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8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80화(18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80화
가슴에 점차 밀려들기 시작하던 물살이 이내 격랑을 맞아 넘쳐났다.
“지금…….”
카시스는 겹쳐진 손을 더 세게 움켜쥐며 감정의 범람을 고스란히 드러낸 음성을 뱉어 냈다.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반칙이지 않나.
단 한 마디의 말로 이렇게 쉽게 그를 지옥과 천국으로 오가게 만들 수 있다니.
결국 그는 제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것들을 억누르는 데 실패하고 맞닿은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그녀가 그를 제 것이라 지칭했을 때만큼이나 황홀했다.
조금 전의 고백이 거짓이었어도 카시스는 씁쓸함과 비슷한 크기의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록사나의 말은 그녀의 온전한 진심이었고, 카시스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죽는 순간까지 옆에 있어 달라니.
만약 그가 떠나려 하면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고 말 것이라니.
이처럼 달콤한 말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
록사나의 생각이 맞았다.
카시스는 설령 록사나가 아무리 그의 심장을 잔인하게 찢어 발긴다 해도, 숨이 멎는 순간까지 그녀를 끌어안은 팔을 놓지 못할 것이다.
“록사나.”
카시스는 밭은 숨을 흩뿌리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붙인 채로 팔에 힘을 줘 마주한 사람의 허리를 으스러지게 끌어당겼다.
“내가 더…….”
그 역시도 말하고 나니 한 번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질리지도 않고 같은 말을 속삭였다.
록사나는 별처럼 쏟아지는 말과 키스를 모조리 품에 끌어안았다. 아무리 포식해도 거기엔 과함이 없었다.
그날 밤은 위그드라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직 단둘만의 세상이었다.
* * *
고요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 소연한 기류가 안개처럼 번져 들었다.
‘그들’은 물살을 타고 이동하는 나뭇잎처럼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남서쪽의 경계를 넘어 들판을 지나, 마침내 마물이 우글거리는 서식지에 그들의 발길이 닿았다.
키에엑!
마물들이 자신들의 땅을 침범한 침입자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그곳을 지나쳐 가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주인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 외에는 다른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목표를 위해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달린 날카로운 쇠붙이가 주저 없이 허공에 그어졌다.
키에에엑!
달려들던 마물들의 살이 갈라지고 숲에 피가 뿌려졌다.
한동안의 난투 끝에 ‘그들’은 고깃덩어리가 된 마물의 시체를 밟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후, 다시 조용해진 자리에 마물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숲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폭풍 전야처럼 잠잠하게 가라앉은 공기만이 불길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 *
“아.”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던 오르카가 문득 얕은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판도라는 테이블 앞에 앉아 하릴없이 혼자 술을 마시다 말고 의구심 어린 눈길을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수장인 히아킨 휘페리온이 있던 자리에는 빈 술잔이 놓여 있었다.
“밖에 뭐가 있어?”
“아니. 그냥…….”
그러나 오르카를 따라 시선을 옮긴 바깥에는 아무런 특이 사항도 없었다.
“친목회는 정말 재미있는 거구나 싶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판도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가 재미있다는 거지?
바로 오늘 낮에 있었던 청문회를 생각해 보아도 재미있다는 소리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시체를 이용해 만드는 인형이라니.
물론 록사나 아그리체 정도라면 죽여서 인형으로 삼고 싶은 마음도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판도라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닌가.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던 직후인데 친목회가 재미있다는 소리나 하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오르카의 취향은 썩 좋지 못했다.
판도라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오르카는 여전히 창밖의 먼 곳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그래,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그 소리를 듣고 판도라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직 친목회가 끝날 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잖아?”
글쎄, 과연 그럴까?
오르카는 반문을 삼키며 간만에 배부른 느낌에 젖어 나른히 미소했다.
곧 다가올 내일이 못내 기대되었다.
* * *
동이 트기 전 카시스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감싸 안고 있던 허리에서 팔을 풀자 맞닿은 몸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카시스의 눈이 옆에 누운 록사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응시했다.
전에, 무엇이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루어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얼마 전 데온 아그리체에게 한 말도 허세나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기꺼이 지옥 끝까지라도 떨어질 수 있었다.
록사나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카시스는 작게 비소했다.
그때, 잘난 척 데온 아그리체를 비난할 자격이 그에게는 없었다.
사실은 자신 역시 그다지 다를 바 없을지도 몰랐다.
만약 카시스가 페델리안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데온 아그리체와 똑같아졌을지도 모른다.
카시스는 손을 뻗어 시트 위에 흐트러진 록사나의 머리카락을 느리게 훑었다. 머릿속에 오가는 상념만큼이나 질기고 복잡한 손길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손가락 사이에 휘감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거기에 입술을 묻었다.
록사나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방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도 없었다.
록사나가 계획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녀의 최종적인 목적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록사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지만, 카시스는 그녀의 근본이 란트 아그리체나 데온 아그리체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일이 최종적으로 그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었다.
손에서 힘을 풀자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카시스는 시야에 드러난 록사나의 하얀 목덜미와 어깨에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그런 뒤 그는 소리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 직후 줄곧 감겨 있던 록사나의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 * *
데온 아그리체는 멀리서 떠오르는 새벽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고즈넉한 광경과 달리 데온의 속은 무참히 들끓는 파괴욕으로 시끄러웠다.
“당신의 쓸모는 이미 다했어. 그러니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얌전히 있어.”
그럼에도 데온이 이렇게 인내하고 있는 것은 분명 록사나의 그 말 때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제 낮에 보았던 아실의 인형과 록사나의 모습이 아직도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자신을 향하던 록사나의 그 감정 없는 차가운 눈빛도.
“…….”
또 한 번 가슴 안쪽에서 난폭한 감정이 득실거리며 일어났다.
속에서 날뛰는 충동은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넌 란트가 만들어 낸 괴물이야.”
“나는 그런 너를 끔찍이 증오하고 경멸해.”
그러다 문득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데온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시끄러워.”
하지만 메아리치는 음성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데온의 옆에서 끈질기게 제 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만큼 너를 동정한다.”
다시금 누구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살의가 치솟았다.
이런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데온은 달리 알지 못했다.
카시스 페델리안의 말처럼 이제껏 데온에게 부과된 역할은 무엇이든 부수고 망치는 것이었지,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데온 아그리체에게 그런 것을 요구한 적 없었다.
서서히 걷히는 밤의 장막 너머로 아득한 새벽빛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 내 딸에게 가렴.”
“내 딸에게 가서…….”
“언제든 그 아이를 위해 죽어. 그러라고 살려 준 목숨이니까.”
마치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새긴 낙인 같았다.
이 정도면 저주라 해도 좋았다.
이대로라면 시에라가 원하던 것처럼, 데온은 록사나의 바람대로 죽을 것이다.
그녀의 개로서, 마지막까지 철저히 외면당한 채 한 줌의 관심도 얻지 못하고 더없이 허무하고 비참하게.
그것이 바로 록사나가 원하는 것이리라.
데온은 천천히 손을 들어 아무것도 없는 목 언저리를 쓸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눈이 가려진 것처럼 스스로 빠져나갈 길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정작 시야에는 이토록 찬연한 빛이 가득인데, 그가 서 있는 곳은 여전히 어둡고 깜깜했다.
검은 그림자가 박힌 붉은 눈동자가 눈앞의 하얀 어둠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데온은 그리 오래지 않아 그의 발목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문제의 해답을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