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1)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11화(211/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2화
어느새 내가 환생한 지도 7년 째였다.
처음에는 엄마 소리가 죽어도 입에 안 붙었지만, 그래도 환생 후 몇 년이 지나니 이것도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슬슬 말문이 트일 때가 돼서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엄마’가 아니라 ‘아실’이었다.
거의 내 보호자에 맞먹게 아실이 허구한 날 내 요람에 달라붙어 지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 여기 앉자! 오늘은 재미있는 거 보여 줄게!”
아실은 방에 도착해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런 다음 나와 함께 소파에 앉아 그가 한 일은…….
철컹!
내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요? 지금 하나 밖에 없는 동생한테 수갑을 채워?
나는 아실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이게 뭐야?”
“오늘은 오전 교육 시간에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거든! 구속구를 해제하는 수업이었는데 열 번 만에 완벽하게 배웠어!”
머리 위에서 울리는 밝은 목소리를 듣고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이 집에서 애들한테 가르치는 게 원래 좀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구속구를 해제하는 수업이라니.
내가 환생한 이곳은 원래 살던 세계가 아니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생각하며 넘기고 있었다.
원래 이런 성격인 탓에 새로운 환경에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사실 나름대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가끔은 별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자, 오빠가 하는 거 봐 봐.”
아실이 조물조물 손을 움직였다.
잠시 후 철그럭, 소리를 내며 정말 수갑이 해제되었다.
“짜잔! 봤어? 구속구 푸는 거 봤어?”
“우와아……. 대단하다. 어떻게 한 거야? 나 한 번 더 보여 줘.”
“헤헷, 그럼 다시 보여 줄게!”
애가 워낙 신나 하니까 나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긴 했는데,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게 열 다섯 번을 넘어갔을 때부터는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아실 도련님. 오후 교육 시간입니다.”
그나마 잠시 후에 아실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다녀와서 또 놀자, 사나야.”
“잘 다녀와!”
아실은 한껏 아쉬운 얼굴로 방을 나갔다.
혹시 이따가 또 수갑 가지고 놀자 그러면 이번에는 아실 손목에 차라 그래야지.
아실과 나는 각각 교육받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아직 나한테는 자유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더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밖이 조금 시끄러운 느낌이 들어서 슬그머니 방문을 열어 보았다.
“어머. 사나야, 안녕?”
그러자마자 곧바로 시야에 들어온 사람에 나는 흠칫 놀랐다.
문을 여는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복도에 엄마와 함께 서 있던 마리아 아줌마가 곧바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바로 문을 닫았어야 했는데 늦었다.
나는 엉거주춤 그녀에게 마주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오는 줄 알고 일부러 인사하러 나와 준 거니? 어쩜 예쁘기도 하지!”
얼마 전부터 그랬듯이, 오늘도 마리아 아줌마를 본 순간 본능적인 경계심이 밀려들었다.
“사나야, 방에 들어가 있어.”
“왜? 그러지 말고 사나도 데려가자, 시에라.”
엄마가 나를 다시 방으로 들여보내려 했으나 마리아 아줌마가 말렸다.
“사나야, 시에라랑 난 지금 같이 정원으로 산책을 가려고 하는데, 너도 갈래?”
나는 그녀가 방긋 웃으며 건넨 권유를 단칼에 거절했다.
“전 지금 수업 들으러 가야 돼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 사나는 여기 있으렴.”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을 엄마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마리아 아줌마를 향해 말했다.
“정원에는 그냥 저랑 둘이 가요.”
“으음, 그럴까?”
마리아 아줌마는 성격이 단순해서 엄마가 그렇게 말하자 또 흔쾌히 ‘그럼 그러지 뭐!’ 하고 웃었다.
“좋아. 난 시에라랑 둘이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마리아 아줌마가 이제 그만 갈 것처럼 몸을 움직여서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사나야, 다음에는 꼭 같이 놀자! 언제든 내 방에 와. 맛있는 거 줄 테니까.”
하지만 마지막으로 덧붙여진 그녀의 말을 듣고는 여지없이 뒷덜미에 으스스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얼른 문을 콩 닫았다.
* * *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보람찬 산책을 끝마친 마리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향했다.
오늘의 날씨는 아주 화창했고, 시에라와 함께 보낸 시간도 무척 즐거웠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좋았지만, 단 하나, 아까 너무 짧게 끝나 버린 록사나와의 만남이 아쉬웠다.
오늘도 시에라의 딸은 양 뺨을 꽉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마시멜로 같은 말랑한 하얀 뺨과 또렷하게 뜨고 있는 동그란 빨간 눈, 그리고 불만스레 오므라는 조그만 입술을 볼 때면 심장이 아파 올 정도였다.
오늘도 방문 틈으로 슬쩍 보인 꼬물거리는 작은 발과 문을 꽉 움켜쥔 단풍잎 같은 손 모두가 정말 심각하게 앙증맞아서, 얼마나 만지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록사나는 마리아에게 좀처럼 틈을 내 주지 않았다.
결국 마리아는 바로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꿩 대신 닭으로 다른 아이를 찾아갔다.
벌컥!
“데온!”
목적지에 도착해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방에서 책을 보고 있던 그녀의 아들이 무표정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서늘한 붉은 눈이 노크도 없이 방으로 들이닥친 마리아를 응시했다.
새초롬하게 위로 살짝 올라간 눈매를 포함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들어찬 얼굴이 마리아의 마음을 충족시켰다.
이제 열 살인 데온은 속 내용물은 어떻든 간에 겉 거죽만큼은 굉장히 귀엽고 예쁘장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리아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불만족스러움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데온, 엄마랑 같이 인형 놀이 하자!”
