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6)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76화(176/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76화
제레미는 아주 잘하고 있었다.
다만 정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의 분노는 연기인지 실제인지 다소 헷갈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 단순한 분노만 실린 것이 아니라 참담함까지 함께 담겨 있는 것을 보면 연기가 맞았다.
요즘 계속 이쪽 방면으로 물이 오르는 것 같더니, 이제는 나까지 헷갈릴 정도로 이렇게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에 맞추어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위그드라실 안에 만연한 소문 탓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노엘 베르티움이 아실에 이어 나까지 인형으로 삼으려 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노엘 베르티움의 모습을 보고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사흘 전 회랑에서 노엘 베르티움이 나를 ‘루나’라고 부르는 것을 가까이에서 들은 적이 있던 류자크 가스토르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이제야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경악한 눈치였다.
“노엘 베르티움.”
다시금 수장들이 엄중한 목소리로 노엘을 불렀다.
옆에 있는 심복들에게 명령해 그를 끌고 가 자리에 앉힐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끝까지 그에게 가문의 수장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줄 생각인 것이다.
나는 내심 비소했다.
그때, 조용히 상황을 살피던 카시스가 입을 열어 시린 음성을 흘려보냈다.
“이렇게 시간을 끌 바엔 지금 바로 베르티움의 인형을 데려오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닉스를 보기 전에는 노엘이 제 발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 수장들도 동의했다. 그 말을 들은 노엘도 잠잠해졌다.
철그럭.
그리하여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제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닉스가 대회의장에 당도했다.
“닉스……!”
닉스의 손목과 발목에는 이제 일반 족쇄가 아닌 마물용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어제 그가 직접 족쇄를 해제하고 도주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종류를 바꾼 것이었다.
노엘은 닉스를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들 듯이 자리를 박찼다.
“노…….”
닉스 역시 노엘을 보고 움찔하며 입술을 뗐다가 곧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닉스를 절절하게 불러 찾는 노엘의 눈동자에는 기묘한 광기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나도 가까이에서 그것을 보고 무의식중에 손끝을 움칫거릴 정도였으니, 노엘을 정면에서 마주한 닉스가 뒷걸음질 치고 만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위험함을 감지한 심복들이 노엘을 막아섰다.
“저리, 비켜……! 닉스!”
노엘 베르티움은 눈까지 시뻘게져서 닉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기에 닉스마저 위협을 느끼는지, 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노엘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황의 수장! 그만 진정하지 못하겠나?”
참다못한 히아킨 휘페리온이 더 이상 봐주기 힘들다는 듯이 외쳤다.
리셸과 바드리사도 차갑게 굳은 얼굴로 노엘의 행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뭐 저런 신박한 병신이…….”
옆에서 제레미가 기막히다는 듯이 나한테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형을 치우게.”
“그게 좋겠군.”
결국 리셸과 바드리사의 입에서 닉스를 눈앞에서 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닉스! 닉스를 또 어디로 숨기려는 거야! 닉스는 내 인형이야, 내 거라고!”
하지만 노엘은 이제 눈에 뵈는 것이 없는지, 악까지 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이는 그 광폭한 모습에 압도되어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장, 닉스를, 이리, 내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카시스가 노엘 베르티움의 급소를 쳐서 그를 기절시키고 난 뒤에야 대회의장 안의 소란은 잠재워졌다.
“의무실로 데려가도록.”
그렇게 닉스와 노엘이 모두 문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허. 별 꼴을 다 보겠군.”
히아킨 휘페리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읊조렸다.
바드리사는 사람을 불러 노엘과 닉스를 지켜보게 시켰고, 리셸은 카시스에게 물었다.
“황의 수장이 이전에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위그드라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다소 불안정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성을 완전히 잃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입니다.”
제레미가 그 말을 듣고 작게 쯧, 혀를 찼다.
그러다 문득 그는 퍼뜩 깨달은 듯이 나를 돌아보며 또다시 연기를 펼쳤다.
“누나, 놀라지 않았어? 가뜩이나 몸도 약한데. 자, 여기 물이라도 마셔.”
언제부터 내가 병약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설정 같아서 나도 그냥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얌전히 제레미가 준 물 잔을 받아 들었다.
