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10화 (외전)(21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1화
외전 1. 아그리체의 아이들
7월 16일.
오늘부터 일기를 쓰겠다.
내 나이 아이들 정서 발달에 그림일기가 좋다고 들었다면서 엄마가 시켰다.
하지만 사실 원인은 아실일 것이다.
아실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어디선가 공수해 온 육아 서적들을 남몰래 공부하고 있다. 제 딴에는 잘 숨긴다고 숨기는 것 같은데 벌써 오래전부터 엄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실은 이제 열한 살인 내 오빠다.
내 이름은 록사나 아그리체. 되게 오래 산 것 같은데 아직도 일곱 살밖에 안 됐다.
엄마는 시에라 콜로니스로 세계 제일의 미인이다.
아빠는 본 적이 별로 없어 존재감이 얄팍하므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사실 이 일기는 엄마나 아실이 확인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절대로 나 몰래 보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정말일까?
만약 엄마나 아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이 일기를 읽는다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다 지켜보고 있다.
7월 20일.
우리 집 요리사가 수상하다.
얼마 전부터 자꾸 배가 아픈 게, 아무래도 상한 음식을 먹은 것 같다.
식중독이 의심되는데 원인은 혹시 간식인가? 어쩐지 오늘도 케이크 맛이 좀 이상했다.
내일도 또 그러면 엄마한테 말해 봐야지.
7월 21일.
데온 아그리체, 개똥구리 같은 자식!
데온이 또 아실이 준 사탕을 버렸다. 이번이 두 번째 목격이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실수로 떨어뜨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좀 짜증이 나서 너 왜 자꾸 우리 오빠가 준 사탕을 버리냐고 따졌더니, 쓰레기를 버리는 데 이유가 필요하냐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 사이에 데온은 나를 무시하고 그냥 가 버렸다.
어린애를 상대로 진심으로 화를 내면 안 되지만 열 받아!
그때 데온한테 제대로 한마디 쏴 주지 못한 나한테도 성질이 난다. 걘 진짜 가정 교육을 다시 받아야 돼.
7월 22일.
아실은 정말 착한 호구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머리맡에는 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큰 사탕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한여름에 웬 산타가 다녀갔나 했더니 범인은 아실이었다.
데온과의 일 때문에 기분이 상한 내가 어제 한 말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데온한테 줄 사탕이 있으면 전부 다 나한테 가져오라고 성질을 좀 부렸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사탕을 먹고 싶어서 삐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터무니없는 오해에 나는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결국은 그냥 아실과 사탕을 나눠 먹고 기분이 풀린 척했다.
7월 25일.
오늘은 마리아 아줌마를 만났다.
마리아 아줌마는 이 집의 여러 부인들 중 하나로, 데온의 엄마다.
마리아 아줌마는 엄마랑 특히 사이가 좋은 부인인데, 엄마는 마리아 아줌마를 좀 어려워하는 것 같다. 원래 우리 엄마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마리아 아줌마는 아이들에게도 상냥하고 친절한 아줌마다.
아실과 나를 볼 때마다 예쁘다고 얼마나 둥기둥기 해 주는지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다.
혹시 그래서 데온도 너무 오냐오냐 키워 성격이 그런 건가?
요즘은 나한테 인형 놀이를 같이 하자고 해서 생각해 본다고 했다.
7월 29일.
아그리체 저택은 굉장히 넓다.
부인들과 아이들은 모두 동관에 모여 사는데, 동관 내에서도 구역이 나뉘어져 사실 웬만해서는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엄마와 아실과 내가 지내고 있는 곳은 동관의 3번 구역이다.
믿을 수 없게도 나는 일곱 살이 되도록 아직 이 저택 안을 전부 살펴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저택에 위험한 게 많다며 엄마가 절대 나를 혼자 다니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요즘 수업이 없는 시간에 몰래 저택 탐방을 하는 게 새로운 취미다.
아직 동관에도 가 보지 못한 구역이 있어서, 얼마 전에는 마리아 아줌마가 지내는 1번 구역에 갔었다.
마리아 아줌마의 방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약간 호들갑스러운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와 호기심에 가까이 가 봤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열린 문틈으로 나는 못 볼 걸 보고야 말았다.
* * *
이것은 록사나의 어린 시절의 일.
아직 이곳이 소설 속 세계란 사실을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 * *
“이거 먹기 싫어.”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간식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동그란 접시에 담긴 케이크는 생긴 건 평범했지만 그 내용물은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간식만 먹으면 배가 아파서 처음에는 상한 걸 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좋은 약재가 안에 들어가서 그렇단다.
그럼 차라리 그냥 약을 따로 주지, 왜 하필 간식에 넣고 그런대?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죄를 받을지어다!
“오늘은 그냥 간식 안 먹으면 안 돼요?”
“그래도 참고 먹어야 해, 사나야.”
내가 간식을 거부하자 엄마의 얼굴에 난처함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아실도 나를 달랬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 사나야. 오늘 거르면 내일은 더 먹기 힘들 수도 있어.”
“사나가 좋아하는 꿀이나 잼을 이 위에 더 얹어 볼까?”
