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9)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19화(219/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10화
* * *
닉스는 그에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거의 10년 만에 시간의 흐름을 정면으로 맞은 몸의 기능이 빠르게 멎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그가 가장 잘 알았다.
노엘을 찾아갈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처음부터 그의 존재가 아예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를 바랐다.
록사나가 있던 중립 구역과 아그리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한동안 쉼 없이 앞만 보고 움직였다.
그러다 마침내 지쳐서 걸음을 멈춘 곳은 사방이 부스러진 모래투성이인 폐허였다.
거의 사막화된 땅에 건조한 바람이 불어 들 때마다 그의 낡아 빠진 몸도 이곳의 일부인 양 날아든 모래 속에 뒤덮여 갔다.
닉스는 이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미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쓰러져 며칠간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록사나가 있었다.
휘이이…….
검은 망토와 그 밖으로 흘러나온 긴 금색 머리칼이 회갈색 모래바람에 뒤섞여 아득하게 흩날리는 모습이 꼭 신기루 같았다.
그때, 무표정하게 닉스를 응시하고 있던 록사나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아직 살아 있었네. 처음엔 움직임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든 순간, 닉스는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초점 없이 흐리던 닉스의 눈이 서서히 크게 떠졌다.
“뭐야…… 왜…….”
그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이 멍하니 누워 말을 더듬 거리다가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왜 네가 여기 있어?”
한동안 입을 연 일이 없어 거칠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설마 너, 여기까지 날 찾아온 거야……?”
록사나는 그런 닉스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옷 밖으로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전보다 훨씬 더 뚜렷한 실금이 그려져 있었다. 창백한 피부 곳곳에 균열이 새겨진 모습이 꼭 완전히 깨지기 직전의 유리 그릇 같았다.
“왜? 애초에 내가 왜 네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그런데 어째서…….”
닉스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온몸을 떨면서 정리 안 된 말을 아무렇게나 토해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록사나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아실이든 닉스든 이제 상관없어.”
섣불리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무감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모래바람에 뿌옇게 가려지고도 여전히 선명한 빛을 발하는 붉은 눈동자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감정의 정수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죽을 땐 내 눈앞에서 죽어.”
곧이어 심장을 찔러 든 말에, 록사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닉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울고 싶은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입술을 달싹였다.
록사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뻗어 닉스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러나 닉스는 그녀의 뜻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다리에 힘을 줘 바닥을 딛는 순간, 그의 왼쪽 발목 밑 부분이 파스슥 부서져 모래와 함께 흩어졌다.
록사나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듯이 텅 빈 닉스의 발목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런 록사나를 마주한 닉스의 얼굴은 오히려 반대로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냥 두고 가.”
이어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도 감정의 동요가 가신 담담한 목소리였다.
“난 여기서 조용히 사라질 거야. 어차피 시간이 오래 남지도 않았어.”
가까워진 끝을 예감하고, 그것을 납득해 받아들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함이 닉스의 위에 깔려 있었다.
독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평온하기만 한 그 얼굴은 이제 정말 닉스보다 아실에 가까워 보였다.
오히려 그는 록사나를 달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말했을 텐데.”
하지만 록사나는 고집스럽게 닉스의 팔을 놓지 않았다.
“죽어도 내 눈앞에서 죽으라고.”
닉스는 록사나가 절대로 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면은 그가 알고 있는 어릴 때의 그녀와 똑같았다.
순간 목 밑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서 닉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옆에 있던 카시스가 록사나에게 다가와 닉스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이어서 닉스를 업으려 하는 것은 제레미가 막았다.
제레미의 굳은 얼굴을 본 카시스가 조용히 물러났다.
제레미는 카시스 대신 몸을 낮춰 닉스를 등에 짊어졌다.
“이제 오십니까? 내일부터 모래 폭풍이 온다고 들어서 조금 더 늦으면 사람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늦은 저녁 무렵 황야에서 돌아왔을 때, 류자크가 처음 헤어진 그 자리에서 아직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거의 이틀가량이나 지난 참이라 류자크는 그들을 꽤 걱정하고 있었던 듯했다.
“다행히 찾던 사람은 발견했나 보군요.”
류자크의 시선이 제레미의 등에 업힌 닉스에게 못 박혔다.
그들은 모두 먼지투성이였고, 닉스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카시스가 그의 망토를 닉스에게 입혀 얼굴과 몸이 대부분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류자크는 그에게서 까닭 모를 기묘함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제레미의 등에 업힌 사람에게서 어쩐지 수상한 냄새가 났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냥 봐서는 성별을 알 수 없었지만 체격은 제레미 아그리체와 대충 엇비슷했다. 모래가 묻은 망토 자락 밑으로 아주 살짝 드러난 머리칼은 록사나와 비슷한 금발로 보였다.
카시스가 바로 망토의 모자를 푹 눌러씌워 제대로 본 게 맞는지 헷갈리기는 했지만.
류자크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는 잠깐 제레미의 등 뒤에 있는 사람을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다가, 록사나를 보고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합니까?”
이번에도 그들의 행적과 새로 나타난 이방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록사나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이동수단을 빌리고 싶군요.”
이번에는 류자크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류자크는 두말 않고 천막 옆쪽에 있던 말과 마차, 그리고 목적지까지 마차를 몰 사람을 내주었다.
그들은 나중을 기약한 채 다시 헤어졌다.
* * *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닉스의 몸은 붕괴를 멈추지 않았다.
“중간 구역까지 버틸 수 있으면 어머니를 보게 해 주지.”