실은 단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아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노엘 베르티움은 심복인 단테에게 상상 이상으로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만약 위그드라실 안에서 환상나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노엘에게 죽은 단테의 환영이라도 보여 줘 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보니 따로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덜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나 스스로에게도 냉소가 지어졌다.
카시스를 보니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카시스에게 내 본성을 숨기고 마냥 착한 척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럴 때면 그에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일의 경위에 대해 들어 보지 않을 수 없겠군.”
수장들이 산만한 분위기를 다시 다잡으며 운을 틔웠다.
지금에 와서 노엘이 없다고 자리를 파할 수도 없고, 아까에 비해 대회의장 안의 분위기가 심각해지기도 해서 일단 이번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말이라도 듣기로 한 것이었다.
“페델리안의 후계자에게 먼저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가장 처음 카시스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표면적으로 베르티움의 인형에 대해 수장들에게 가장 처음 알린 것도, 또 베르티움 안에서 있었던 일을 유일하게 목격한 것도 그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평소 위그드라실에서 회의가 열릴 때마다 베르티움이 자주 불참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카시스가 차분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그에 수장들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 그래서 회의 결과를 전달받을 사자가 대신 위그드라실에 방문하곤 했었지.”
뒤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을 멈추고 카시스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올봄에 열린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먼 길을 달려오느라 기력이 쇠하였는지 베르티움에서 온 사자가 회랑 앞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더군요.”
카시스는 의외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잘했다.
쓰러져 있는 베르티움의 사자를 카시스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를 기절시킨 것이란 사실을 나도 이시도르에게 귀띔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여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를 사용인들에게 맡기고 대신 회의 결과를 담은 서신을 전달하기 위해 심복과 함께 베르티움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랬군.”
카시스는 거기서 한 박자 말을 멈춘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하자마자 목격한 것은 베르티움의 인형이 록사나 아그리체 양을 공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전과 비슷한 소음이 다시금 청중 사이에 맴돌았다.
이미 어제저녁 입에서 입으로 암암리에 전해 들었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카시스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니 심중에 와 닿는 정도가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가 인형의 신병을 구속하고 그 이후 아그리체 양을 보호하게 된 것이 이번 일의 대략적인 경위입니다.”
카시스는 그때 동행했던 심복도 같은 광경을 목격했으니 필요하다면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르티움의 인형이 왜 아그리체 양을 공격하고 있었지?”
“아그리체 양을 베르티움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정황은 아그리체 양에게 직접 듣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발언한 사람이 청의 귀공자인 카시스라는 사실 자체로도 신뢰성이 있었지만, 그가 페델리안이고 내가 아그리체이기 때문에 더욱 공신력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페델리안과 아그리체는 내내 서로에게 감정이 좋지 않던 상태였다.
지난겨울에는 그것이 폭발해 아그리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카시스 본인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가 굳이 상황을 아그리체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거짓된 말을 지어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카시스와 내가 요즘 위그드라실에서 퍽 친밀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오히려 베르티움의 일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 말이 되는 데다, 설령 그와 내가 가까운 사이라 해도 그런 이유로 청의 귀공자가 거짓된 진술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카시스가 그동안 청의 페델리안으로서 얼마나 곧고 반듯한 모습을 보여 왔는지를 증명하는 부분이었다.
“록사나 아그리체 양, 괜찮다면 설명해 주시게.”
수장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옆에서 제레미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격려하듯이 손을 도닥였다.
아무래도 재미가 들린 것 같은 모양새라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저는 그때 황의 가문의 수장께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베르티움에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엘에게 받았던 편지를 사용인들에게 전달시켰다.
미간을 찌푸린 수장들이 초대장을 읽어 보았다.
사실 노엘이 부정하려면 이런 초대장을 자신이 보낸 적이 없다고 발뺌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요청하여 필적 감정을 따로 해 볼 수도 있었지만 내가 봤을 때 협박성 의도가 짙던 서신은 노엘 베르티움이 다른 사람에게 대필을 시킨 것 같았다.
그러니 어차피 이런 것이 증거로써 딱히 효력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서신에 적혀 있는 대로 저는 베르티움에서 제 혈육을 데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이런 종이 쪼가리는 이번 일에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딱히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