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07화(20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207화
다시 눈이 마주쳤다.
드륵…….
나는 카시스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디딜수록 시야에 비친 것들이 어지럽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별로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독한 술이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아서 한순간 휘청이고 말았다.
그런 나를 카시스가 붙들었다.
“록사나…….”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이 막 입술을 뗀 카시스에게 몸을 더 가까이 기댔다.
무심코 붙잡은 카시스의 옷깃을 더 꽉 움켜쥐고 이마를 그의 가슴팍에 댄 채로 나는 잠깐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란트가 쓰던 방이야.”
잠시 후 조용히 고개를 들자 줄곧 나를 응시하고 있었던 듯 한 카시스와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그 사람…….”
내가 정말 술에 취하긴 한 모양이다.
“지금도 여기에서 날 보고 있어.”
아까부터 카시스의 등 뒤로 죽은 란트 아그리체의 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선 검은 악귀가 원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러니까, 카시스.”
카시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약간 변했다.
내 말이 그에게서도 어떤 동요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나는 란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카시스를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그에게 속삭였다.
“지금 나한테 키스해.”
앞뒤 맥락이 없는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카시스는 거기에 황당함이나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꼭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물론 단순한 내 착각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서늘히 굳은 그의 얼굴에 창밖에서 번진 불빛이 물들었다.
나는 마주한 금색 눈동자가 광원처럼 빛나는 것을 보며 설핏 웃었다.
그런 뒤 카시스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고개를 들어 그에게 입을 맞췄다.
얕게 겹쳐진 입술에서 온기가 스몄다.
카시스에게서는 잠깐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억눌린 듯한 낮은 숨결이 내 입술을 간질인 직후, 그가 고개를 기울여 내게 더욱 깊숙이 키스해 왔다.
허리를 감싼 팔이 더 세게 조여졌다.
나는 입술을 벌려 카시스를 맞아들였다.
몸이 뒤로 기울면서 내 손에 걸린 술잔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것은 바닥으로까지 굴러떨어졌지만 밑에는 카펫이 깔려 있어서 깨지지는 않았다.
책상의 한구석에 쏟아진 붉은 액체가 내 옷자락도 조금 적셨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카시스는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의 틈도 없이 내 입술을 삼켜 물어 짙게 키스했다.
그 움직임이 다소 거칠었지만 차라리 그게 좋았다.
눈앞이 점점 어지러워지는 이유가 지속되는 키스로 숨이 가빠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몸에서 치솟는 열로 덩달아 술기운이 강해져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카시스의 목에 팔을 감아 그를 더 바짝 끌어당겼다.
등 뒤로 서늘한 한기가 흐르는 책상이 닿았다.
하지만 바로 앞에는 불길처럼 뜨거운 체온이 있어 그것을 갈구하며 맞닿은 몸에 더 매달렸다.
다리를 올려 카시스의 허리에 감자 일순간 그가 멈칫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나는 뒤엉킨 혀를 아프지 않게 깨물며 손을 움직여 카시스의 목덜미를 훑어 내렸다.
잠깐 멈춰 있던 카시스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손이 내 몸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 언제 뜸을 들였냐는 듯이 거침없는 손길이 맨살갗에 닿았다.
마찬가지로 체온 높은 입술이 내 턱에 낙인을 찍고 내려가 목에 촘촘한 흔적을 새기며 밑으로 길을 만들었다.
몸을 가리고 있던 천 조각이 벗겨지는데도 한기 대신 열기가 밀려들었다.
온몸을 집어삼킬 것처럼 거칠고 거대한 폭풍우가 나를 휩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집어삼킨 것은 나였다.
나는 카시스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웠다.
흐린 시야에 어둠이 번졌다.
오직 그 속에 박힌 붉은 눈동자만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가파른 숨을 헐떡이며 카시스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웃었다.
아, 이렇게 저열한 쾌감이 치솟을 줄 알았다면 란트가 살아 있을 때도 보여 줄 걸 그랬다.
나는 지금 란트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그의 유령이 보는 앞에서 내 것으로 취하고 있었다.
