 맞았다.
공격받는 카시스를 지켜보는 동안 아그리체에 살면서 잠시 잊고 지내던 내 양심이 콕콕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또 카시스가 이러고 있는 것을 보니 조금은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페델리안에서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또 존중받는 자랑스러운 청의 귀공자였을 텐데.
누구나 다 그의 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펼쳐져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카시스는 굉장히 비참한 방법으로 죽었다.
심지어 실비아가 오빠의 실종에 관한 진실을 밝힌 3년 후까지, 누구도 그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제레미는 소설 속의 못된 악역이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여자에게만큼은 호구 같은 구석도, 또 맹목적인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납치해 온 실비아에게 아그리체에서 죽은 카시스에 관해 아는 것을 술술 불어 버렸다.
카시스는 아그리체에서 장난감으로 굴려지다가 결국 참혹하게 망가져서 죽었다.
망가졌다는 것은 정신적인 의미와 육체적인 의미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카시스가 아그리체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는 극중에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고 또 나도 그렇게 상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시스의 죽음에는 영광도 조의도 없었다는 사실만큼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미래를 앞두고 있는 사람을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려니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
하긴, 미래가 깜깜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 거울을 들여다보면 창창한 나이에 죽을 예정인 사람을 하나 더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죽기 싫은데…….”
그러려면 일단 카시스를 살려야 했다.
하지만 만약 그를 아그리체에서 내보내는 데 실패하게 되면…….
음, 그때는 제레미를 꼬드겨 봐야 하나. 나중에 실비아를 납치해 오지 못하게.
아니야, 애초에 제레미와 실비아가 만나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건 나중에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새로 계획을 세워도 될 문제이긴 하지만.
또다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무의식중에 손을 움직였다.
어느새 나는 카시스의 머리를 제레미에게 하는 것처럼 살살 쓰다듬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려니 때에 안 맞게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일단 카시스를 내 공간에 들이고 나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이제야 카시스가 진짜 내 손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났다.
형제들끼리 장난감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소유욕이 강한 샬럿이나 제레미 같은 경우에는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나도 적당히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 될 것이다. 그럼 지하 감옥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전하게 카시스를 옆에 둘 수 있겠지.
물론 란트 아그리체는 카시스가 내 밑에서 마냥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좀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기묘한 느낌을 받고 시선을 내렸다.
내 손길을 받고 있는 카시스는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다.
내가 만져서 그런지 아까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네.”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문득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누가 씻겨 주기라도 했나.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부드럽지?”
내 손에 감긴 카시스의 머리카락은 제레미 못지않게 아주 부드러웠다. 심지어 갓 목욕하고 나온 사람처럼 뽀송한 느낌으로 찰랑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카시스는 아그리체에서 나름대로 도련님 취급을 받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제레미와 달리 지하 감옥에서 몇 날 며칠 동안 굴려진 사람이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 씻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이따금 채찍질만 당했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증거로 카시스의 몸은 지금도 피에 절은 상태 그대로였다. 내가 만지고 있는 머리카락에도 붉은 핏물이 묻어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누가 씻겨 준 건 당연히 아닌데…….
아까 전에 내가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가던 카시스에게서 위화감을 느낀 이유도 이와 비슷했다.
“냄새도 안 나고.”
그러고 보면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라 지하 감옥에서부터 내내 그랬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바로 그 순간, 내 손 아래에 있던 카시스의 고개가 아주 살짝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지극히 작은 미동이었다. 만약 그와 내 몸이 맞닿아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불현듯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도 덩달아 움찔 눈매를 좁혔다.
……혹시 이 사람, 지금 깨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