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23화(223/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14화
“사나야,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가렴.”
마침 시에라가 록사나에게 권유했다.
그녀는 마침 방이 비어 록사나와 함께 온 두 사람이 머물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에라의 말대로, 집에는 데온과 에밀리가 사용하던 방이 비어 있었다.
록사나는 중간에 길이 엇갈린 탓에 아직 에밀리를 만나지 못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에밀리라면 지금 분명 아그리체에서 록사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어머니가 괜찮으시면 그렇게 할게요.”
오늘만큼은 시에라의 청을 거절할 마음이 없는지, 록사나의 입에서 수락이 떨어졌다.
이후 의중을 묻듯이 돌아보자 카시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 그럼 오늘 하루 신세 지겠습니다.”
“아니에요, 신세는 무슨. 나야 말로 먼 길을 다녀오는 동안 내내 사나와 함께 있어 주고, 또 아실의 묘를 만드는 일도 도와 줘서 고마운걸.”
카시스는 이미 아까 시에라에게 정식으로 인사와 소개를 마친 참이었다,
시에라는 예전에 아그리체에서 카시스와 만났던 것을 기억하는지 처음에 서먹한 티를 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나 반나절 동안 록사나와 카시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은연중에 품고 있던 마음의 염려도 서서히 녹아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시스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어느 어머니가 봐도 마음에 들 만큼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을 갖고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어머님.”
“어머……. 그래도 될까?”
시에라를 보는 카시스의 얼굴에 온풍을 머금은 미소가 피어 올랐다.
“네. 록사나의 어머니시라면 제게도 어머니인 것과 마찬가지니, 앞으로 격의 없이 대해 주신다면 기쁠 겁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편안하게 만드는 수려한 미소에 시에라의 입매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생각보다 훈훈한 분위기에 분통이 터진 제레미가 뒤에서 혼자 구시렁거렸다.
“시이발……. 어머님은 개뿔.”
당장이라도 카시스를 시에라와 록사나에게서 떼어 놓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역시 머릿속으로만 가능한 상상이었다.
시에라를 빼앗겨 기분이 언짢은 것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묘하게 소외된 느낌을 참다못한 그녀가 결국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그만 안으로 들어가자. 시에라도 그렇고 사나도 오늘 많이 피곤할 텐데, 응?”
데온은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실의 실질적인 죽음이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담담했다.
시에라와 록사나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엷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이 모녀답게 닮아 보였다.
닉스의 죽음을 본 지 얼마 안 된 록사나조차 의연한 얼굴이었다. 그의 최후를 진작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일찍 끝마쳤던 탓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평생 록사나의 만들어진 표정을 보고 살았던 데온이 지금 그녀의 기저에 깔린 속내를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데온뿐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이곳에는 데온만큼이나 록사나와 시에라의 감정에 민감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일부러 저렇게 두 사람의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떠들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아까 데온에게 했던 마리아의 말이 맞았다.
그는 이 자리의 불청객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문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데온의 시야에 비친 그림자도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있었다.
데온이 고개를 들었을 때, 언젠가부터 그를 응시하고 있던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록사나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데온을 보고 있었다. 순금 같은 머리칼이 무르익은 햇빛에 물들어 붉게 빛났다.
데온의 얼굴에서 소리 없이 흘러내린 눈길이 그의 왼팔에 닿았다.
이윽고 록사나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그건 그리젤다의 솜씨인가. 멀리서 보면 진짜인 줄 알겠는데.”
데온은 아무 말 없이 록사나를 마주 보았다.
예전이었다면, 손 한 짝 남기지 못하고 부스러져 죽은 닉스에 빗대 그를 비난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록사나의 말에서는 그런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실 록사나도 알고 있었다.
만약 일전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녀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데온은 죽을 때까지 잘린 팔을 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록사나의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도 애초에 저 팔은 록사나 때문에 잃은 것이었으니.
“잘됐네. 이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겠어.”
그렇게 스치듯이 읊조린 뒤 록사나가 먼저 뒤돌아섰다.
