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82)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82화(182/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82화
* * *
“독살이라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제레미가 나타나면서 정원에는 묘한 긴장감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그는 소식을 듣고 정원으로 향하는 길에 급히 달려오는 의원을 보고 동행한 참이었다.
하지만 제레미는 잔디 위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일단 당장의 시급한 일부터 해결하려는 듯이, 다른 말을 더 길게 하지는 않았다.
“의원.”
제레미가 뒤에 선 사람을 나직하게 불러 독촉했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네가 할 일을 해.”
“예, 예!”
공기를 타고 흐르는 심상찮은 기류에 멈칫했던 의원이 후다닥 환자에게 다가갔다.
“사, 상태가 어때? 설마 듀란이 죽는 건 아니겠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그리체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휘페리온의 일원이 의원을 붙잡고 급히 물었다.
의원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쓰러진 사람의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다 마침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일단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하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정말인가?”
“네, 숨도 고르고 맥도 정상입니다. 자세한 건 지금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그제야 팽팽하게 조여져 있던 공기가 약간 이완되었다.
그러는 동안 제레미는 주변을 훑으며 어느새 다가온 아그리체의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쟤 왜 저러고 있어?”
제레미의 눈길이 아직도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잔디 위에 엎어져 있는 이복형제에게 머물렀다.
그것을 보고 가까이에 있던 이복형제들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아, 아파. 발목을 벤 것 같아.”
신음하는 목소리가 굉장히 연약하고 애처롭게 들렸다.
하지만 지난날 휴게실에서 그녀가 사악하게 웃으며 카드를 날려 벽에 꽂는 것을 보았던 휘페리온으로서는 그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다른 아그리체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레미도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역시 그의 이복형제들이 저 차에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짐작대로 찻잔 속에는 독이 든 것이 맞았다.
위그드라실 안에 난 길의 옆쪽에는 복통을 야기하는 독초가 자라 있었다.
하지만 생김새가 일반 잡초와 비슷했기 때문에 독초와 약초에 해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구분하기 어려웠다.
물론 폐기 처분 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아그리체의 사람들 중에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간에, 그래서 이복형제 중 한 명이 그것을 우연히 발견해 휘페리온을 골려 주는 데 이용하려고 한 것이었다.
위그드라실 안에는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차 종류가 구비되어 있었다.
각 가문마다 선호하는 차는 모두 달랐고, 그중에서도 휘페리온의 세 사람은 근래 들어 피로 회복과 심신 안정에 좋은 차를 자주 마셨다.
찻잎을 보관하는 장소에 숨어 들어가 거기에 독초를 섞어 놓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독초라고 해 봤자 효과가 강력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만약 운이 나빠 다른 사람이 마시게 된다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겨우 복통이 좀 이는 차를 마신다고 해서 그것을 독살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매일 밤마다 끈질기게 일신상의 위협을 느꼈던 휘페리온의 세 사람 정도밖에 없을 것이었다.
“웃기지 마! 그렇게 무고한 척 해 봤자 누가 믿을 줄 알고? 너희가 무슨 짓을 하지 않고서야 듀란이 이렇게 갑자기 쓰러질 리가 없잖아!”
하지만 사실 차를 마신 사람이 이렇게 기절하기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아그리체의 사람들도 내심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마침내 제레미가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을 뗐다.
“독살이라니. 신성한 5가문의 친목회에서 그런 삿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가.”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기 때문에 정원 안의 분위기가 대번에 얼어붙었다.
“더군다나 그게 아그리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뭐지?”
“그야…….”
“내 식솔들이 수상한 행동을 하는 걸 직접 목격이라도 한 건가. 너희들, 정원에 와서 이걸 만진 적 있어?”
제레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복형제들에게 물었다.
“없어.”
“알다시피…… 휘페리온과는 껄끄러워서 애초에 가까이 앉지도 않았는걸.”
“오늘 말도 한마디 섞은 적 없어.”
그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는 음성이 뒤따랐다.
정원에 와서 찻잔에 손을 댄 적이 없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의심하고 있다는 거군.”
과연 그 말대로였기 때문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수군거렸다.
