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5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57화(15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57화
그 순간 록사나는 멈칫했다.
그녀는 그리젤다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카시스는 오히려 자신이 그리젤다를 이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우습게도 기분이 다소 나아졌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지금 기분이 좀 좋아진 것 같아.”
그래서 말하자 카시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록사나는 얕게 숨을 내쉰 뒤 다시 입술을 뗐다.
“내가 은연중에 화제를 피해 왔으니 당신이 말을 꺼내지 못한 게 당연해. 그리고 나 역시 당신에게 설명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고.”
그러니 카시스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숨기고 그리젤다와 따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면 서운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록사나 역시 이제껏 카시스에게 데온에 대한 일 등을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난번 만났던 밤에 화원에서 데온과 있었던 일을 카시스에게 얼추 이야기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되었다.
또 주변 사람에 대해 암암리에 조사하는 것 정도야…… 사실 록사나도 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카시스가 그리젤다를 이용했다고 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와는 자매의 정 같은 끈끈한 유대로 엮인 관계가 아니었다.
“좀 더 빨리 이런 대화를 나눴으면 좋았을걸.”
록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설핏 웃었다.
“대화가 필요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네.”
록사나가 웃자 카시스도 그제야 안심한 듯이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누나!”
그 순간 록사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온실의 입구 쪽에서 울려 퍼졌다.
주위에 웃자란 온갖 식물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에 온실에 들어선 사람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이렇게 부르며 찾아올 사람은 애초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잠깐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던 록사나가 다시금 카시스에게 시선을 움직였다.
“아쉽지만 지금은…….”
“가야 할 시간이군.”
반갑지 않은 방해꾼에 카시스는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록사나는 그런 카시스를 보며 눈을 반쯤 나붓이 접어 웃었다.
“그럼 모쪼록 동생분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랄게요, 청의 귀공자님.”
장난스러운 말에 카시스도 얕게 웃음 지으며 거기에 호응해 주었다.
“사려 깊은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록사나 양. 이건 부족하게나마 답례로.”
옆에 있던 꽃을 한 송이 꺾어 록사나에게 건넨 카시스가 이어서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사나 누나……!”
소리가 좀 더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제레미는 지금 이곳에 록사나와 카시스가 같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온 것 같았다.
그녀를 급히 찾아 부르는 목소리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짜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들뜬 것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록사나는 아직 맞잡고 있던 카시스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조금 전에 카시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가락에 키스를 돌려준 뒤 먼저 자리에서 걸음을 옮겼다.
“먼저 갈게.”
“이따 봐.”
카시스는 엷게 미소 띤 록사나의 입술에 고개 숙여 입 맞추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마주 웃어 보였다.
“제레미.”
“누나! 사나 누나! 계속 찾았는데!”
“그랬어?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응, 내가 방금 누구 만나고 왔는지 알아?”
록사나와 제레미 아그리체가 나누는 대화가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왔다.
제레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뒤에서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꼬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카시스와 함께 있던 사람을 가로채 간 방해꾼 주제에 지나치게 밝은 음성이기도 했다.
카시스는 작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역시 제레미 아그리체는 좋아할 수가 없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 * *
그 시각, 위그드라실에 마련된 여러 방들 중 하나에서는 위험한 놀이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아, 잠깐만. 이 카드 아닌데! 나 잘못 냈어!”
“풉. 병신 아니야, 이거? 눈깔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와, 거의 다 이긴 거였는데 이런 식으로도 말아먹네.”
“진짜 여기서 그 카드를 왜 내?”
커다란 원탁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것도, 또 그 옆에서 한가롭게 테이블 위의 상황을 구경 중인 것도 모두 아그리체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친목회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교 모임에 참석하느라 좀이 쑤셔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된 제레미가 위그드라실에 있는 동안 처신을 똑바로 하라며 협박과 엄포를 이미 단단히 놓은 뒤였다.
그래서 할 짓이 없던 그들은 위그드라실에 왔을 때부터 줄곧 머릿속에 의문으로 남아 있던 부분에 대해 저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해 보았다.
데온은 왜 갑자기 위그드라실에 나타났으며, 왜 다른 아그리체의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고 따로 움직이는지.
일전에 아그리체에 있을 때 다른 이복형제가 ‘데온이 수장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입을 잘못 놀려서 피떡이 되게 처맞은 적이 있었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때의 일 이후 모두들 제레미의 앞에서는 데온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만큼 처음에는 위그드라실에 나타난 데온과 제레미가 수장 자리를 놓고 피 튀기는 서열전이라도 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얼마 전에 제레미가 잔뜩 열받은 얼굴로 데온을 찾은 일이 있었으나 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머리카락 한 올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도 그냥 데온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록사나와 청의 귀공자 카시스 페델리안.