데온의 발치에 닿을 듯 말 듯 늘어졌던 그림자가 멀어졌다.
데온은 또 아까처럼 우두커니 서서 록사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앞에 있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다.
“뭐 해?”
다시금 데온을 돌아본 록사나가 말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늦기 전에 들어와. 어머니를 기다리게 만들 셈이야?”
그녀의 어머니인 시에라만큼이나 아무런 사감이 담기지 않은 고요한 목소리로.
“아그리체로는 내일 출발할 거야. 그때 너도 동행해.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런 뒤 록사나가 먼저 앞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아래로 가만히 늘어뜨려져 있던 데온의 손이 꽉 쥐어졌다.
……지금 그가 저 안에 들어가도 된다는 건가.
염치가 없어 차마 이대로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든가, 그래서 지금 록사나가 먼저 건넨 손을 거절하고 돌아선다든가 하는 것은 데온 아그리체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아주 이기적이고 뻔뻔한 인간이었으니까.
마침내 데온의 발이 느릿하게 떼어졌다.
바닥에 홀로 남겨져 있던 그의 그림자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록사나는 오랜만에 시에라와 같은 이부자리에 누워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레미는 혹시 록사나가 카시스와 같은 방을 쓸까 봐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차라리 안심한 눈치였다.
이후 남은 방을 배분하는 데 카시스와 데온은 아무런 의견도 내세우지 않았지만 문제는 제레미였다.
처음에 그는 카시스와 데온을 한 방에 밀어 넣고 자신이 남은 방을 혼자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반대했다.
아무리 요즘 손톱 빠진 맹수처럼 얌전해진 데온이라 해도, 손님인 카시스와 단둘이 같은 방을 사용하게 하는 건 불안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래서 결국 제레미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데온과 같은 방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밤 깊은 시각.
등 뒤에서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록사나의 귀에 들려왔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 같던 시에라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록사나는 그녀에게 소리 없이 머무는 시선을 느꼈다.
곧 다가온 손길이 옆에 누운 록사나의 이불을 제대로 덮어 주고,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꼭 어린 시절의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다 얼마 후 록사나에게 닿았던 온기가 떠났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 마침내 록사나가 고개를 돌렸을 때, 달빛을 머금고 하얗게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시야에 비쳤다.
그녀는 그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다시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앞에서 전해지는 소리 없는 파동에 왠지 목이 조금 따끔거렸다.
잠시 후 록사나는 잠결에 그런 것처럼 몸을 움직여 시에라를 끌어안았다.
멈칫하던 시에라가 록사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난 뒤, 시에라는 다시 자리에 누워 딸을 안고 짧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동이 트기 전, 아실의 무덤을 보러 밖으로 나온 시에라의 눈에 데온이 발견되었다.
데온은 그답지 않게 시에라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직은 어스름한 하늘 아래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망막에 또렷이 박혔다.
데온은 아실의 무덤 앞에서 밤을 샌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둡던 세상에 밝은 새벽빛이 떠오를 때까지…….
작은 둔덕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분명 아무도 알지 못할 터였다.
시에라는 시야에 비친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데온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도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들리지 않았다.
* * *
비로소 완전한 아침이 밝았을 때, 록사나는 세 남자를 데리고 시에라의 집을 떠났다.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시에라는 어젯밤 록사나가 보았던 눈물이 꿈인 것처럼 웃는 낯으로 그들에게 인사해 주었다.
록사나도 그런 그녀를 향해 마지막으로 돌아서는 순간까지 웃어 보였다.
“아오, 씨. 이 조합은 또 뭔데…….”
잠시 후, 데온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걷던 제레미가 복장이 터진다는 듯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이를 악물었다.
과연 그의 주변에는 실로 삭막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바깥은 이제 초여름인데, 기이하게도 그들이 걷고 있는 길목의 온도는 아까보다 5도쯤은 떨어진 것 같았다.
록사나를 제외하고 카시스와 제레미, 그리고 데온.
