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9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195화(19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195화
히아킨이 지금 구태여 그때의 일을 끄집어내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리셸은 나는 너희와 다르노라 부정하는 대신 그저 담담히 그 일을 자신의 과오라 인정했다.
“그건 분명 내 사적인 원한에 의한 보복이었지. 그 점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
기실 리셸은 자신의 대에서 일어난 그 일을 페델리안의 오점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래도 그는 어떻게 해서든 란트 아그리체를 죽이고야 말았을 테고, 설령 다시 과거의 그날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아들이 하려는 일을 지지하고야 말았겠지만.
“그 원한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나 그것을 해갈하는 방법마저 정당했다 여기지는 않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이 페델리안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얼룩으로 남을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지금 이 자리에서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살얼음판을 기듯이 바짝 곤두서 있던 공기가 낮게 침몰했다.
“사감에 빠져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잊지 말도록 하지.”
잠시 후 바드리사가 경직된 공기를 깨트리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위그드라실 밖으로 인형이 몇 구 빠져나간 것 같다 하니 지금은 그것을 처리하는 문제가 시급해.”
“애초에 베르티움에서 벌인 일이니 황의 수장에게 일을 쉽게 해결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꼴이 저래서야.”
모두들 몸이 걸레짝처럼 찢겨 아직도 의식이 없는 노엘 베르티움을 생각하며 미간을 좁혔다.
“황의 수장이 이런 미친 짓거리를 저지른 이유가 정녕 그 반시체인 인형 때문이란 말인가?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집착을.”
“그 인형도 소란통에 밖으로 빠져나간 모양이던데요.”
“노엘 베르티움을 저렇게 만든 것도 그 인형인 것 같다고 하더군.”
“베르티움의 인형은 모조리 찾아 부숴 버려야 해! 그것들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야.”
다른 수장들의 시선이 한 차례 제레미에게 머물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베르티움의 인형을 모조리 부숴야 한다는 히아킨의 주장에 반대하지 않았다.
제레미도 도주한 닉스와 그를 쫓아간 데온을 생각하며 불편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곧 베르티움의 인형들을 쫓기 위한 추격대가 꾸려졌다.
* * *
“수장님, 나오셨습니까.”
회의실을 나서는 히아킨의 옆으로 심복들이 따라붙었다.
“오르카는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심복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히아킨은 씹어뱉듯이 읊조렸다.
“못난 놈. 고작 여자 하나 어쩌지 못해서 마물까지 꺼내 이 사달을 내?”
조카인 오르카가 무슨 짓을 하려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히아킨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참으로 기가 찼다.
어릴 때부터 온갖 사고를 쳐도 두둔하며 아껴 왔던 대가가 이것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오늘 있었던 일은 위그드라실 안에 있는 모두가 위험했을 정도의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휘페리온에도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상당수 나왔다.
그런데 후계자라는 놈이 제 가문의 일원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그 시간에 한가롭게 여자나 강제로 어떻게 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었단다.
그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듣는 순간, 히아킨은 오르카를 상대로 가늘게 유지되어 왔던 인내심이 비로소 완전히 끊어졌음을 느꼈다.
위그드라실 안에 있던 의원은 이미 죽어 버려 제대로 된 진찰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오르카의 상태를 보면 독의 중독이 의심스러웠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일이었으니 가문의 힘을 동원해 진상을 파악하려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히아킨은 오르카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져, 그를 위해 더 이상 어떤 노력도 기울이고 싶지 않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오르카의 뒤를 닦아 주는 것에 질렸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애초에 오르카부터 가문을 보호할 일말의 생각조차 없지 않았던가.
그런데 가문에서 그런 놈을 보호해 줄 의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부터 그놈은 내 후계자가 아니다. 그러니 누구도 내 앞에서 그 수치스러운 이름을 꺼내지 마라.”
히아킨의 형형한 눈빛이 어찌나 서슬 퍼렇던지, 그의 뒤로 따라붙었던 심복들은 오르카에 대한 말을 차마 또다시 입에 담지 못했다.
* * *
추격대가 한창 준비 중일 때, 노엘 베르티움이 의식을 되찾았다.
그를 깨운 것은 리셸이었다.
리셸은 평소 가문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노엘을 깨워 위그드라실 밖으로 빠져나간 인형들의 기능을 멈추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쪽이 불필요한 희생자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노엘은 이미 위그드라실을 벗어난 인형들을 조종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는 상태도 아니었다.
