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1)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01화(201/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201화
전보다 성장한 닉스가 충혈된 눈으로 제 앞에 미동 없이 서 있는 록사나를 노려보았다.
그 밖에 두드러진 변화는 또 있었다.
그리젤다가 주술을 새긴 방에 그를 둔 이유.
그리고 닉스가 이불을 꽁꽁 뒤집어쓰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이유.
“그딴 역겨운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
그가 악문 잇새로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금이 간 것처럼 갈라진 얼굴에서 피부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난 닉스니까.”
성장하기 시작한 닉스의 육체는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었다.
꼭 이번 일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니었다.
사실 조짐은 전부터 있었다.
처음 아실의 악몽을 꾸기 시작했을 때부터.
록사나는 닉스를 보며 어머니에게 그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닉스의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 줄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도 지금 닉스를 보면서 이런 기분이 드는데, 어머니가 이것을 버텨 낼 리 없었다.
록사나는 조용히 닉스를 응시하다가 느리게 입술을 뗐다.
“그래, 닉스.”
정말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도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인지.
“넌 아실이 아니야.”
그저 그녀는 그가 바라는 대로 말해 주었다.
순간 닉스의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곧바로 닉스가 다시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써서 록사나는 그의 얼굴을 오래 보지는 못했다.
록사나는 닉스를 둔 채 혼자 방을 빠져나왔다.
* * *
“쟤, 네가 없는 동안에도 계속 울었어.”
아까처럼 의자에 앉아 있던 그리젤다가 방문을 열고 나온 록사나를 보며 지나가듯이 말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좁은 집이라 안에서 닉스와 록사나가 나눈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전처럼 반응을 떠보려는 의도이거나 그녀를 놀릴 셈으로 던진 말이라면 차라리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젤다는 드물게도 진지했다.
“내가 봤을 때는 지금 쟤, 네 앞에서 일부러…….”
“알아.”
록사나는 짤막하게 읊조려 그리젤다의 말을 끊은 뒤 그녀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등 뒤로 조용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록사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남은 의자에 가서 앉았다.
벌컥!
“사나 누나, 나 왔어!”
그때, 제레미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뒤쪽에 있던 그리젤다가 ‘왜 내 집이 점점 너희 집 같아지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거렸다.
물론 낯짝이 두꺼운 제레미는 그리젤다의 말을 무시하고 록사나의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서 와, 제레미. 정리는 잘 끝났어?”
“어, 대충.”
다른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일단은 아그리체로 돌아가 가문을 재정비할 계획이었다.
제레미가 록사나한테 더 가까이 다가와서 속닥거렸다.
“오르카 휘페리온이랑 판도라 휘페리온도 가문으로 돌아갔어.”
아, 오르카 휘페리온.
그제야 록사나는 잠깐 잊고 있던 이름을 상기해 냈다.
닉스와 데온의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그의 존재 자체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고인 독에 직접 당한 것이라 웬만한 약으로는 중화되지도 않을 텐데 결국은 그냥 휘페리온으로 돌아간 건가.
그래도 얼핏 들었던 오르카의 상태를 떠올려 보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라도 오르카가 잘못을 반성하면 아그리체에서 따로 조제하는 해독약을 거래할 생각도 있었는데 그런 날이 올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그 문제는 제쳐 두기로 하고 록사나는 제레미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노엘 베르티움은?”
“어제랑 똑같아.”
그녀는 제레미의 대답을 듣고 침대에 누워 멀거니 창밖만 바라보던 노엘을 떠올렸다.
닷새 전, 록사나는 데온과 닉스를 시에라와 그리젤다에게 각각 맡기고 다시 위그드라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애초에 그곳을 벗어났던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후 추격대가 가져온 가짜 닉스의 시신을 보고 뻔뻔하게 그것이 진짜 닉스라고 증언했다.
의외인 것은, 노엘 역시 그것이 닉스라는 데 동의했다는 점 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노엘이 자신이 만들어 낸 인형의 가짜 육신과 닉스를 이루고 있는 진짜 사람의 몸을 구분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노엘은 다시 깨어난 뒤로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듯이 보였는데, 그래서 닉스 역시 완전히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건가?
……어쩌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닉스가 먼저 자신을 필요로 하며 찾아올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인형은 좀 어때? 나도 안에 들어가 봐도 되나?”
옆에서 록사나의 표정을 살피던 제레미가 넌지시 물었다.
“아니…….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
록사나는 깨진 석고 조각처럼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한 닉스의 몸을 떠올렸다.
그리젤다가 만든 치유의 주술진 안에서도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닉스를 만든 노엘이라면 해결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어젯밤에 그의 앞에서 흘리듯이 말을 꺼내 본 적이 있었다.
닉스는 노엘이 살아 있는 줄 몰랐던 듯이 록사나의 말을 듣고 동요했다.
하지만 그는 노엘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록사나도 그 후로는 다시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래로 얕게 내리깔렸다.
붉은 노을이 지던 그날 저녁, 카시스의 말을 듣고 찾아간 그 들판에서.
결국 그녀는 무의미한 짓을 한 건지도 몰랐다.
“…….”
그러던 어느 순간, 작은 소리가 귓가에 번졌다.
제레미와 그리젤다도 그것을 들은 듯이 슬쩍 시선을 옆으로 움직였다.
