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6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65화(16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65화
록사나가 아그리체의 이름으로 위그드라실에 왔을 때부터 그녀의 의중은 데온의 손에 당장이라도 잡힐 것처럼 선연히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이미 한 번 스스로 부쉈던 아그리체를 어떤 의미로든 다시 책임지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아니면 이대로 묵인할 텐가?”
뱀처럼 속살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카시스는 잇새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데온의 살인은 분명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베르티움이 먼저 록사나에게 한 일로 분개해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다 한다면, 데온 역시 아그리체의 사람이므로 아예 참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당시의 데온이 베르티움에서 록사나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가 베르티움에서 단테를 죽인 이유는 록사나일 것이다. 그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너만 입을 다문다면 이 일은 그대로 수면 아래에 가라앉을 뿐일 텐데.”
데온의 행동은 어떤 의미로든 록사나에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침잠한 눈으로 카시스의 얼굴을 응시하던 데온이 다시금 천천히 입술을 뗐다.
“네가 록사나와 함께한다는 것은 한평생 그런 번민과 동반해야 한다는 의미다.”
데온의 얼굴에 서서히 날카로운 조소가 번져 나갔다.
“록사나는 누구보다 아그리체다운 아그리체지. 아마 록사나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거야.”
카시스 페델리안은 록사나 아그리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런 그녀와 함께하는 일이 과연 네게 쉬울까?”
아마 지금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과연 그 본질마저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너와 우리는 결국 살아가는 물이 다르다.”
아니. 그럴 리가.
“록사나의 독이 서서히 네 숨통을 조이고 심장까지 파고들어서…….”
데온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종국에는 너를 죽이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이, 데온은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난 그날을 퍽 기대하고 있지.”
그러니 그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피할 수 없는 그날이 도래해, 종국에는 록사나가 어쩔 수 없이 제 손으로 카시스 페델리안을 죽이고야 말게 되는 날을.
그때에도 록사나는 새하얀 눈물을 흘릴까?
그녀의 손으로 제 오빠인 아실의 환영을 죽였을 때처럼.
그런 생각을 하면, 늘 공허했던 데온의 심장에 스스로조차 정체를 알 수 없는 뻐근한 감정이 물살처럼 들어차는 것 같았다.
카시스 페델리안은 얼어붙은 얼굴로 데온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보다 한결 진해진 붉은 태양 빛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게 네 방식이로군.”
마침내 굳게 다물려 있던 카시스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결국 너는 네가 있는 나락까지 그녀를 끌고 들어가고 싶은 거지.”
데온은 그 말에 부정하지도 않았다.
“안타깝게도 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아.”
카시스는 살갗이 아릴 정도의 한기가 몰아치는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찍어 눌렀다.
“너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군. 애초에 너와 록사나를 한데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녀와 너는 조금도 같지 않다.”
죽이고 싶지만 죽일 수 없다.
그녀에게 감히 시선조차 닿지 못하게 떼어 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 시선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 모두의 심중을 차지한 공통된 모순이었다.
“하지만……. 그래.”
데온의 멱살을 쥔 카시스의 손에 지그시 한결 거센 힘이 들어갔다.
그는 데온에게 시선을 정면으로 맞대며 차디찬 눈빛과 달리 고요하게까지 느껴지는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도 만약 그 말처럼 록사나가 스스로 네가 있는 어둠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의 가정이었고, 그것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기에 무의미한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시스는 설령 그것이 그의 앞에 놓일 불변의 미래라 해도 추호의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기꺼이 그 손을 잡고 나락까지 함께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너뿐이라고 자만하지 마라, 데온 아그리체.”
매끄럽게 얼어 있던 데온의 얼굴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카시스는 싸늘하게 내리깐 시선으로 데온을 꿰뚫어 보다가 마침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둘 모두의 위에 질척한 붉은빛이 아낌없이 내리부어졌다.
파삭.
별안간 데온의 손이 그의 밑에 깔려 있는 덤불의 꽃과 잎새를 한 움큼 틀어쥐었다.
알알이 영근 노을이 도드라진 손마디를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 * *
그날 늦은 저녁 시간, 예상 밖의 장소에서 예상 밖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도서실에서 마주친 류자크와 실비아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실비아는 이미 도서실 안의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였고, 류자크는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슬쩍 주변을 훑는 류자크의 눈빛에 갈등이 떠올랐다.
인사까지 나눈 마당에 곧장 뒤돌아 나가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도서실 안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서 결국 류자크는 실비아에게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야 책장에서 책이라도 하나 꺼내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까 잘못 들어온 척 다시 문을 열고 나갈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실비아도 그저 창밖을 보며 앉아 있을 뿐, 딱히 책을 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류자크는 그냥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몸을 이완시켰다.
