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8)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18화(218/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9화
“그래도 행적이 외곽 쪽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가스토르 사람들과 직접 마주칠 일은 없겠지.”
록사나가 제레미를 달래듯이 그렇게 말한 뒤 가장 먼저 앞섰다.
“어, 누나 말이 맞아! 나도 가기 싫다는 뜻은 아니었어.”
제레미도 구시렁거리던 것을 멈추고 호다닥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카시스가 먼저 제레미의 팔을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어차피 갈 거면서 말이 많군, 제레미 아그리체.”
동시에 제레미의 귀에만 들리게 남기고 간 나직한 읊조림이 고막을 긁었다.
순간 제레미의 눈이 확 치켜올라갔다.
물론 그도 록사나의 앞에서 괜히 불평했다 싶어 멋쩍은 마음에 뒤늦게 눈치를 보고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카시스에게 지적받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당장 욕을 내뱉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으나 카시스는 이미 그를 앞서 록사나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제레미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카시스의 뒤통수만 열심히 노려보았다.
* * *
“누나, 저거 류자크 가스토르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역시 인생은 예측 불허. 모든 일이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가스토르의 외곽 쪽으로 이틀 정도 더 이동했을 때, 눈앞에 넓은 황야가 나타났다.
닉스의 발자취는 그곳을 기점으로 끊어졌다.
황폐화된 땅 앞에는 아예 천막을 짓고 모여서 야영 중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숫자는 대략 30명 내외.
그런데 그 안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가스토르 땅이 생각보다 코딱지만 한가? 어떻게 여기서 만나?”
제레미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록사나도 류자크 가스토르를 발견하고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일대가 허허벌판이라 지금으로서는 언제 어느 쪽으로 이동해도 눈에 띄겠어.”
주위를 한 번 훑어본 카시스가 록사나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차라리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가스토르와 마주치는 것 자체가 꺼려진다면 내가 먼저 가서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도록 하지.”
“흥, 잘난 척하기는. 토끼몰이는 너보다 내가 더 잘하는…….”
“그동안 제레미 아그리체와 둘이 가서 먼저 닉스를 찾도록 해.”
제레미는 카시스의 말에 평소처럼 딴죽을 걸다가, 이어지는 소리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카시스는 여느 때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제레미를 무시했다.
이 여정 중의 모든 결정권은 록사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카시스는 의견을 묻듯이 록사나의 얼굴을 보았다.
록사나는 잠깐 멀리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다가, 그 너머의 마른 땅으로 시선을 옮겼다.
닉스는 저 황무지 안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서서히 해가 져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황무지는 거칠고 척박해 보였다.
왜인지, 지금 저곳이 닉스가 자신의 죽을 자리로 선택한 마지막 장소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다.
카시스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이윽고 록사나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앞으로 옮겼다.
“아니, 그냥 당당하게 가자. 여기까지 와서 멀리 돌아가는 것도 불필요한 시간 낭비니까.”
게다가 록사나의 생각대로라면 지금 류자크와 마주쳐도 곤란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무리 지어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접근하는 그들을 가장 처음 발견한 어떤 남자가 류자크에게 가서 소식을 알렸다.
찌푸려진 그의 눈이 가장 먼저 망토의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 제레미에게 닿았다.
“제레미 아그리체?”
당연히 그는 곧바로 눈을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록사나와 카시스까지 확인하고는 더욱 그랬다.
“아그리체 양과 청의 귀공자까지? 아니, 세 사람이 왜 여기에…….”
“이봐, 아그리체 수장님들이라고 불러야지.”
제레미가 이 와중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류자크의 입에서 나온 잘못된 호칭을 정정했다.
“위그드라실에서 보고 다시 만나는군, 류자크 가스토르.”
이어서 카시스가 류자크에게 인사했다. 록사나도 망토의 모자를 벗고 앞으로 걸어왔다.
류자크가 놀라서 할 말을 잃은 사이, 그의 옆에 있던 남자가 물었다.
“류자크, 네가 아는 사람들이냐?”
조금 전에 가장 먼저 세 사람을 발견하고 류자크에게 알렸던 바로 그 남자였다.