물론 카시스는 내게 있어서 그런 저급한 단어로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지만 아그리체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카시스는 내가 란트에게서 처음으로 빼앗아 가지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란트가 살아생전 그토록 이를 갈며 죽이고 싶어 했던 리셸 페델리안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란트의 딸이었다. 그것도 그를 배신해 죽음으로 몰아간.
이 얼마나 멋진 조합이란 말인가?
이러니 어떻게 내가 웃음을 참을 수 있겠는가?
어지러운 머리에 황홀할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 들어찼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내 육신의 피를 절반 정도 물려준 아버지의 유령을 앞에 두고, 그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그의 원수나 다름없는 남자와 몸을 섞으며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어쩌면 나는 미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였고, 또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살아 있는 것 또한 바로 나였다.
그래.
결국 나는 승리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이 처절한 싸움에서.
지금 이 순간에서야 겨우 그것을 실감했다.
그러자 뒤늦게 주체할 수 없는 승리감이 밀려들었다.
그 속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집어삼켜진 채로 나는 허우적거렸다.
“……지 마.”
그러다 불현듯이, 끝이 조금 갈라진 음성이 귓가에 고였다.
상체를 조금 들어 올려 내게서 몸을 뗀 카시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 번 이상한 말을 했다.
“울지 마.”
나를 바라보는 카시스의 얼굴에 서린 감정을 보고 나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나는 분명 승리감에 도취되어 웃고 있었는데, 무슨 말일까?
잇새에 지그시 힘을 준 듯, 카시스의 턱이 단단해졌다.
곧 그가 손을 들어 천천히 내 눈가를 훑었다.
그의 손가락이 닿는 곳에 축축한 느낌이 들어서 그제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했다.
이런 순간에, 왜 눈물이 나는 거지.
아, 어쩌면 얼마 전까지 함께 지내던 닉스의 눈물이 옮은 건지도 몰랐다.
그는 인형 주제에 퍽 잘 울었으니까.
그리젤다의 은신처에 머무는 동안에도 얼마나 밤낮 없이 울어 대는지, 거기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이내 나는 조금 전 카시스가 그런 것처럼 이를 지그시 악물고 말았다.
멍청한 인형.
닉스는 내가 없는 사이에 떠났다.
카시스가 그를 만났던 것이 확실한데 결국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닉스의 몸은 회복될 가망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아마도 이 멍청한 인형은 자신이 죽는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소리 없이 사라진 것일 테다.
이제 그는 정말 아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했으니.
닉스가 진짜 되살아난 아실인지, 아니면 단지 자아의 혼란을 느끼고 있는 인형일 뿐인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따져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차라리 닉스가 주장했듯이, 이대로 그를 인형이라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어찌 보면 내 입장에서는 닉스가 사라져 준 것이 더 편한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그는 금방 죽을 터였고, 눈앞에서 숨이 멎어 가는 닉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로서도 찜찜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도…….
“……이상해.”
왜인지 지금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나는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닉스의 뒤를 쫓지 않은 것인가?
“분명 나는 이겼는데…….”
나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왜 아직도 이렇게 비어 있는 거지?”
여전히 속이 허전했다.
마치 나한테 구멍이 뚫린 부분이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이대로 영원히 그 안이 가득 차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카시스가 눈물을 닦아 주던 손을 움직여 내 얼굴을 쓸었다.
울고 있는 나를 비쳐 내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 얼핏 고통을 닮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곧 카시스가 고개를 숙여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살갗 위로 깃털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스몄다.
“넌 비어 있지 않아.”
이어서 나직한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그래도 허전함이 느껴진다면…….”
카시스가 계속 내게 속삭였다.
“앞으로 채워 가면 돼.”
이제부터 하나씩 같이 채워 가자고.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분명 내 안이 넘칠 정도로 가득 차게 될 거라고.
어쩐지 카시스가 거듭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정한 속삭임을 들으며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품 안에 안겨 있는 동안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붉은 눈동자도 사라졌다.
카시스와 나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도 맞닿은 몸으로 수많은 말들이 전해져 왔다.
창밖에서 빛나는 별들만큼이나 찬연한 언어들이 심장 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둠이 깊은 밤.
그러나 암흑이 짙을수록 그것을 비추는 빛 역시 밝아지는 법이었으니.
그러니 분명 이 밤을 몰아내고 다가올 새벽은,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을 눈부시게 비춰 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