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5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55화(15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55화
잠시 후 가까이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여상했다.
“또 이야기꾼 역할을 하고 온 모양이군.”
“하하, 저를 원하는 분들이 위그드라실 안에 좀 많아야 말이지요. 인기인의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카시스는 고요하니 담담한 낯을 하고 있었고, 오르카는 평소처럼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오르카의 속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 그의 마물들을 모조리 증발시킨 주범이 바로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었다.
오르카는 페델리안의 경계에서 급소를 맞아 쓰러졌던 이후로 다시 마차에서 눈을 뜰 때까지의 기억이 없었다.
오르카를 휘페리온까지 데려다 준 페델리안의 심복은 위그드라실로 향하던 중에 길가에 쓰러져 있던 그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공격한 배후가 따로 있다는 의미인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오르카는 순진하지 않았다.
범인은 분명 페델리안 내부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느낌상 청의 귀공자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마땅한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따지기에 카시스 페델리안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당시에 오르카가 있던 곳은 페델리안의 영역이었다.
설령 그때의 일을 따진다 해도, 그럼 왜 곧바로 휘페리온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설명할 말이 궁색해진다.
그 정도는 어떻게 잘 둘러댄다 해도 다음이 문제다.
그때 오르카는 기척을 지우는 주술진까지 주위에 펼쳐 놓고 잠복해 있었으니까.
바로 지척까지 접근해서 그를 공격했던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청의 귀공자. 혹시 지금 회의실에 가는 중이었나요?”
그러니 결국 지금으로서는 속에서 아무리 열불이 치솟아도 딱히 방법이 없다, 이 말이었다.
속내를 감추고 웃으며 건넨 오르카의 말에 카시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방향을 보니 목적지가 같은 듯한데.”
“예, 저도 회의실에 가는 길이었지요. 이런 일은 귀찮지만 일단은 후계자인지라 별수 없이.”
오르카는 그렇게 대답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후 각 가문의 수장들과 후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바로 오르카가 싫어하는 생산성 있는 진지한 대화의 시간이었다.
목적지가 동일했기 때문에 결국 카시스와 오르카는 복도의 중간에 있던 길로 들어서 나란히 걷게 되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카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친목회에 불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그의 입에서 지나가듯이 내뱉어진 말에 오르카는 미세하게 눈매를 꿈틀거렸다.
“호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죠?”
괜한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어쩐지 카시스의 말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오르카가 카시스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히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원래 이런 모임을 싫어하는 것 아니었나.”
“아하, 그런 의미였군요. 뭐,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이어진 카시스의 반응은 덤덤했고, 그의 얼굴에서도 아무런 수상한 점을 발견해 낼 수 없었다.
오르카는 작게 입매를 비틀다가 입술을 뗐다.
“그래도 전 미인을 좋아해서 이번 친목회에 참석한 것에 충분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딘가 미묘하게 느껴지는 그 말에 카시스의 시선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위그드라실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인 줄 알았으면 진작 자주 방문했을 텐데 말이죠.”
그런 카시스를 보며 오르카는 얼굴에 한결 진한 미소를 덧그렸다.
“물론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얼마 전까지 페델리안 안에 피어 있던 것이지만 지금은 울타리 밖으로 빠져나왔으니……. 앞으로 다른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릴 수도 있겠지요.”
바보가 아닌 이상 오르카의 말에 내포된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수 없었다.
풋내 나는 도발이었다. 대응할 가치도 없는.
카시스는 표정만큼이나 태연한 음성을 밖으로 내보냈다.
“향기로운 꽃밭보다 마물 서식지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재미있군.”
“하하. 그것도 또 그러네요.”
오르카는 언제 무게를 잡았냐는 듯이 가볍게 대꾸하며 웃었다.
그러는 동안 목적지인 회의장에 다다랐다.
“백의 마수사.”
카시스가 앞서 문을 밀어젖히며 나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네.”
오르카는 시종일관 무감한 태도로 일관하는 카시스에게 슬슬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따분한 화제가 그의 입에서 나올 줄 알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 오르카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는 마물 사냥을 나설 때 기척 제거 주술과 기척 감지 주술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멈칫.
오르카는 발끝부터 싸늘하게 피가 식는 기분을 느끼며 문 앞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물론 주술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긴 하지만.”
끼이익.
묵직한 문을 밀치자 이음새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가늘게 울렸다.
귀에 번진 카시스의 목소리는 심히 평온했지만 그것을 듣는 오르카의 마음은 그럴 수 없었다.
오르카는 굳은 다리를 멈추고 우뚝 서서 시야에 비친 등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이내 그의 마른 입술이 딱딱하게 움직여졌다.
카시스가 오르카를 뒤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고요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곧 그 위에 덧씌워지는 가느다란 미소는 한겨울의 빈 가지처럼 차갑게 메말라 있었다.
“위그드라실에 있는 동안 모쪼록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좋겠군, 오르카 휘페리온.”
* * *
젠장, 골 빠개지네.
제레미는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오르카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진지한 이야기에는 질색을 하는 사람이 여기에 한 명 더 있었다.
오늘은 각 가문 간의 물자 거래와 경계 구역 방비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철에 있을 대규모 마물 토벌에 대한 안건도 나와서 각 가문에서 참가할 사람들을 미리 차출해야 했다.
특히 이번 겨울 이후 중립 구역의 경계에 마물 수가 가파르게 증가한 추세라 봄이 끝나기 전에 한 차례 사람들을 모아 개체 수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런 식의 회의에 참석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말도 굳이 어렵게 사용하는 쓸모없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표정만큼은 전보다 확실히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어서, 이제 제레미는 이해하지 못한 대화가 눈앞에서 오가도 전부 알아듣는 척 거만한 얼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실속은 별로 없는 수확이었다.
“흑의 수장은 아직 이런 자리가 낯설 텐데도 벌써부터 꽤 적응한 것처럼 보이는군.”
그렇게 회의장을 빠져나와 얼마간 걸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접근해 왔다.
다른 가문 중 이 방향에 숙소가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제레미는 의아하게 뒤돌아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위로 틀어 올린 붉은 머리칼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적의 가스토르의 수장인 바드리사였다.
그녀의 뒤에는 아들인 류자크가 호위처럼 서 있었다.
뭐야, 이 사람이 왜 나한테 말을 걸지?
바드리사는 제레미가 함께 있는 자리마다 그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거나 언제나 마뜩잖은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듣기로는 리셸 페델리안만큼은 아니어도 란트 아그리체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 제레미는 가스토르가 아그리체의 복권을 반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바드리사는 제레미를 위시하여 아그리체를 다시 일으키는 쪽에 손을 들었다.
“제 적응력이 원래 좀 뛰어납니다.”
제레미는 의문을 감추고 일단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에 류자크는 눈살을 슬쩍 찌푸렸고, 바드리사는 눈매를 약간 가늘게 좁혔다.
제레미는 두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따라왔는지 가늠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딱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말했잖아, 제레미, 우린 그냥 기다리면 된다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야.”
다만 록사나의 말이 그 순간 희미하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뛰어난 적응력도 가문을 이끄는 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지.”
바드리사는 청년의 치기를 이해한다는 듯이 제레미의 말을 무던하게 넘겼다.
“혹시 다른 일정이 없다면 함께 차를 들지 않겠나.”
그러다 그녀가 유유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권유했을 때, 제레미를 파고든 직감은 더욱 확실해졌다.
예리한 빛이 희미하게 녹아든 푸른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한 차례 스쳤다.
그들 역시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얼굴을 한 채 제레미를 마주하고 있었다.
곧 제레미의 입가에도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초대해 주신다면 기꺼이 응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