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24화(22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15화
외전 3. 에밀리의 일상
에밀리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오늘도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한쪽 벽면을 차지한 창문부터 활짝 열어젖혔다.
맑은 아침 공기가 방을 순환하는 동안 에밀리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방을 대충 청소했다.
이후 아직 비어 있는 사용인 전용 욕탕에서 간단히 씻고 와 몸을 단장하는 일까지 빠르게 끝마쳤다.
그런 뒤 에밀리는 곧장 방을 나섰다.
다른 사용인들도 아직 모두 잠들어 있어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복도는 조용했다. 본관의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밤사이 야간 경비를 선 저택 내의 경비원들이 일과를 끝내고 근무 교대를 하는 소리만이 멀리서 작게 들려왔다.
에밀리가 바로 향한 곳은 록사나의 집무실이었다.
그곳을 직접 청소하는 것이 매일 아침 식사 전마다 에밀리가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그리체로 돌아온 이번 여름부터 새로 추가된 일정이었다.
책장과 창틀에 앉은 먼지 한 톨조차 꼼꼼하게 털어 내고, 방 안에 있는 집기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닦아 내는 손길이 섬세했다.
방의 온도와 습도, 채광을 비롯해 록사나가 앉는 의자의 쿠션감 하나까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런 잡무는 다른 사용인에게 맡겨도 되었지만 에밀리는 그러지 않았다.
록사나의 쾌적한 업무 환경을 위해 이렇게 직접 발 벗고 움직이는 건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에밀리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마친 뒤 다시 사용인들의 숙소로 돌아오자, 아까와 달리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에밀리, 오늘도 일찍 일어났나 보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식당을 향해 가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에밀리를 발견하고 하품을 하면서 다가왔다.
이달 초 새로 들어온 사용인 중 하나인 길레타였다.
에밀리는 원래도 과묵한 성격답게 그저 고갯짓하는 것으로 길레타의 인사에 화답했다.
하지만 친화력 높은 길레타는 에밀리의 삭막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살갑게 달라붙었다.
“그래도 에밀리는 일할 맛이 나겠어. 나도 록사나 수장님 밑으로 배속되고 싶었는데 부러워.”
“어머, 길레타도 록사나 님 시중인이 1지망이었어?”
길레타의 말을 옆에서 들었는지, 근처에 있던 다른 사용인들 몇 명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그런데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난 이제 반쯤 포기했어.”
“맞아. 그쪽 인원은 일단 한번 뽑히면 잘 교체되지도 않으니까.”
지금 아그리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올해 들어 밖에서 새로 차출된 인원이 많았다.
전대 수장이었던 란트가 죽은 겨울에 아그리체를 자발적으로 빠져나가거나, 이후 저택 내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해고된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용인들 중에서는 아그리체의 두 수장 중 한 명인 록사나를 모시는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록사나처럼 아름답고 상냥한 주인님은 아랫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넘치도록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록사나는 그녀의 밑에 둘 사용인을 뽑는 일에 특히 신중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번 배속된 인원이 교체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난달에 들어온 리마 말이야. 록사나 님의 시중인 중 한 명이 마침 결혼해서 나가는 바람에 자리가 나서 어쩌다 운 좋게 뽑힌 걸 가지고 엄청 거들먹거리더라.”
“나도 볼 때마다 재수 없어 죽겠어. 며칠 전에도 록사나 님한테 손끝이 야무지다고 칭찬받았다면서 어찌나 자랑질을 하던지…….”
“흥, 제까짓 게 그래 봤자지. 칭찬 한 번 받았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으스대기는. 게다가 리마가 아무리 용을 써 봤자, 어차피 록사나 수장님과 제일 가까운 건 에밀리잖아?”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그녀들은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시기 질투하는 리마라는 사용인은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녀도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보란 듯이 콧방귀를 뀌며 입가에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사용인들이 파르르 치를 떨었다.
