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15화(21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6화
* * *
바스락.
그날 저녁, 데온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다가 주머니에 하나 남아 있는 사탕을 발견했다.
미로 정원 안에서 전부 다 써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구석에 숨은 게 있던 모양이었다.
데온의 붉은 눈이 손바닥에 놓인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는 천천히 사탕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반짝이는 분홍색 종이 안에 싸인 동그란 알맹이가 밖으로 드러났다.
데온은 또 그걸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에 집어넣었다.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일 수도 있었다.
오늘 낮에 미로에 있는 록사나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아실의 물음에 처음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 준 것만큼이나 충동적인 일이었으니까.
곧 그리 익숙하지 않은 단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갔다.
데온의 얼굴은 여전히 아이답지 않게 무표정했다.
아실과 록사나는 똑같이 해맑고 똑같이 무방비한 바보 같은 남매들이었다.
왠지 두 사람의 느낌이 이 사탕과 조금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어떤 면이 닮은 건지는,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어쩌면…… 그래.
동그란 유리구슬처럼 깊은 곳까지 투영할 듯이 반질반질하니 맑고, 한 입 깨물면 무참히 부서질 정도로 약한 점이 닮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주제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단내를 솔솔 풍기는 것까지.
데온은 입안에 있는 사탕을 이로 물어 씹어 삼키려는 것처럼
몇 번인가 아슬아슬하게 혀로 굴리다가 그냥 천천히 녹여 먹었다.
그러고 나서 다 먹은 사탕의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옆에 있던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책장 속에 깊숙이 꽂아 두었다.
스스로도 이유는 알지 못한 채였다.
그날 이후부터 얼마간 데온은 우연히 마주친 아실이 건네주는 사탕을 버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건지, 록사나도 더는 데온을 볼 때마다 도끼눈을 치켜뜨지 않았다.
록사나는 어째서인지 다소 미묘한 눈빛으로 데온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 이유는 아실도 모르는 눈치였다.
록사나는 더 이상 데온에게 사탕을 주지 말라며 아실을 갈구지도 않았다.
여동생의 질투에 곤혹감을 느끼기는 해도, 그것을 내심 귀엽게 여겼던 아실은 은근히 서운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쭉 지속될 것처럼 보이던 그런 평온한 일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미로 정원에서의 일은 란트의 귀에도 들어가, 얼마 후부터 데온은 개별 교육을 추가로 받게 되었다.
데온이 성인 수준의 미로 정원을 다친 곳 하나 없이 들어갔다 나온 일은, 란트가 그를 제대로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데온과 아실이 마주치는 일도 더 적어졌다.
데온이 받기 시작한 교육 내용은 차마 열 살의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혹독하고 무자비하고, 또 잔인했다.
어쩌면 이전까지 그에게 아주 작게나마 분명 존재했을지도 모를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와 온기 어린 감정은 그것을 발견해 줄 이 없는 환경 속에서 점차 무뎌지고 빛바래 갔다.
스스로마저도 한낮의 신기루 같았던 그 언젠가의 희미하고도 낯선 감정의 파문을 잊을 정도로.
이후 두 번 다시 그의 손에 펼쳐지는 일 없이 책장 속에 고이 잠들게 된, 반짝이는 사탕 껍질을 끼워 놓은 책처럼.
그리하여 무의미한 시간만 흐르고 흘러, 마침내 데온이 열네 살이 된 어느 날.
“데온, 너는 어떠냐? 저 반편이를 어떻게 생각하지?”
란트는 폐기 처분 선고를 직전에 둔 아실을 두고 데온에게 물었다.
데온은 조금 전 란트의 구둣발에 걷어차여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아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붉은 액체가 꼭 피눈물처럼 보였다.
아실은 이미 절망에 빠져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토해 낸 살려 달라는 애원을 아버지인 란트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짓밟혔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란트는 아실의 피가 묻은 구두를 대충 바닥에 문질러 닦으며 데온을 지그시 응시했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몰인정한 붉은 눈이 대답을 종용했다.
란트는 꼭 데온의 대답 여하에 따라 이미 마음속에 내린 결정을 바꿀 의향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마저도 착각일 수 있었고.
반대로, 어쩌면 지금 데온은 란트에게 안목을 시험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여기서 오답을 낸다 해서, 란트가 당장 데온을 죽이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러나 어느 쪽이 진실이든, 데온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데온은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아그리체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가 처한 상황과 입장을 모두 떠나, 지금껏 데온이 아실을 볼 때마다 늘 속으로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러니 아실을 죽여야 한다거나, 그를 더 이상 두고 볼 가치가 없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란트의 귀에는 그다지 다르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아그리체에 걸맞은 인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최하.”
이번에도 그저 란트의 질문에 생각한 것을 말했다.
그러자 란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 의견도 너와 동일하다. 아그리체다워질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놈은 역시 살려 둘 가치가 없지.”
하지만 데온은 그 말에 불현듯 의문을 품었다.
아그리체답지 않은 사람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럼 이 아그리체 저택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용인들이나 동관에 머물고 있는 란트의 여러 부인들, 혹은 이 저택 밖에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살 가치가 없는 인간들인가?
