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9)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79화(179/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79화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면서도 카시스는 침묵했다.
록사나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카시스에게 붙여 두었던 독나비를 불러 밖에서 있었던 일을 확인했다. 그래서 카시스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았다.
카시스의 말대로, 그가 마물 서식지에서 발견한 주술이 새겨진 돌은 록사나의 것이 맞았다.
그 돌은 페델리안에 있을 때 그리젤다에게 연락해 받아 두었던 것으로, 예전부터 아그리체에서 사육장에 넣을 마물을 대량으로 포획할 때 사용하곤 하던 것이었다.
애초에 휘페리온이 마물과 각인할 때 사용하는 보석에 착안해 실험한 것이었기 때문에 생김새도 비슷했다.
하지만 주술진을 새긴 돌 자체로는 효과가 없었고, 거기에 피를 묻혀야 비로소 주술이 완성되어 발동하는 원리라는 점이 달랐다.
그것을 중립 구역에 있는 마물 서식지에 뿌린 것은 이번 친목회에 참석하기 위해 카시스와 헤어져 따로 움직인 동안이었다.
애초에 어머니를 만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면 심복을 붙여 주겠다는 카시스의 호의를 그렇게까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독나비를 이유로 위그드라실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에는, 근접한 마물 서식지에 돌을 뿌려 중립 구역의 외곽에 모인 마물들을 더 가까이 끌어모았다.
카시스에게 완전히 숨기려 했다면 애초에 그런 핑계조차 말하지 않고 은밀히 움직였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래서 그녀를 따라오는 데온을 묵인한 것이기도 했다.
애초에 카시스가 바깥의 이상 징후를 눈치채지 못하리라 여기지도 않았다.
제레미를 통해 얼마 전 수장들과 후계자들이 모여 회의 했던 내용을 들었다.
중립 구역에 급증한 마물 때문에 봄이 지나기 전에 한 차례 토벌을 할 예정이라고. 시기는 친목회가 끝날 쯤으로 계획 중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생각해 두고 있던 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그 전에 움직여야 했다.
여전히 카시스의 손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로 록사나가 입술을 뗐다.
“그리고 내가…….”
그녀는 카시스의 눈을 정면에서 맞댔다.
“당신이 날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면.”
카시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록사나의 손이 작게 움직였다.
피부 위에 온기를 스미게 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느끼며 카시스는 문득 데온 아그리체의 말을 떠올렸다.
요요한 붉은 눈이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동안 또 한 번 물살 같은 감정의 일렁임이 카시스를 스쳐 지나갔다.
……록사나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카시스는 답을 찾아내려는 것처럼 맞닿은 시선을 좇았다.
“……내가 너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
이윽고 낮은 속삭임 뒤에 록사나의 얼굴에 닿아 있던 손이 떼어졌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나를 시험하려는 건가.”
뒤이어 손가락 사이사이에 온기가 스몄다. 하나처럼 얽힌 손이 꽉 죄여졌다.
록사나는 삭풍이 부는 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카시스는 록사나에게 이런 일을 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결코 선량한 의도로 마물을 모으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록사나가 계획하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녀는 지금 이곳에 500년 전의 마물 사건을 재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의 주술진은 이미 각인시킨 마물과의 교감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주인이 없는 마물을 불러들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처럼 심각한 사태를 만들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필연적으로 다치는 사람은 나올 것이다.
이후에 책임의 화살을 휘페리온에게 돌리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록사나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그리체를 내부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상이었다.
그러기 위한 발언권을 얻어 힘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다른 가문들과 엇비슷한 위치가 되어야만 하는데, 단기간에는 그렇게 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대신 다른 가문들을 아그리체가 있는 곳까지 끌어내리는 방법도 있었다.
베르티움은 이번 인형술 건으로 입지를 좁히는 것이 목적이었고, 가스토르는 이제 마약 때문에 아그리체와 손을 잡아야 하는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 휘페리온의 학살극을 재현하는 것은 마침 지금 있는 장소가 위그드라실이기에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500년 전의 사건 이후 위그드라실에 똑같은 일을 방비한 주술진이 그려졌다고는 하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다섯 가문 사이에 서로를 견제하는 체계적인 규율과 법칙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5가문의 허술하고 독단적인 체제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와 그들을 각자의 위치에서 고이게 만들었다.