에밀리는 그 사이에서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사용인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에밀리의 주변이 북적이는 것은 전부터 있어 온 일이었다.
모두들 에밀리가 모시는 주인님에게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당의 분위기가 이 정도로 활기찬 건 처음이라 에밀리도 좀 낯설긴 했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사용인들의 질투가 에밀리를 향하는 일은 없었다.
에밀리는 록사나의 옆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해 온 데다, 남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며 잘난 척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에밀리라면 인정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사용인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나도 들었어! 에밀리는 록사나 수장님을 제일 오래 모셨다면서? 몇 년이나 일한 거야?”
길레타가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며 에밀리에게 물었다.
그녀는 아그리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특히 궁금한 점이 많은 듯했다.
대답은 에밀리가 아닌 다른 사용인에게서 흘러나왔다.
“록사나 님이 열한 살인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부터 모셨을걸? 아그리체에 들어온 건 그보다 더 오래됐고.”
“와, 진짜? 그럼 거의 10년이나 된 거네?”
“나도 주방에서 들은 얘기야.”
기대감을 품은 눈들이 에밀리에게 힐끗힐끗 날아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록사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뭐라도 하나 얻어들을 수 없을까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마침내 음식을 먹을 때만 사용되던 에밀리의 입이 다른 용도로 열렸다.
“난 다 먹었으니 먼저 일어날게.”
“벌써?!”
모두가 떠들 때 혼자서 묵묵히 밥만 먹었으니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친 에밀리는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녀는 아까 처음 방을 나설 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차림새를 가다듬었다. 당연히 시간도 아까보다 배로 많이 들었다.
그렇게 옆으로 뻗친 머리카락 한 올까지 깔끔하게 정리한 뒤에야 에밀리의 걸음은 록사나의 침실이 있는 건물로 옮겨졌다.
지금은 오전 7시.
주인인 록사나를 깨우는 것은 에밀리의 역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에밀리가 노크 후 방으로 들어갔을 때, 록사나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에밀리.”
닫힌 커튼 사이로 스며든 밝은 햇빛이 꿀처럼 흘러내린 록사나의 금발을 한결 달콤한 빛깔로 반짝이게 했다.
록사나가 하얀 살결을 타고 흘러내린 잠옷을 어깨 위로 느릿하게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 작게 웃자, 나른함이 고인 눈매가 살짝 접혀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록사나의 방에서는 늘 좋은 향기가 났다.
하지만 어쩌면 그 향기에 농도를 더하는 것은 시각적인 힘일지도 몰랐다.
록사나가 있는 공간은 그 장소가 어디든, 꽃이 만개한 화원이나 보석 반짝이는 연회장처럼 화려하고 또 향기로워지곤 했으니까.
지금도 만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에밀리가 아닌 다른 사용인이었다면, 폭력적이기까지 한 눈앞의 아름다움에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할 일을 잊었을 것이 분명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록사나 수장님.”
하지만 에밀리는 여느 때처럼 동요 없는 모습으로 록사나의 수발을 들었다.
“지난밤 동안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없었어.”
록사나가 앉은 침대로 다가간 에밀리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 뒤 에밀리는 어젯밤 록사나가 벗어 놓은 실내용 신을 들어 그녀의 발에 직접 신겨 주었다.
그러면서 언제나처럼 묻는 말에 록사나도 늘 하던 대로 대답했다.
“욕실에 목욕물을 준비해 놨습니다. 식전 차는 어떻게 할까요?”
“어제처럼.”
“네, 그럼 피로 회복에 좋은 아마네스 차로 준비하겠습니다. 그 밖에 달리 분부하실 일은 없으십니까?”
“응, 그거면 돼. 고마워.”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카펫 위를 가로지르는 록사나에게 에밀리가 가운을 들고 왔다.
록사나는 얇은 잠옷 위에 에밀리가 준 가운을 자연스럽게 걸치고 욕실로 향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방으로 돌아온 록사나는 아까보다 확실히 잠에서 깬 얼굴이었다.