제레미의 말처럼 마차가 세워진 곳까지 이동 중인 구성원의 조합이 이 모양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카시스도 록사나와 함께 아그리체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일단 그들이 여기까지 타고 온 이동 수단은 하나뿐이라, 최소한 중간 구역의 중앙까지는 같이 가서 말이나 마차를 따로 사거나 빌려야 했다.
하지만 록사나가 먼저 아그리체로의 동행을 권유했다.
닉스를 찾는 여정을 함께한 카시스를 이대로 혼자 그냥 보내기에는 그녀의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 내가 잡아 줄게. 먼저 타.”
마차에 다다라, 제레미가 곰살맞게 웃으며 록사나를 제일 먼저 마차에 태우려 했다.
록사나는 그런 제레미의 태도에서 수상함을 느꼈다.
“그래. 고마워, 제레미.”
하지만 그냥 속아 주는 척하고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록사나가 마차에 오른 뒤, 제레미가 바로 고개를 돌려 카시스의 귀에 대고 위협적으로 속닥거렸다.
“야, 너. 아그리체에 도착하면 진짜 딱 마차만 갈아타고 바로 페델리안으로 가라.”
카시스가 그런 제레미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안됐군, 제레미 아그리체. 록사나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아그리체에 며칠 머물다 가도 좋다고 해서 그럴 참인데.”
“뭣?!”
질겁하는 제레미를 뒤로한 채 카시스는 훌쩍 마차에 올랐다.
지금 그가 한 말은 빈말이었다.
처음에는 성가시기만 했지만, 카시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제레미 아그리체의 얼굴도 계속 보다 보니 나름대로 중독성이 있었다.
얼마 전 비 내리던 동굴에서 록사나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아주 조금쯤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잠깐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거북한 마음이 들어서 카시스는 얼굴을 굳혔다.
순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그건 좀 아닌 듯했다.
“뭐야, 제레미랑 무슨 얘기 했어?”
헛웃음을 삼키며 마차에 오른 카시스에게 록사나가 물었다.
“별 얘기 안 했어. 걱정 안 해도 돼.”
카시스는 록사나를 안심시키듯이 말하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고개를 돌려 록사나와 시선을 맞댔다.
록사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여느 때처럼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시스의 손이 그런 그녀의 손등을 감쌌다.
제레미 아그리체가 보면 또 발광할지도 몰랐지만 당연히 그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카시스가 맞잡은 손을 깍지 껴서 더 깊게 결속하며 말했다.
“다음에 또 같이 오자. 언제든 네가 오고 싶을 때.”
말없이 위로하는 느낌에 록사나도 카시스의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그래도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거짓 없이 웃어 보일 수 있었다.
어제보다는 오늘,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웠다.
해묵은 과거의 잔여물이 지금도 맞닿은 온기에 녹아 조금씩 희석되어 갔다.
분명 내일은 이보다 더 괜찮아지겠지.
그래서 록사나는 웃었다.
이제 시에라의 옆에서 평온한 안식을 취하게 된 아실도 그녀가 자신 때문에 우는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
한편, 카시스와 제레미의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서늘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데온이 씨근덕거리는 제레미를 향해 툭 던지듯이 말했다.
“며칠 같이 있더니 둘이 그새 친해졌나 보군.”
어쩌면 제레미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그를 향한 데온의 눈빛에서는 꼭 주인 아닌 사람에게 먼저 배를 까뒤집고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보는 듯한 미약한 멸시가 느껴졌다.
한심한 축생처럼 여겨지는 느낌에 당연히 제레미는 광분했다.
“네 눈에는 이게 친한 걸로 보이냐?!”
데온은 먼저 불을 지핀 주제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런 제레미를 무시하고 마차에 올랐다.
결국 이번에도 속이 터지는 것은 제레미뿐이었다.
그래도 록사나가 부르는 소리에 눈물을 머금고 잠자코 데온의 뒤를 따르는 제레미의 모습이 오늘도 참 애잔했다.
그렇게 그들은 오랜만에 아그리체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무더운 여름.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응어리를 햇볕에 녹여 말리기 좋은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