끊어질 듯이 이어지는 가느다란 흐느낌.
록사나는 그것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 * *
그 시각, 카시스도 위그드라실 밖에 있었다.
그는 다섯 가문의 대표로 위그드라실과 노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베르티움에 들렀다가 다시 귀환하는 중이었다.
카시스가 막 도착했을 때, 아직 위그드라실의 소식을 알 리가 없는데도 베르티움의 분위기는 아주 삭막하고 침체되어 있었다.
베르티움의 사람들은 후원 쪽에 위치한 별채에 모여 있었는데,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어째서인지 굉장히 긴장한 낯으로 있다가 카시스의 얼굴을 보고 이상할 정도로 안심했다.
카시스는 소기의 목적대로 그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전달했다.
베르티움의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아연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노엘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그럴 만도 하다고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단테를 죽인 사람을 찾기 위해 노엘이 그들을 고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노엘의 처우가 결정되기까지 베르티움을 봉쇄하겠다는 말에 쉽게 수긍했다.
일단 한동안 노엘 베르티움이 이곳에 올 일이 없다는 소식에 하나같이 마음을 놓은 눈치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뒤에는 노엘이 벌인 일 때문에 혹시 그들까지 덩달아 불똥을 맞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 것 같았다.
별채 안은 금방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위그드라실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 카시스의 손짓을 받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카시스는 후원을 떠나 본관으로 움직였다.
먼저 배치한 심복들이 위그드라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인형들을 포함해 다른 위험한 요소가 없는지 건물 안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주인님께서는 출타 중이십니다. 응접실로 안내해 드릴까요?”
베르티움에는 아직 인형이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용인으로 보이는 그들을 진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위그드라실에서 난전을 벌였던 인형들보다 생김새나 움직임 등이 훨씬 정교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노엘이 전투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형들은 모조리 위그드라실로 보냈기 때문인지 이곳에 남은 인형들에게는 위험한 기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복들에게 사용인들이 전부 인형임을 밝히고 그들을 따로 격리시키도록 했다.
그 후 카시스는 다시 걸었다.
찾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저택 안의 방들을 여럿 확인한 끝에 그는 마침내 단테의 시신을 발견해 냈다.
단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 찬 유리 관 안에 누워 있었다. 아마도 부패를 막는 장치인 듯했다.
주변에는 여러 실험을 거친 듯한 인형의 신체 조각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주술진이 그려진 종이가 흩어져 있었다.
“…….”
카시스의 눈길이 잠시 주위를 훑다가 이내 관 위에 머물렀다.
지금 이 안에 누워 있는 남자는 노엘 베르티움이 자신 때문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를 것이다.
방 안에 엉망으로 널브러진 다른 인형들의 파편과 관 속에 온전한 상태로 고이 눕혀진 단테의 상태가 대비되어 묘한 느낌을 풍겼다.
처음에는 단테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것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시스는 결국 단테를 관 속에 그대로 놔둔 채 방을 나섰다.
베르티움을 빠져나와 위그드라실로 향하는 길에, 카시스는 혼자 마물 서식지에 들렀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거기에 있는 주술석들을 얼추 찾아 부순 뒤 그는 위그드라실에 들어섰다.
“오빠, 이제 와?”
바삐 움직이고 있던 실비아가 카시스를 맞아 주었다.
페델리안의 사람들은 아직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위그드라실에 남아 부상자들을 돌보는 일과 지난 사건의 뒤처리 등을 맡고 있었다.
원래는 사용인들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번 일로 사람들이 대거 죽어 나간 데다, 또 피해 상황이 워낙에 컸기 때문에 각각의 가문에 있던 사용인들을 불러 모아도 일손이 많이 부족했다.
“사람들이 많이 줄었네.”
카시스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추격대와 함께 위그드라실 바깥으로 빠져나간 인형들을 모두 정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베르티움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카시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위그드라실은 한산해져 있었다.
“거의 다 자기 가문으로 돌아갔어. 록사나 언니도 사흘 전에 나갔고, 흑의 수장도 남은 사람들 챙겨서 갔어.”
실비아는 그러면서 덧붙였다.
“오르카 휘페리온도 없고.”
실비아도 오르카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비록 위그드라실 안에 암암리에 퍼진 소문에는 록사나의 이름이 없었지만 실비아는 감으로 소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눈치챘다.
카시스의 눈에 일순간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시스가 그 일을 알았을 때 오르카는 이미 누가 따로 손을 쓸 필요조차 없는 상태였다.
카시스는 그의 몸에 잠식된 독이 록사나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이미 그녀 스스로 해결한 문제에 그가 끼어드는 것을 록사나가 달갑지 않게 여길지 몰라 일단 카시스는 위그드라실을 떠나기 전까지 오르카를 내버려 두었다.
그때만큼 아그리체의 문제에서 부외자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위치가 언짢게 느껴졌을 때가 없었다.
그래도 록사나가 곧 위그드라실을 떠날 것이란 사실을 카시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베르티움에 다녀오면 따로 오르카를 볼 기회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자리를 뜰 줄은.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든 것은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오빠.”
앞에서 왠지 꾸물거리던 실비아가 카시스를 부른 것은 그때였다.
“닉스…… 정말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