그들의 관계는 위그드라실 안에 있는 모두의 심각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친목회의 첫날 연회장에서 있었던 놀라운 일을 서막으로 하여 그들은 나날이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아그리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카시스 페델리안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예전부터 몹시도 큰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3년 전에 아그리체에서 록사나의 장난감이었고, 그 당시에 분명 록사나의 손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카시스 페델리안은 살아 돌아와서 직접 그들의 아버지인 란트 아그리체에게 복수하기까지 했다.
그 복수의 대상에 록사나가 없었던 것을 보면, 무언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연이 그들 사이에 있었던 듯한데…….
원래 록사나는 란트의 가장 총애하는 딸이 아니었던가?
하기야 차기 수장으로 거의 확정되어 있던 데온도 페델리안에서 쳐들어오기 직전 아버지를 배신했는데 록사나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야…….
그런 식으로 꼬리의 꼬리를 물자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끼리 아무리 머리를 맞대 의논한다 한들 베일 속에 감춰진 진실이 저절로 눈앞에 드러날 리 없었다.
그렇다 해서 직접 찾아가 묻는 것은 제레미의 철통같은 보호가 있어 어려웠고, 애초에 데온과 록사나 자체도 먼저 접근하기에 쉬운 상대들이 결코 아니었다.
사실 아그리체 사람들의 성향상 이렇게 고민하다가도 또 금방 성가셔져서,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친목회가 시작된 이후로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교 모임 따위 외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건전한 방식으로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냈다.
“한 번만 물러 줘.”
“무르긴 뭘 물러. 판돈 걸었으면 끝이지.”
물론 그것은 아그리체 사람들의 기준에서의 건전한 방법이었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카드놀이라 할 수 있었다.
본래 그 카드는 아그리체 사람들이 가져온 것은 아니었고,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사용한 뒤 휴게실에 두고 간 것을 발견해 잠깐 빌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그들이 시작한 것은 그냥 카드놀이가 아니라 도박이었다.
중립 구역의 유흥가에는 아그리체에서 비밀리에 운영 중인 도박장이 몇 개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가업을 잇도록 교육받는 아그리체의 사람들에게 있어 도박은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 여기서 문제.
도박을 하다가 거하게 망할 것 같은 예감이 들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판을 엎고 튄다.
퍼억!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열세에 몰려 있던 이복형제가 곁눈질로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발을 들어서 테이블을 차올렸다.
“어머, 얘 더러운 짓 하는 것 좀 봐.”
하지만 작전은 실패했다.
게임에 참가했던 다른 이복형제들이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곧바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 명은 반대쪽에서 다시 테이블을 차올려 균형을 맞췄고, 그 틈에 다른 두 명은 흩날리는 카드들과 테이블보를 타고 미끄러지는 다기들을 순식간에 낚아채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원상복귀시켰다.
바닥에 떨어지는 꽃병도 얼른 다리를 뻗어 발등으로 받아내 깨지는 것을 막아 냈다.
“아, 제기랄!”
그와 동시에 발칙한 짓을 저지르려 한 이복형제의 뒷덜미를 낚아채 테이블 위에 처박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아, 테이블을 엎으려고 하다니 양심 없다.”
“우리 형제들 중에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인간이 있을 줄이야.”
“너, 가뜩이나 요즘 우리 돈 쪼들리는 거 모르냐? 여기서 뭐 때려 부수면 다 아그리체로 청구돼.”
“제레미한테 일러.”
“극형감이네, 극형감.”
옆에서 구경하던 형제들이 킬킬거리며 너도나도 농담을 던져 댔다.
“이제부터 네 수집품 21호는 내 거다.”
“아, 그건 진짜 안 돼! 나도 정말 어렵게 구한 거라고!”
“이건 패자 주제에 말이 많아. 그럼 대신 네 손모가지나 박제하게 내놓든가.”
푸욱!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듯이, 조금 전 케이크를 먹는 데 이용했던 포크가 손가락 사이에 꽂혔다.
“나이프가 아니라 깔끔하게는 절단이 안 되겠지만 손목 하나쯤은 이걸로도 충분히 해체할 수 있다고.”
“새우 꼬리 같은 손목이라 1분도 안 걸릴 듯.”
“캐로우의 오른발 박제품 대신 이딴 새우라니, 수지가 너무 안 맞잖아.”
“아냐, 얘 손도 잘 보면 캐로우 앞발 모양하고 비슷해. 잘라다가 잘 말리면 얼추 비슷해 보일 것 같기도 한데.”
“암시장에 팔면 눈깔 삔 얼간이들 열에 하나 정도는 걸려들지 않을까?”
“그래, 차라리 내 오른손을 잘라가! 내 21번 수집품은 절대 못 주니까!”
얼핏 살벌하게 들리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는 평소에도 흔하게 주고받는 친애의 대화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그리체의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벌컥!
전조도 없이 갑자기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