중년의 사내는 꼭 중병을 앓았던 사람처럼 몸이 바싹 마른 데다 안색도 몹시 좋지 않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류자크를 대하는 태도가 아까 멀리서 록사나가 지켜본 다른 사람들보다 친밀했다. 그 점이 시선을 끌었다.
남자가 입을 연 순간 돌덩이처럼 굳어진 류자크의 얼굴도 특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안으로 들어가 계십시오. 손님은 제가 맞으면 됩니다.”
남자는 두말 않고 류자크의 앞에 있는 그들 세 사람에게 작게 고갯짓으로 인사해 보인 뒤 자리를 떠났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중앙으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는데, 혹시 제게 볼 일이 있어 오셨습니까?”
어쩐지 약간 거북한 느낌을 풍기며 류자크가 말을 돌렸다.
“대접할 만한 건 없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아니요, 시각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제대로 된 인사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록사나의 말에 류자크는 그들을 천막으로 안내하려다 말고 멈칫했다.
“급히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미리 알리지 못하고 가스토르의 영역에 허가 없이 발을 들인 것 또한 양해를 부탁드려요.”
“찾아야 할 사람이라니, 지금 저 땅에 말입니까?”
그때쯤에는 류자크도 세 사람이 그를 만나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의문을 담은 눈동자가 옆쪽의 황무지로 옮겨 갔다.
류자크가 이곳에 온 것은 위그드라실의 회의를 마치고 가스토르에 돌아온 직후였다.
“이 앞은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제가 여기 머무는 며칠 동안 눈에 띈 외부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인상착의를 말해 주시면 저희 쪽 사람을 풀어 수색을 돕겠습니다.”
“호의는 감사하나 괜찮습니다. 수색 인원은 저희만으로도 충분 하니, 제한 구역의 출입을 허가해 주시면 직접 가서 찾도록 하지요.”
록사나는 류자크의 권유를 거절했다.
공식적으로 닉스는 죽었다고 이야기되어 있었다. 그러니 가스토르의 손을 빌려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류자크는 록사나와 그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을 약간 찌푸린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을 불쾌하게 여겨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다.
느닷없이 나타나 외부인 제한 구역의 출입을 요구하는 록사나의 청을 들어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류자크의 입술이 천천히 떼어졌다.
“……실은 조금 전에 보셨던 사람이 바로 제 부친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이번에는 세 사람이 조금 놀랐다.
류자크와 조금도 닮지 않은 그 남자가 부친이라니.
꼭 외모만 두고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류자크와는 대조되게도, 그의 부친은 어딘가 희끄무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유약한 분위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류자크가 한 말을 듣고 확신했다.
조금 전 확인한 남자의 그 병색 완연한 모습은 역시 마약에 중독된 후유증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가스토르의 상황은 진작 알고 있었으니,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금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황무지로, 원래 제 부친이 몇 년 전에 개간 사업을 맡아 진행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땅입니다.”
“그랬군요.”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무산되고 최근에야 다시 손을 대게 되었지요.”
거기서 잠깐 멈추었던 류자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보셔서 짐작하신 바가 있겠지만……. 오랫동안 차도가 없던 제 부친의 병세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물론 그 병세란 것은 록사나가 짐작했듯이 마약 중독으로 인한 증상과 후유증이 맞았다.
류자크의 부친도 원래 처음부터 도박과 마약에 빠져 있던 그런 혐오스러운 인간은 아니었다.
류자크가 지금보다 어릴 때만 해도, 가스토르의 가신으로 일했던 그는 나름대로 존경할 만한 부친이었다.
젊은 학자였던 그는 가스토르의 3할을 차지한 척박한 땅을 녹색 공간으로 조성할 방법을 찾고 있노라며, 곧잘 류자크를 앞에 두고 활기차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바드리사가 류자크의 외조부의 뒤를 이어 가스토르의 수장이 된 이후부터 조금씩 변해 갔다.
결국은 제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껴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스스로마저 망가뜨린 못난 남자였다.
바드리사는 얼마 전 그와의 이혼을 결정했다.