꼭 어린 아들과 놀아 주는 엄마 같은 말투였지만 실상은 반 대였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건 어디까지나 마리아였고, 그 놀이에서 인형 역할은 늘 데온이었다.
“지금은 독서 시간입니다, 어머니.”
데온이 표정만큼이나 서늘한 음성으로 마리아의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렸다.
물론 마리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책 같은 것보다 인형 놀이가 훨씬 재미있을 텐데!”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던 데온을 달랑 들어 올렸다.
체구는 작아도 힘은 장사였기 때문에, 열 살 먹은 어린아이 하나 드는 건 마리아에게 일도 아니었다.
“내 아들이지만 참 희한하다니까. 날 닮은 건 아니고, 란트를 닮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시간 날 때마다 방에서 곧잘 책을 읽는단 말이야. 독서하는 거 재미있니?”
마리아의 물음에 데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를 재미있게 여기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데온은 지금까지 살면서 흥미를 가졌던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그런 걸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는 무엇이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고, 이 아그리체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딱히.”
잠깐 생각하던 데온이 마침내 짤막하게 대꾸했다.
삭막한 어투와 내용이었지만 어쨌거나 외양만큼은 몹시도 깜찍한 아이가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은 귀여움을 일곱 배 정도 더 증가시켰다.
마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더 애가 달아, 발에 날개를 단 듯이 걸음을 서둘렀다.
이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마리아의 인형 놀이 방이었다.
“자, 오늘은 이걸 입어 볼까? 특별 제작한 레이스 멜빵바지란다. 여기에 달린 리본이 참 귀엽지?”
마리아가 잔뜩 신나서 데온에게 들이민 것은 아기자기한 유아용 의상들이었다.
“응? 이거 아직도 들고 있었니? 이리 줘, 치우게.”
그때, 문득 마리아가 데온의 손에 들린 책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직도 손에 든 책을 놓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데온의 얼굴에 정신이 팔린 마리아도, 그리고 책을 가지고 있는 데온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데온의 시선이 마리아가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진 책에 따라 붙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마리아는 데온에게 본격적으로 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데온은 책에 잠깐 머물렀던 시선을 뗐다.
“어머나. 잘 어울린다, 데온! 이번에 아실한테 선물한 옷이랑 리본 색만 다른데 어쩜 예쁘기도 하지! 다음 교육 시간에는 꼭 이걸 입고 가렴! 돌아올 때 아실하고 사이좋게 손을 붙잡고 오면 더 좋고.”
당연히 터무니없는 바람이었다.
데온은 그녀의 야무진 꿈을 이루어 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해 봤자 마리아의 귀에는 닿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데온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도 어떤지 한번 입어 보자! 사나한테 줄 선물인데 칼라에 달린 토끼 귀하고 등 쪽의 날개가 영 모양이 안 산단 말이지. 아무래도 내가 손을 좀 봐야겠어.”
나중에는 급기야 나풀거리는 드레스까지 등장했다.
이건 데온이 아니라 아실의 여동생인 록사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아직 가재봉 상태여서 크기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기에 먼저 가까이에 있는 또래 아이인 데온에게 시험 삼아 한번 입혀 보고 세부적인 부분을 꼼꼼히 수정해 고칠 생각이었다.
원래 마리아의 취미는 이런저런 예쁜 옷과 구두, 또 장신구들을 사서 시에라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시에라는 정말이지 마리아의 미적 취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외양을 하고 있어서 꾸며 주는 보람이 있었다.
시에라를 닮은 아실과 록사나도 당연히 마리아의 욕구를 자극하는 훌륭한 피사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리아는 사용인들에게 시켜 그녀의 취향을 집약한 의상을 직접 제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그렇게 인형처럼 옷 갈아입히기를 당하는 동안 데온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그에게 입히는 게 여자아이의 옷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좋지도 않았다.
데온의 마음은 마리아가 뭘 하든, 티끌만큼의 변화도 없이 그저 여느 때처럼 무감각하기만 했다.
“시에라의 딸 말이야. 볼 때마다 어찌나 귀여운지. 난 정말, 태어나서 그렇게 깜찍하고 예쁜 애는 처음 봤잖니.”
마리아가 혼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여느 때처럼 조용한 방 안에 울렸다.
“휴우. 그런데 요즘 낯가림을 하는지 좀처럼 내 옆에 오려고 하지를 않아서 아쉬워. 아실은 안 그랬는데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듣고 데온도 머릿속에 아실과 록사나를 떠올렸다.
이복형제들은 더 있었지만 마리아의 입으로 자주 듣는 것은 단연코 그 두 사람이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햇빛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물결 같은 금빛 머리칼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몇 년 전부터 마리아가 노리고 있는 록사나는 데온과 교육받는 내용이나 수준이 달라서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
사실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은 아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열 살 이상의 아이들끼리는 겹치는 수업이 많아져서 그런지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한 달에 한 번꼴로 우연히 멀리서 지나가다 마주치는 록사나와 달리, 아실과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꼬박꼬박 얼굴을 보곤 했다.
그래 봤자 그들이 별다른 교류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시에라하고 아실하고 사나한테 똑같은 옷을 입혀서 셋이 나란히 세워 두는 거야. 정말 예쁘고 귀엽겠지? 상상만 해도 너무 환상적일 것 같지 않아?”
마리아는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지, 뺨까지 상기시키며 콧김을 뿜었다.
“시에라하고 아실까지는 성공했으니 이제 사나만 있으면 되는데. 다음에는 사탕이라도 주면서 꼭 같이 인형 놀이를 하자고 꼬드겨 봐야…….”
데온은 마리아의 야심찬 꿈을 흘려들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탕’이라는 말에, 문득 얼마 전 록사나를 만났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