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73화(173/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73화
* * *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그렇게 제레미랑 할 이야기가 많았어?”
제레미와 헤어져 방으로 향하는 길에 그리젤다가 록사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따분함이 담긴 그 말투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리젤다는 꽤 오래 그녀를 기다린 듯했다.
하지만 록사나는 다소 정 없는 태도로 서늘히 읊조릴 뿐이었다.
“웬일이야? 한동안 따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냉소적인 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지난번의 일로 그리젤다가 거슬려서 한동안 만나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그드라실에 와서 주술의 사용에 자유롭지 못하게 된 그리젤다가 쓸모없어진 걸 꼬집은 것이기도 했다.
그리젤다도 그것을 알고 부러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매정하기도 해라. 아직도 나한테 마음이 안 풀렸어? 그 일은 미안하다니까.”
하지만 록사나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것을 보고 그리젤다가 다시금 반성하는 척하며 말했다.
“정말이야. 앞으로 이런 일은 또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네 다른 개처럼 버리지는 말아 줄래? 역시 난 네 옆이 제일 재미있단 말이야.”
그러나 실상 그녀가 한 말은 록사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리젤다도 아그리체의 핏줄답게 속에 검은 뱀을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록사나에게 호의를 품은 만큼 독니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이어질 그녀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젤다가 말한 ‘개’라는 것은 데온을 의미하는 게 분명했고, 록사나는 전부터 그에 관한 일에는 한기를 숨기지 않곤 했으니까.
그리젤다는 아그리체에 있을 때부터 이런 식으로 록사나를 자극해, 그 대가로 돌아오는 싸늘한 반응을 즐기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록사나는 그리젤다를 잠깐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젤다. 난 당신을 꽤 좋아하는 편이야.”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단조로운 음성이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젤다가 굳어졌다.
그녀는 불시에 들은 뜻밖의 말에 적잖은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갑자기 뭐야?”
마침내 그리젤다가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반응했다.
록사나를 향한 눈빛이 꼭 뭘 잘못 먹거나, 혹은 죽을 날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변한 사람을 보는 듯했다.
록사나는 체한 얼굴을 한 그리젤다를 향해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상당히 유능하고, 쓸데없이 선을 넘어서 날 귀찮게 만들지도 않지.”
칭찬이라면 칭찬인 말이었다.
하지만 잇따라 록사나가 싸늘하게 미소하며 덧붙인 말을 듣고 그리젤다는 의심과 달리 다행히 그녀가 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위그드라실 안에 들어와서 가뜩이나 무능해진 언니가 이렇게 한 치 앞도 모르고 선까지 넘어 버리면 내 기분이 어떨까? 난 지금까지 쓸모없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사람을 곁에 둔 역사가 없는데.”
여전한 독설에 그리젤다는 차라리 안심했다.
조금 전의 첫마디처럼 그런 말랑말랑하고 간질간질한 말은 록사나와 그녀 사이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젤다도 다시 여유를 되찾고 평소처럼 반응했다.
“진짜 너무하네. 주술 하나 못 쓴다고 해서 내가 정말 그렇게까지 무능해지는 건 아닐 텐데.”
그런 후 그녀는 조금 볼멘 어투로 투덜거렸다.
“그런데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나한테 너무 쌀쌀맞다, 너. 제레미한테 하는 거랑 너무 다르잖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 당신도 나한테 가족 취급을 받길 바라는 건 아닐 텐데.”
맞는 말이기는 했다.
록사나에게 이제 와서 언니 대접을 받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젤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이복형제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다 그럴 것이었다.
오히려 저들끼리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록사나와 제레미가 이상했다.
그러다 불현듯 드는 생각에 그리젤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에는 몰랐는데 넌 의외로 아실을 닮았는지도 모르겠어.”
“…….”
“아실도 아직 살아 있었다면 너처럼 재미있는 인간으로 자랐을까? 갑자기 좀 아쉽네.”
그러던 그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록사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참, 너 아까 연기 잘하더라. 눈빛이 하도 절절해서 베르티움에서 네가 그 인형에게 데었던 일을 몰랐으면 나도 좀 속아 넘어갈 뻔했어. 이름이 닉스였던가. 분명 넌 오히려 그 인형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 하는 쪽일 텐데.”
록사나는 그리젤다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싸늘한 시선만 보냈다.
그 눈빛이 마치 더 이상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시키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 그리젤다는 슬슬 그만하기로 하고 알겠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일단 너나 제레미는 앞으로도 계속 다른 일로 바쁠 것 같으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동생들 감시는 내가 잘 할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먼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엘 베르티움이 여기 오고 나서 그 주위를 서성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건데 말이야.”
하지만 그리젤다는 그대로 록사나를 스쳐 지나가지 않고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노엘 베르티움의 심복 이름이 단테라고 했던가. 그 사람 죽었다고 하더라.”
그 순간 록사나의 눈매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내 생각에는…… 어느 충직한 개가 주인의 흔적을 쫓아서 베르티움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게 연관이 있어 보이네.”
그것이 흥겨운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래하듯이 속삭인 그리젤다의 얼굴에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무능한 자라 이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해서 미안.”
그런 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록사나를 지나쳐 복도를 걸어갔다.