망토에 싸여 마차의 구석에 몸을 기대고 있던 닉스가 록사나의 말을 듣고 등을 곧추세웠다.
하지만 그는 곧 언제 동요했냐는 듯이 단호한 어조로 거부했다.
“싫어. 이 꼴을 하고 어떻게 내가 어머니 앞에…….”
“걱정 마. 나도 지금의 널 어머니 눈에 띄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멀리서 네가 어머니를 보는 것 정도라면 허락해 줄 수 있어.”
이후 마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닉스가 색색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이 조용한 공기 중에 퍼져 나갔다.
그러다 이내 뒤집어쓴 망토 속에서 흔들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넌 진짜 바보야.”
말없이 창밖을 보던 록사나가 한참 후에 짤막하게 답했다.
“나도 알아.”
“멍청이…….”
록사나는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닉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카시스와 제레미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또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각각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카시스가 닉스에게 틈틈이 기운을 불어넣었으나 역시 효과는 아주 미미했다.
망토에 가려진 닉스의 몸은 점점 작아졌다.
옷자락 밑으로 부서진 육신의 잔해가 모래 더미처럼 조금씩 쏟아져 내렸다.
한동안 멈추지 않고 마차를 몰았으나, 그래도 말이 쉴 시간은 필요했다.
갈 길이 바빴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이 닉스를 데리고 며칠이나 걸어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마차로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말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록사나와 다른 사람들도 마차 밖으로 나와 굳은 몸을 풀었다.
닉스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게 더 나은 상태라 그대로 마차 안에 있었다.
대신 록사나는 마차의 문을 열어 두었다. 그리고 그 옆쪽의 흙바닥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했다.
닉스는 열린 문 밖으로 보이는 록사나의 옆얼굴을 조용히 시야에 담았다.
“너, 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른 월례 평가 때 환영으로 누굴 봤어?”
그러던 중 록사나가 문득 지나가듯이 꺼낸 질문에 닉스의 몸이 움칫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금방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몰라, 그런 건 기억 안 나는데.”
닉스는 거짓말을 잘했다. 반면 아실은 거짓말을 못했다.
지금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록사나는 그것을 느꼈다.
“왜, 설마 너라도 나왔을까 봐?”
닉스가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무심한 어투로 말을 끝맺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화제에 대해 더 이야기할 마음이 없는 것처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록사나는 아까 카시스가 건네 주고 간 물병을 내려다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나왔어.”
그 순간 닉스의 몸이 바싹 경직되었다.
망토 밑으로 나와 있던 손이 파르르 잘게 떨리다가, 록사나의 시선을 느낀 순간 옷자락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 밖으로 부스러진 가루가 또 조금 흘러내렸다.
록사나는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내 손으로 죽였어.”
닉스에게서 전해지던 감정의 파동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잠시 후 그가 확연히 평온해진 음성으로 록사나를 칭찬했다.
“그래? 잘했네.”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열다섯 살짜리 애가 별수 있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리고 어차피 환영이잖아. 진짜 죽인 것도 아닌데 뭐.”
예전에 록사나가 열다섯 살의 제레미에게 해 주었던 것과 비슷한 말이었다.
정작 자신은 그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 죽었으면서, 그는 록사나가 한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해 주었다.
또 잠깐 침묵이 맴돌았다.
다물려 있던 록사나의 입술이 다시 떨어진 것은 잠시 후였다.
“나, 네가 죽은 이후부터 교육도 열심히 받고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
“그랬구나. 다행이다.”
“월례 평가 때도 계속 2등이었고, 네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대만찬 자리에도 여러 번 참석했어.”
“정말? 그건 진짜 대단하네.”
“그래도 데온은 한 번도 못 이겨 봤지만.”
“걔는 원래 어릴 때부터 좀 보통 사람들하고 달랐잖아. 노력해서 그만큼 성장한 네가 훨씬 더 대단해.”
어느새 두 사람은 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닉스는 정말 오빠로서 여동생을 대하듯이 록사나의 말이 한 마디씩 끝날 때마다 그녀를 칭찬해 주기도 하고 달래 주기도 했다.
자신은 아실이 아니라고 그렇게 우기더니, 그새 잊은 모양이었다.
닉스는 이제 더 이상 데온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없는 듯했다.
중간에 제레미가 눈치 없이 마차에 다시 올라타려고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으나 카시스가 막았다.
당연히 제레미는 도끼눈을 뜨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카시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제레미를 데리고 마차에서 거리를 벌렸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록사나에게서 란트가 죽을 당시의 일까지 전해 들은 닉스는 얼마간 침묵하다가, 이내 거칠게 잠긴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정말 많이…… 힘들었겠네.”
록사나는 닉스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짙은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을 두 눈에 담았다.
“별로 그렇진 않았어.”
이내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덤덤한 목소리가 미온한 공기 속에 고요하게 퍼져 나갔다.
“네가 없어도 어머니와 난 충분히 잘 지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어찌 보면 냉정하게도 들리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닉스는 록사나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그래서 닉스도 기억 속의 작은 여자아이를 격려하는 마음을 남 몰래 담아, 다만 그렇게 속삭였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금빛 머리칼이 흩날렸다.
록사나의 긴 머리채가 닉스가 있는 곳까지 떠밀려 와 가까운 곳에서 시야를 간질였다.
닉스는 거기에 닿고 싶어 무심코 팔을 들었다가, 곧 그에게 록사나를 만질 손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망토 속에 몸을 숨겼다.
남은 시간이 손 안에 쥔 물살처럼 흘러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하지만 지금, 아실과 닉스는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