아그리체가 약속대로 보내 준 해독제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효과가 좋았다.
그 덕에 부부는 이성을 갖고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한두 번 해독제를 먹어 해결될 일은 아니었으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터였다.
류자크의 부친도 이번 일로는 깨달은 바가 많은지, 침중하게 바드리사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사리 분별이 가능한 상태에서 저지른 일은 아니라고 하나 가스토르의 가솔들까지 약에 중독시켜 가문을 위태롭게 만든 죄가 크기에, 사실상 그는 영구 추방당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바드리사는 류자크의 부친이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권한을 박탈하고 그에게 기한 없는 종신 유배형을 내렸다.
유배지로 결정된 곳은 몇 년 전 개간이 중단되었던 바로 그 불모지였다.
바드리사는 그에게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땅의 재개간을 명령했다.
그것이 바드리사가 준, 지금까 지의 죗값을 치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류자크의 부친은 기꺼이 그것을 감내해 받아들였다.
하여 마지막으로 그를 배웅할 겸 류자크가 동행해 직접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아그리체에는 이번에 큰 도움을 입었습니다.”
록사나와 제레미 덕분에 류자크는 더 이상 아버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예전처럼 그를 다시 존경할 수도 없었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미래가 한결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원래는 이방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제한 구역이지만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다른 사정은 묻지 않도록 하지요.”
하여 류자크는 두말 않고 그들에게 길을 내 주었다.
아그리체에는 빚이 있었으니, 이런 일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류자크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출입 금지 구역인 황무지로 들어섰다.
카시스는 아그리체와 가스토르 사이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느낌상 어느 정도의 내막은 짐작하는 바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먼저 입을 열지 않았기에 록사나와 제레미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맹탕 같은 놈이었네.”
뒤에서 제레미가 류자크와의 만남을 곱씹으며 혀를 찼다.
가뜩이나 바쁜데 쓸데없이 궁금하지도 않은 사연이나 늘어놓고 말이다.
게다가 딱 보니까 가스토르의 꼬락서니가 저 꼴이 난 것도 그 약쟁이 부친 때문인 듯한데.
그럼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더 일찍 치워 버렸으면 될 게 아닌가. 아그리체에서 그들이 결단력 있게 란트를 처리해 버린 것처럼.
‘흥, 역시 민숭민숭한 빨간 놈들보다 아그리체가 훨씬 낫잖아? 아무리 봐도 다섯 가문 중에 누나랑 나만 한 인재가 없어.’
제레미는 만약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기함하고도 남았을 삐뚤어진 우월감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였다.
록사나조차 그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경쟁 심리를 느낄 일도 참 없다고 혀를 찼을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들은 가스토르의 외곽 지대에 속한 황무지를 가로질렀다.
깊은 곳으로 이동할수록 바싹 마른 고목나무와 듬성듬성 웃자란 풀들, 또 오래된 건물의 잔해 같은 빈터의 흔적이 나타났다.
황량한 모래바람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서 그들은 망토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몇 번인가 나비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흩날리는 모래에 뒤덮인 땅에서 발견되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또 하루의 낮과 밤이 지나갔다.
황폐한 땅을 둘러보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록사나.”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카시스가 록사나를 불렀다.
왠지 지금까지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목소리였다.
무언가를 직감한 록사나가 직접 주변을 수색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카시스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가만히 서서 록사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망토 자락이 희뿌연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발밑은 굴러다니는 모래로 가려져 시야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카시스가 서 있는 곳은 깨진 바위와 썩은 나무 둥치, 그리고 마른 풀들이 까맣게 뒤덮여 거의 쓰레기 더미로 보이는 폐허였다.
록사나는 잠깐 멀리서 조용한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카시스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제레미도 다른 곳을 뒤지는 것을 멈추고 두 사람이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휘이이.
다시금 불어온 바람에 뿌연 공기가 일부 떠밀려 카시스의 발 밑에 있는 형체가 잠깐 시야에 드러났다.
록사나는 마침내 그 앞에 섰다.
모래에 반쯤 파묻힌 몸을 작게 웅크린 채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사람.
그녀가 찾고 있던 닉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