록사나도 그 발소리를 들으며 멈춰 있던 다리를 움직여 그리젤다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걸음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정면을 곧게 응시하고 있는 록사나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 * *
위그드라실 안에는 새로운 파란이 불어닥쳤다.
그 원인은 단연코 베르티움의 인형 때문이었다.
각 가문의 수장들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벌 떼처럼 시끌벅적해졌다.
그사이 록사나는 실비아를 찾아갔다.
카시스의 말처럼 닉스가 탈출해 실비아를 인질로 삼으려 한 것이 아그리체의 탓은 아니었지만, 닉스의 경우는 특수하다 보니 록사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에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미 그녀가 닉스를 반 정도는 자신의 소유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실비아는 어머니인 쟌느와 함께 있었다.
록사나는 닉스가 탈출하게 될 때까지 그에게 좀 더 꼼꼼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과, 아까 정원에서 경황이 없어 위험한 일을 겪은 실비아를 좀 더 세심히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록사나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결과적으로 아무 피해도 없었기에 망정이긴 했으나, 사실 닉스가 실비아를 인질로 삼으려 시도했던 것은 충분히 더 크게 번질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록사나는 페델리안에서 이 일로 닉스의 처분을 요구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청문회 이후 닉스의 소유권을 베르티움으로부터 돌려 받을 셈이었지만, 만약 페델리안이 닉스의 죽음을 원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델리안에서는 그런 것까지 주장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록사나가 느낀 감정은…….
실망인지 안도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기이한 것이었다.
그날 저녁, 몇몇 사람들이 연회 자리에 참석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물론 베르티움에 의해 만들어진 닉스가 죽은 그녀의 오빠의 시신을 되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건넨 말이었다.
거기에는 류자크 가스토르와 판도라 휘페리온도 껴 있었다.
류자크는 아그리체와의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하게 긍정적으로 풀려 록사나에게도 벽을 한 겹 허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굳은 얼굴로 다가와 어색하게나마 괜찮냐는 물음을 건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판도라는 지난 만남 이후 그녀를 한결 가깝게 느끼는 듯, 연민 가득한 눈으로 심려가 크겠다며 위로했다.
록사나는 그들에게 흐릿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휘페리온 양. 전부터 느꼈던 건데, 역시 저희 어디에서 만난 적이 있지 않았나요?”
판도라는 여느 때처럼 록사나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제레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말을 듣고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각났다며 황급히 사라졌다.
그 후 카시스와 실비아가 연회장으로 내려왔다.
카시스는 정원에서의 일 이후 닉스와 노엘 베르티움을 살피고 오는 길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세계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기묘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청문회는 당초의 계획대로 열릴 예정이었고, 카시스가 여기에서 그들에게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안색이 아까보다 한결 좋아지신 것 같군요.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염려해 주신 덕분에요.”
“다행입니다.”
카시스와 록사나는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며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실비아 양도 아까 큰일을 겪으셨는데 마음은 많이 안정되셨는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멀쩡하답니다. 지금도 몹시 배가 고플 뿐이에요.”
제레미와 실비아까지 합해서 네 사람은 결국 같은 자리에 앉아 연회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카시스와 록사나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 써 내려지고 있었다.
대략 그 내용은 록사나가 일전에 제레미에게 이야기했던 것과 비슷했다.
아마도 지난 화합회 때 노엘의 심복인 단테가 록사나에게 꽃다발을 전해 주는 모습을 누군가 목격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록사나에게 관심을 두고 있던 노엘이 그녀를 베르티움에 초대해 닉스를 보여 주었고, 심지어는 그에 충격을 받은 록사나를 닉스와 똑같은 인형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위그드라실 내에 떠돌았다.
물론 절체절명의 순간 노엘 베르티움을 저지한 것은 위그드라실의 회의 내용을 대신 전해 주러 갔다가 공교롭게도 그러한 상황을 목격한 카시스였다.
그것은 상당히 진실에 근접한 소문이었다. 아그리체 쪽에서 일부러 푼 소문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친목회 때 카시스와 록사나는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받곤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소문을 쉽게 믿는 눈치였다.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같은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매라 그런가, 둘이 되게 닮았던데.”
페델리안에서 록사나를 보았던 오르카도 베르티움에서 있었던 일의 시기는 모르기 때문에 소문처럼 두 사람이 정말 그때 처음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한 건지 그 사실 여부는 긴가민가한 상태였다.
그보다 오르카는 자칭 탐구심 넘치는 지식인답게 록사나를 닮았던 인형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래? 난 그렇게 많이 닮진 않은 것 같던데.”
행여나 제레미가 자신을 기억해 낼까 싶어 곧장 연회장을 빠져나온 직후 오르카를 만난 판도라가 그의 말에 반박했다.
“아그리체 양의 미모가 훨씬 더 우월하지 않아?”
그건 오르카도 동의하는 바였다. 정원에서 보았던 베르티움의 인형은 결함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 애꾸라 그런가? 아니면 너무 어릴 때 죽어서? 그것도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르카의 신랄한 말에 판도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창가에 앉은 오르카에게 슬쩍 시선을 미끄러뜨려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보다 너, 혹시 요즘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