“오늘의 일정입니다.”
그녀는 아침 식사 전에 에밀리에게서 일정을 확인하면서 가볍게 차를 한 잔 마셨다.
“오늘은 이게 전부야?”
“네, 제레미 수장님의 방으로 올라간 서신은 여덟 통 있었습니다.”
“간밤에는 별일이 없었나 보네.”
아침에 확인해야 할 외부의 소식도 이때 록사나를 거쳐 갔다.
올해 봄부터 록사나는 제레미와 함께 공동 수장으로서 아그리체의 업무를 분산해 처리하고 있었다.
특히 닉스를 찾고 돌아온 초여름부터는 아그리체 안팎의 일에 본격적으로 손대게 되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차를 마시며 대략의 일정을 확인한 록사나는 다른 사용인들을 방으로 들여 옷을 갈아입고 치장하는 일을 돕게 했다.
거울을 보고 선 록사나의 앞으로 색색의 옷과 보석들이 덧대졌다.
엄선해 뽑힌 시중인들은 매일 이 시간을 가장 기대했다.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설레고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록사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과 장신구가 없어서 오히려 매일 아침마다 최종적인 선택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주인을 모시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황홀하고 보람 있었다.
록사나의 의견을 반영해 의상을 결정지은 뒤에는 심혈을 기울여 록사나의 머리를 매만지고 신의 예술 작품 같은 얼굴에 엷은 화장을 덧입혔다.
“다들 수고했어.”
그렇게 준비가 모두 끝나면 록사나는 시중을 든 사용인들에게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그때가 분명 사용인들에게는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뒤쪽에 서 있던 에밀리가 조용히 앞으로 나와 말했다.
“오늘 아침 기온은 어제보다 떨어진 18도입니다. 짧은 거리지만 방 밖으로 나가 이동하실 땐 숄을 걸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럼 왼쪽 걸로 줘.”
마지막으로 에밀리가 준 숄을 걸친 록사나가 방을 나섰다.
오늘은 제레미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유독 맑네. 이제 우기는 완전히 지나간 거라고 봐도 되나.”
“마지막으로 비가 온 지 열흘 가까이 지났으니 그렇다고 여겨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은 작년에 비하면 그렇게 덥지 않았던 것 같아.”
“네, 올해는 가을이 작년보다 빨리 올 거라고 들었어요.”
“그래? 잘됐네. 에밀리는 가을을 좋아하잖아.”
에밀리는 아주 오래전에 단 한 번 지나가듯이 말한 적 있는 것을 록사나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순간 놀라 대답할 기회를 놓쳤다.
“나도 가을은 좋아하는 편이야. 그리고 올해 가을은 분명 지금까지보다 더 좋겠지.”
앞쪽에서 고요한 목소리가 울렸다.
에밀리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복도에 난 창문을 내다보고 있는 록사나의 옆얼굴에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아린 한기가 맺혀 있지 않았다.
봄철 한낮의 보드라운 자장가처럼 녹아든 온기가 낯설면서도 마음을 안심시켰다.
이렇게 록사나와 에밀리가 일상적인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지난 겨울까지는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다. 비록 겉으로는 아직 크게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그래서 에밀리도 록사나의 말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네……. 올해 가을은 분명 지금까지 아그리체에서 맞았던 어떤 가을보다도 따뜻하고 다채롭겠죠.”
이번 여름이 유독 밝고 싱그러웠던 것처럼.
이후 록사나와 에밀리는 식당까지 이어진 평온한 아침의 복도를 말없이 함께 걸었다.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록사나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그리체의 저택에는 이처럼 수많은 사용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록사나의 뒤를 따라도 좋다고 허락받은 사람은 에밀리가 유일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지만……. 사실 에밀리는 그것을 오래전부터 기쁘게 여기고 있었다.