아그리체의 말처럼, 오늘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아그리체와 휘페리온이 가까이 있을 때는 극히 드물었다.
두 가문의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할 때면 꼭 마찰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항상 휘페리온이었다.
특히 휘페리온의 저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그리체의 사람들을 보면 빠짐없이 나서서 시비를 걸던 주범이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차를 마시고 쓰러진 사람을 보고 아그리체의 사람이 괜찮냐며 다가갔을 때가 오늘 있던 접촉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원에 있던 모두가 증언할 수 있었다.
“휘페리온에서는 지금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스산한 음성이 고막을 긁으며 새어 들자, 그것을 정면에서 마주한 사람은 별수 없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어…….”
그때, 밑에서 의원이 입을 열어 왔다.
“말해.”
제레미가 짤막하게 대꾸하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실례지만, 음독에 의한 증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휘페리온의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 돼! 제대로 진찰한 게 맞아?”
“예에, 자세한 건 의무실로 환자를 옮긴 다음에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지금으로서는 절대 음독 반응은 아닌 것 같고, 단순히 기가 약해져 의식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뭐?”
“근래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데다 피로가 누적되어 몸이 허약해진 탓이라고 사료됩니다만. 쉽게 말해서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기절한 것이 아니라, 그저 육체가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휘페리온의 사람은 아직도 납득되지 않은 듯이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의원! 너도 아그리체와 한통속이지?”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난데없는 모함에 의원이 펄쩍 뛰었다.
“독이 아니라니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이 찻잔에 꼭 독이 들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
제레미가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
주변에서도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았다.
“독이 아니어도…… 애초에 듀란이 이렇게 된 건 다 네놈들 때문이야!”
하지만 계속해서 우기는 말에 결국 제레미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희들이 매일 우리를 괴롭혔잖아!”
“아까부터 모함이 지나치군. 아그리체에서 왜 그런 일을 하지?”
“너희들이, 너희들이 우리를 거슬려 하고 있으니까!”
매일 밤마다 밀려드는 압박감에 극도로 예민해지고 심신이 피로해져 신경 쇠약에 걸린 것은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독살의 위협까지 느낀 그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횡설수설했다.
그에 제레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했다.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 싶은데. 친목회가 시작된 이후로 우리를 볼 때마다 못마땅함을 드러내던 건 휘페리온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다른 가문의 사람들 역시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레미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휘페리온은 아그리체에 상당히 유감이 많은 모양입니다, 백의 수장님.”
그 자리에는 소식을 듣고 온 히아킨 휘페리온이 서 있었다.
그는 얼추 상황을 파악한 뒤 난색을 표하며 쯧 혀를 찼다.
“내 가솔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나 보군.”
“수장님!”
“네놈은 떠들어야 할 때와 닥쳐야 할 때도 구분을 못 하느냐?”
히아킨의 서늘한 일갈에 억울함을 토로하던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떠들 기운이 남았다면 듀란이나 의무실에 데려다주도록 해.”
지금까지 휘페리온의 가솔들이 이런 식으로 크고 작게 아그리체를 걸고넘어진 일이 친목회 동안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히아킨은 상당한 성가심과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의원. 듀란이 독을 마셔서 쓰러진 게 아닌 것이 확실한가?”
“그, 그렇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찻잔은 조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에 제레미가 슬쩍 입매를 비틀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이복형제들도 티 나지 않게 시선을 교환했다.
건물 안에 있는 찻잎은 이미 다른 이복형제가 처리했을 테고, 물에 녹은 차에서는 독의 성분을 검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 기회를 봐서 찻잔을 바꿔 놓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히아킨이 유감스러운 낯으로 제레미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그리체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은 확실히 마무리 짓는 게 모두에게 좋으니 그러는 걸세. 이대로는 모두가 꺼림칙하지 않겠나?”
“예,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제레미는 순순히 수긍했다.
“지금까지 다른 가문에서 아그리체에 갖고 있던 인식이 어떤지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잇따라 그가 눈동자를 내리깔며 나직하게 읊조린 말은 듣는 이마저 동화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침통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자꾸만 무고한 제 가족들이 이런 식으로 핍박받는 것을 보게 되니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