처음에는 둘 다 어색함에 굳어진 분위기를 풍겼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기색도 옅어졌다. 도서실 안의 공기는 조용하고 평온했다.
“그동안 도서실을 꾸준히 방문한 사람이 한 명 있다고 아까 청소하던 사용인에게 들었는데, 그게 적의 후계자님이셨군요.”
잠시 후, 귓가를 스치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류자크가 시선을 옮겼다.
실비아가 어느새 창가에서 눈길을 떼고 류자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류자크가 도서실을 이용하는 것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디를 봐도 류자크에게는 차라리 무술 연무장 같은 곳이 잘 어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또 습관적으로 움칫 미간을 찌푸린 뒤 대답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다 보니 발길이 닿았습니다.”
“묵고 있는 개인실이 있잖아요?”
“방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그러자 실비아도 그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실비아가 이곳을 찾은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배려하듯이 말을 건넸다.
“혹시 저와 같이 있는 게 불편하시면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자리를 옮기셔도 돼요.”
자신이 자리를 옮겨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실비아가 도서실을 처음 발견하기 전부터 이곳을 이용하던 것은 류자크였지만, 어쨌든 오늘 먼저 도서실에 온 건 자신이었으니까.
류자크도 그녀의 생각을 읽고 조금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럼 저도 괜찮으니 그냥 이대로 있지요.”
실비아가 간단히 상황을 정리한 뒤 다리를 쭉 펴고 아까보다 더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아서 류자크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귀에 울린 실비아의 목소리에 류자크는 드물게도 당혹감을 느꼈다.
“실은 문을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저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시기에 같은 자리에 있기 싫으신 줄 알았어요.”
“제가 그랬습니까?”
“네. 사실은 오늘만이 아니라 볼 때마다 그러셨지요.”
실비아는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류자크는 일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살짝 굳어졌다.
그러다 이내 이제까지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지금까지와 다른 의미로 얼굴을 굳혔다.
“그저 여성분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라 서먹함에 무심코 나온 반응일 뿐, 결례를 저지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뜻밖의 진지한 사과에 이번에는 실비아가 조금 당황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아까와 같은 서먹한 공기가 잠깐 감돌았다. 그것을 이기지 못해 류자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그만 돌아가 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까?”
말하고 나서야 자신의 말이 실비아를 쫓아내려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주변이 없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실비아는 류자크의 말을 곡해해 듣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늦어지면 오빠가 데리러 올 거예요.”
“가족 간의 사이가 좋으시군요.”
전부터 페델리안의 남매를 볼 때마다 느낀 것이었다.
류자크의 말을 듣고 실비아가 약간 머쓱한 듯이 웃었다.
“저를 좀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버지도 그렇고.”
사실 실비아는 가족들이 요즘 자신에게 부쩍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녀의 태도가 전과 달라진 것을 그들 역시 느낀 것 같았다.
오빠인 카시스는 어제도 무슨 말인가를 할 것처럼 그녀를 쳐다보았다. 실비아는 그 시선을 읽고 일부러 카시스를 피했다.
자신조차 명확히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음이라 만약 누군가 이유를 물어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그저 위그드라실에 와서 다른 가문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금씩 기분이 이상해졌던 것 같다. 페델리안에만 있을 때에는 몰랐던 겉도는 느낌 같은 것이 들었다.
특히 특정 인물을 볼 때면 유독 그랬는데, 그것이 바로 제레미 아그리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과 얼굴을 맞대며 약간 유치하게 각자의 누나와 오빠 자랑을 하다가도 곧 수장들과의 회의가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보았을 때.
그럴 때면 실비아는 자신과 동갑인 제레미 아그리체가 갑자기 자신보다 어른인 것처럼 느껴져 거리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점점 그런 마음이 커지자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서서히 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뭐라고 설명하란 말인가.
사실 실비아는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유치한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하나뿐인 여동생이고 딸이라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까요. 하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안 그러시는데요?”
한편 류자크는 실비아의 이야기를 듣고 사이좋은 페델리안의 남매를 머릿속에 그리다가, 일전에 장미 화원에서 보았던 또 다른 오누이의 모습을 무심코 떠올리고 말았다.
그 순간 착각처럼 코끝에 짙은 장미 향기가 감기는 것 같았다.
줄에 알알이 꿰인 구슬처럼, 회랑에서 만났던 록사나 아그리체의 모습도 기억 위에 덧씌워졌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말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