그러나 곧 란트가 명령을 내려 상념은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게 진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살인 명령을 내린 적은 없었지. 최대한 흠은 내지 말고 죽여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데온은 새까만 절망에 집어삼켜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이후로 이렇게 아실과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는 건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오래전에 아실을 보고 느꼈던 희미한 감정은 그동안 더 견고해진 데온의 벽을 뚫고 감히 안으로 침투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실은 폐기 처분 선고를 받았고, 데온은 란트의 명으로 그를 죽였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 * *
“너희, 아실 도련님의 폐기 처분 날에 있었던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그로부터 얼마 후, 데온은 교육 시간이 되어 마물 사육장에 가기 위해 회랑을 걷다가 멀리서 지나가는 사용인들이 속닥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심판의 방에서 시중을 들던 사용인이 해 준 얘기인데, 주인님이 데온 도련님을 좀 많이 아끼시잖아. 그래서 폐기 처분 선고를 내리기 전에 아실 도련님을 이대로 살려 둘지 말지, 의견을 물어봤었나 봐.”
“어머, 데온 도련님 판단에 따라서 아실 도련님을 살려 주기라도 하려고?”
“그런데 글쎄 데온 도련님이, 아실 도련님은 아그리체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까 살려 둘 가치가 없다고 딱 잘라서…….”
“세상에. 주인님 명령으로 아실 도련님을 직접 사형시킨 것도 데온 도련님이라던데.”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인 것도 있었지만, 일부 와전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떠들어 대든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데온은 굳이 입 가벼운 사용인들을 불러 진실을 정정하지 않았다.
타탁!
그때, 회랑 너머로 누군가가 뛰어가는 것 같은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데온의 무감한 붉은 눈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한순간 미끄러졌다.
어린아이의 발소리인 것을 보니 이복형제 중 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조금 전 사용인들이 한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 역시도 데온으로서는 무방한 일이었다.
곧 데온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고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얼굴은 여전히 빛 한 점 들지 않는 짙은 음지처럼 지독히도 차갑고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 * *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 함께 있던 사용인을 따돌린 록사나는 건물 뒤쪽의 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색색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동안 저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 전 다른 사용인들이 떠들던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거친 손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단숨에 새하얘졌다.
애초에 록사나는 그들의 아버지라는 인간, 란트 아그리체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데온 아그리체는 달랐다.
그와는 그래도 조금,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몇 년 전 미로 정원에서 혹시 그녀를 도와준 게 데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처음 한 순간부터.
어쩌면 생각했던 것만큼 나쁜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저 조금 서툰 것뿐 사실은 상냥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아실과 함께 데온에게 다가가 일부러 말을 걸고, 아실이 그와 겹치는 교육 날마다 방으로 돌아와 웃으며 데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못 이긴 척 들어 주고…….
단 몇 번이긴 하지만 데온도 록사나와 아실이 인사하면 무시하는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여 준 데 이어, 아실이 준 사탕을 더 이상 쓰레기 취급하며 버리지 않을 때가 분명 그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네가 아실을 죽였다고?
그에게 아그리체에 어울리지 않으니 살 가치가 없다는, 그런 말을 했다고?
너를 향했던 아실의 그 웃음, 그 손길, 그 다정함.
그런 게 너한테는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거야?
아실은 죽기 전까지도 너를 좋아했는데. 너를 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나도 아주 조금쯤은…….
“으…….”
투둑, 툭.
결국 삼키지 못한 눈물이 웅크리고 있던 무릎과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실이 죽고 나서 시에라는 한참을 앓아누웠다.
얼마나 극심한 충격을 받았던지, 이대로 그녀까지 죽는 게 아닐까 두려울 정도였다.
다행히 시에라는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록사나는 지금도 아실 생각을 하며 자주 눈물 흘리는 그녀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아실이 폐기 처분 선고를 받아 죽은 후부터는 어디에서나 꼭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긴장감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어디에서도 혼자 마음 놓고 안심할 곳이 없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실을 위해 울어 주지 못했다.
그의 죽음이 차마 실감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 록사나가 그를 생각하며 이렇게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우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분명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제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란트 아그리체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직도 시에라의 옆을 기웃거리며 아이들의 일이니 우리 사이는 문제 될 것 없지 않느냐는 무신경한 소리를 지껄여 대는 마리아도 꼴 보기 싫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데온을 볼 때도 참을 수 없이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들 모두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감정일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아실만큼이나 먼지 같은 인간일 테니까.
록사나는 눈물에 흥건히 젖은 얼굴을 손으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그러고 나서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은 혼자서 착각을 한 것이다.
데온 아그리체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혼자 멍청한 착각을 했다.
이제는 정말 이 아그리체에 있는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말아야지.
그럼 최소한 지금처럼 웃기지도 않는 배신감을 느끼며 울게 되는 일도 없을 테니까.
록사나는 그녀가 숨어 있던 곳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거기에 남은 눈물 자국도 그녀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이후 록사나가 데온과 어릴 때처럼 눈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1년 후인 열두 살 때부터는 대만찬 자리에 함께 참석하게 되었지만 그때마다 데온 아그리체라는 사람이 없는 존재인 것처럼 철저히 무시했다.
물론 아주 가끔은 그를 향한 살의를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데온과 아주 짧은 순간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하여 그녀를 보며 우는 아실의 환영과 마주쳤던 열다섯 살의 월례 평가 때까지…….
두 사람의 시간은 다시 교차되는 일 없이 평행선으로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록사나 아그리체와 데온 아그리체의 인연은 지독할 정도로 질겼다.
좀 더 시간이 흘러 맞이하게 된 미래의 어느 운명적인 날, 결국 두 사람은 가시투성이의 녹슨 검은 실로 서로의 목을 묶게 되었다.
아실로 인해 시작된 그 피투성이의 속박이 다시 아실로 인해 끊어질 때까지.
이것은 아그리체의 아이들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던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
그런 어느 빛바랜 시절의 초라한 단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