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74화(17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74화
“무슨 이상한 생각?”
오르카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판도라를 쳐다보았다.
사실 판도라도 이렇다 할 확신이 있어 꺼낸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찜찜한 표정을 지을 뿐,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다른 설명을 더 덧붙이지는 못했다.
“그냥 요즘 널 보면 느낌이 뭔가 쎄해.”
그런 판도라를 향해 오르카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누이는 날 너무 막 나가는 인간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내가 위그드라실에서 얼마나 신사답게 행동하고 있는지 누이가 제일 잘 알잖아?”
오르카의 말처럼 판도라는 수장의 명령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그 주장대로 오르카는 위그드라실에 와서 내내 얌전했다.
록사나에게도 친목회 초반에 먼저 인사를 한 번 건넸던 것이 전부일 뿐, 그 후로는 그녀에게 먼저 접근하지도 관심을 표하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만 보면 마치 휘페리온에서 출발하기 전에 판도라가 그를 보고 찜찜함을 느꼈던 일도 모조리 기우인 듯했다.
지금도 오르카의 말은 판도라의 일방적인 의심보다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조금 의심 섞인 눈으로 그를 보면서도 다른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한편 오르카는 내심 판도라의 눈치가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스스로 입 밖에 내서 굳이 자신이 수상하다는 사실을 알려 줄 마음은 없었다.
오르카는 가느다란 미소를 베어 물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역시 판도라는 바깥에서부터 밀려 들어오는 이 들썩이는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응.’
오르카는 모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며 입 안에서 혀를 굴렸다.
마치 태풍의 핵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저 소리 없이 소용돌이치는 기류 속에 몸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오르카는 마수사였다.
그 말은 즉, 그가 남들 이상의 인내심을 폐부 깊숙이 담아 두고 있다는 의미였다.
오르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번의 기회.
쓸데없이 감이 좋은 카시스 페델리안에게 주시당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특히나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리하여 그가 고대하는 최적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에 움켜쥘 수만 있다면 기다림의 시간 정도야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었다.
오르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창밖의 노을을 감상했다.
* * *
그날 밤, 카시스는 다시 한 번 성탑에 섰다.
쏴아아.
숲이 약동하는 소리가 파도처럼 귓가에 밀려들었다.
처음 위그드라실에 몸을 들였을 때보다 한 발짝 더 늦봄에 가까워진 탓인지, 한밤인데도 제법 미적지근한 공기가 뺨을 스쳐 지나갔다.
달 조각 같은 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을 한 차례 기민하게 훑고 지나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살갗을 파고드는 공기가 묘하게 들떠 있었다.
단순히 기분 탓으로도 여길 수 있는 일이었지만 카시스는 그것을 쉬이 넘기지 않았다.
페델리안의 후계자로서 공무를 맡아 처음 경계 수색에 나섰을 때부터 육감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 본 적은 수없이 많았다.
이런 껄끄러운 느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시한 뒤에는 늘 성가신 일이 벌어지곤 했다.
지금은 자정 무렵.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카시스는 혼자 위그드라실을 벗어났다.
위그드라실 내부에는 무기 반입이 금지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올 때 따로 수거를 해 가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손에 넣으려면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건물 안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첨탑을 내려가 바깥으로 이동했다.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의 몸에는 록사나의 나비가 붙어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 카시스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키에엑!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숲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물의 울음이 고막을 찔러 들었다.
보다 깊은 안쪽에서는 더욱 활발한 마물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지금 이곳은 위그드라실에서 가장 가까운 마물 서식지였다.
아마 록사나가 독나비의 먹이를 주기 위해 다녀갔던 곳도 이곳일 것이다.
그렇다면 불과 며칠 전에 이미 한 차례 쓸고 지나간 자리인데도 마물의 개체 수가 벌써 이 정도로 증가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딱히 비정상적이라 할 정도까지 마물이 바글거리는 것도 아니라, 수색을 보냈던 심복이 애매함을 표할 만도 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여기까지 온 이상 청소를 한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카시스는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맨몸으로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숲의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다른 때라면 이런 방법은 별로 유쾌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손에 힘을 집중시키고 눈앞의 육중한 몸체를 가격하자 마물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속속들이 쓰러져 나갔다.
키에에엑!