아니, 맛이 없어서 안 먹겠다는 게 아니라고.
어떻게든 나한테 간식을 먹이려 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뿔이 났다.
하지만 나는 지성이 있는 어른이다.
어린아이가 편식하는 것처럼 철없이 떼쓰는 모습을 보일 생각은 없었다.
“요즘 간식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아프단 말이야. 어젯밤에도 그래서 잘 못 잤는데.”
좀 약아빠진 방법이긴 했지만, 울상을 지으면서 불쌍한 척했다.
다년간의 경험상, 이럴 때는 심통을 부리는 것보다 차라리 동정심을 자극하는 게 효과가 좋았다.
역시 마음씨 약한 엄마와 아실은 덩달아 수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쩌지……. 배가 많이 아프니?”
“네!”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엄마는 간식을 안 먹어도 된다는 소리는 끝끝내 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만 엄마랑 반씩 먹을까?”
“어머니?”
엄마의 말에 아실이 흠칫했다.
그 반응이 약간 이상해서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엄마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으면서 양옆에 앉아 있던 아실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아. 자, 엄마가 반 가져갈게. 아실 것도.”
“전 괜찮아요.”
“아니야, 오늘 아침부터 너도 미열이 있잖니. 이리 주렴.”
엄마는 내 것뿐만이 아니라 아실 몫의 케이크까지 절반 덜어갔다.
어째서인지 아실은 그런 엄마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엄마가 포크를 들어 아실에게서 덜어 간 케이크를 먼저 입에 넣기 시작했다.
불안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움직였다.
“역시 괜찮아요. 제 건 그냥 제가 먹을게요.”
“아실.”
그는 엄마가 말리기도 전에 얼른 제 몫의 케이크를 다시 덜어 갔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가져갈세라 입가에 생크림을 묻히며 서둘러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엄마 거 먹을래.”
나도 원래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실을 따라 엄마 앞에 있는 접시를 냉큼 집어다가 내 케이크를 거의 입에 쓸어 넣다시피 흡입했다.
엄마의 접시에 있던 것들이 몽땅 사라지자 아실은 그제야 안심한 것 같았다.
반면 엄마는 우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눈치였다.
“오늘은 엄마가 먹어 준다니까.”
“우음, 엄마랑 오빠가 먹는 거 보니까 맛있어 보여서.”
“저도요! 제 케이크니까 제가 다 먹을 거예요.”
아실과 나는 어린애다운 변덕의 이유를 대며 아직 우리 앞에 절반이 남아 있던 거지 같은 케이크를 같이 냠냠냠 먹어 치웠다.
* * *
“사나야. 우리 간식 있잖아. 어머니가 드시게 하면 안 돼.”
간식 시간이 끝난 뒤에 아실이 내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간식에 들어 있는 건 아이들한테는 좋지만 어른들한테는 안 좋은 약이거든. 그러니까 오늘처럼 혹시 또 어머니가 드시겠다고 해도 그러면 안 돼.”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아실을 쳐다보았다.
“대신에…… 정말 많이 먹기 싫은 날은 오빠가 대신 먹어 줄게. 자주는 어렵지만 가끔이라면.”
“가끔이 얼마큼인데?”
“으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면 안 돼. 어머니한테도 비밀이야.”
살면서 가끔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분명 뭔가가 이상한데 그게 뭐 때문인지 모르겠어서 묘하게 속이 찝찝하고 근지러울 때.
“오빠는 간식에 든 약이 뭔지 알고 먹는 거야?”
내 물음에 아실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알려 줘.”
나는 그런 그에게 졸랐다. 하지만 아실은 내 머리를 달래듯이 쓰다듬을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너도 조금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이씨, 쪼그만 게 또 어린애 취급한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아실의 배를 퍽 때렸다.
“아야야, 아파! 오빠 아파, 사나야. 으윽…….”
일곱 살밖에 안 된 내 주먹은 작고 연약한 데다 힘까지 빼고 때려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도 않았을 텐데, 아실은 괜히 몸을 배배 꼬면서 엄살을 부렸다.
그런데 배를 움켜쥐며 울상을 짓는 얼굴이 제법 진짜 같아서 순간 멈칫했다.
혹시 내가 힘 조절을 살짝 잘못 했나?
어쩌면 아실은 약골이라 정말 아픈 걸 수도 있었다.
나는 주춤거리며 물었다.
“진짜로 아파?”
“응, 사나가 호 해 주면 나을 것 같아.”
하지만 다음 순간 고개를 든 아실이 나를 보고 히힛 웃어서 장난인 걸 알았다.
나는 그에게 불주먹 맛을 한 번 더 보여 줬다.
“옥, 이번엔 진짜 아프…….”
“한 대 더 맞을래? 이번엔 진짜 아프게 때릴 거야.”
“헤헤. 자, 오늘은 오빠랑 같이 복습하자!”
내가 으름장을 놓자 아실이 언제 또 아픈 척을 했냐는 듯이 방실 웃으며 나를 훌렁 들어 안았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얘들아!”
“네, 어머니!”
뒤에서 엄마가 우리를 보고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실도 웃으면서 나를 안고 방까지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