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77화(17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77화
“제게 남은 가장 가까운 혈육은 어머니이고, 공교롭게도 겨울 이후 연락이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신의 내용이 가리키는 가족이 당연히 제 어머니일 것이라 생각했지요.”
사실 대회의장 안에 들어오기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노엘 베르티움이 내 오빠의 시신으로 인형을 만들고, 닉스를 이용해 나를 겁박한 정도로는 그에게 내가 바라는 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없었다.
역사상 지금껏 이런 식으로 다른 가문을 추궁한 전례 자체가 거의 없었다 해도 무방하다.
다섯 가문은 어떤 의미로 불가침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섯 가문은 긴 역사 속에서 각자의 고유 권한을 인정하며 공생해 왔다.
물론 베르티움에서 인체 실험을 한 것은 다른 가문에서도 경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노엘이 당장 부정한다 해도 닉스의 몸이 수중에 있는 한 그것이 실제 사람의 육체라는 사실은 어떤 방법으로든 밝혀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그 누가, 베르티움에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
베르티움의 인형술을 영구적으로 봉인하기라도 할 것인가?
더 이상 인체 실험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서약 정도는 받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실에 대한 것은 딱히 이제 와서 아그리체에 보상할 문제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베르티움의 인체 실험에 이용된 시체는 전 수장인 란트가 직접 넘긴 것이었으니까.
나를 위협한 문제 역시 노엘 베르티움이 끝까지 발뺌한다면 별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설령 인정한다 해도 도의적 비난을 받을 뿐, 이 세계에서는 감옥에 간다거나 달리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는다든가 하는 해결책도 없었다.
기껏해야 다른 가문에서 압력을 넣거나 개인적 보복을 하는 것이 전부인데, 생각할수록 참 막돼먹은 세계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니 소설에서도 세상이 범죄의 온상이 되어서 실비아를 사이에 두고 미친놈들이 온갖 미친 짓을 다 저질렀지.
그래서 나도 애초에 이번 일로 베르티움에 닉스 이외의 대가를 받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티움에서 보게 된 것은 제 어머니가 아니라 낯익은 얼굴을 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단 지금은 더러운 구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던 것이 아그리체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 좋았다.
“노엘 베르티움은 그를 시체로 만든 인형이라고 말했죠.”
나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사실 내가 이 일로 진짜 얻어가려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오늘 중요한 것은, ‘내 오빠의 몸을 가진 베르티움의 인형’이란 재료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였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말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자극적인 소재는 완성된다.
그렇다면 구태여 따로 거짓을 섞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
나는 죽은 란트를 앞으로 내가 이끌 아그리체에서 완전히 도려내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열다섯 살에 폐기 처분 당해 죽은 제 오빠 아실이었습니다.”
생경한 단어를 이용한 표현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폐기 처분?”
“네.”
리셸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나는 그에 침착하게 대답했고, 뒤에 있는 이복형제들은 설마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꺼낼 줄 몰랐는지 숨을 들이마시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그리체에는…….”
나는 파동하는 공기를 느끼며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 뜬 뒤 말을 이었다.
“수장의 마음에 차지 않는 아이를 불량품이라 이름 붙여 사형시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아까에 비할 바 없이 대회의장 안이 시끄러워졌다.
경악 어린 웅성거림과 숨소리가 어지럽게 귓가에 메아리쳤다.
“불량품? 사형이라고?”
“그렇습니다.”
히아킨 휘페리온도 이런 것은 상상하지 못했는지 새된 음성으로 재확인했다.
바드리사는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희 세대에 그런 이유로 아버지에게 처분 선고를 받아 죽은 형제는 총 여섯 명입니다. 제 오빠인 아실도 그중 하나였지요.”
“허…….”
상당히 비상식적인 이야기였기에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빙벽처럼 더없이 단단하게 굳은 아그리체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누구도 감히 지금 내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폐기 처분 당해 죽은 형제에게는 무덤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경계에 있는 마물 서식지에 시신을 가져가 버리거나 가문 내에 있는 마물 사육장 안에 던져 넣어 먹이로 삼게 하는 것이 보편적이죠.”
“잠깐, 잠깐…….”
히아킨 휘페리온이 몇 번이나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짓다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 란트가 정말 제 자식들을 여섯이나 죽였다는 건가?”
“네.”
“게다가 시신을 마물에게 던져 주었다고?”
나는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되었습니다.”
폐기 처분 당하는 데에는 기준이 있어 매달 월례 평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나, 그 시험의 내용 같은 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아그리체에서 태어나 배우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너무 깊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를 위험하다고 여겨 경계할 것이다.
“제 오빠인 아실의 경우, 아버지는 평소 그의 성격이 유약한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밖에도 저희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것을 참지 못하셨고요.”
그저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진실 중에 어떤 것을 덜어 낸 나머지를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니까.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 덜어 낸 부분이 좀 많긴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제 자식을…….”
“저희들의 아버지는…….”
나는 처연한 표정을 그리며 작게 입술을 벌렸다.
“그런 이유로 충분히 자식을 죽일 수 있는 분이셨죠.”
이제는 히아킨 휘페리온도 완전히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그 역시도 란트 아그리체를 알기에 내 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드리사도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제레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래 건으로 만났을 때 제레미가 했던 말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려 보고 이제야 그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한 듯했다.
이제 그녀는 우리를 가련히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도 설마 아버지가 죽은 자식들의 시신까지 이용해 베르티움에 실험체로 넘겨주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슬쩍 눈꺼풀을 내려 연약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래서 베르티움에 있는 제 죽은 오빠의 인형을 본 데에 이어 황의 수장에게 직접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러고 나서 속에서 무언가가 복받치는 듯이 말을 멈추고 입술을 꾹 깨물자 곳곳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는 것이 들렸다.
옆에서 제레미가 나 못지않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힘들면 그만 말해도 돼.”
“난 괜찮아.”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 팔을 잡은 제레미의 손을 부드럽게 덮었다.
그런 뒤 한 번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 말했다.
“황의 수장은 제게 ‘루나’라 이름 붙이고 베르티움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거부하자 제 오빠의 인형을 이용해 회유하는 척하며 독약을 먹이려 했지요. 그것마저 실패하자 제 시신이라도 갖겠다며 죽이려 들었습니다.”
청중들 사이에서는 경악이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동정하다가 노엘 베르티움의 만행에 또 한 번 기겁하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때 운 좋게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저도 지금쯤 제 오빠와 똑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카시스와 시선을 맞댔다.
그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그리체의 사정을 대강 알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의 앞에서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카시스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 이건 정말…….”
수장들이 이 일을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을 아꼈다.
생각보다 베르티움에서 있었던 일의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 데다 아그리체의 속사정까지 듣게 되어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수장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들이 베르티움의 일을 이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클 것이었다.
그것을 노리고 일부러 아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던 나로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물론 이렇게 해도 내 말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두 귀로 들은 내용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지금은 그것으로 되었다.
“일단은…… 오늘의 청문회는 여기까지만 하지.”
결국 오늘의 자리는 이대로 파해지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일단 사실 여부를 물을 당사자인 노엘 베르티움이 없으니 지금 더 길게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황하고 또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란트 아그리체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일부나마 밝힌 것에 후련함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의 청문회가 끝났다는 것을 수장들이 공표한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레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문으로 향했다.
다른 가문의 사람들은 아그리체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우리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아그리체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지금까지와 조금 달라질 것을 예감했다.
아마 앞으로는 서서히 조금씩 더 변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아그리체의 명패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더러운 얼룩이 죽은 란트 아그리체와 함께 미명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처음 대회의장에 들어설 때처럼 제레미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