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66)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66화(166/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66화
록사나는 두 가문의 협상 자리에서 오고 갈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극비였지만, 페델리안의 남매처럼 아그리체의 남매 역시 상당히 돈독한 오누이 같았으니 수장인 제레미가 제 누이와 가문의 중대사를 함께 의논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주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류자크의 이마에는 깊게 팬 굴곡이 새겨지고 있었다.
불현듯, 류자크는 사실 자신이 지금껏 이 문제를 상당히 신경 써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날 장미 화원에서 보았던 남매의 친밀한 모습이 유독 짙은 잔상으로 남아 있던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스스로도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록사나 아그리체가 가스토르의 치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류자크로 하여금 미온한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그러고 보니 바드리사 님은 가스토르의 첫 여성 수장님이죠?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실비아가 덧붙인 말을 듣고 류자크의 상념이 끊어졌다.
실비아의 말을 곱씹는 동안 그의 얼굴이 확연히 부드러워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류자크와 실비아는 둘 다 의외의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류자크 님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닮으신 편이죠? 지난 화합회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바드리사 님밖에 보지 못했지만 외모나 성격이 상당히 비슷해 보여요.”
하지만 곧이어 실비아의 물음 뒤로 뇌리를 스쳐 지나간 사람의 모습에, 류자크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예. 저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습니다.”
유독 단호한 어조로 흘러나온 대답을 듣고 실비아는 멈칫했다. 류자크는 그것을 보고 애써 표정을 피려 노력했다.
류자크의 아버지는 지난 화합회와 이번 친목회 모두에 불참했다.
가스토르를 떠나기 직전에 보았던 이지를 잃은 시뻘건 눈을 떠올리자 속에서부터 희미한 거북함과 구역질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마치 반작용처럼, 성화 속의 한 장면인 양 아득하리만치 아름다웠던 장미 화원의 남매의 모습도 시야에 번져 들었다.
류자크는 위그드라실에 들어와서 줄곧 혼자 번민해 왔듯이, 이런 감정을 누구에게 향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에게 있어 아그리체가 악인 것은 분명한데, 그동안 위그드라실에서 남몰래 지켜본 아그리체의 남매들은 죄와는 거리가 먼 무구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가스토르는 물론이고, 다른 가문에도 위해를 끼치려는 어떤 수상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그리체에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가문 쪽이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내일의 만남에서 결론지어질 것이다.
류자크는 무릎 위에 놓인 주먹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록사나 아그리체의 말대로, 내일 있을 자리에서 류자크 역시 바드리사의 옆에 함께할 것이었다.
* * *
류자크는 바드리사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먼저 앞서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미미하게 가라앉은 눈길이 닿았다.
이 길의 끝에는 지난번에 이어 다시 한 번 마련된 아그리체와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었다.
“류자크.”
그때, 잔잔한 음성이 앞에서부터 날아들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협상 자리에는 나만 있어도 된다.”
바드리사는 또다시 류자크에게 결정을 번복할 것을 권했다.
평온한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는 거부감과 비슷한 기묘한 거리감이 맺혀 있었다.
류자크는 록사나의 말을 다시금 상기한 뒤 입술을 벌렸다.
“어머니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서 마땅히 저도 이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드리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네 뜻이 확고하다면 나도 더는 막지 않으마.”
결국 그녀는 아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들은 아그리체와의 만남이 예정된 방으로 향했다.
* * *
“오셨습니까.”
“먼저 와 있었군.”
제레미 아그리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서는 바드리사와 류자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착석한 뒤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록사나의 말처럼 그는 함께 온 류자크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사용인이 다녀갔는지, 테이블 위에는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세 개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댄 것은 제레미가 유일했다.
“오늘은 차를 드시지 않습니까? 향이 무척 좋은데요.”
그의 권유에도 바드리사와 류자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움직임 없이 조용한 시선만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제레미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덧붙여진 그의 말을 듣고 류자크가 입매를 굳혔다.
“오늘 이 자리를 준비한 것은 아그리체이지만 차 안에 이상한 것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바드리사는 아무 말 없이 차가운 유리막이 낀 것 같은 눈으로 새파랗게 어린 흑의 수장을 응시했다.
곧 그녀가 내뱉은 말은 단 한 마디뿐이었다.
“맹랑하군.”
“가스토르의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도 있을 듯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을 좀 더 편히 가지셨으면 해서.”
엷게 웃어 보인 제레미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여유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만해서 바드리사는 속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에도 제레미 아그리체는 지금과 같은 의뭉스러운 태도로 그녀를 자극했었다.
“나는 말을 에둘러 하는 것을 싫어하네.”
나직한 음성이 테이블 위를 가로질렀다.
“쓸데없이 뜸을 들여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를 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 그럼에도 지난번 만남 때 핵심에서 겉도는 이야기만 꺼내는 데 그친 것은 어째서라고 생각하나.”
바드리사의 물음에 제레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제 반응을 떠보신 게 아닙니까?”
“물론 그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바드리사는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읊조렸다.
“그저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 신랄한 어조에 옆에 있던 류자크가 움찔했다.
바드리사의 가감 없는 솔직한 말에 오히려 그가 굴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눈가에 잔 떨림이 일고 무릎 위에 얹어 놓았던 손이 어떤 의지를 담아 꿈틀거렸지만 류자크는 제 안에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바드리사는 그런 류자크를 앞서 다독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 자리에 오기로 결정한 것은 류자크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 온전히 그 혼자서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 만남 이후 또 한 번 절감했네. 아쉬운 것은 아그리체가 아닌 가스토르지.”
그래서 바드리사는 다만 오늘의 협상 상대인 제레미를 향해 묵묵히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협상이라 할 수 있는가. 처음부터 저울추는 명백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바드리사의 눈꺼풀이 내리깔렸다.
“그러니 오늘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자네에게 가스토르에 대한 존중이 남았다면 지난번 같은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리라 믿네.”
그녀는 눈을 한 차례 감았다 뜬 뒤 다시금 맞은편에 앉은 이를 흔들림 없는 눈으로 직시했다.
그런 바드리사를 향해 제레미가 흠잡을 바 없이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물론, 저는 언제나 가스토르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바드리사에게 있어 지금 들은 말은 일종의 조롱으로도 느껴졌다.
그녀는 더 이상의 체면치레를 던져 버리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그리체에서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처음 의심한 것은 지난 겨울입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가스토르에서…….”
제레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말을 골랐다.
“아그리체에서만 품종을 개량해 생산하는 중독성 강한 마약을 대량으로 구입하셨더군요.”
침묵이 짙은 안개처럼 서렸다.
과연 그것은 수장인 바드리사의 인생에, 그리고 가스토르의 역사에 다시없을 쓰디쓴 치부이자 오점이었다.
아까부터 지그시 악물고 있던 류자크의 턱이 더욱 단단히 조여들었다.
제레미는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본 뒤 다시 바드리사를 보며 말했다.
“지난겨울 그 거래를 책임졌던 것은 제 형제들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의 마약 밀매를 진행했던 건 폰타인과 데온이었다.
제레미도 그 당시 그들이 맡았던 임무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었으나 이런 식으로 가스토르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록사나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가스토르에서는 철저히 가명과 대리인을 사용했더군요.”
바드리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란트 아그리체도 알고 있었던 건가.”
“아버지는 모르셨습니다.”
제레미는 고개를 저었다.
“가스토르와 직접 계약한 형제는 중립 구역의 도박장에서 만난 어떤 남자와 우연히 거래를 트게 되었다고 했지요. 그 역시도 상대가 가스토르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