어찌 보면 심복들이 주인과의 계약을 통해 생명력을 담보로 사용하는 힘과 얼핏 닮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종류가 달랐다. 카시스의 힘은 접촉한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력을 빼앗는 것이 근간이었다.
그는 내친김에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마물 서식지로도 이동해 위그드라실의 주변을 청소했다.
물론 근처 마물 서식지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 모든 장소에 전부 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단은 위그드라실에서 가장 거리가 가까운 편인 서식지를 세 군데 정도만 얼추 정리했다.
대략 일을 끝마치자 막 동이 틀 무렵이었다.
카시스는 마물의 독액이 튄 몸에 정화의 기운을 둘렀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야행성 마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었다.
마물을 모두 제거할 필요는 없었기에 어느 정도 개체 수가 줄어든 시점에서 카시스의 볼일은 끝난 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러고 난 뒤에도 그의 육감을 건드리는 거스러미 같은 걸리적거림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어째서지.’
카시스의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무언가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카시스는 지면을 박차고 가까이에 있는 가장 튼튼한 나무의 가지를 밟아 위로 올라갔다. 꼭대기까지 올라서는 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카시스는 물에 녹듯이 시야에 번져 드는 여명 속에서 온몸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위그드라실의 첨탑에서 느꼈던 것과 동일한 어수선함이 새벽바람에 떠밀려 스쳐 지나가는 것이 포착되었다.
시린 새벽빛에 물든 얼굴이 얕게 굳어졌다.
카시스는 다시 밑으로 내려와 맨 처음 그가 마물들을 청소했던 서식지로 빠르게 이동했다.
크오오!
기가 막히게도, 아까 그가 처리한 수만큼 다시 불어난 마물들이 숲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다.
아마 조금 전 카시스가 떠나온 다른 서식지도 지금쯤은 이 꼴이 되어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건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마물의 문제인가, 장소의 문제인가.
이미 동이 트고 있었으므로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았다.
카시스는 또 한 번 눈앞의 마물들을 절반 정도 해치웠다. 아까보다 한결 빠른 속도였다.
그런 뒤 그는 나무 위에 올라가 상태를 살폈다.
마물들에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소리 높여 다른 무리를 부르는 수신호도 보이지 않았고, 카시스가 시야에서 모습을 감춘 뒤에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해 머지않아 움직임도 얌전해졌다.
그러나 잠시 후 해가 완전히 산등성이를 넘었을 때, 카시스의 시야에 들어온 마물들의 수는 다시 늘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움직임이 어딘가 이상했다.
모여든 마물들이 어쩐지 꼭 한 지점을 중심으로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휘익!
카시스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근처에 있는 마물들을 모조리 제거했다.
크아아아악!
이제는 마물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카시스는 마물의 사체마저 치워 버리고 조금 전 이상함을 감지했던 부근을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를 발견해 냈다.
“이건…….”
잠시 후 카시스의 손에 들린 것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돌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는 날카로운 것으로 표면을 그어 새긴 듯한 주술이 그려져 있었다.
바닥에 있는 다른 돌멩이와 풀잎 속에 감쪽같이 섞여 있었으니 주변을 대강 살펴봤을 때 발견하지 못했을 만도 했다.
효과를 단언할 수 없었기에 카시스는 그것을 들고 장소를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주변으로 마물들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주술의 성능을 확인했다.
카시스는 그가 가지를 밟고 서 있는 나무의 둥치에 우글우글 몰려든 마물들을 가라앉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혹시 이것이 록사나의 안배일 가능성은?’
얼마 전 록사나 역시 이곳에 들렀던 참이므로 그녀에게 일순간 생각이 미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시스는 결론을 내렸다.
파삭.
손아귀에 힘을 주자 돌에 금이 갔다.
주술진이 깨지며 마물을 불러 들이던 힘도 사라졌다.
발밑에서 얼쩡거리던 마물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 돌을 원 상태로 가져갔다가는 자칫 위그드라실 안에까지 마물을 꾀어낼 가능성이 있었다.
주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불확실한 가설이긴 했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안고 갈 이유는 없었다.
카시스는 두 동강 난 돌을 갈무리했다.
어느새 해가 머리 위에까지 떠올랐다.
오늘은 청문회가 있는 날이라 늦어서는 안 되었다.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