그러니 지금 대외적으로 알려진 아그리체와 페델리안의 사건, 그리고 이번 인형술의 일로 경종이 울려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적절한 기회가 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좀 더 서로를 경계하고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를 제어할 고삐가 없는 상태에서 선을 넘었을 때 각자의 힘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의 현상에 균열을 주기 위해 이런 극단적인 일을 계획한 것은…… 스스로도 모순적인 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란트 아그리체가 일구어 놓은 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자신이 란트 아그리체에게 배운 방식대로 움직이려 하다니.
그동안 위그드라실에서 보낸 나날은 그 남모를 망설임을 담고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록사나는 끝내 그것이 이 시점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일임을 부정하지 못했다.
록사나는 손가락 사이에 스미는 온기를 느끼며 카시스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와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페델리안에서 다른 일을 다 제쳐 두고 카시스와 함께 있을 때에도, 또 위그드라실에서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그와 평온한 시간을 보낼 때에도, 가슴 한구석에는 늘 그런 마음이 껄끄럽게 남아 있었다.
카시스의 말처럼 그녀는 그를 시험하고 싶었던 걸까?
록사나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카시스가 그녀를 위해 함께 진흙탕 속에 몸을 담가 주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그녀의 옆에서도 검게 얼룩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 자신인 채로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는 건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단 한 가지만큼은 명확했다.
“카시스. 나 말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카시스를 바라보던 록사나의 입술이 이윽고 작게 달싹여졌다.
“만약 당신이 언젠가 나한테 완전히 질리거나 지쳐서 날 떠나려고 하면…….”
마침내 그 안에서 흘러나온 음성을 듣고 카시스는 눈매를 굳혔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보며 이어서 속삭인 말은 그 누구라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만한 것이었다.
“내 손으로 당신을 죽여 버릴 거야.”
그 내용은 가히 섬뜩하다 할 만했지만, 어째서인지 카시스의 귓가에 밀려든 그녀의 말은 살해 협박이 아니라 사랑 고백으로 들릴 정도로 얼얼할 만큼 달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사랑 고백이 맞을 것이다.
록사나가 깍지 낀 카시스의 손을 더 세게 잡아끌며 가까이 몸을 붙였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자 금빛 머리칼이 등허리에서 물결처럼 흔들렸다.
카시스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으로 눈앞에 있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당신, 정말 운이 나쁘네.”
달콤함으로 자신을 감춘 독 같은 미소가 록사나의 얼굴에 피어났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내 눈에 띄다니.”
상대방을 위해서 놓아준다거나 하는 건 역시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역시 나는 당신의 행복을 빌어 주면서 멋지게 보내 주는 짓 같은 건 평생 못 할 거야.”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더더욱 그렇게는 안 되었다.
어쩌면 록사나가 앞으로 선택하는 길은 최악 대신 차악일 뿐인지도 모른다.
란트 아그리체의 흔적들을 세상에서 모두 지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녀 역시 그의 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록사나가 그토록 혐오해 왔던 아그리체는 이미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결국 록사나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고,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한계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옆에 이 사람이 있어 주기를 바랐다.
만약 그녀가 그로서는 결코 용납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다 해도 그런 그녀를 거부하지도 않고 계속 옆에서 안아 주기를 바랐다.
설령 카시스가 뿌리를 잘못 내린 나무처럼 그녀의 곁에서 나날이 말라 간다 해도,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반드시 그녀의 품 안에서 최후를 맞게 하리라.
“카시스.”
록사나는 이 사람을 자신의 옆에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을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카시스에게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가히 비겁하다 할 만했지만 어쩌겠는가.
록사나 아그리체라는 여자가 원래 이런 것을.
그리하여 그녀는 결국 입술을 움직여 언제까지나 그를 족쇄처럼 옭아맬 말을 속삭였다.
“사랑해.”
그런데 그 말을 처음으로 소리 내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툭 터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감각은 이전에도 카시스의 앞에서 몇 번인가 느낀 적이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찰랑거리며 가슴 안에서 불어나 마침내는 한계까지 차오른 것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목 끝에서 제멋대로 아우성치는 말을 억누르기 버거워, 록사나는 결국 한 번 더 속삭이고 말았다.
“……사랑해, 카시스.”
아마도…….
그녀의 인생에 이처럼 진실 된 고백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러고 나자 또 견딜 수가 없어서 고개를 움직이고 말았다.
카시스는 얼어붙은 채로 록사나의 입술을 맞았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독약 같은 달콤한 속삭임이 흘러들어왔다.
“당신이 죽는 순간까지 내 옆에 있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