노엘은 눈을 떠 정신을 차리자마자 거의 오열하다시피 섧게 흐느껴 울었다.
비록 리셸이 그를 회복시키기는 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치료가 아니었다.
단지 노엘은 정신을 되찾아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이 회복되었을 뿐, 여전히 심각한 부상을 입을 상태였다.
난도질당하다시피 참혹하게 찢긴 그의 온몸에는 붕대가 휘감겨 있었고, 그것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노엘은 단순히 몸이 아파서 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단테와 닉스의 이름을 번갈아 중얼거리며 우는 모습이 상당히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수장들이 닦달하자 노엘은 흐느끼면서도 웅얼거리며 설명했다.
그는 인형과 근접했을 때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노엘이 위그드라실에 오기 전 인형들에게 입력한 명령은 ‘닉스를 찾아 데려오라’는 것이었으니, 위그드라실을 빠져나간 인형들도 분명 그를 쫓아갔을 것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까지 그 인형에게 집착하는 거지?”
수장들이 의구심을 느끼며 묻자 노엘의 입에서 더듬더듬 흘러나온 말은 너무 횡설수설한 데다 울음에 반쯤 먹혀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몸 상태가 워낙에 나쁜 탓에 목소리가 잔뜩 메마르고 갈라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알아들은 그의 말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기가 막혔다.
그 소식은 록사나의 귀에도 들어갔다.
심복 단테가 죽어서, 인형술에 성공한 닉스의 심장을 그에게 이식해 다시 살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노엘 베르티움의 극단적인 기행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추격대의 준비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문제는 인형들이 위그드라실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밖에서도 방해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위그드라실 안의 정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서둘러 중장비로 무장한 사람들이 모였다.
베르티움의 인형들을 모두 찾아 부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표물에는 닉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누나. 추격대가 곧 출발할 것 같아.”
상황을 엿보고 온 제레미가 록사나에게 다가와 소리 죽여 속삭였다.
“우리도 따로 움직일까?”
록사나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닉스와 데온의 모습이 눈앞에 안개처럼 이지러졌다.
데온은 분명 닉스를 쫓아갔을 것이다.
둘 다 부상을 입은 몸이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 그녀는 닉스와 데온의 일을 아그리체에서 해결해야 할 가문 내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래서 카시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 대신 제레미만 데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일은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니. 굳이 찾을 필요 없어.”
록사나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추격대는 닉스를 발견하는 순간 곧장 그를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데온이 먼저 닉스를 죽일 수도 있다.
혹은, 이미 작지 않은 부상을 입고 있는 데온 역시 그 과정에서 무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쩌면,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둘 다 죽어 버리는 편이 가장…….
그러나 록사나는 그 상념의 끝에서 주먹을 쥔 손에 지그시 힘을 주고 말았다.
손바닥을 세게 파고든 손톱이 부러질 것처럼 휘어졌다.
불과 한두 시간 전쯤,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산란하는 햇빛 조각과 함께 추락하기 직전 데온의 손에 붙들렸던 부분이 다시금 타들어 가는 것처럼 쓰려 왔다.
눈앞에서 그의 팔이 잘려 나가던 순간과, 그녀를 뒤로 밀쳐 내던 강한 힘이 순식간에 사라진 그 순간의 선득한 감각도 함께 쓸려 왔다.
“사나야……!”
그리고 머리 위에서 날카롭게 귓전을 울리던 닉스의 그 외침과…….
“……아무래도 나는 정말 너를 죽일 수는 없는 모양이니까.”
“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끝을 내는 수밖에.”
마지막 순간 시야에 부스러지던 미소와 함께 귓가에 번져 들던 그 나직한 목소리도.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떠올리면 안 된다.
록사나는 속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것들을 밟아 짓눌렀다.
제레미의 시선이 록사나의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응시하다가, 이내 느슨히 힘이 풀어지는 그녀의 손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 난 나가 볼게, 누나.”
아그리체 내에서는 그래도 사망자가 없었지만 부상을 입은 형제들은 있었고, 그 밖에도 아직 위그드라실의 내부 정리도 한참 남은 실정이었기 때문에 수장인 그가 가 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었다.
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던 제레미가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제레미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섰다.
“록사나.”
문이 닫히고, 나직한 음성이 창가에 선 록사나를 불렀다.
그제야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